영화 집으로...는 사실 실장석 참피가 근본이었던 소설 집으로 가는 길 하편
-데스, 데스.
[나, 주인님, 멋진.]
“그래, 네 주인님은 멋지구나.”
-데스데스. 데스우.
[당신도 상냥한. 감사한.]
“아, 하하. 고맙구나.”
말로는 고맙다고는 했지만 왠지 '실장에게 칭찬받은 이 굴욕... 잊지 않아요!'를 외치고 싶어졌다.
원사육실장과 시답잖고 의미없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차를 계속해서 운전했다. 아마 새벽이 되기 전에는 도착할 것이다. 도착 시간이 늦은 밤이라는 게 조금 신경 쓰인다. 부모님이 잠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이놈의 원사육실장이 자기 하고싶은 말을 계속 짖어대고 있어서 잠은 안 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데스우, 데스, 데스.
[나, 아기 낳고 싶은. 잔뜩 낳고 싶은.]
“새끼가 낳고 싶어? 많이?”
-데에…데즈우….
[주인님, 안된다고. 화낸.]
양식 있는 실장석 사육주라면 사육실장의 출산 제한은 당연한 것이다. 마음껏 낳게 허락해주는 건 학대파이거나, 아니면 지금 가는 우리 집 같은 곳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학대파의 집과 우리 집의 공통점은 뭐가 있을까. 예전에 사춘기일 때 잠깐 고민했었는데, 결론은 새끼 때 잠깐 귀여운 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실장석에게도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거였다.
“그래서 슬펐어?”
-데즈우….데즈우우우….
[슬픈. 아기는 귀여운. 주인님, 행복해지는.]
“네 아기들은 귀여울 테니까 잔뜩 낳으면 네 주인님이 그만큼 행복해질 거라는 거지? 그런데 주인님이 안된다고 하니 슬펐구나.”
내가 실장석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해주자 원사육실장이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적록색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더니 콧대 없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흥 하고 콧물을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홱 돌린다. 마치 이해받았다는 기쁨과 수줍음을 감추기 위해 새침을 떠는 것 같았다.
예쁜 여자나 어린애가 시전한다면 새침해서 귀엽겠지만, 실장석이 하니까 저게 뭔 지랄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집에 가는 길까지 졸지 않게 해주는 무료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겠다.
-데스데스우…
[당신 같은 인간, 처음.]
“앞으로 갈 곳에서는 새끼를 잔뜩, 많이많이 낳을 수 있을 거야. 기대해라.”
-데스! 데스웃!
힘차게 우는 실장석 울음소리를 링갈 앱이 번역해서 화면에 표시했다. 대충 기쁘고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밤이 더 깊어지면서 고속도로가 탁 트여서 조금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집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집 옆의 주차공간에 차를 주차시켰다. 내가 주차하는 소리로 아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집 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소리쳐서 부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밤이니까, 나는 휴대전화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그렇게 짧게 말을 전달하면서 내린 다음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 사이에 잠들어 있던 원사육실장이 ‘데에..’하면서 아직 졸린 기운이 남아 있는 적록색 눈을 깜박였다. 칠칠치 못하게 헤 벌어진 세모입에서 투명한 침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원사육실장을 들어서 품에 안았다. 땀에 절은 냄새가 훅 나지만 들실장보다는 낫다.
생각 같아서는 뒷머리를 움켜쥐고 들고 가고 싶지만 그러면 이놈이 바락바락 발악해서 시끄러울 것이다. 한밤중이니까 좀 조용히 해야겠지.
-데, 데뎃? 데에… 데스우웅~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침 묻은 투실투실한 뺨을 내 가슴팍에 기대는 것도 모자라 비벼대기까지 해서 기분이 매우 엿같아졌다. 특히 얇은 여름옷 너머로 물컹하고 기분나쁘게 따뜻한 살집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서 더 불쾌하다.
그래도 이놈을 보고 부모님이 기뻐하실 걸 생각하면 참을 만 하다. 나는 원사육실장을 품에 꼭 안은 채로 집으로 들어섰다.
“아들! 너무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놈, 너무 연락도 없어서 죽은 줄 알았다.”
“아니 무슨 그런 말을 해욧! 오랜만에 온 아들 앞에서!”
