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세계명작극장과 동격의 작품인 실장석 참피와 동등한 소설 [실장 명작극장] 철웅이라는 이름의 사나이
옛날 후타바 거리에 박철웅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매일 거리에서 마주치지만 얼굴을 제대로 기억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얼굴, 즉 공동체적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철웅은 그런 사람들이 늘 하는 일을 모두 하면서 살았다. 그에겐 재능이 없지 않았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돈과 쾌락을 좋아하여 멋진 옷을 즐겨 입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비겁하기도 했다. 그의 삶과 행동은 욕구와 노력보다는 금지, 벌에 대한 두려움에 등에 의해 더 좌우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예의 바른 면모를 지녔고, 자기 자신을 무척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요컨대 전체적으로 보아 만족스런 보통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어떤 본보기가 될 때는 개성적인 인격체로 처신했고, 모든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 즉 자신의 운명 속에서 세계의 중심점을 찾았다. 의혹이란 그와 거리가 먼 것이었으며, 어떤 사실들이 그의 세계관에 어긋날 때엔 비난하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현대인으로서 그는 돈 이외에도 두 번째의 힘, 즉 학문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학문이 원래 어떤 것인가는 말할 수 없었겠지만, 통계학 또는 세균학 정도로 생각했고, 국가가 학문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명예를 부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특히 실장석 연구를 높이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행동을 지닌 실장석에 대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웅은 그동안 고도로 발전한 학문 덕분에 반드시 실장석과 대화를 하리라 기대하였다(당시에는 아직 링갈이란 것이 발명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해 유행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대로 옷을 입으려는 노력 때문에 겉으로는 멋있어 보였다. 그의 스타일을 지나치게 뛰어넘는, 계절마다 또는 달마다 바뀌는 유행은 당연히 어리석은 흉내라고 경멸하였다. 그는 인격을 중시했고, 안전한 장소에서 자기처럼 인격을 갖춘 사람들과 상관이나 정무를 비방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철웅에 대해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철웅은 매력 있는 젊은이였다. 우리는 그에 관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그가 많은 계획과 당연시 했던 희망과는 반대로 일찍 이상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도시로 온 직후, 한번은 유쾌한 일요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직 사람들과 제대로 교제를 하지 못했고, 아직 어떤 모임에 들어갈까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불행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꼽아두었던 도시의 명소를 다녀보기로 했다. 충분히 검토한 끝에 역사박물관과 두루마리 공원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박물관은 일요일 오전에는 공짜였고, 두루마리 공원은 후타바 거리에서 가장 크고, 실장석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에 철웅은 가장 아끼는 새 외출복을 입고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가느다랗고 우아한 산보용 지팡이를 휴대했는데, 이래커 칠이 잘된 네모난 지팡이는 그에게 안정감과 동시에 화려함을 주었다. 그러나 몹시 불쾌하게도 전시실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지기에게 압수당하고 말았다.
천장이 높은 전시실에서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경건한 관람자는 마음속 깊이 전능한 학문을 칭송했다. 진열창 옆에 붙어 있는 자상한 설명문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도 학문은 공로가 인정될 만한 신뢰성을 보여주었다. 녹슨 열쇠, 녹청색의 깨진 목걸이들 같은 골동품들이 설명문에 의하면 놀라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학문이 어떤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보는 것은 놀라웠다. 그렇다, 틀림없이 학문은 곧 실장석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아마 실장석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두 번째 전시실에서 그는 유리 찬장을 발견했는데. 그 유리가 아주 잘 비춰주어서, 잠시 동안 자신의 옷, 머리 모양, 옷깃, 바지의 주름, 그리고 넥타이의 매무새를 조심스럽고 흐뭇한 마음으로 매만질 수 있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옛 판화가의 작품 몇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아주 순박하긴 하지만 유용한 것들이군, 하고 그는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또 외국에서 들어온 코끼리 다리가 갈린 옛 탁상시계와 시각을 알릴 때 미뉴에트 춤을 추는 작은 인형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이 일이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품을 하면서 자주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이 묵직한 금시계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점심식사를 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호기심을 다시 사로잡을 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다. 거기엔 중세 유럽의 미신에 관한 물건들, 예컨대 마술 책자, 부적, 마녀의 옷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구석에는 대장간의 화덕, 절구, 볼록한 유리그릇, 말린 돼지방광, 풀무 등을 갖춘 연금술 작업장을 완전히 재현해 놓았다. 이 구석은 줄로 막혀 있었고, <물건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팻말을 잘 읽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실내에는 완전히 철웅 혼자뿐이었다.
그는 무심코 줄 위로 팔을 뻗어 우스꽝스러운 물건 몇 개를 만져보았다. 이러한 중세와 그 기이한 미신에 대해서는 이미 듣고 읽은 게 많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당시 사람들은 이렇듯 유치한 물건에 매달릴 수 있었는지, 마녀의 온갖 속임수와 도구들을 금하지 않았는지. 그것에 비하면 연금술엔 변명의 여지가 충분할 것 같다. 바로 거기에서 유용한 도가니와 어리석은 마술 도구가 없었다면, 오늘날 아스피린도 가스폭탄도 존재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그는 생각 없이 조그맣고 까만 구슬 하나를 손에 쥐었다. 무게도 나가지 않고 바싹 마른 것이 무슨 알약 같았다.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다가 막 제자리에 놓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돌렸다. 관람객 한 사람이 들어왔다. 구슬을 손에 들고 있는 게 철웅에겐 당혹스러웠다. 물론 금지 팻말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는 손을 오그려 주머니에 찔러 넣고 밖으로 나갔다.
