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세계명작극장과 동격의 작품인 실장석 참피와 동등한 소설 [실장 명작극장] 독라(禿裸)

옛성 모롱이 버드나무 까치둥우리 위에 푸르둥한 하늘이 얕게 드리웠다토끼우리에서는 하아얀 양토끼가 고슴도치 모양으로 까칠하게 웅크리고 있다능금나무 가지를 간들간들 흔들리면서 벌판을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덮인 종묘장(種苗場보리밭에 휩쓸려 운치굴에 모질게 부딪친다.

 

조촐하게나마 만든 목줄에 묶여있는 독라 자실장은 바람을 맞으면서 유난히 소리를 친다자신에게 묶인 목줄을 풀려고 애를 쓰지만실장석의 뭉툭한 손으로는 풀기가 어려워 보인다갑자기 자신의 몸이 들어 올리는 것에 놀란 독라 자실장이 놀라서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며 전신을 요동한다손에서 미끄러진 독라 자실장은 게걸떡거리며 도망치려 하지만 자신의 목에 찬 줄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고꾸라져 버린다작디작은 자실장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 못할 정도의 큰 고함에 오후의 공원은 떠들썩하다.

 

거대한 마라실장이 독라 자실장을 유심히 훑어본다그에 겁먹은 독라 자실장이 어떻게든 도망쳐 보려고 날뛰다가목줄을 벗어내어 뛰어나갔다.

 

[어려서 안 되겠는데스.]

 

마라실장이 껄껄 웃는다.

 

[고양이 앞에 우지챠 같으니 쟁그러워서 볼 수 있는데스까.]

[겁을 먹고 달아나는데스.]

 

마라실장의 동료가 날쌔게 움직여 뛰어가는 독라 자실장의 앞을 막았다.

 

[저번에도 한번 왔다 갔으나 그때 보다 성장했다고 생각해서 또 끌고 왔는데스.]

 

독라의 주인이자 귀가 한쪽 밖에 없는 들실장 짝귀가 겸연쩍어서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렇게 작아서야 버틸 수나 있는데스까와타시의 거대한 마라를 보는데스저런 조그마한 어린놈은 성노예로 쓸 수 없는데스넣자마자 파킨해버릴게 분명한데스.]

 

마라실장의 말에 짝귀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빌어먹을 놈의 분충데스.]

 

무안도 무안이려니와 귀찮게 구는 독라에게 짝귀는 화를 버럭 내면서 마라실장 동료의 부축을 하며 달아나는 독라 자실장의 뒤를 쫓는다구두가 진창에 빠지고 팬티가 흘러내린다.

 

독라의 허리를 맨 바를 붙들었을 때에 짝귀는 홧김에 바를 뒤로 잡아나꾸며 기운껏 매질한다어린 자실장은 바들바들 뛰면서 비명을 울린다실장생 일 년의 생명선 – 좀 있으면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여 풍족한 삶을 사는 마라실장에게 성노예로 팔아 부족한 보존식을 얻으려는 부담을 맡은 어린 독라에 대한 측은한 뉘우침이 나중에는 필연코 나련마는 실장석들 숲에서의 무안을 못 이겨 짝귀의 흔드는 매는 자연 가련한 독라 위에 잦게 내렸다.

 

[그만 데려가는데스.]

 

목줄을 고쳐 든든히 매고 난 마라실장은 짝귀에게 손짓한다.

겁과 불안에 떨며 허둥거리는 독라를 이번에는 한결 더 든든히 목줄에 매고목줄에 손을 못 대게 하기 위해 풀로 만든 끈으로 몸을 꼼짝 요동하지 못하게 탐탁하게 얽어매었다.

 

벌거벗은 몸을 근실근실 부딪치며 짝귀의 곁을 궁싯궁싯 굼도는 독라는 미처 짝귀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화차와도 같이 도망치기 시작한다시뻘건 입이 욕심에 목메어서 풀무같이 요란히 울린다목줄에 멘 독라는 목이 찢어져라 날카롭게 고함친다.