“아니 뭐… 그러니까 평소에 연락 좀 하라 이거지…”
어머니의 타박 앞에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흐름을 끊기 위해 품에 안고 있던 원사육실장을 내밀었다.
갑자기 낯선 사람인 내 부모님 앞에 내밀어진 원사육실장은 얼떨떨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가에 손을 갖다대면서 자기가 최고로 귀엽다고 생각할 울음소리를 냈다.
-데스우웅~
“이것 보세요. 오다가 휴게소에서 버려진 걸 데려왔어요.”
“오? 제법 튼실해 보이는구나.”
“이거 원사육실장이니? 들실장 아니지? 원사육실장이래도 버려진지 오래 됐으면 음식물 쓰레기 주워먹어서 못쓰는데…”
“버려진 지 하루 정도 된 것 같아요.”
“아주 잘 됐구나. 안 그래도 이제 슬슬 교체를 해야 할 것 같더라니.”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는 큼직한 별사탕처럼 생긴 물체가 가득 채워진 투명한 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물체 하나를 꺼내 원사육실장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러나 바로 받아먹지 않고 두 앞발로 받아든 다음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원사육실장.
-데스데스우!
“확실히 원사육이네. 교육을 잘 받았어.”
어머니의 칭찬을 받으면서 원사육실장은 두 앞발로 꼭 잡은 별사탕 같은 물체를 벌어진 입으로 밀어넣었다. 헤 벌어진 입을 우물거리며 데챱데챱 핥아대면서 먹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원사육실장이 축 늘어졌다.
겉모양은 실장석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콘페이토처럼 생겼고 단맛도 나지만, 그 속에는 네무리와 역도돈파가 혼합되어 있다.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깨어나지도 않고, 똥도 지리지 못할 것이다.
뒷머리채를 잡아 들어도 원사육실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부모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일 아침은 실장탕 해 줄게.”
“그래. 이거 처리는 나랑 아들이 같이 할 테니까 당신은 먼저 들어가서 자.”
안방으로 먼저 자러 들어가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잠든 원사육실장을 뒷머리를 잡아서 든 채로 아버지와 같이 뒷마당으로 나갔다.
뒷마당에는 집과 창고 사이에 철조망을 쳐서 만들어 놓은 우리가 있었다. 입구 쪽에는 작은 빨간 고무 대야를 물그릇으로, 큰 우유통 윗부분을 잘라낸 통을 먹이그릇으로 놓아두었다. 안쪽에는 똥이 바로 배수로로 떨어지도록 파 놓은 변기 대용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 구석, 자실장들의 작은 녹색 옷이 가득 쌓여 있는 더미 위에 발가벗은 살색 형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데, 데에… 데에에엣…?
-레챠아아아앗!
-레츄웃!
-레에엥, 레에에에엥!
갑작스러운 불빛에 놀라 동그란 눈을 잔뜩 찡그린 채로 깜박이고 있는 성체 실장석은 머리카락도 옷도 전혀 없는 완벽한 나체였다. 오른쪽 귀에는 출산 횟수를 기재하는 녹색 태그가, 왼쪽 귀에는 몇 번째 출산석인지 나타내는 순번을 기재한 ‘261’을 기재한 노란 태그가 꿰뚫린 채로 달랑거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식용 새끼실장 생산용 출산석이다.
아직 잠이 덜 깬 출산석의 품 속에서는 아주 작은,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정도밖에 안 되는 새끼 두세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엄지만 낳은 거예요? 갈아야 한다는 이유를 알겠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뭐, 이놈도 꽤 오래 쓰기는 했지. 내가 꺼낼 테니까 너는 그놈 처리해라.”
“네에~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안으로 들어서자 출산석이 ‘데샤아아앗! 샤아아아앗!’하면서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위협했다. 그런 출산석의 뒤에 숨은 엄지실장들이 레에엥 치에엥 거리면서 어미에게 딱 달라붙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런. 이 한밤중에 저럴거면 이 녀석도 네무리 먹이지 말고 그냥 처리할걸.”
훈육이 잘 된, 프라이드 높은 원사육실장은 옷과 머리카락을 뺏는 것부터가 충분한 학대인데 이번에는 즐기지 못해서 아깝다.
