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참피로 요리왕 비룡 더 마스터 미스터 초밥왕 요리하는 소설 마담 구르메 2부 - 22. 헬스실장 왕족발 - (6)

 [헬스실장 프로젝트 17일차, 15:05PM, 헬스클럽 '벌크 앤 짓소']




실장태보와 피자 파티를 겪고 3주차에 접어들면서 교육생들을 둘러싼 분위기는 점점 나태함과 이기심, 자기합리화라는 실장석 본연의 분충성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제 스무 마리 남짓에서 줄어 열 마리도 안 남은 99번과 에이스 무리들을 향한 따돌림과 주체못할 식탐까지 겹치니 옆에서 관리하는 입장상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형식상으로나마 남겨둔 오후의 근력 운동 시간이 찾아왔지만, 이미 저네들식 세레브의 기준이 바뀌어버린데다 이전의 강제성이 사라진 자율운동으로 규칙이 느슨해지자 운동에 진지하게 임하는 식실장들은 이제 몇 없다.

그래도 그놈의 세레브가 걸렸다고 생각들하시는 태보 시간엔 좀 열심히 하는가 싶더만, 지금은 아령 몇 번 들어올리다 멀찍히 던져놓고 잡담이나 받아둔 간식 먹기에 바쁜 녀석들이 대다수고, 아예 대놓고 대자로 뻗어 코를 골아대는 똥벌레들도 심심찮다.

아직까지 제대로 하는 놈들은 우상에서 왕따로 전락한 99번과 그 친구들뿐이다. 1대 50 달성은 벽에 막혀 좀처럼 발전이 없고, 새로운 실세가 된 13번이 틈만 나면 시비를 걸고 방해를 놓는데도 녀석은 굴하지 않고 얼마 안 남은 동료들을 이끌고 운동에 전념하는 중이다.

'데그으으으으읍! 데힉! 쉬익... 쉬익...'

'자자, 너무 무리할 거 없어 그러다 다치면 더 오래 걸리니까!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천천히 해보자.'

'쉬익... 쉭... 관장사마 말이 맞는 데스. 잠깐 쉬어보는 데스요.'

15, 18, 14... 3kg 모자라는구만. 정 관장이 아예 녀석들에게 1대 1 지도까지 해주며 도와주고 있지만 정체기가 쉽게 극복되지는 않는다. 사흘 간 겨우 2kg을 더했고, 오늘은 아직 무게를 더 늘리지 못하고 있다.

'헬스는 파워리프팅이 아니야. 네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알겠지?'

'새겨듣는 데스우.'

스포츠 음료를 받아들고 한 컵 따라 마시는 99번의 어깨를 정 관장이 가볍게 두드려주고 사무실로 향한다. 돌아서는 얼굴이 영 밝지 못하다. 이제 녀석을 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속이 적잖이 쓰릴 거다.

잠시 쉬던 99번이 35번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스쿼트렉으로 올라선다. 아깐 좀 기우뚱했는데 이번엔 자세가 그럭저럭 잡힌다. 저거 잘 할수 있으...

'참 별난 녀석이구만. 괜히 뺑덕이 보고 싶어지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녀석을 응원하게 되었다. 실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는 하련지, 땀에 절은 몸을 움직여 힘차게 실석용 덤벨을 들어올리는 99번의 언청이 얼굴에 잡념 따위는 들어올 틈도 없어 보인다.



'똥벌레 소음공해 좀 작작 내는 데샤! 오마에타치 때문에 와타시타치가 잠을 잘 수가 없지 않는 데스카! 피로는 피부미용에 해로운 데스우.'

아예 퍼자다시피 드러누웠던 교육생 몇 마리가 99번 쪽으로 씩씩대며 시비를 턴다. 뒤에선 13번이 자기는 관련없다는 듯 멀찍이 떨어져서는 녀석과 동료들을 초승달 눈을 하고 비웃고 있다. 분명 저 분충의 수작이겠지? 뻔할 뻔자다.

