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참피로 요리왕 비룡 더 마스터 미스터 초밥왕 요리하는 소설 마담 구르메 2부 - 21. 헬스실장 왕족발 - (5)

 [헬스실장 프로젝트 14일차, 10:12AM, 헬스클럽 '벌크 앤 짓소' 사무실]




다음 날 아침 구보는 정 관장과 가영씨만 나갔고, 나는 마담과 매니저, 차장님 일행을 맞기 위해 체육관에 홀로 남았다. 오늘은 어느 정도 완성된 실장족발도 대접할 겸 조리 팀과 브리딩 팀의 진행 정보를 교환하고 일정을 짜기 위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

마담에겐 가영씨가 부탁한 별도의 용건 하나가 더 붙어있다. 30년 끓인 짓소산 간장양념에 삶은 족발 맛도 맛이지만 사실 나를 포함해 브리딩 팀 세 사람 다 마담의 '용건'에 더 관심이 있는 차였다.

헬스에 대한 실장석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해결책이 바로 그거다. 근육 키우는 데는 크게 도움되지 않지만 현상유지와 특히 다이어트에는 써먹기에 따라 상당히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만기 박사님이 귀 통증을 가라앉히려면 쉽게 피로해지지 않도록 체력을 길러야 한다며 그걸 아가씨한테 추천해 주셨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완전 아가씨 취향이었지 뭐에요? 주방일 마치고 퇴근하면 자기 전에 꼭 한 시간씩은 푹 빠져 지내요.]

'흐흐. 거 참, 마담한테 그런 취미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봤는데. 역시 사람은 오래 알고 봐야 한다니깐...'

식실장 교육생 녀석들 잠자리도 정리하고 사무실에 의자도 가져다 놓는 동안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구보는 족히 30분은 넘게 걸리니, 실장족발을 가져온 마담과 조리 팀 인원들이 도착한 거다.

'다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대리님도 수고 많으셔요.'

마담과 차장님, 매니저에게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안내했다. 매니저가 들고 온 락앤락 몇 통에서 고소한 간장냄새와 실장향이 솔솔 풍겨오는 걸 보니 족발은 저 안에 넣어왔나보다.

'아가씨는 어디 가셨죠?'

'체육관 관장님이랑 같이 식실장들 구보시키러 나갔습니다. 반 좀 넘으면 들어오시겠네요. 츄릅.'

'딸꾹, 대리님. 참피들 중에 헬창 하나 나왔다면서요? 살다살다 헬스 실장석도 처음 보지만 헬창 실장석까지 볼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요.'

'네, 한 마리 있어요. 킁킁. 은근슬쩍 골칫거리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중이고요. 꿀꺽.'

흐으... 저 냄새, 아침도 안 먹고 왔는데 집중이 안 된다. 다행히 주부 99단 종갓집 며느리 아니랄까봐 내 눈치를 기막히게 캐치한 차장님이 구원투수로 등판하신다.

'호호호 다혜 씨. 족발 좀 꺼내주실래요? 대리님이 많이 드시고 싶으신가 보네.'

츄르릅~ 감사! 압도적 감사! 그제야 낌새를 챈 매니저가 쿡쿡 웃으며 사무실 한 구석의 싱크대에 락앤락 통 두어 개를 가져다 놓자, 차장님이 빼든 식칼이 잽싸게 통 안의 잘 삶아놓은 실장석 사지의 끝쪽 껍질을 둥그렇게 잘라내고 안의 뼈를 쏙 빼낸다.

반대편 뼈도 그렇게 뽑혀나가고, 남은 윤기 좔좔 흐르는 살코기와 껍질은 한 입 크기로 맛깔나게 썰려서 접시 위에 플레이팅된다. 잘게 썰어 무쳐놓은 우지젓과 생마늘, 상추 대신 싸먹을 깻잎을 곁들여 놓는 것으로 실장족발 한 접시가 완성되었다.

'실장족발은 깻잎이랑 싸드셔야 맛있어요. 실장향도 잘 잡아주고 기름기 많은 실장육이랑 그렇게 잘 어울리더라고, 호호호.'

'저 그럼 어디 사양말고 한 입... 우움! 움움움!'

맛은... 쫄깃! 압도적 쫄깃! 족발집 전 사장님이 멀쩡한 식실장들을 냅두고 왜 굳이 산실장을 고집한 건지 이제 알겠다. 말랑한 식실장 껍질과는 달리 열등생이나마 2주간의 단련을 거쳐 만들어진 헬스실장 왕족발은 이전의 먹어보지도 않고도 그 맛이 상상되던 실장취 운치족발과는 그 수준이 틀렸다. 루저 고기를 써도 이런 맛이 나는데, 하울며 진짜 단련을 마친 녀석들을 쓴다면......

'그것도 사장님이 삶으신 거랍니다. 며칠 전보다 많이 늘으셨죠?'

'정말요? 쩝쩝, 며칠간... 우걱우걱. ...많이 늘으셨네요.'