투덜거리면서 나는 잠들어 있는 원사육실장의 뒷머리카락을 뚝뚝 잡아 뜯고 앞머리도 잡아 뜯었다. 이렇게 만져보니 역시 관리 잘 받았던 원사육실장답게 부드럽고 결 좋은 롤머리였다. 아마 꽤 자랑스럽게 여겼겠지.
-덱! 덱! 데스웃!
“이놈이, 어딜.”
아버지가 내일 아침에 실장탕이 되기로 예정된 원 출산석을 실장채로 때리고 있는지 촥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흘려 들으면서 나는 원사육실장을 출산석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일회용 기저귀는 그냥 뜯어냈다. 옷과 두건과 맞춤 세트인 듯한 레이스 달린 분홍 캡 같은 실장화는 발이 부어서 그런지 벗기는 게 좀 힘들었다. 땀과 때에 절어 있는 레이스 달린 분홍색 실장복과 두건도 벗겨버렸다.
-데스데스우웃! 데갸아악!
“어, 이놈 봐라. 니가 맛있어지는 건 싫냐? 니 새끼 대신 갖다 바치려고?”
원래 주인에게서 정성껏 돌봄과 사랑받았을 원사육실장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머리카락과 옷을 다 벗겨 버리면, 그런 흔적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독라 실장석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출산석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왼쪽 귀에 아무것도 안 적힌 녹색 태그를 찍어서 달고, 오른쪽 귀에 ‘262’라고 적은 노란색 태그를 찍어서 달면… 이걸로 완성이다.
“아버지, 다 됐어요~ 그쪽은 다 됐어요?”
“어. 방금 다 됐다.”
아버지가 우리 문을 열고 나오면서 대답했다. 한쪽 손에는 실컷 얻어맞아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든 데다가 반쯤 기절했는지 ‘데…’하는 소리만 맥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출산석의 한쪽 뒷다리를 움켜쥐어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양동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 ‘레에에에엥’ 하는 엄지실장들의 가느다란 울음소리 대합창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엄지실장은 어떻게 할 거예요?”
“네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볶음으로 하기에는 너무 적은데…”
저건 아버지가 엄지볶음이 드시고 싶다는 말이다. 하긴, 푹 우려낸 뽀얀 실장탕에 매콤한 붉은 양념을 한 엄지볶음을 생각하면 나도 입에 침이 고이려고 한다.
“내일 실장탕 끓이기 전에 새끼를 좀 뽑아내면 되겠죠. 엄마에게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어허. 아침부터 번거롭게 무슨…”
“에이, 저도 먹고 싶어서 그래요. 우리 엄마가 만든 엄지볶음이면 밥 세 그릇도 뚝딱인데.”
나는 웃으면서 새로운 출산석을 우리 안으로 옮겼다. 원 출산석은 새끼들과 같이 큰 곰솥에 가두어 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실장탕을 끓이기 전에 소주로 몸 안팎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들여 밀대 같은 걸로 패면 더 맛이 좋아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패기 전에 어머니에게 말씀드려서 새끼를 좀 뽑아내야겠지만.
그러려면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 지금 들어가서 빨리 씻고 자야겠다.
그간 잡아먹은 새끼 실장석들의 옷이 쌓여 있는 구석 둥지에새로운 출산석을 올려놓았다. 네무리 때문에 잠든 상태라 여전히 깨어날 기색은 없지만,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새끼 실장석의 부드러운 옷의 감촉이 어지간히 좋은지 발가벗은 몸을 부비면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어쩌면 옷에 배어 있는 갓 태어난 새끼 냄새가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새끼를 많이많이 낳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자, 집에 온 걸 환영해, 출산석. 앞으로 새끼를 많이많이 낳아서 우리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주렴.”
잠든 상태에서도 내 말을 듣고 새롭게 펼쳐진 앞날에 대한 기대가 가득해진 걸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즐거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새로운 출산석이 벌어진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데프프’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잡으려는지 뒤척거리던 출산석은 이전 출산석, 그리고 그 이전의 출산석들이 낳은 새끼들의 옷을 꼭 끌어안고 행복한 얼굴로 깊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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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 짤린거 확인해서 수정함
음식물 쓰레기 먹는 들실장은 고기와 새끼에 냄새나서 안되지만 실장푸드만 먹는 사육실장은 바로 식용 출산석으로 쓸수 있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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