기세나 논리에서 99번을 이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후론 저렇게 추종자들을 시켜서 수시로 잔꾀를 부리며 방해를 놓고 있다. 정리정돈을 명목으로 운동기구를 멀찍이 치워놓고, 운동하는 동안 소음을 내고 시비를 걸어 방해하고, 짱박아 놓은 간식을 대놓고 앞에서 먹어대며 약을 올린다. 그렇게 99번과 친구 녀석들을 대놓고 따시키는 중이다.

'일단 운동 끝나고 말하는 데스요. 그리고 지금이 운동 시간이지 잠자는 시간데스카? 오마에타치 코고는 소리가 더 시끄러운 건 알기나 하련지 모르는 데스우.'

'데샤악! 세레브도 없는 근육돼지 주제에 시끄러운 데샤!'

분충들이 네 발로 서서 위협에 들어가자 그때서야 립톤과 머큐리가 슬금슬금 걸어와서 제지에 들어간다.

'똥벌레타치 뭔 일인다와?'

'쓸데없이 싸우면 가만 안 두는 보쿠. 말로 하는 보쿠.'

'저 똥벌레가 운동한답시고 시끄럽게 굴어서 잠을 못 자는 데샤아! 와타시가 뭐라고 했더니 적반하장으로 대들어대는 데스우.'

'그만 알겠는다와. 자리로 돌아가면 와타시타치가 알아서 처리하는 다와.'

립톤이 피식 웃고는 분충들을 돌려보낸다. 머큐리가 99번 쪽으로 돌아서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또 시비인 보쿠와? 다들 따라오는 보쿠. 오마에타치는 교육이 더 필요하겠는 보쿠.'

'뎃? 시비는 저 똥벌레들이 먼저 건 데스! 왜 와타시타치한테 그러는 데스카?'

'긴 말 할 거 없는 보쿠. 냉큼 따라오는 보쿠왁!'

졸지에 벌을 받게 된 녀석들을 보며 주위의 교육생들이 시끄럽게 웃어댄다. 그 중에는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피자에 손을 댄 후 분충들과 동류가 되고 만 과거의 동료들도 섞여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어떻게든 덩달아 세레브해져 보려고 다른 놈들보다 더 앞장서서 악질적으로 괴롭힘에 참가하고 있다.

'데프프 세레브한 와타시한테 깝치는 빠가똥벌레데스. 꼴 좋은 데스요.'

'근육머리들이라 자기들이 뭔 잘못하는지도 모를 것인 데스야. 가서 열심히 배워보는 데퍄퍄퍄!!!'

뒤돌아본 35번이 억울하고 화난 표정을 짓지만 어쩔 수 없이 머큐리 뒤를 따른다. 가영씨에게서 더 이상 교육생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99번과 에이스들은 예외였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예외없이 락커룸으로 불려가게 된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대우로 보이지만 체중만 유지하면 더 손 볼 곳도 없는 다른 교육생들과는 달리 녀석들은 아직 관리할 부분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머큐리와 립톤을 따르는 녀석들을 보며 13번이 비열한 웃음을 흘린다. 입으로는 자기는 세레브하니 99번을 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떠드는 중이지만, 13번이 쳐다보는 저 시선, 아주 잘 알고 있다. 구르메에서 접했던 각양각색의 분충들이 마담을 보는 그 눈빛,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에서 나오는 시기와 질투였다.

뭐 겉으로 보기엔 저 13번 똥벌레가 열폭하는 상대는 완전히 개털이 되었고, 놈의 시점에선 모든 것이 자기 의도대로 흘러간다고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흘 전부터 하던 대로 매일같이 끌려가는 락커룸 안에서 99번을 비롯한 녀석들이 옹기종기 앉아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들어오자 가영씨가 사흘 내내 들어온 익숙한 멘트를 남긴다.

'문단속 잘 해요? 저 똥벌레들 들으면 큰일나니까.'

처음만 해도 깜짝 놀랐었지, 한바탕 학대쇼가 시작되나 했더니 녀석들을 기다리는 건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준비된 건 가영씨가 예전 사육실장 브리더 할 적 운영하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밖의 족발감들이 알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시비가 걸릴 때마다 처벌을 빌미삼아 이렇게 모으고 있었다.