이거 정말 동일인물이 삶은 거 맞나... 사실 재료빨과 템빨(...)을 적잖이 받은 거겠지만 그래도 기본기가 갖춰지고 적절한 조리 기술이 동반되면서 제대로 된 재료까지 쓰니 어지간한 돼지 족발과 맞먹는 육질에 돼지고기와는 또다른 참맛이 나온다. 우지젓을 찍어 마늘에 싸먹으니 조금 도는 느끼함도 싹 없어지고 깻잎향과 실장향이 어울리며 더욱 식욕을 당긴다.

'간장 양념이 진짜 물건이네요. 감칠맛은 감칠맛대로 내면서 고기랑 또 기막히게 어울려주고.'

'저도 차장님이랑 사장님이 만드신 거 가져다가 며칠 동안 그거랑만 밥 먹고 살았어요. 쫄깃하니 짭조름한게 얼마나 술도둑이던지... 어제도 사샤 불러서 둘이 새벽까지 달렸다니깐요. 어우 또 올라오네.'

'다혜야. 술은 적당히 먹어야지.'

'아차참, 그렇지. 죄송합니다 헤헤...'

매니저 이 여자 오늘 왠지 좀 더부룩해 보이더니... 어제도 거하게 한 잔 걸치고 왔구만? 있다 교육생들 재워눟으면 나도 가영씨랑 한 잔 해야겠다. 이런 좋은 안주 챙겨놨으면 야밤의 맥주 한 잔이 또 그만이지. 반 접시 썰어놓은 족발이 산실장 우지 까먹듯 자취를 감추었다. 아쉽지만 이쯤 하고 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바깥이 시끄럽네요. 아가씨가 돌아오셨나 보군요.'

매니저에게 가볍게 핀잔을 준 마담이 어느새 데스데스 소리로 시끌시끌해진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가영씨와 정 관장이 100여마리 식실장 반독라들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들어왔고, 조수실석들이 땀내나는 교육생들을 샤워실로 몰아가는 동안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의 내용은 가영씨가 짜두었던 계획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과다한 근육 발달을 억제하기 위해 탄수화물 식단과 유산소 운동 위주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바꾸도록 유도하면서, (차장님은 모를)마담의 개입을 통해 교육생들에게 주입된 세레브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 비틀어놓는 것이 주 목표였다.

'시호 아가씨, 샘플들 실험하신 결과는 어땠나요?'

'평균적으로 5~6회 가량 활성제를 투입할 때부터 족발의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완성된 개체들을 사용하면 7~8회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고요.'

'나쁘지 않네요? 지금 문제되는 속칭 에이스들을 빼놓아도 80여 마리 정도 남았으니 한 달 영업은 문제없겠어요.'

'네. 저 정도 수준이면 오히려 산실장 이상까지 맛을 끌어올릴 수 있겠어요. 아가씨께서 고생 많으셨어요.'

마담이 고개를 끄덕인다. 바깥의 교육생들 상태를 점검해보며 상태에 썩 만족한 세 사람이었다.

'족발 채취를 마친 개체들은 도축해서 족편용 일반 식실장들과 함께 보쌈 수육용으로 쓰면 될 거고, 그러면 매달마다 X0여마리씩 공급한다는 전제 하에 족편, 족발, 보쌈의 3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에요.'

'그러면 산실장도 그 정도까지 공급해주면 되겠네요. 다혜야. 나머지 부재료는 어떻게 잘 되고 있어?'

'당근이죠 언니. 이제 족발감들만 잘 마무리되면 사장님네 영업 재개도 일사천리에요.'

이번엔 차장님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역시나 가영씨의 골칫거리인 육질에 대해서다.

'이제 저 정도면 충분히 족발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더 근육을 늘리면 곤란해요. 식실장들 운동량을 야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면서 지방량을 조금만 더 늘려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건 해결책을 따로 논의해 뒀으니 거기 맞춰 진행할게요. 관장님, 교육생들 먹일 새 식단은 주문해 두셨죠?'

'응, 오는 길에 시켜놨지. 근데.. 꼭 그래야 할까?'

조금 내키지 않는 표정, 그럴만도 싶다. 족발감들이야 그렇다 치겠지만 나름 애제자로 삼아 정 붙이며 키워온 에이스들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을 함정을 파는 데 일조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방량을 늘리고 현상유지 시키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제가 어제 말한 건 기억하고 계시죠?'

'어... 그, 그래...'

교육생들에게 정 붙이지 말라는 그 말이겠지. 개념 잡힌 애호파인 정 관장에겐 꽤 괴로운 일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거고, 본인도 일단은 납득하고 있다.

'관장님께서도 고생하고 계시는 건 알고 있어요. 이번 일을 잘 마쳐 주시면 의뢰비 외에 추가 보너스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써주세요.'

'예 마담. 끝까지... 잘해 보겠습니다.'

몇 가지 특이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오늘의 회의가 종료되었다. 차장님과 매니저는 먼저 구르메로 떠나고, 마담만이 남아 가영씨의 부탁대로 교육생들을 꼬드기기 위한 모종의 준비를 시작했다.



'데... 오늘의 운동은 아직인 데스카?'

'세레브해지려면 노는 시간도 모자란 데스. 어서 다음 운동씨로 넘어가자는 데스웅.'

에이스들을 중심으로 뭉쳐 앉은 교육생들이 웅성거리며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벌써 근육 키워 세레브해질 생각에 쉬는 것도 잊었구만. 어차피 마담만 다 갈아입고 나면 시작할 참이다.

