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참피로 요리왕 비룡 더 마스터 미스터 초밥왕 요리하는 소설 마담 구르메 2부 - 20. 헬스실장 왕족발 - (4)

 [헬스실장 프로젝트 10일차, 08:02AM, 헬스클럽 '벌크 앤 짓소']




2주차에 접어들고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된지도 사흘째, 체육관 안쪽 구석에 마련한 식실장들 임시숙소에서 사고가 터졌다.

뭐 사고라기보단 실장석의 예측 불가능한 본성상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고, 그 내용과 대응법을 가영씨도 어느 정도 계산에 넣어둔 상황이긴 했지만 이번 사고는 스케일이 좀 심하게 컸다.

'씨뿔, 흑발자라니... 어째 참피들 주제에 너무 조용히 지낸다 싶었지.'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로 쓰는 자기 사무실 휴지통을 비우려던 정 관장이 휴지통이 엎질러지고 볼일(...) 본 휴지 두 뭉치에 사람 것이 아닌 체액과 운치가 묻은 걸 보고 기겁해서 나와 가영씨를 호출했다.

덕분에 헬스클럽 출근 시간인 열 시보다 두 시간은 일찍 출근하는 신세가 되었고 짜증이 잔뜩 올라 툴툴거리며 체육관이 있는 2층으로 올라왔는데, 나미가 자기 주인에게 대강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주인사마, 멋대로 자를 가진 똥벌레가 나온 거에요!'

'다 듣고 왔어. 퇴근하기 전에 셋이서 교대로 불침번 세워놨잖아? 어제가 립톤 차례였지. 걔는 뭐했대?'

'다른 똥벌레들이 운치 마렵다고 찡찡대서 화장실 데려가 주던 거에요.'

'에휴, 그래 알았다. 오늘부턴 내가 남든지 해야지 원...'

뒷목을 잡고 끙끙거리던 가영씨가 나미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아직 범인이 누군지 듣지 못한 것이다.

'뭐 더 볼 것도 없겠네. 그것들 독라 맞지?'

'척하면 척인 거에요.'

앞장서는 나미 뒤를 따라 함께 임시숙소 한복판의 독라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독라 반독라들한테 특별히 잠잘 구역까지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기 좋아하는 실장석들의 습성상 온전한 머리카락에 신발까지 얻은 에이스들과 어중간한 반독라들, 여태까지 남아있는 20여 마리의 독라들은 끼리끼리 뭉쳐 자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자연히 각자의 구역이란 것도 생기게 되었다.

독라가 천대받는 실장석 사회니 그네들 잠자리는 구석 중에서도 제일 구석진 쓰레기통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쓰레기통을 배경으로 도끼눈을 뜨고 립톤을 노려보고 있는 머큐리와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는 립톤, 녹색 양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대며 자기 배를 들이밀어대는 똥벌레 두 마리가 있었다. 45번과 62번, 정 관장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거진 내다버리다시피 한 분충들이었다.

'립톤챠 도대체 똥벌레들 관리를 어떻게 한 보쿠와? 그냥 자도 아니고 흑발자인 보쿠! 어떻게 책임지는 보쿠?'

'와타시도 열심히 했던 다와... 억울한 다와!'

'빨강 노예! 파랑 노예! 못 들은 데스카? 널빤지같은 가짜 스테이크와 비린내나는 짭스시는 고귀한 흑발자들과 친인 와타시의 몸에 해로운 데스우. 어서 와타시에게 기름 좔좔 흐르는 고베 와규 스테이크와 참치 대뱃살 스시, 산더미만한 콘페이토를 내놓는 데샤악! 세레브 매지컬 테치카 하우스와 아름다운 프릴 실장복 일가 세트는 특별히 덤으로 봐주는 데스웅.'

'데뿌뿌 흑발자도 없는 찐따벌레들이 부럽기는 한 모양인 데스. 뭘 그리 쳐다보는 데샥! 운동인지 하는 뻘짓이나 하러 꺼지는 데스요.'

어쩜 저리 하는 말이 고장난 라디오 굴리듯이 똑같은지... 이제 슬슬 실장석 꼴을 내는 에이스와 반독라들은 물론이고, 동류인 낙오조 독라들마저도 두 마리 임신 똥벌레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운치 마렵다는 똥벌레들 내뒀으면 바닥을 더럽혔을 다와. 기껏 데려다줬더니 그새 사고가 터진 다와악! 도대체 와타시더러 어떻게 하라는 다와?

립톤 입장에선 정말 억울하긴 한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채로 목청을 높히는 중이다. 머큐리는 냉정하게 딱 자르고 있지만 말이다.

'핑계는 듣기 싫은 보쿠. 당장 주인사마께 알려서-'

'다 듣고 왔어, 머큐리.'

'보오? 주인사마?'

립톤과 머큐리에게 자초지종을 듣는 사이 가영씨는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벌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립톤이 힘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정말로 잘못했다면 벌을 받는 다와. 하지만 와타시도 최선을 다한 다와...!'

'걱정마. 벌 줄 생각 없으니까.'

'다...다와!'

꽤 골치아픈 사고였지만 가영씨에게 립톤을 벌줄 생각은 없었다. 브리딩 과정에서도 빈번히 터지는 사고인데다 일단은 자기 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으니깐, 여기서 굳이 누군가에게 잘못이 있다면 정 관장에게 휴지통 간수를 잘하라고 말해두지 않은 자기 잘못이라고 이미 인정한 바였다.

'너희 셋만 남기고 집에 간 내 잘못이지. 이건 너희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혼낼 생각은 없어. 대신 대책이나 잘 세워보자.'

'주인사마... 다와아아아앙!'

'에휴 그래. 니 잘못 아니라니까.'