 

둘러선 좌중은 일제히 웃음소리를 멈추고 일시 농담조차 잊은 듯하다.

문득 짝귀는 여름에 다 죽어버린 춘자들의 자태가 눈앞에 떠오른다짝귀는 독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딴전을 보았다.

 

[‘자들……지켜주지 못해서 미한한데스우……’]

 

제 이 기분은 새로 겨울나기조차 밀려오는 들실장의 형편에 독라노예보다 나은 부업이 없었다한 마리를 반 년 동안 충실히 기르면 겨울나기도 겨울나기이려니와 잔돈푼의 가용돈은 훌륭히 우러나왔다이 독라노예의 공용을 잘 아는 짝귀이다푼푼이 모은 식량으로 이웃 실장들의 본을 받아 공중화장실에서 갓 난 버려진 엄지 두 자매를 데려온 것이 이번 봄이었다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독라노예 자매를 짝귀는 자신의 자처럼 귀히 여겨 가제 사왔던 무렵에는 독라굴에 넣기가 아까워 그의 골판지 한구석에 낙엽을 펴고 그 위에 재우기까지 하던 것이 지 어미를 그리워서인지 한 달도 못 돼서 언니 놈이 죽었다나머지 동생 놈은 버려진 것에 더하여 지 자매가 죽은 것 때문인지머리가 완전히 미쳐 구더기실장처럼 멍청하게 되었다그럼에도 짝귀는 애지중지하여 단 한 벌의 그녀의 밥그릇에 물을 받아 먹이기까지 하였다물도 먹지 않고 끙끙 앓을 때에는 그녀는 먹이를 구하러 가는 것도 그만두고 종일 독라의 시중을 들었다여섯 달을 기르니 겨우 엄지에서 자실장으로 성장했다가을이 다가오기 전에 짝귀는 첫 시험으로 1km가 넘는 이웃 공원의 마라실장에게까지 끌고 왔었다목숨을 걸고 힘들게 찾아왔건만 마라실장은 독라노예가 너무 어리다면서 사는걸 거부했다짝귀는 화가 났다때마침 짝귀의 자들은 독라노예가 자신들보다 더욱 관심 받고 사는 것에 질려 춘자 전체가 합심하여 집을 나갔다가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닥의 얼룩으로 발견되었다이래저래 상할 대로 속이 상했다능금 꽃 같은 두 볼을 잘강잘강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던 춘자들이만큼 짝귀는 오늘까지 솟아오르는 심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

 

[어이 짝귀 오마에.]

 

딴전만 보고 섰던 짝귀는 마라실장의 목소리에 그쪽을 보았다마라실장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짝귀를 정겹게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이웃 공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짝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번히 퍼져있었다마라실장이 정을 봐서라도 짝귀의 어린 독라노예를 일찍이나마 사겠다고 하였다길가의 노르스름한 잎의 가로수의 나무들이 잎이 모두 노랗게 변하게 될 때다시 찾아오면 독라노예를 사겠다고 했다한 손에 쥔 목줄 끝에 있는 독라노예를 보니 아주 복덩이가 따로 없었다다음번에 오기 전까지 보기 좋게 살이라도 찌워 놓으려면 오늘은 특별히 맛난걸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짝귀의 발걸음은 깃털같이 가벼웠다독라노예를 몰고 길 왼편 가로 걸어가던 짝귀는 퍼뜩 음식을 구하려고 열중인 동료들을 보았다음식물 쓰레기 중 그나마 상태가 좋은 것을 챙기려고 고군분투하는 동료들과 맛있는 것을 자신의 자들에게 먹일 생각에 웃음꽃을 피우는 동료들배가 고픈 자들을 위해 봉지 한가득 먹을걸 가지고 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만약 자신의 자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자기도 저 자리에 끼어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짝귀는 괜스레 방금 전의 기쁨은 어디가고 부러움과 아쉬움만이 남아있었다.

 

어기적거리며 독라노예의 걸음이 올 때만큼 재지 못하였다그러나 이제 매질할 용기는 없었다.