2주간의 운동의 결과 포동포동 뱃살과 기름이 올랐던 교육생의 체구는 모두 어지간한 아종급 체구보다 약간 통통한 산실장 수준으로 압축되었다. 에이스들은 거기에 근육이 적절히 붙은 단계에 접어들었고, 헬창실장 99번은 실장석답잖게 뚜렷한 데피니션까지 보인다.

그러나 저 헬창에겐 유감이게도 오늘 마담이 보여줄 '새로운 세레브 운동'에 근육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오히려 달라붙은 게 적은 장삼이사 교육생들이 득보기 좋은 시스템으로 바뀌는 거다.

'저어, 아가씨.'

옆을 보니 얼굴이 귀밑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에어로빅 복장의 마담이 난감함 반 부끄러움 반 섞인 기색을 띄우고 가영씨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지금부터 시작할 '새로운 세레브'를 보여주려니 좀 긴장되나보다.

네 달 동안 이렇게 착 달라붙는 옷 입은 건 여태 처음인데, 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하고 매끄러운 몸매... 트레이닝이 업인 정 관장도 꽤 감탄한 눈치고 같은 여자인 가영씨 쪽에서도 좀 부러운 눈빛을 보인다.

덕분에 나도 눈호강 좀 하고 있지만, 내 시선 방향이 마담을 향할 때마다 가영씨 쪽에서 쿡쿡 찔러대는 따끔한 눈빛공격에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게 된다. 이크크, 방금 또!

'두 사람 다 엉큼한 생각일랑은 접어두시죠? 특히 철수씨요! 저랑 학대놀이라도 하고 싶어요?'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나나 정 관장이나 당연히 그런 생각 따위 없다. ...누구 마라 평생 못쓰게 만들 일 있나... 여전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마담이 말을 잇는다.

'이거... 꼭 해야 할까요?'

'에이 그러지 말고오~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자신을 좀 가져봐요. 아가씨 몸매면 어디 내놓아도 꿀릴 것 없다고요. 저기 교육생들께서도 완전 껌뻑 죽을걸요?'

'그... 그게 아니라요. 제가 하던 거 말인데, 아가씨 말고 다른 분들이 보는 건 이게 처음이에요.'

여태껏 집에서 혼자 해오던 은밀한 취미(?)를 이렇게 공개하려니 좀 부끄럽기는 한 모양이었다. 에이... 뭐 보여주면 닳기나 할라고? 가영씨도 연신 진지 반 장난 반을 섞어가며 마담을 살살 꼬드기고 있다.

'히히히,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말고요~ 부탁 좀 할게요. 지금처럼 교육생 똥벌레들이 근육 키우는 데만 매달리면 여태 한 노력이 죄다 허사가 되잖아요? 대본은 나미가 대신할 테니까 아가씨께선 집에서 하시던 대로만 해주시면 돼요.'

때마침 옆에서 기다리던 나미가 잽싸게 주인 지원사격에 나선다. 마담과 3년 넘게 알아온 만큼 자기 주인만큼이나 잘 알고 있으니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도 잘 알 터, 주저하는 마담에게 슬쩍 웃으며 다가간다.

'에헤헤, 마담 오바상은 와타시만 믿고 맡겨줘에요.'

같은 실장석들 출신끼린 통하는 게 있는지 계속 망설이던 그녀가 나미의 적록색 눈을 잠시 마주보았다. 곧 나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그..그럼 잘 부탁할게. 나미야.'

'어서 가는 거에요. 똥벌레들 기다리는 거에요.'

결국 결심을 굳힌 마담이 자기 손을 보며 주먹을 꾹 쥐고는 조심조심 밖으로 나선다. 웅성거리며 체육관을 시끄럽게 만들던 교육생들이 다시 만난 초세레브 오바상의 모습에 떠들기를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고정했다.

'덱, 데엑! 오마에타치! 세레브 오바상이 다시 돌아오신 데스우.'

'집중하는 데스! 초세레브 오바상께서 뭔가 말하시려는 데스요.'

녀석들에게 이미 마담은 단순한 세레브 여신님 이상의 그 무언가가 되어있는 상태다. 평범한 실장석이었다면 질투에 차 투분 시도라도 했을 법 싶지만 녀석들에게 있어 그녀는 밑바닥 독라 시절부터 여기까지 자신들을 이끌어준 세레브의 동아줄 같은 존재, 동족들 중 누군가가 투분 흉내라도 나선다면 앞장서서 그 분충을 독라달마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오마에타치, 그간 고생이 많았던 데스요. 운동하면서 뭔가 힘들거나 불편한 점은 없는 데스카?'

'데에...'

교육생들이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요 2주 실생 동안 녀석들이 힘들지 않고 불편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불만이야 많겠지만, 상대가 상대다. 어딜 감히 살아있는 세레브의 화신과 지옥 사단마귀보다 더 무서운 브리더상에게 불만 담긴 울음소리를 내려고 들까? 결국 녀석들에게 대답을 듣는 건 힘들겠고, 마담이 계속 운을 뗀다.