서러움이 터진 립톤이 주인 품에 안겨 펑펑 울음을 터트리자 머큐리가 조금 민망해서는 머리를 긁적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가영씨가 립톤을 내려놓고 두 임신 독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뭘 꼬라보는 데스카 똥노예? 어서 우마우마나 가져오는 데스우.'

벌써 오를 대로 올라버렸구만. 첫날 그 꼴을 보고서도 자길 지켜줄 남편상이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겁을 상실해도 제대로 상실했다.

'아 예예...... 곧 갖다드립죠. 머큐리, 그것들 조용히 좀 시켜봐.'

'그것들이라니 무례한 데스 똥노- 데벳!'

'데뵵!'

도로 안색을 고친 머큐리가 잽싸게 양 손을 모아 임신 똥벌레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기절한 둘을 립톤이 결박하는 사이 가영씨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 철수씨 앞에서 나를 이렇게 엿먹였다 이거지? 역시 이래서 실장석은 잘해주면 못쓴다니깐.'



아닌 밤중에 빅엿을 먹었음에도 다행히 정 관장은 가영씨와 조수실석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다. 이미 브리딩에 따르는 돌발상황에 대해 들어둔 것도 있고 며칠 같이 지내며 알게 된 그의 성향이 의외로 학대파보단 애호파에 가까운 것도 한 몫 하기는 했다.

'루저들도 나름 쓸 구석이 있어서 살려놨는데 이렇게 대형사고를 칠 줄은 몰랐네요. 나중에 수당 드릴 때 이번 일도 계산에 넣어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그 두 놈이야 괘씸하지만 열심히 따라오는 녀석들까지 도매급으로 작살낼 수야 없지. 휴우... 앞으론 사무실 문단속 잘해야겠는걸...'

관장 아저씨가 대자로 뻗은 분충들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곧 아침을 먹으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미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자기 주인에게 말을 건다.

'주인사마, 분충들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어쩌긴? 현실을 깨닫게 해드려야지. 이왕 이리 된 거 이참에 좀 남은 루저들한테 동기부여 제대로 한 번 해드리자구. 나미 너는 내가 어떻게 할지 잘 알지? 전에 나나 '선생'들이 임신 분충들 조지는 거 봤잖아.'

'에헤헷, 나미 아직 잘 기억하는 거에요.'

'그럼 먼저 나가서 머큐리랑 립톤한테 똥벌레들 집합시키라고 전해둬. 철수씨랑 곧 따라갈테니까.'

나미가 나가고, 가영씨가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주변의 바가지며 걸레 따위의 소도구 몇 가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짬나는 사이 슬쩍 말을 걸었다. 아까전부터 어딘가 영 편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영씨, 저기.. 어디 안 좋으세요?'

'그런 건 아니에요. 브리딩 중에 저런 똥벌레가 나오면 예전 안 좋은 기억이랑 좀 겹쳐서요.'

'임신 분충들요?'

'네. 사육 기를때도 진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 것들이 몰래 임신하는 케이스가 심심찮게 나왔어요.'

'그거 탁아하는 똥벌레들이랑 비슷한 거겠죠?'

'맞아요. 꼴에 세레브 좀 챙겨보신다고 지 자들 내세워 대우받으려는 것들 말이에요.'

꽤 제법이라는 미소가 떠올랐지만, 말을 이으며 서서히 표정이 바뀌어간다.

'자기가 못한 공부 대리만족시켜 자위한답시고 자식 학대에 집안까지 망쳐놓는 혐오스러운 것들. 어쩌다 자식이 가까스로 뭔가를 일궈내면 거기 빌붙어 지 배불릴 생각이나 하는 뻔뻔한 것들. 어찌나 인간의 역겨운 점들만 꼭 찝어서 컨트롤 씨브이를 해놓았는지.'

이 말을 할 동안만큼은 평소 그녀의 얼굴에서 생글거리던 미소가 싹 걷혀버렸다. 말하는 내용이 가영씨 집안 부친의 행실 그대로인데... 이쪽도 장사영만큼이나 아버지란 사람에게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따지고 보면 사영 오빠도 그 인분충 때문에 제대로 망가졌던 거고, 도영 오빠도 프랑스로 떠나기 전엔 무척 힘들어했어요. 아가씨가 피본 원인도 결국은 그 쪽에서 제공한 거고...'

그녀에게서 이렇게 차가운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담이 화가 났을 때도 이런 모습은 보질 못했었는데...

'가... 가영씨...?'

'아... 이런, 괜히 저 혼자 흥분했었네요. 실장석 따위한테 감정이입하면 못쓰는 건데, 미안해요. 철수씨. 또 추태를 부리고 말았네요.'

말을 이어가려던 가영씨가 잽싸게 표정을 고쳤다. 과거의 일로 상처받은 사람이 마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애써 미소를 다시 지은 그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쯤 하고, 다시 일하러 가자고요. 짱가를 화나게 만든 똥벌레가 어떤 꼴이 되는지 우리 교육생들에게 보여줘야 하잖아요?'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

'독라가 출산하면 지 자들한테도 무시받는 건 아시죠?'

'물론이죠.'

'원래 근자감만 가득한 실장석이라 통상의 임신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처벌이 되었어요. 지 새끼들 패드립을 못 견디고 위석이 깨져버리는 것들도 있었으니깐. 하지만 이번 건은 흑발이에요. 수습불가 사고를 쳤으니 확실히 요절을 내놓아야겠죠?'

'그렇죠.'

'그리고 다른 목적도 있어요. 독라들 남아있는 게 영 거슬렸는데, 그 문제도 이 참에 확실히 처리하자고요.'

분충 두 마리를 도로 끌고 밖으로 나가 머큐리와 립톤이 둥그렇게 몰아둔 교육생들 틈으로 내던졌다. 충격에 잠시 아파서 구르던 임신 독라들이 곧 녹색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분충소리를 질러댄다.