'너희들도 아가씨께 들었으니 알겠지. 세레브란 건 닌겐상이 넘겨주거나 누구한테 배운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야.'

'아직 기억하는 데스. 꿈을 갖고 스스로를 끝없이 갈고 닦는 데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는 데스. 자만하지 말고 스스로를 끝없이 되새기며 돌보는 데스.'

'잘 외웠네. 니가 말한 거 반만 지키고 살아도 실생 다할 때까지 편히 먹고 살다 갈 수 있어. 니네 주인이 잘 걸린다는 조건 하에 말이지만.'

옆에 기대섰던 립톤도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경청하는 중이다. 나미 밑에서 우악스러운 면만 늘었나 싶었더니 또 이럴 때는 실홍답게 구는구만.

'뭐 그건 너네한텐 너무 어려운 거야. 대신 닌겐상 화나게 만들 짓 하려 들지 않는 건 제대로 해야겠지? 어디까지 했더라? 다른 실석에게 시비 걸렸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지까지 배웠었지?'

가영씨의 두 눈이 35번을 노려본다.

'어이, 35번.'

'데덱?!'

'첫날부터 머큐리한테 다 듣고 왔잖아? 어차피 저것들은 족발행이라고, 그렇게 시비 털릴 때마다 감정 조절 못하면 너만 손해인 거 몰라?'

'죄송한 데스...'

'하튼 니들도 친구를 잘 만나서... 자꾸 같은 말 하게 만들지 마. 장가영이한테 사육실장 교육받는 거 아무 참피나 하는 거 아니다?'

'앞으로 조심하는 데스우.'

'어휴, 내가 이 짓을 다시 하게 만들다니! 진짜 아가씨랑 관장님만 아니었으면... 좋아, 오늘은 운치 가리는 법이랑 빵콘했을 때 대처법에 대해서야. 수업 끝날 때 시험 볼 거니까 딴청피지 마라?'

말은 저리 해도 가영씨 역시 녀석들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가르쳐 놓기 위해 꽤 열심히이다. 거의 3달 동안 이뤄지는 사육실장 교육을 7일만에 기본기를 잡아놓기 위해 밤새워 책을 들고 예전 가르치던 내용들을 요약해 놓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일이 이렇게 되게 만든 건 사흘 전 그 날 마담이 교육생들에게 태보를 가르치고 돌아간 늦은 밤부터였다. 마지막 주부턴 나도 체육관에서 먹고 자야 했기에 숙소에서 침구와 세면용품을 챙겨 돌아온 참이었는데, 그때쯤엔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갔을 마담이 무슨 일인지 체육관에 도착해서 가영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아가씨? 퇴근한 거 아니었어요?]

[퇴근길에 들렀어요. 99번 교육생과 그 애를 따르는 무리들을 어떻게 할 지 이야기하러 왔어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어차피 근육이 과도하게 발달해서 고기로도 쓸 수도 없는 상태에요. 그렇다고 무작정 처분하기엔 그간 들인 공이 아깝고, 대신 다른 용도로 한 번 써볼까 해요.]

[좋아요. 어제까지였다면 안 된다고 딱 잘랐겠지만, 이젠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디에 쓰실 건가요?]

[이번 달을 넘긴다고 해도 몇 달은 산실장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차장님이 아예 그간 헬스실장들을 단련시킬 때 사용했던 트레이닝 루틴과 경험자인 관장님과 99번을 바탕으로 헬스실장들을 양산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족발용 식실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이번 에이스들처럼 근육이 과도하게 발달한 경우엔 실석숍에 판매하는 거로요. 그쪽으로도 수요는 있을 거에요.]

[뭐, 아가씨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따라야죠. 실장인이야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두 명 정도 고용하면 될 거고, 99번은 관장님 조수 일이나 시키면 되겠어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실 거죠?]