'말하기 힘들면 와타시가 말해주는 데스. 브리더상의 말씀대로라면 오마에타치의 세레브는 벽에 부딪힌 데스. 와타시의 말이 맞지 않은 데스?'

'데엣....!'

'데, 데스우!'

마담 주변에 모였던 교육생들이 일제히 움찔거린다. 그 99번까지도 이번에는 명백히 동요하고 있다. 마담의 입을 빌어 나온 가영씨의 지적이 녀석들의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기 때문이었다. 교육생들 중 몇 마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대답하는 게 들린다.

'마.. 맞는 데스! 두어 밤 전부터 몸씨가 그대로데스. 아무리 운동해도 무게 한 킬로씨 늘리기도 힘든 데스웅...'

'와타시타치에게 세레브란 아직도 먼 데스카? 세..세레브 오바상! 길을 알려주시는 데스요!'

사람이든 실석이든 운동하며 어느 시점에서 정체되는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 실장석 몸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격한 운동과 빠른 재생의 반복으로 여태까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온 교육생들에게도 그 시기가 찾아왔다.

원래 정 관장의 말대로라면 이 상태에 접어들면 대상의 운동 강도건, 휴식이건 식습관이건 잘못된 곳을 지적해 고쳐줄 필요가 있다. 그 뒤로부턴 당사자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력이 빛을 발할 타이밍이겠지.

하지만 그건 당연히 가영씨의 의도가 아니다. 이번 정체기를 기회삼아 근육 단련에 쏠린 교육생들의 관심을 아예 저 멀리 콘페이토 별까지 날려버리는 게 바로 그녀가 이번 일을 꾸민 이유였다.

거기에 '올라감'을 더함으로써 감칠맛을 더하기 위한 분충화의 시작까지, 마담이 다음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가영씨의 두 눈이 빛나며 득의의 기색이 드리운다.

'오마에타치가 선택한 길은 대단히 어렵고 험한 길인 데스. 그 길이 정 힘들다면 대신 와타시와 함께 좀더 쉬운 길을 따르는 건 어떻겠는 데스카?'

그렇지, 안 그래도 실장석의 멘탈로 느닷없이 찾아온 슬럼프에 슬슬 조바심이 차오르고 마음이 급해질 텐데 마담의 저 몇 마디가 교육생들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고 있다. 자리에 모인 식실장들이 점점 솔깃해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특히 게으르거나 운동신경이 나빠 진도가 늦은 녀석들일수록 더욱 이끌리고 있다.



'그게 무엇인 데스? 와타시도 가르쳐 주시는 데스!'

'가르쳐 주기 전에 물어볼 게 하나 있는 데스요. 지금 오마에타치가 걷는 길은 어렵지만 잘 해가면 이겨낼 가망이 있는 데스. 정말 쉬운 길로 가고 싶은 데스카?'

'어어? 저러면 꼬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좀 당황한 나랑은 달리 가영씨 쪽은 태평하다.

'아가씨도 실장석을 잘 아니 저렇게 마지막 기회라도 주려는 거죠. 그걸 깨달으면 실장석이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대로 몇몇이 망설이긴 했지만, 곧 세레브를 시끄럽게 떠드는 대부분에게 묻혀버렸다. 더는 구원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마담도 묻는 걸 그만두었고, 슬슬 본 작업으로 들어간다.

'지금부터 와타시가 가르쳐 주는 데스요. 잘 보고 따라해주길 부탁하는 데스.'

마담이 머큐리와 립톤이 줄세워놓은 100여마리 교육생들 앞에 선다. 이제 본격적인 선동꾼 역할을 맡은 보조역인 나미와 조수들 차례다.

'오마에타치! 준비된 거에요? 마담 오바상께서 오마에타치를 위해 특별히 보여주시는 거에요. 잘 보고 똑바로 따라하는 거에요!'

'데스!'

구령소리 좋고, 나와 정 관장 옆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가영씨가 잽싸게 오디오 스위치를 누르자 디지털 카메라 싸게 파는 사이트에서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익숙한 음악소리가 체육관을 울리운다.

음악에 맞추어 마담이 천천히 영상에서 자주 보았던 준비자세를 잡는다. 곧 음악 간주가 끝나고 본 소절에 맞춰 마담이 태권도 동작에 따라 허공에 발을 가르고 복싱 동작에 맞춰서 주먹을 지르기 시작한다. 긴장이 덜 풀렸는지 좀 뻣뻣하긴 하지만, 분명히 너튜브를 돌며 온갖 패러디 영상을 낳았던 모 연예인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나온 바로 그 동작이다.

그래, 태보. 절 대 태 보 해! 펄펄 끓는 육수작업장에서 휴식조차 한 번 없이 8시간 작업을 버텨내고 하루에만 수십 마리 식실장을 조지고 부수면서도 숨결 하나 흐트러짐 없던 마담의 강철체력의 비결이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다. 한 시간을 내리하면 800칼로리를 태운다는 그 악명높은 태보가 남은 일주일 간 교육생들을 조져놓고 관심을 끌어모을 최후의 운동 코스였다.

'오바상 하시는 거 안 보이는 다와? 냉큼 시작 안하면 와타시의 보물씨와 면담인 다왁!'