'데뵥! 절라 아픈 데스!'

'똥마라노예 무슨 지거리데샥! 어서 똥노예가 약속한 우마우마 고급 요리와 테치카 성이나 가져오는 데스우!'

'그래, 근데 그 전에 한 번 물어나보자. 지금 너희 둘 꼬라지가 그렇게 배짱부릴 정도로 세레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니넨 쥐뿔도 없는 루저 독라잖아?'

입꼬리를 올린 채로 학대파 미소를 지은 가영씨가 대신 답한다. 예전 사육 브리더로 일할 적에 임신한 사육들을 교보재로 많이 써먹어 보았다고 하니 어떻게 처벌할지는 진작에 준비했을 것이고, 거기다 저것들이 그녀의 역린까지 잡아뜯었으니 십중팔구 끔살로 결말이 날 거다.

'데프프 지금 그딴 게 중요한 데스까? 와타시 흑발의 자 가진 거 안 보이는 데스? 이제 그 근육빵빵 마라닌겐상이 와타시의 남편상인 데스요. 후회하기 전에 고귀하신 와타시와 자들에게 미리 대접 잘 해놓는 것이 좋을 것인 데스네.'

'똥벌레! 지금 누구를 오마에 남편이라고 꼬리치는 데스카? 세레브한 와타시의 남편상한테 눈독들이는 똥벌레는 이모토챠라도 가차없는 데샤악!'

'개수작 마는 데스! 와타시의 남편상데샤아!'

나도, 머큐리도 립톤도 상상 속의 남편상을 두고 토닥토닥 핵펀치를 주고 받으며 캣파이트를 벌이는 독라 분충 자매를 보고 혀만 차게 되었다. 늘 보는 꼴이지만 말이 참 안 나온다.

'저것들 자매였나 보네요. 왠지 죽이 잘 맞는다 싶더니.'

'이래서 초록 똥벌레들은 봐주지 말고 굴려야 하는 보쿠. 조금만 편해지면 지 마라대로 놀려 드는 보쿠.'

'...실생 살다 별의별 똥벌레를 다 보는다와.'

반면 나미와 그 주인사마는 여유만만하게 비꼬는 어조로 화답해준다.

'세레브? 마라까는 거에요. 뭐 하나 스스로 얻어낸 것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그리 잘난 체에요?'

'어디 느그 자들 주둥이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한번 들어보자. 머큐리, 립톤, 그것들 단단히 붙잡아!'

'데겍?! 놔라데스!'

'이거 놓는 데샤 빨강 똥벌레!'

바둥바둥 반항해보지만 타고난 신체조건 차이에 훈련과 노동으로 단련된 두 실석의 손아귀를 벗어나긴 역부족, 허리춤의 대못을 빼낸 나미가 배지실장 미디엄을 괴롭힐 적의 그 새디스틱한 미소를 흘리며 분충 자매의 왼쪽 눈 위를 차례대로 긋는다. 피 한 방울이 흐르며 왼눈이 도로 붉게 물들고, 찾아오는 산통에 분충들이 낑낑거리며 온 몸을 뒤틀기 시작한다.

'자, 자들은 지금 나오면 안 되는데스! 너무 이른데스!'

'똥실취! 와타시의 세레브한 흑발자들을 모두 우지챠로 만드려는 데스카!!!'

'얼른 낳기나 해라에요!'

[퍽, 퍼억]

[데끅!]

[게베벡!]

필사적으로 산기를 억누르며 총구를 조이지만 실장석의 그것과는 격이 다른 진짜 핵펀치가 차례대로 꿀렁이는 배때지에 박힌다. 배빵을 제대로 얻어맞고 힘이 풀어진 틈에 흐느적거리며 벌어진 총구 틈으로 채 자라지도 않은 흑발의 자가 와르르 쏟아져나온다.

[텟데레~]

그나마 영양상태가 좋고 건강한 모체인 덕에 엄지 한두마리씩은 건졌지만 나머지는 얄짤없는 구더기. 손 대기조차 귀찮은 듯이 가영씨가 바가지의 물을 점막에 싸인 흑발의 자들에게 끼얹었고, 나미가 발로 대충 휘저어 점막을 씻어내었다.

'자, 다들 세상 구경 나오셨구만? 어디들 물어보자. 여기 니네 마마상이 고~귀하신 흑발을 임신했으니 지도 덩달아 세레브라는데, 정말 그렇게 보이든?'

안 그래도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본 독라의 친들을 영 못마땅하게 노려보던 흑발의 자들, 그것들 중 제일 덩치가 큰 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마상의 기대감을 잔인하게 부러뜨리는 패륜으로 화답한다.

'똥닌겐은 마라까는 소리 작작 지껄이는 레챠악! 저기 독라노예가 어딜 봐서 고귀한 와타시 흑발의 마마라는 레츄? 가서 와타시의 파파상 노예나 데려오는 레츄, 늦으면 핵펀치로 벌해주는 레챡!'

'세레브한 와타시타치가 저 운치구녕에서 나온 것조차 대대손손 수치인 레치! 새로운 흑발의 마마를 찾는레치!'

'똥독라에미는 자판기나 되는 레치치칫~'

'독라노예레후웅? 프니프니나 하라는 레후!'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

닌겐 카피상품이라 어휘력도 좋다. 나머지 작은 엄지 두어 마리와 구더기들조차 독라의 친을 조롱하고 노예 취급하는 현실, 들의 평범한 자들한테도 독라라고 무시당하는데 뇌에 마라와 남편상밖에 없는 폐기물들한테 마마상 대우를 받을 리가 있나.