[곧바로는 못 써먹어요. 제가 좀 가르치다 납품일 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브리더에게 보낼까 해요. 실장석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니까 그것들이 삽질만 안 하면 제대로 가르쳐 놓겠죠.]

말을 마치려던 가영씨가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마담의 팔짱을 낀다.

[아가씨, 솔직히 말해요. 관장님이 부탁한 거죠?]

[네, 오늘 오후에 전화하셨어요.]

[휴우, 저 아저씨도 참. 하긴 나한테 말하기는 영 그랬겠지? 내가 그렇게 못을 박아놨으니...]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이리 될 줄 알았다는 모습이다. 마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멀찍이서 플랭크에 열중하는 99번을 지켜본다. 옆에선 친구 35번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세를 따라하는 중이고, 정 관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조언해준다. 밤 열 시면 실장석에겐 꿈나라를 헤메고 있을 시간인데 참 열심히기도 하다.

[히히, 아가씨도 은근슬쩍 관심있었나 보네요. 낮에는 안 그런 척 했으면서.]

[예전의 제가 생각났거든요. 어차피 요리 재료로는 쓸 수 없게 되었으니 한 번쯤 기회를 줘 보고 싶어졌어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네요. 좋아요. 일단 그렇게 하기로 결정났으니 내일부턴 빡세게 가르쳐야겠네요. 집에 예전에 쓰던 자료가 있을건데...]



그때의 일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한참 흘러가 있었고, 저녁까지 이어지던 수업이 마감지어졌다. 중간중간 졸다가 데코핀을 맞고 머리에 혹이 난 한두 녀석을 빼곤 모두 멀쩡히 걸어나가지만, 립톤이 엄포를 놓는 걸 잊지 않는다.

'오마에타치는 여기서 먼지나게 쳐맞은 것인 다와. 밖에서 헛소리하면 족발행인 다왁!'

'데끼악! 입단속 잘하는 데스우...'

뒤따라 나가려던 99번이 등 뒤로 울리는 가영씨의 목소리에 발을 멈춘다.

'99번?'

'데스.'

'너는 잠깐 남아봐. 나랑 얘기 한 번 하자.'

'알겠는 데스.'

녀석이 자리에 앉자, 머큐리가 캔 하나를 들고 와 따서 내민다. 치익 시원한 소리와 함께 탄산 부글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드는 보쿠.'

'데에... 고맙지만 사양하는 데스. 와타시는...'

'그거 다이어트 콜라거든? 내가 니 몸관리도 신경 안 쓰는 줄 알아? 줄 때 고맙게 마시기다?'

'데엑! 마 마시면 되는 데스...'

받아들고 꿀꺽꿀꺽 마신다. 녀석도 실장석이긴 한 건지, 감미료로나마 혀끝을 적시는 단맛에 몸을 부르르 떤다.

'데... 맛 좋은 데스네.'

'좋아. 시작한다?'

'말씀하시는 데스우.'

'처음에는 너도 그냥 운동 좀 잘하는 참피인 줄 알았지. 자기 줏대도 없이 그놈의 몸속 돌멩이랑 닌겐상이 떠먹여주는 세레브 타령에나 매달리는 것들 말야. 저 밖에 니 친구들도 질이 좀 낫다뿐이지 근본적으론 다를 것도 없어. 제대로 가르쳐놓지 않으면 숨쉴 때마다 사고치는 해충들일 뿐이라고.'

'데......'

'말이 너무 심했냐?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조금 풀어주고 약 좀 팔았다고 도로 똥벌레로 화하는 저 밖에 것들 보면 견적 나오잖아.'

'슬프지만 할 수 없는데스. 와타시타치는 그런 데스.'

좀 서글픈 표정으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넌 좀 다르더라. 처음엔 비슷했지만, 어느 샌가 모르게 자신만의 목표와 세레브를 쌓아가고 있었지. 상황이 변하고 저것들 눈에 네 세레브는 더 이상 뭐도 아닌 게 되었는데도 비관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고 말이야.'

가영씨 역시 이제는 99번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있었다. 그녀 역시도 사흘 전을 계기로 녀석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마담의 제안에도 동의할 수 있었을거다.