'마담 오바상이 저렇게 완벽한 몸매가 된 거에요. 오마에 실장석들도 하루에 두 시간만! 실장인 몸매는 따놓은 당상인 거에요!'

'데뎃?! 시작하는 데스요!'

잠시 멍때리고 지켜보던 교육생들 등뒤로 립톤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미의 감언이설이 꼬드긴다. 곧 체육관 안은 마담을 따라 허공에 이리저리 손발을 휘둘러대는 교육생 반독라들의 태보위장 휘적휘적 붕쯔붕쯔의 향연이 펼쳐졌다.

'뎃! 뎃! 뎃! 뎃!'

'닌겐상의 복싱과 태권도라는 운동을 접목한 데스. 오마에도 할 수 있는 데스. 더 빡세게 가는 데샥!'

'데샥! 데슷! 데뵤옷!'

'배에 힘 안 준 데샤아아아악!'

나미 신났다. 아예 실장석 울음소리까지 흉내내며 한참 태보에 빠진 마담의 핵펀치와 발차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따라하고 있다.

하지만 따라하는 실장석들은 죽을 맛이다. 5분도 채 안 지나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바닥에 비지땀을 줄줄 흘리고 숨은 턱을 넘어 코에 닿아 푸흥푸흥 콧김을 내뿜는다. 몇몇 녀석은 치솟는 열기를 버티다 못해 두건과 신발, 심지어는 팬티까지 벗어가며 알몸뚱이를 드러내기도 하고, 동작이 느려지다 립톤의 채찍질을 엉덩이에 맞고 폴짝폴짝 뛰며 전설 속의 실장권법을 흉내내기도 한다.

'뎃! 뎃! 뎃! 뎃! 뎃! 뎃! 뎃! 뎃!'

뭐 어쨌든 2주간 단련한 가락이 있어서 그 독하다는 태보를 다운그레이드해서나마 어떻게든 붕쯔붕쯔 잘 따라하고 있었고, 그렇게 필사의 실장태보가 점점 절정에 오르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좀 어색했던 마담도 점점 흥이 붙는지 무아지경에 빠져간다. 태보에 심취한 실장인 한 명 모셔놓고 백 마리 반독라가 따라하면서 이리저리 헐떡이며 붕쯔붕쯔 몸 흔드는 꼴이라니, 정말 돈 주고도 다시 못 볼 구경거리겠다.

'너네 사장님 꽤 잘하시는데? 당장 현역 강사로 뛰셔도 돈 좀 버시겠어.'

'아가씨가 뭘 못하는 게 있을라구요? 근데 진짜 잘하긴 하네. 나도 이참에 한 번 배워볼까나?'

'풉...푸후훕!'

어이쿠, 웃어버렸다. 170의 늘씬한 마담이 하니 태보라도 꽤 볼만한 그림이 나오지만, 150 겨우 넘는 키의 아담한 가영씨가 팔다리 휘두르며 태보하는 모양이라니, 그만 저 교육생 식실장들과 모습이 겹쳐 보이고 말았다.

[철썩!]

'커헉?!'

화끈한 등짝스매쉬에 나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볼을 있는 대로 부풀리고 도끼눈을 뜬 가영씨가 서 있다.

'...오이, 오마에. 지금 웃은 데수카?'

'아, 아뇨...? 가영씨 저기 잠깐, 그게 아니라? 끄헝!'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다! 가영씨 제대로 뿔났다!

'짱가가 태보하는 게 그렇게 웃긴 데수카? 170 아가씨는 괜찮고, 150 숏다리는 영 못봐주겠다는 그거데수?'

'흐걱! 어떻게?! 아, 아니 잠깐! 잠깐만요오!'

들켰다...! 표정이 점점 험악해진다. 미처 변명할 틈도 없이 우악스런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잽싸게 잡아채 아래로 내리고, 양 관자놀이에 주먹감자가 얹혀 맹렬히 돌아간다. 아악! 내 머리! 사람 살려, 사람 살리는 뎃샤아!!!

'흐갸갸갸갸갸! 아이에에에에!'

'웃긴 데수? 웃긴 데수우? 오마에도 특별 트레이닝이 필요하겠는 데수요. 짱가랑 곡소리나게 굴러보는 데샥!'

'흐이이익! 아이에! 아이에에에에에에!'

사람 살려어!!! 관자놀이 비틀리며 구슬프게 울리우는 내 비명은 점점 커지는 음악소리에 묻혀버리고, 옆에서 겁먹어 잔뜩 쫄은 정 관장만 내게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



'후우.'

그렇게 폭풍같던 한 시간의 실장태보가 흘러갔다. 한바탕 땀을 빼고는 상쾌한 표정으로 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는 마담, 정말 태보가 취향에 맞기는 한가보다. 아오오... 그나저나 아직도 머리가 쿡쿡 쑤신다.

'데힉... 데퓨우....'

역시 그 태보를 실장석 체력으로 소화하긴 무리였는지 체육관 사방에는 초토화된 반독라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다. 나미 역시 적잖이 지친 모습이니 하위호환 실장석들이야 더 말할 것 있나?

그래도 녀석들을 꼬드겨 실장태보에 끌어들인 효과는 확실했다. 어느정도 휴식을 갖고 난 다음 에이스들과 평범한, 오히려 근육 발달이 더뎠던 그룹들의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데프프 이번엔 제법 따라할만 했던 데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세레브도 금방이겠는 데스요.'