기껏 주어지는 대접에 따른 책임을 무시하고 권리만 찾다 도태되어 종국엔 세레브에 미쳐 넘으면 안 될 선을 넘었고, 그 대가로 다른 교육생들이 보는 와중에 실장석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수치와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데샤! 분명 세레브해져야 할 와타시인데스. 어째서 똥노예 취급을 받아야 하는 데스카아!'

'흑발은 다시 낳으면 되는 데스! 놓는 데스! 와타시가 친히 솎아주는 데샤!'

색눈물을 흘리며 발광하는 45번과 62번 똥벌레를 보는 가영씨의 얼굴이 미묘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분위기 잡는 것 때문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눌러참는 저 모습, 과연 골수의 골수까지 학대 기질로 물든 짱가답다. 두 동족씨의 처참한 몰골에 이만 딱딱거리는 교육생들을 향해 주인과 사육의 속사포 같은 조롱이 터져나왔다.

'야, 이게 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세레브냐? 지가 배아파 깐 자들에게 병신 소리 듣는 이게 세레브? 아가씨가 니들처럼 닌겐상 휴지나 도둑질하는 독라로 보이던? 눈깔이 달렸으면 보고 주둥이가 달려 있으면 말을 좀 해봐 말을! 세레브 좋아하잖아? 니네도 휴지 훔쳐서 한번 팍팍 쑤셔보라 이거야!'

'오마에타치도 자들 내세워서 출세하고픈 거에요? 그럼 말만 하는 거에요. 와타시가 직스파 닌겐상이라도 모셔와서 직접 쑤셔주는 거에요. 데퍄퍄퍄퍄퍄!!!'

'그래, 이 꼬라지야말로 니들이지. 니네들 말이야. 실, 장, 석! 깔깔깔깔깔깔깔깔!'

결국 가영씨까지 빵 터졌다. 자기들을 향한 조롱이 듬뿍 담긴 주인과 사육의 새디스틱한 웃음소리를 듣는 교육생들의 언청이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간다. 견디다 못한 교육생 한 마리가 반쯤 울부짖다시피 외친다. 35번, 제일 먼저 머리카락을 받은 에이스들 중 하나다.

'그만! 제발 그만하는데샤아!'

'깔깔깔! 그만하긴 뭘 그만둬? 이제 시작인데. 나미야, 어떻게 하는지 기억난다고 했지? 시작해 봐.'

'맡겨만 주시는 거에요!'



'남편상! 도와주는 데샤아!'

'와타시를 건드리면 남편상이 가만 안 내버려두는 데스!'

뭔 놈의 남편? 그놈의 망상 속의 남편님?

[쿠직, 와지직]

[데히야하하하하하]

신스틸러 납셨다. 어느새 립톤의 메인 악역을 꿰어찼다. 여전히 머큐리와 립톤에게 붙들려 발버둥치는 45번과 62번의 아래턱을 차례대로 손아귀에 붙잡고 한 번에 하나씩 탈골시키고는, 자기에게 투분을 하려 드는 흑발 엄지 한 마리의 손을 붙잡아 그대로 으깨버렸다.

[빠직]

'레쨔아아아아아아!!!'

'어딜 시건방지게 어른한테 투분질이에요? 오마에부터 스타트에요!'

손 안에서 끈적한 피와 운치가 뒤섞이는 것도 아랑곳않고 엄지를 거꾸로 들어 턱이 빠져 덜렁거리는 친 45번에게 가져간 다음, 주인 닮은 학대파 미소과 함께 입을 연다.

'그렇게 우마우마 고기가 먹고팠던 거에요? 지금 들어가는 거에요. 입 크게 벌려에요!'

[데베베베베베]

'오오, 저게 한 입에 들어가네?'

한 손으론 운치를 뷰릿뷰릿 뿌리며 발버둥치는 엄지를 밀어넣고 다른 억센 팔로는 빠진 45번의 아래턱을 호두까기 인형처럼 억지로 움직여서 씹어먹이는 중. 매일 퍽퍽한 단백질만 먹다가 간만에 기름기 있는 고기를 맛보시는 게 꽤나 감동이신 모양이다. 눈물콧물 다 흘리고 입가를 적록색 피와 운치범벅으로 물들이며 친절히 밀어넣어주는 흑발의 자의 맛에 감탄해 망가진 호두까기 인형처럼 헤벌어진 언청이 목구멍에서 괴성을 울려대고 있다.

[오로로오오오오오]

'흑발 우마우마는 맛있는 거에요? 아직 잔뜩 남았어에요. 데퍄퍄!'

'...레츙? 레챠아아아아!!!'

'똥노예마마 입으로 프니프니레후? 레뺘아앗!'

마지막 구더기까지 모두 씹어 삼키우고서야 풀려나 실신하다시피 드러누운 45호. 62호의 흑발자들은 눈치란 게 없는 건지 초승달 눈웃음을 지으며 우마우마가 된 사촌 이모토들의 최후를 비웃는 중이고, 62호는 다가올 자기 운명을 직감하고 운치를 지리는 중이다. 나미가 62호의 만찬을 준비하려고 다시 소매를 걷는데, 립톤이 잠시 멈춰세운다.

'잠깐! 나, 나미 오네챠!'

눈치로는 세 조수실석 중에 탑이다. 자기 후배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싸구려챠도 한 번 해보고 싶은 거에요? 그럼 꽉 붙들어줄테니 잘 해보는 거에요.'

'다후후후. 고마운 다와. 와타시의 명예를 더럽혀 놓은 똥벌레에게 설욕의 시간이다와.'

눈빛만으론 나미 못잖은 기세인데... 아니, 파란 눈이 시퍼런 안광을 줄줄 뿌리니 위압감만은 맞먹다 못해 한 수 위겠다. 서로 위치를 맞바꾸고는 62번의 장녀 엄지를 노려보자 흑발의 엄지가 대번에 빵콘하면서도 억지를 쓰며 맞서 대들며 분충기 가득한 허세를 내뱉는다.