 

도로를 지나 정거장을 지나 행길에 나서니 자신과 같이 공원으로 돌아가는 실장석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보인다산모롱이가 바닷바람을 막아 아늑한 저녁 빛이 행길 위를 덮었다먼 산 위에는 전기의 고가선이 솟고 산 밑을 물줄기가 돌아 내렸다공원 가는 넓은 도로가 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쳤다저물어가는 강산 속에 아득하게 뻗친 이 길이 새삼스럽게 짝귀의 마을을 끌었다.

 

[이번에는 가서 추자를 낳는데스.]

 

마라실장에게 독라노예를 팔면 부자가 될거인데스이번에 추자를 낳으면 독라를 팔고 남은 식량으로 어떻게든 겨울을 날수 있지 않을데스까어디서 들었는지 추자들이 춘자들보다 더 분충이 적고 애교가 많아서 귀엽다고 하던데스그게 진짜인데스우생각해보면 이번 춘자들은 은근히 분충이었던데스이 독라노예가 나중에 자신들에게 좋은 일이 될 거라고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분충이었던데스하지만 이번에 낳을 춘자들은 분명히 착한 자들만 있을거인데스만약 춘자들처럼 분충이 나온다면 속아내면 되는데스그리고 남은 현명한 자들에게는 독라노예를 기르는 것에 대해 가르쳐야겠는데스다른 멍청한 분충들처럼 목숨 걸고 먹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데스독라노예를 팔면 고생을 안해도 되는데스……그런데 이번에 독라노예를 팔면 얼마나 받는데스우독라노예독라노예…….

 

[!]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정신이 깨었다.

찬바람이 휙 앞을 스치고 불시에 일신이 딴 세상에 뜬 것 같았다눈이 보이지 않고귀 들리지 않고 – 잠시간 전신이 죽고 감각이 없어졌다캄캄하던 눈앞이 차차 밝아지며 거물거물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귀가 뚫리며 요란한 음향이 전신을 쓸어 없앨 듯이 우렁차게 들렸다 – 우레소리가…… 바람소리가…… 바퀴소리가……별안간 눈앞이 환해지더니 거대한 트럭의 마지막 바퀴가 쏜살같이 눈앞을 달아났다.

 

[자동차데스!]

 

다 지나간 이제 짝귀는 정신이 아찔하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진땀이 나는 대신 소름이 쪽 돋는다전신이 불시에 빈 듯이 거뿐하다글자대로 전신은 비었다한쪽 팔에 들었던 비닐봉지도 간 곳이 없고 바른손으로 이끌던 독라노예도 종적이 없다.

 

[독라노예!]

[독라고 무어고 미친 분충인데스어디라고 찻길을 막 건너는데스.]

 

따귀를 철썩 맞고 바라보니 공원에서 만나는 동료실장이 성난 얼굴로 짝귀를 노리고 섰다.

 

[독라노예는 어찌 됐단 말인데스.]

[어젯밤 꿈 잘 꾸었던데스오마에 몸 안 치인 것이 다행인데스.]

[아니 그럼 독라노예가 치었단 말인데스?]

[다음부터 차에 주의하는데스!]

 

독하게 쏘아붙이면서 동료실장은 짝귀의 팔을 잡아나꿔 도로 밖으로 끌어냈다.

 

[오로롱 독라노예가 치인데스……독라노예를 팔지 못하면 겨울은 어떡하는데스춘자들도 낳지 못하는데스……오로롱독라노예독라노예…….]

 

엉겁결에 외치면서 훑어보니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적록색의 작은 고기조각이 납작하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독라노예를 죽인 거대한 트럭은 벌써 그림자조차 없다.

 

[한방에서 잠 재우고한 그릇에 물 먹여서 기른 독라노예불쌍한 독라노예…….]

 

정신이 아찔하고 일신이 허전하여서 짝귀는 금시에 그 자리에 푹 쓰러질 것도 같았다이미 고기조각이 된 독라노예를 끌어안고 오로롱거리며 울고 있는 짝귀의 저 먼 치에선 자동차 한 대가 다고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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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모티브는 이효석의 '돈(豚 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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