'데에... 말도 안 되는 데스우. 왜 이렇게 몸씨가 무거운 데스카?'

교육생들의 희비는 바로 저 근육에서 갈렸다. 제대로 장기간 운동에 매달려 근육이 발달한 자기 몸에 익숙했다면 태보 같은 지구력을 요구하는 유산소 운동에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겠지만, 지금처럼 다소 급하게 발달시킨 근육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을지언정 아직 적응이 덜 된 상태로 태보에 임하기엔 영 부담요소가 되고 만 것이다.

거기다 실장석들 눈으로 마담의 체구를 보자니 더욱 극명해진다. 저게 어딜 봐서 근육인가. 날씬한 여자력 몸매에 가까우면 가까웠지. 적어도 다들 지방은 뺄 대로 빼낸 상태니 겉껍질만 보면 오히려 근육을 게을리 키운 쪽이 새로운 세레브에는 더 적합한 모습이었다.

'어떤 데스. 와타시가 알려준 길은 따르기 쉬운 데스?'

'데...데에! 그건...'

에이스들의 필두자 99번과 꽤 친해진 35번이 뭔가 말하려 하지만, 곧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사나운 노성에 파묻히고 만다.

'오마에 인화라도 한 데스우? 어디서 초세레브 오바상한테 말대답하는 데스카!'

'여태껏 세레브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분충데스! 더 지껄이면 가만 안 있는 데샤!'

'앞으로 그놈의 근육 타령 작작 하는 데스요. 이제 새로운 세레브의 시대가 열린 데프프프!'

'데...데에에!'

겁먹고 당황한 35번. 하루아침에 자기가 알던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기껏 일궈낸 자신들의 성취가 별안간 장애물이 된 현실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좀 안쓰럽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 세레브란 것이 일주일 후면 꺼질 거품과도 같은 것. 어차피 현실을 깨닫는 고통을 조금 일찍 맛보는 셈일 뿐이다.

'와타시가 알려준 길이 마음에 들었다고 알겠는 데스요. 그럼 식사를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

마담과 나미, 립톤이 교육생들을 놔두고 사무실로 향한다.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아 아침까지만 해도 동경이었던 동족씨들의 비웃음을 한 몸에 받고 있던 35번이 결국 서러운 울음소리를 터트리고 만다.

'데에.. 데에에..! 데에에에에엥!'

슬픔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점점 주변의 에이스들을 물들인다. 자기들도 이제 개털이 되었음을 실감한거다. 꼴이 영락없이 잘 나가던 우량주가 작업당해 말아먹고 멘붕한 주식 개미들을 연상케 한다.

'순식간에 신세가 뒤바뀌었네요. 저걸 뭐라 해야 하나, 세레브역전세계 정도라고 치면 되려나요?'

'어제의 훈장이 오늘의 주홍글씨가 된 거죠. 이제 저것들도 세레브를 계속 누리고 싶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수밖에. 안 그래요?'

'뭐 그거 아니면 동네북행이겠죠. 어? 저놈 봐라?'

그렇게 녀석들의 좌절을 감상하려던 찰나, 조용히 앉아있던 99번이 일어나 35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손을 잡아주며 입을 연다.

'너무 좌절하지 마는 데스, 35번상. 독라에서 여기까지 해내지 않은 데스카? 이번에는 전보단 좀더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인 데스. 다시 한 번 노력해보는 데스요.'

'데에... 99번상...'

실장석답잖게 제법 훈훈한 광경이지만 그걸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장석들이 아니지, 교육생들 중에 제일 근육이 덜 잡힌 녀석, 사람으로 따지면 멸치 체격에 가까운 13번이 초승달 눈웃음을 지으며 비꼬기에 나섰다. 제딴에는 마담이 인정해 준 세레브라 생각했는지 이미 실장인이라도 된 양 양껏 의기양양해져 있다.

'데프프 행복회로나 굴리는 게 아주 꼴보기 좋은 데스야. 그렇게 총구 쑤시며 으시대봤자 이제 오마에타치는 쥐뿔도 없는 똥벌레니 받아들이는 데스.'

'13번상이 맞는 데스! 여태껏 헛짓거리나 하던 분충이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데스까?'

'머리까지 근육씨가 된 분충데스! 이제 새로운 세레브의 시대니 적응하는 데샷!'

아침까지만 해도 99번을 감히 마주보지도 못하던 놈이 동족들의 지원사격까지 받자 아주 제대로 올랐다. 이제 두려울 게 없으니 초승달 눈웃음까지 지으며 억눌려왔던 분충기를 명백히 드러낸다.

자기 주관도 없이 닌겐상과 실장인이 씌운 허울좋은 세레브에 놀아난 분충. 그리고 그 분충에게 덩달아 선동된 다른 녀석들 역시 그동안 친구로서, 혹은 멘토로서 동고동락해온 에이스들을 조롱하고 무시하는데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다. 가영씨의 의도대로 짜넣은 경쟁심리와 이기주의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녀가 왜 그리 실장석들을 무시하고 나미가 그리도 혐오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시간이었다.