길 위에서야 비로소 다시 알약 생각이 났다. 그는 그것을 꺼내어 던져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선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 물건에서는 연한 송진 냄새가 났다. 냄새에 흥미를 느껴 그는 다시 구슬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 그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주문했다. 신문 몇 종을 살펴보다가 자신의 넥타이를 매만졌다. 그는 어떤 옷차림을 했느냐에 따라 어떤 손님은 공경하는 눈으로, 어떤 사람은 깔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식사가 좀 지체되자 철웅은 얼결에 훔쳐온 연금술사의 약을 꺼내어 냄새를 맡았다. 그 다음엔 집게손가락으로 긁어보았다. 결국 어린애같이 순진한 충동에 따라 알약을 입에 갖다 대엇다. 그것은 입안에서 재빨리 녹아버렸다.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아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셔 입가심을 했다. 곧 이어 식사가 나왔다.
2시 정각에 이 젊은이는 버스에서 내려 두루마리 공원에 들어섰고, 곧 이어 실장석들을 찾아갔다.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는 지나가는 실장석들을 지켜보았다. 우람한 실장석 하나가 눈을 깜박이며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데스? 닌겐상?]
이 이상한 일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라서 그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걸어 나오는 동안 뒤에서 실장석이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닌겐 여전히 건방진데스! 발바닥이 평평한 분충!]
급히 철웅은 다른 실장석을 찾아갔다. 그 실장석은 희희낙락 춤을 추며 외쳤다.
[데프픗, 와타시의 춤을 보고 메로메로 되는데스. 관람료는 콘페이토만 받는데스, 닌겐!]
그가 별사탕을 가지고 있지 않자, 춤을 추던 실장석이 화가 나서 그의 흉내를 내며 거지라고 놀려댔다. 이를 드러내고 그를 향해 으르렁대기까지 했다.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놀라고 당황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보다 상냥한 태도를 기대하면서 분수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육실장들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분홍색 옷에 윤기 나는 머릿결을 가진 사육실장 두 마리가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철웅은 마음속 깊이 놀랐다. 그 마술의 알약을 삼킨 뒤부터 실장석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육실장들은 서로의 주인을 자신의 노예라고 자랑하며, 인간들에 대해 오만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경멸, 즉 분충의 경멸감을 나타냈다. 이 오만함으로 가득한 사육실장들을 지켜본 철웅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간과 가장 비슷하고, 인간의 문명을 흉내 내며, 인간과 같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신비로운 생물인 실장석이 실은 쓰레기 같은 존재, 가소롭고 메스꺼운 해충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사육실장들을 뒤로하고, 철웅은 공원 곳곳의 실장석들에게 갔다. 이들 모두가 분충은 아니었지만, 철웅이 생각하던 실장석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그것들이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끔찍하였다. 요컨대, 그것들은, 이 추하고 냄새나고 품위 없는 두 발 달린 인간이 자신들의 시중을 받드는 노예라고 여겼다.
철웅은 한 실장석이 자기 새끼와 이야기하는 말을 들었다. 그 대화는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듣기 어려운, 오만함과 추악함이 가득 찬 것이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실장석이 소풍 나온 사람들의 음식을 훔쳐온 것에 대해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다. 방금 전의 춤을 추던 실장석을 들여다보면서, 인간 남성을 매혹시켜 여왕처럼 편하게 살려고 하는 실장석의 추악함을 알았다. 친과 같이 외출을 한 자실장이 오만함이 가득한 초승달 모양의 눈으로 웃는 것을 보았고, 한 실장석은 한 총각을 보고 성적인 농담을 하며 발정한 채로 흥분한 것을 보았다.
멍한 상태로, 모든 사고의 습관에서 벗어나 철웅은 다시 의혹의 시선을 실장석들에게 던졌다. 그의 고통과 불안을 이해해 줄 눈동자를 찾았다. 무언가 위안이 될 만한 것, 이해해 줄 만한 것, 선의로운 것을 듣기 위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실장석들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의 어느 구석에서든 품위, 천성, 고귀함, 조용한 우월감을 찾아보기 위하여.
그러나 실망하고 말았다. 그는 목소리와 대화를 들었고. 행동거지와 눈빛을 보았다. 이제 모든 것을 실장석의 언어를 알아들었기 때문에 그가 발견한 것은, 이 사랑스럽고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들이 실은 타락하고 위장된 기만의 무리에 다름없다는 사실이었다.
철웅은 실장석을 향한 애정이 분노로 바뀐 것을 억제하지 못하고, 지팡이를 실장석들에게 휘둘렀다. 네모난 지팡이는 휘두르기 쉽게 고쳐 잡았다. 마치 둔기를 손에 쥔 것처럼. 몸이 움직이기 편하게 장갑과 모자를 벗어 던졌다. 이어서 장화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 헤친 채 울부짖으며 공원의 실장석들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햣하!”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붙잡혀 동물학대죄로 채포되었다. 철웅은 자신이 실장석의 말을 알아듣고, 실은 매우 유해한 해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못했으며, 결국 한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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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모티브는 헤르만 헤세의 '지글러라는 이름의 사나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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