'똥실홍!!! 파파노예가 오마에를 가만 안 냅두는 레츄. 온 우주를 통틀어 손에 꼽는 고귀함과 미의 화신인 와타시의 몸에 손 끝-'

[쫘아악-]

'쨔아아@:%%:^#;:~?!!!'

'프니프니 셔틀 주제에 혓바닥만 길어빠진 다와.'

허공에 흑발엄지의 뜯겨나온 혀뿌리가 붕 떠오르고, 피분수가 허공에 솟구친다. 혀가 뽑힌 목구멍에서 꿀꺽꿀꺽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엄지가 뒤이어진 채찍질 세 번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의 얼룩이 되었다. 뒤이어 남은 구더기들도 패대기쳐지고 발에 짓밟히며 잘 다진 고기가 되었고, 그걸 주섬주섬 긁어모아 빚어 햄버거 패티 모양을 만든다.

'자 입 크게 벌리는 다와! 똥독라노예에게 어울리는 특제 똥 햄버거다햐햐햐햐!'

[데! 데브븝! 데베베베베베베베!]

악랄하게도 씹히지도 않고 통째로 밀어넣는다. 62번이 어떻게든 뱉으려고 반항을 하지만 숨통이 막히우고 캑캑거리며 제풀에 흑발 똥 햄버거를 모조리 삼키고 나서야 바닥에 내팽개쳐져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곧 욕지기가 올라오는지 62번이 삭다 만 실장육을 바닥에 거하게 쏟아놓았고, 45번도 그 뒤를 따랐다.

[데붸- 데부웨엑]

[데풰에 데풰에 데에에 데에에]

토사물 속에 뒹굴거리는 자매 분충의 모습은 차라리 공장식 외양간 똥더미에서 뒹구는 돼지들의 모습이 아름다울 지경, 이미지와는 다르게 지극히 위생을 가리는 동물이 돼지임을 감안하면 비교하는 게 실례다.

'청출어람인 거에요.'

'감사한 다와. 이제 좀 속이 시원해진 다와.'

스승과 제자가 덕담을 주고받는 동안, 그 추한 모습을 보며 교육생들 모두가 자신들의 처음 모습을 떠올리는지 온 몸을 경련하듯 떨고 있다. 차마 못 보겠는지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녀석도 드문드문 보이지만 가영씨의 시퍼런 일갈에 움찔하며 도로 자매에게 시선을 돌린다.

'눈 안 떠!? 귀 안 열어!!'

'데... 데갸아!'

'이게 니네들 현주소잖아? 니네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세레브라고. 이참에 한 번 제대로 보고 배워놔야지. 그래야 나중에 니들이 그렇게 환장하는 마라닌겐도 꼬셔서 흑발자도 낳아볼거 아냐?'

학대파 짱가의 주특기인 정신 망가뜨리기. 저 오물범벅 임신분충들의 헛짓을 교육생들의 세레브에 비교하며 온 동네 수치심과 모욕감은 죄다 몰아주고 있다.

힘써서 쟁취해낸 세레브와 자기들의 존재 가치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괴로움에 식실장 모두가 적록의 색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더 이상은 참아내기 힘들었는지, 마침내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와 피를 토하듯 울부짖기 시작한다.

'저건 세레브가 아닌데스. 와타시의 세레브는 저런 똥마라지거리가 아닌 데샤아아아아!!!'

'뭔 소리래?'

'세레브 오바상께서 세레브는 스스로 쟁취하는 거라고 말하지 않은 데스카! 마라 따위에 매달려 얻는 게 뭐가 세레브데스!'

'흐음, 그래?'

그제서야 만족한 가영씨, 하지만 일부러 짐짓 의심하는 눈으로 녀석을 흘겨보며 못마땅한 듯 던진다.

'그건 맞는 말이지, 하지만 너희가 거기 어울리는 수준이 된다는 걸 내가 어떻게 믿어? 열 밤씨도 못 되어서 이렇게 통수를 맞았는데.'

그러자 다른 녀석이 나온다. 아까의 35번이다.

'보여주면 되는 데스. 와타시타치가 보여주면 되지 않는 데스카!!! 꼭 브리더상께 보여드리는 데스요. 식실장 독라에서 세레브한 헬스실장이 되어주는 데샤아!'

그 말에 호응하듯 식실장 교육생들이 사방에서 웅성이며 한 마디씩 외쳐댄다.

'와타시는 저 똥독라랑은 다른데스! 반드시 진짜 세레브를 쟁취해 보이는 데스우!'

'흑발 따위는 마라까라데샤! 정진하고 또 정진해 참세레브가 되는 데샥!'

'데샤아아아아아앗!'

'아오, 시끄러! 됐으니까 조용히들 좀 해 봐.'

그 동안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저 루저 똥자매와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겠지. 같은 루저였던 독라 동료들마저도 치를 떨며 저것들과 동류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 한번만 더 믿어보겠어. 세 밤씨야. 그때까지 독라가 남아있으면 모조리 자판기행인 줄 알아?'

결국 가영씨가 짐짓 못 이기는 척 놈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걸로 그녀의 애초 목표는 충분히 달성되었다. 더 볼 것도 없는지 머큐리를 불러 뭔가를 시킨다.

'아가씨한테 보낼 족발 샘플이야. 팔은 어깨 관절까지, 다리는 허벅지 골반 연결부위까지 잘라내.'

'보쿠.'

달마 선고. 그 말을 들은 턱 빠진 독라 자매가 토사물 속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 안고 벌벌벌 떨어댄다. 그렇게 싸고도 남았는지 반쯤 벗겨진 기저귀 틈으로 또 운치가 삐져나와 토사물과 뒤섞인다.