'오마에타치도 그 쓸데없는 근육덩어리는 갖다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는 데스요. 그런 거 달고 있어봤자 아무도 몰라주는-'

'오마에가 무슨 자격으로 와타시타치의 노력을 부정하는 데스카!!!'

처음으로 보는 99번의 분노였다. 사람 무릎 조금 넘는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상상도 안 될 정도의 체육관을 온통 울리는 우렁찬 일갈에 13번이 곧바로 빵콘하며 기저귀를 부풀리고야 말았다.

'마담 오바상의 말씀대로 와타시타치가 걸어온 길이 힘들기만 하고 세레브에선 먼 길일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적어도 와타시는, 35번상은, 다른 친구상들은 그 길을 위해 실생 전부를 불태우며 달려온 데스우!'

보통 길길히 날뛰는 모습과 난동으로 표현되는 실장석의 분노와는 달리 99번의 분노는 차갑고도 무거웠다. 평소 조용하던 녀석이 한번 화를 내니 닌겐상은 몰라도 주위의 식실장들을 모조리 제압하고도 남았다.

'오마에가 한 거라곤 다른 동족씨 콘페이토에 팔아먹고 아종들 눈속임하며 턱걸이로 올라온 게 전부 아닌 데스카! 다른 동족씨는 몰라도 적어도 오마에는 와타시타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조차 없는 데스요. 과연 마담 오바상이 말씀하신 세레브에 오마에가 어울리기나 하는지 한 번 잘 생각해보는 데샤!'

'데..데히잇...'

분충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낸 99번이 다시 35번의 손을 잡아 일으켜세운다. 그리곤 다시 부드럽게 표정을 풀고 말을 건낸다.

'설령 세레브가 아니라 해도 와타시타치가 걸어온 길은 충분히 보람찼던 데스요. 적어도 와타시는 그렇게 생각하는 데스.'

'99번상...'

'이제 밥 먹을 시간인데스. 데프프, 세레브도 배는 채우고 챙겨야 할 것 아닌 데스카? 일단 먹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데스우.'

99번이 35번과 에이스들을 이끌고 식실장 무리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13번이 이를 갈며 99번의 등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세레브는 쥐뿔도 없는 똥벌레가 목청만 더럽게 큰 데샤! 다음에 다시 보면 아주 박살을 내주는 데샤악!'

그건 힘들텐데? 이미 자리에 돌아온 립톤이 흉흉한 표정으로 금발 실장채를 매만지고 있다.

'어떤 박살다와? 와타시의 보물씨와 노는 것 말인다와?'

'데히익! 아닌 데스요...'

'괜히 매나 버시는구만... 어? 마담, 아직 안 가셨나요?'

'아... 지금 가려고요. 대리님, 수고하세요.'

'마담도 수고하세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마담이 구르메로 돌아갔나 싶었더니, 구석에서 99번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평소의 포커페이스로 돌아왔지만, 떠나기 직전까지 녀석을 살피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잠시 후 식사시간이 되어 식실장 교육생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점심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신 고픈 배를 쥐며 낑낑거리던 한 마리가 볼멘소리를 뱉는다.

'데에... 또 그 단백질 식사데스카? 이제 그건 슬슬 지겨운 데스우...'

사람도 못 버티고 밥공기랑 찌개를 찾게 만드는 게 보디빌더용 식단인데, 뭐 실장석 인내심으로 오래 참기는 했다.

'어차피 저 인내도 오늘부로 끝이겠죠? 저것들 입맛 수준에 딱 맞는 진짜배기 특별식일테니깐 뭐...'

'쟤들 덕에 나미도 간만에 포식하겠어요. 피자 한 번 먹자고 살살 꼬드겨서 달래느라 힘들었는데.'

피자야 못 사줄 것 없지만 정 관장이 먹는 걸로 염장지르는 건 운동하는 사람이건 실석이건 너무 가혹행위라고 말린 덕에 근 2주는 이쪽 사람도 실석도 저 녀석들 눈치 보며 밥 먹어야 했다. 피자 냄새 풍기는 거야 당연히 절대금기였고.

물론 곧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곧 실장석 본능으론 거절하지 못할 유혹을 받을 99번과 에이스들을 보는 정 관장의 눈빛이 무척 안쓰럽기는 했지만, 일은 일이다.

'아, 왔네! 나미야, 머큐리, 립톤. 너네도 밥 먹을 준비 해야지? 사무실에 모여 있어!'

'와타시는 스테끼 피자 가는 거에요!'

'고기는 사절보쿠! 파인애플 피자가 좋은 보쿠!'

'머큐리 오네챠는 뭔 입맛이 그런 다와? 고구마 피자가 진리다와! 다햑! 아픈 다와!'

메뉴 갖고 투닥이는 세 조수들은 잠시 냅두고 가영씨와 현관으로 가서 주문한 피자를 받으러 갔다. 산더미처럼 쌓인 피자를 옆에 놓고 숨을 고르던 여드름 난 배달부 애가 안의 '고객님'과 우릴 번갈아 보더니 멍하니 입을 벌린다.

'아저씨, 설마 이거... 실장석들 먹일 거에요?'

'뭐 그렇긴 하지. 우리도 먹고.'