'데, 데베베!'

'데에에에에에!'

곧 무정한 발길질이 한 마리씩 걷어차 배를 누르고 관절 부위에 식칼을 꽂고 관절을 꺾어낸다. 몸통에서 꿈틀거리는 팔다리를 하나씩 뜯어내자 20여분 전까지만 해도 흑발의 자를 가지고 온 세상의 세레브를 다 가진 양 지껄이던 두 자매는 이제 온전한 독라만도 못한 최악의 신세인 독라달마가 되었다.

'보웩 퉷. 비위 제대로 상하는 보쿠.'

[훼베! 훼베!]

[데뱌아아아아]

참을성 강한 실창석 기준으로도 참고 보기 힘든지 노골적으로 역겨워하고 있다. 잘려나간 상처에서 쏟아진 피까지 섞인 오물 위에서 꾸물거리는 자매 위에 침을 뱉고 주인에게 봉투에 넣은 팔다리를 건냈다. 남은 몸뚱이와 오물의 처리는 자리에 남은 식실장 교육생들의 몫이 되었다.

'그럼 한 시간 있다 온다.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으니까 그때까지 깨끗히 치워둬라?'

'데... 알겠는 데스.'

'흥! 배알 없는 것들...'

끝까지 식실장들의 염장을 지르며 돌아서지만 다 봤다. 뒤돌아선 만족스레 웃고 있는 저 얼굴. 뭐 이어질 분충들의 최후야 뻔하니깐.

사무실로 들어갈 즈음 슬쩍 뒤를 돌아보니 자기들의 세레브를 모욕당한 분노로 귀신같은 몰골이 된 식실장들이 원흉인 독라달마 자매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중이었다. 다만 99번 한 마리만은 구석의 양동이를 집어 물을 받아두고는 도로 자기 자리로 가 맨손 스쿼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헬스실장 프로젝트 13일차, 10:10AM, J시 두루구 마리동 시민공원]



2주차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기존의 근력 훈련을 줄이고 족발감으로 써먹기 위한 유산소 운동에 치중한 일정이 병행되었다. 거기에는 미디엄에게 입술을 뺏길 뻔했던 영 좋지 못한 추억이 있는 마리동 시민공원에서의 아침 구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100마리가 넘는 탄탄한 몸 매의 반독라들이 빤스바람으로 롤빵머리를 휘날리며 공원을 내달리는 광경은 돈 주고도 못 볼 진풍경이었다. 내가 그 주인공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지만.

'허 이거 참, 내가 실장석을 데리고 이 공원에 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그것도 이렇게 떼거지라니 원...'

'또 투덜이 모드에요? 에이~ 뭐 미디엄처럼 철수씨 마라 노리는 똥벌레는 없잖아요? 그런 것들은 어제부로 죄다 걸러졌으니까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는 말자구요. 헤헤.'

'아, 가영씨! 그 똥벌레 얘기는 쫌!'

'데엥 브리더상! 같이 가는 뎃샤아!'

닌겐상 입장에선 조금 빠른 산보 수준의 걸음이지만 따라오는 교육생들에겐 구보로 다가오기 충분한 속도다. 그래도 녀석들, 지난 2주간 놀기만 하지는 않아서 나름대로 잘 쫓아오긴 하고 있다.

하기사, 그렇게 놀다가 끝끝내 탈독라를 하지 못한 낙오자 10여 마리는 결국 족발집 여사장님의 족발 삶는 연습용으로 끌려가 팔다리가 잘렸다 재생했다를 반복하고 있을 테니 뭐... 이제 여기 남은 100마리 조금 넘는 식실장들은 못해도 앞머리까진 돌려받으신 반독라들뿐이다. 모두들 흑발임신 사건 후로는 정신교육이 제대로 되어 그런지 사흘 동안 더 이상 사고치는 똥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데힉! 데힉 덱 덱 덱 덱!'

'브리더상! 조금만 천천히 가주시는 데스요!'

이거 제대로 시선집중인데... 멀쩡해뵈는 남녀 셋이 100마리씩이나 되는 실장석 떼를 끌고 다니면서도 사고 한 번 치지 않는 건 왠만해선 보기 힘든 구경거리긴 하다. 공원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이 각자들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한 방씩 찍고 지나가고, 먹이 찾던 들실장 일가가 어이없어 두 눈만 끔벅인다.

계속 공원을 걷다 옆을 보니 익숙한 실장석 얼굴이 보인다. 구보를 시작한 후로 언제나 맨 앞에서 닌겐상들 뒤에 바짝 붙어 뛰는 99호다. 그 뒤에는 10여 마리의 에이스들이 따르고 있고, 한참 뒤에 쳐진 나머지 교육생들이 꼴찌를 차지한다.

조금 숨은 거칠어졌어도 다른 놈들처럼 엄살없이 조용히 구보에만 집중하고 있고, 시선은 정면만 뚫어지게 향하는 중이다. 내가 말을 걸어도 앞을 향한 고개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 돌아온다.

'너무 빡세게 뛰는 거 아니냐? 니들 기준으론 전력질주일텐데. 어차피 시간 내에만 도착하면 돼. 공원에 니네들 상대할 만한 들실장들도 없잖아?'

그래, 구보 첫날 마라실장 하나가 지 힘만 믿고 오나홀 100실분이 생겼다며 신나서 앞서 뛰던 99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랬다가 핵펀치 한 방에 나자빠졌고, 마라를 뿌리째 뽑힌 다음 나미가 했던 것처럼 자기 입에 마라를 물리우게 되었지. 그 덕에 이 공원의 들실장들은 이 반독라 떼거리 주변에는 얼씬도 않는 중이다. 여튼 못된 것들만 배워서는...

'어중간하게 뛰었다간 근손실만 온다고 관장사마가 말해주신 데스. 별로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어차피 뛰어야 한다면 그나마 죽어라고 뛰는게 좀 나은 데스.'

'그, 근손실? 너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

맞은 편 옆에서 걷던 정 관장이 끼어들었다.

'내가 가르쳤죠. 요새는 틈만 나면 이것저것 계속 물어보더라고. 어떻게 하면 몸을 잘 키우는지 말야.'

'잠깐만요. 철수씨, 관장님, 우리 조금만 빨리 걷죠?'

그 말에 가영씨가 나와 정 관장을 붙든채로 걸음을 빨리 했다. 99번과 에이스들이 저만치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본론을 꺼냈다.'

'저기 관장님. 생각보다 트레이닝 진도가 잘 나가서 목표치엔 근접했어요. 그 전 페이스 유지하다간 죄다 질겨빠진 근돼가 되어버릴걸요?'

그래, 근손실, 정확히는 현상유지. 사실 그게 나와 이쪽에서 노리는 것이었다. 휴식도 운동에 따르는 오버워크도 없이 강행군 트레이닝을 반복해오면서 교육생 식실장들의 몸은 끊임없이 미미한 손상과 재생을 반복해왔고, 그 결과 근육과 피부 발달, 즉 육질과 껍질 맛의 개선이 목표치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10일차의 분충 자매부터 시작해 낙오조 독라들까지의 샘플을 제출한 결과 마담과 차장님은 이미 현 시점에서도 산실장 수준의 족발감으로서는 합격점에 가깝다고 판정내렸다. 덕분에 이제 남은 목표는 도토리와 버섯 등의 산실장 식단을 급여해 특유의 풍미를 증강하고 과도한 근육의 발달, 즉 질겨지는 일이 없도록 적정선의 운동량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교육생들의 목표인 세레브라는 것도 마담의 감언이설(?)에 의해 주입된 허상일 뿐이니 적절한 핑계 몇 마디와 마담표 흑색선전 한두번이면 트레이닝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저 99번과 그를 추종하는 몇몇 에이스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분명 처음엔 다른 식실장들처럼 마담에 대한 동경과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했겠지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녀석을 움직이는 동기가 세레브가 아닌 그 무언가로 변했다.

마치 디지털 카메라 싸게 파는 사이트의 헬창인생 아저씨들과도 같이 운동과 자기단련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처럼 보였고, 99번에게 자극받았는지 다른 에이스와 몇몇 후발조들도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99번 스스로가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은 아래의 평범한 반독라들에게도 선순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제부턴 근력 운동 강도를 낮추고 유산소 운동같은 전신 발달에 치중해야 해요. 저희가 필요한 건 우마우마 족발감이지 헬스 실장석이 아니니깐요.'

그렇지. 우리의 브리더가 원하는 건 마담과 차장님에게 넘길 족발 셔틀과 그 셔틀들이 떨궈지는 순간 내뱉을 영혼의 절규 뎃샤아지 헬창실생 근육돼지들이 아니다.

'하지만 하겠다고 매달리는 녀석들 뿌리치는 것도 영 찝찝하잖아? 구제회사 실창석들도 저 99번처럼 열심히는 아니었다고.'

정 관장이 그간 99번에게 정이 많이 든지라 보충제를 좀 나눠주기도 하고, 종종 말도 걸고, 여러 헬스 상식들을 가르쳐주기도 했고, 이번에도 녀석의 역성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가영씨는 이런 분야에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관장님, 이건 확실히 해두도록 하죠.'

'뭐, 뭐를?'

'지금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건 사육실장이 아니라 식실장이에요. 괜히 정이라도 붙이시면 나중에 많이 힘들어지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 거고요.'

'아... 알았다. 그건 잘 알고 있지. 그렇긴 한데... 나중에 얘기하자.'

'알았어요.'

풀죽은 관장 아저씨가 뭔가 이야기를 더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새 공원 출구가 가까워져서 교육생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보려고 뒤를 돌아봤는데, 99번 녀석 그새 우리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으익?! 너 뭐야? 언제 여기까지 따라왔어?'

'브리더상이 관리하시는 99번 교육생데스. 열심히 뛰다보니 어느새 닌겐상타치와 바짝 붙은 데스.'

'아아니.. 그거 말고. 혹시 너 말인데, 다 들은 거냐?'

'뭘 말씀인 데스카?'

예전 마담만큼이나 얼굴에 표정을 비치지 않는 녀석이어서 그런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돌아와서 교육생들 샤워를 마치고 오전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동안 에이스들을 중심으로 몇몇이 뭉쳐다니며 식실장들 사이를 돌고 있다. 얼마 전부터 관장에게 언더아머 단속반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들식으로 받아들여 속칭 '세레브 단속반'이란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99번은 그러건 말건 자기 할 운동만 부지런히 하고 있지만, 디지털 카메라 싸게 파는 사이트의 유행어 몇 개가 녀석들 구호에 섞여다니는 걸 보니 영향력이 아예 없다곤 말 못하겠다.

'내일 낮씨 시험은 3대 30데스! 해내면 두건데스! 떨어지면 신발 압수데스! 반독라는 타코야키행뎃샤!'

'나태한 분충은 세레브를 논할 자격이 없는 데스요. 브리더상과 세레브 오바상의 말씀 뼈에 새기는 데스우!'

자기 세트를 마치고 짬나는 대로 돌아다니는 거고, 하는 말도 시험에 떨어지면 받을 벌칙 내용을 사실 그대로 늘어놓는 것과 맞는 말만 하고 다니는 거라 여태까진 가영씨도 굳이 태클을 걸진 않았다.

'나 원 참, 언더아머를 이렇게 또 실적화시켜놓다니...'