말 안해도 알지. 세상 살며 별 놈 다 본다는 그 얼굴... 계산을 마치고 내려갈 때까지 황당해 죽겠다는 표정이 사라지질 않는다. 정작 주문해놓은 가영씨도 영 아까워 죽겠단다.

'족발감들 더 늘려놓겠다는 목적 아니면 참피한테 먹이긴 너무 아깝네요. 차라리 저 머스마나 한 판 줄 걸 그랬나...'

'...녀석들 타락시키는 거 즐기려는 게 아니라요?'

'뭐, 인정! 제 아무리 천하의 99번님이라도 이건 별 수 없을걸요? 참피 입맛 저격엔 정크푸드가 딱인걸요. 그리고 이렇게 탄수화물 입맛을 들여놔야 내일부터 잘들 먹죠. 어지간한 거 내놨다간 살찐다고 슬슬 뺄건데...'

자기들 앞에 차례대로 쌓이는 상자에서 나오는 냄새에 눈들이 휘둥그래지고 입에 침이 질질 흐르신다. 아직 놈들이 환장을 하고 대들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피자 상자를 가로막은 가영씨의 존재감 때문이다. 아무리 분충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어도 그건 자기들끼리에 한정해서였지, 철저한 통제와 훈육 때문에 닌겐상에게 대드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데..데데... 츄르릅. 저게 오늘의 점심데스카?'

침을 질질 흘려대는 교육생들과 조금 떨어진 에이스들마저도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바로 앞에서 눈알을 굴려대는 13번과 나머지들은 말할 필요가 있나... 오로지 99번만이 침묵을 지키고, 35번만이 필사적으로 혼잣말을 줄엉거리며 고개를 흔들 뿐이다.

'저건 근육씨엔 죽는 약이나 마찬가지인 데스우...... 다메인 데스네......'

거기에 화답하듯 악마의 유혹이 펼쳐진다.

'자아, 그간 고생많아서 특별식 주는 거야. 이거 먹고 열심히 운동하면 되는 거잖아? 피자 한 조각 먹는다고 바로 살 안 쪄.'

목소리마저도 살살 간드러지게, 결국 제일 먼저 나선 13번을 시작으로 이성을 잃은 반독라 떼거지들이 활짝 열린 피자 상자들 속으로 일제히 달려들고 말았다.

'데퍄퍄퍄!!! 천상의 맛인 데스우. 세레브의 신성인 와타시의 격에 딱 맞는 우마우마데퍄퍄!!'

'데에엥! 여태껏 먹은 운치랑은 수준이 다른 데샤아! 와타시 실생 헛산데스.'

순식간에 갈가리 찢겨 없어지는 각양각색의 피자들, 가영씨가 계속해서 새 피자를 열어주지만 여는 족족 사라진다. 결국 에이스들 사이에서도 이탈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먹고 열심히 하면 되는 데스... 그러면 되는 데스우!'

'그러면 다메데스 40번상! 근육씨가 묻혀버리는 데에에!'

35번이 필사적으로 말려보지만, 결국 반 이상이 피자를 향해 튀어가버린다. 얼마간 웃는 얼굴로 피자 상자를 열어주던 가영씨가 씩 미소를 짓곤 내게도 한 판 건낸다.

'가서 저 녀석한테도 열어주고 와요. 이 참에 화근을 제거하자구요.'

악마의 유혹이 녀석에게도 뻗친다. 조용히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녀석을 불러 상자를 열어주자, 언청이 얼굴에 오만 감정이 다 스쳐간다.

'브리더상이 너도 좀 먹으랜다. 그 동안 많이 수고했잖아? 앞으론 이런 거 안 주니까 지금 먹어둬.'

35번마저도 입에 흐르는 침을 닦지 못한다. 몇 분간 자기 앞에 놓인 우마우마의 극치를 응시하던 99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 관장에게 다가가 뭔가를 묻는다.

'관장사마, 지금 와타시타치에게 고탄수화물과 지방은 독이라고 들은 데스. 그렇지 않은 데스카?'

'그..그렇지. 하지만 먹는 건 네 선택이야. 나한텐 권한이 없는걸...'

이제 거진 포기했는지 정 관장이 완전히 풀이 죽었고, 완전 타락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교육생들을 꼬드기는 가영씨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99번의 다음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와타시는 전에 먹던 걸 먹고 싶은 데스. 주실 수 있는 데스?'

'99번상! 그럼 와타시도 같이 가는 데스!'

'뭐...뭐...? 물론이지! 같이 먹고 싶으면 나머지도 따라와라! 얼마든지 나눠줄게.'

세상에 마상에... 저거 실장석 맞아? 이제 채 열 마리가 못되는 99번과 35번, 나머지 에이스를 보는 가영씨도 기뻐하며 녀석들 데려가는 정 관장 말릴 생각도 못한 채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세상에나... 참피가 피자를 걸러...? 브리더 일 9년 하니 별의별 헛것이 다 보이네...'



...스크 쓰면서 처음으로 6편까지 가는군요. 뇌절하는 기분이 영 찝찝하지만 일 때문에 분량을 쪼개 쓸 수밖에 없는 신세니 당분간은 5편 6편이 계속 나올 듯 싶습니다. 오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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