이마를 잡고 끙끙대는 걸 보니 가영씨도 골치가 아프긴 한가보다. 유산소로 틀어야 할 마당에 근력 운동 주제로 선동질들을 하고 계시니...

교육생들의 태도 역시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도록 진지해져 있다. 유산소 할 적엔 요령도 부리고 머리 안 상할 만큼만 대강대강 하더니 세레브가 걸렸다고 생각이 드니 온 몸이 벌개지고 핏발이 돋도록 덤벨을 들고 스쿼트를 하고 턱걸이 철봉에 매달리는 것이다.

'데그그그그그..! 더 올리는 데스 오번상!'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는 데샤아!'

근력 면에서 녀석들의 성장은 괄목상대해서 세 종목을 총 10kg도 못 들던 것들이 모두 30kg은 넘었고, 에이스는 40kg에 근접했다. 헬스에 미친 헬창실생 99번은 아예 50kg을 바라보는 중이다. 타고난 신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겠지만, 세레브에 대한 집착과 실장석의 뛰어난 재생력이 충분한 휴식과 영양 공급, 체계적인 트레이닝의 보조를 받자 정말 무서운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문제는 이제 근육량을 더 증가시켰다간 고기를 버리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냥 저거 분충짓이라고 판단하고 조지면 안 되는 건가요? 저희 프로그램 방향이랑은 어긋나잖아요.'

'쟤네들 그룹의 모범생들을 그렇게 조졌다간 오히려 사기만 악화되니깐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두고 있어요.'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긴 하겠네요. 99번이랑 저 에이스들은 관장님 사육으로 주면 되잖아요? 관장님이 무척 마음에 들어하시던데.'

'철수씨.'

이런, 정색했다. 가영씨가 이렇게 진지모드로 들어갔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다.

''말씀하세요.'

'사육에는 사육에 어울리는 브리딩이 있고, 식실장에는 또 거기 맞는 브리딩이 있어요. 특정 용도에 맞게 브리딩된 실석, 특히 실장석을 재훈련도 없이 다른 용도에 써먹어버리면 열에 아홉은 분충기가 터지기 마련이고, 결국은 사람도 실석도 불행해져요. 식실장 나부랭이 따위야 괴롭든지 말던지 제가 알 바 아니지만 관장님은 아니잖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에요.'

'아, 참 그렇지. 브리딩... 잊어버릴 리가 있겠나요.'

뺑덕이의 예전 주인이던 고용녀 할머니가 집필한 브리딩 교재 첫 단락에 유난히 강조해놓은 대목이었다. 그간 가영씨의 식실장 브리딩 보조를 해오면서도 꾸준히 느꼈던 사실이었고.

'제대로 된 사육실장은 여기 식실장들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자실장일 때부터 데려와 적어도 3개월은 저것들보다 배는 혹독하게 교육시켜야 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바로 도태시켜요. 성체 상품은 그보다 훨씬 더하고요.'

그래, 그녀가 사육실장들을 얼마나 독하게 밀어붙이는지는 얼마 전에도 들었었고, 그녀를 알게 된 후 가끔 보았던 옛 작품 짱가 TV에서도 접한 바 있었다. 가영씨의 지론에 따르면 실장석은 그렇게 몰아쳐도 경계가 늦춰지면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생물이었다.

'그런데도 며칠에 한 번 꼴로 사고가 터져요. 심지어 이번 교육생들 중에선 관장님 씨도둑까지 나왔었죠? 립톤이 다른 놈들 화장실 데려간 그 짧은 틈에요.'

'그렇죠. 관장님 내색은 안하셔도 꽤 놀라셨던데.'

'물론 예외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닌겐상과 위석이 심어준 세레브의 허상이 아닌 진짜 자신만의 세레브를 가진 세레브 실장요. 하지만 저는 99번이 예전 아가씨나 나미, 뺑덕이 같은 세레브일 거라곤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진성 학대파인 가영씨가 진심으로 존중해주던 몇 안 되던 이름들이다. 솔직히 나도 99번이 그 셋과 같을지는 확신이 가질 않고.

'99번 녀석이 세레브 헬창인 척 하는 지능형 분충일지는 아무도 몰라요. 실장석 하나를 알기엔 2주는 너무 짧은 시간이에요.'

가영씨가 99번을 지긋이 노려본다. 시선을 느낀 99번도 잠시 이쪽을 쳐다보지만 곧 다시 덤벨에 신경을 돌렸다. 그 말대로 녀석이 뭘 생각하고 있을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모를 일이다. 녀석이 가영씨의 마수를 벗어나 족발 신세를 면하려면 보통 노력으론 어림도 없을 일이겠다.

'적어도 앞으론 두 번 다시 제가 키운 사육실장이 제 주변의 누군가를 망쳐놓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나미 하나면 충분해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다른 방법이란 게 뭐죠? 저 녀석들 관심을 유산소로 돌리려면 좀 머리를 써야겠는데.'

'에이~ 짱가가 그런 것도 생각 안해놨을라고요? 진작에 준비해놨죠.'

이제 다시 생글생글 짱가로 돌아왔다. 이런 자신감엔 항상 근거가 있는 법이지.

'아가씨 힘을 한번만 더 빌려야겠네요. 어차피 내일 족발 시제품 가져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손 좀 벌리자고요?'



이번 장도 5장짜리군요. 간만에 실장석 좀 찢어보려고 학대 파트와 브리딩에 집중 좀 해봤습니다. 마지막 장에선 족발 시제품과 마담의 혼신의 X꼬쇼와 99번 교육생의 이야기, 헬스실장 왕족발을 포함한 요리 한 상 대접으로 끝내보려 합니다. 어쩌면 분량조절 실패해서 첫 6장이 될지도... 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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