'이 일 하면서 너 같은 실장석을 처음 본 건 아냐. 그래서 깨달을 수 있었어. 니가 적어도 분충은 아니라는 거.'

'칭찬인 데스? 감사하는 데스.'

'그래 칭찬이야. 그러니까 그 눈 빨랑 원상복구해라? 립톤이랑 1대1 상담하기 전에.'

'데겍...'

옆에서 실장채를 손에 탁탁 두드리는 립톤을 보자마자 잠시 초승달 모양을 짓던 녀석의 눈이 재빨리 둥그렇게 되돌아간다.

'됬네, 좋아. 그렇게 마음먹은 이유가 뭐야? 한번 들어도 되겠어?'

'조금 긴 데스요. 다 말해도 되겠는 데스카?'

'시간 많아. 천천히 말해.'

잠시 뜸을 들이던 녀석의 언청이 입이 서서히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진솔하게 이어가는 그 말에 거짓은 담겨 있지 않아보였다.

'데... 처음에는 브리더상 말씀대로 운동을 하면 세레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던 데스. 그런데 밤씨가 지나면 지날수록 뭔가가 달라진 데스.'

도중에 이제 알통도 제법 박힌 자기 팔을 쳐다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물이었고, 결국은 그 보상이 자신과 친구들의 목숨을 구해내게 된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살찌고 물렁했던 몸씨가 튼튼하고 날렵해지는 게 좋아진 데스. 공원에서 마라가 덤벼도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게 좋아진 데스. 와타시가 점점 더 무거운 걸 들어내고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어지고 덕분에 관장사마께 칭찬받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져버린 데스웅.'

가영씨가 씩 웃으며 답한다.

'그게 성취감이라는 거야.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찾는 똥벌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깨닫는 거지.'

'그 성취감이라는 걸 와타시 실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데스. 브리더상과 관장사마가 아니었으면 와타시가 언제 이런 행복을 누려보는 데스카? 와타시는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행복한 데스. 자를 가져도 이렇게 행복하진 못할 것인 데스. 정말 감사드리는 데스우.'

그래, 행복. 자신 스스로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뤄내며 얻어내는 행복. 가영씨가 사육실장들을 가르칠 때 제일 중요시하며 가르치는 교훈이었다지만, 그 지극히 당연한 행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누릴 줄 아는 녀석들은 몇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이 앞의 99번은 특별한 가르침 없이도 그걸 이해하고 있었고, 그게 저 진성 학대파 짱가의 마음을 움직인 비결일 것이다.

'지금 그 수준에서 멈출 생각은 아니겠지. 50kg은 넘길 수 있겠어?'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꼭 해보는 데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마담 오바상과 관장사마가 가르치신 데스. 노력하고 노력해서 반드시 이뤄내는 데스네.'

'좋아, 잘해보셔. 똥벌레 지랄하는 건 조금만 참고 지내봐. 조만간 영영 치워드릴 테니깐.'

'따지고 보면 참 불쌍한 동족씨인 데스.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고, 다른 동족씨들이 떠받들어 주는 데스. 원하는 온갖 것은 다 누리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와타시타치를 질투하는 데스우...'

틈만 나면 괴롭히는 13번이 미울 법도 한데 오히려 녀석은 놈을 동정하고 있었다. 마담이 자기에게 열폭하는 분충들에게 느낄 심정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가영씨야 그것들 떨굴 생각에 신나있다만.

'불쌍하긴, 여기 있는 동안 세레브도 챙겨보고 탈독라도 해보고 우마우마도 실컷 쳐먹었잖아? 행복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그게 실장석다운 거지. 아, 이제 곧 즐길 시간이 오시겠어~ 그동안 기껏 올려놓은 세레브 탑 무너뜨릴 때 똥벌레들이 어떻게 멘붕하실까?'

'데, 데... 브리더상 무서운 데스요...'



남은 나흘 동안 13번과 교육생들의 괴롭힘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더욱 악랄해졌다. 퍽퍽한 단백질 식단을 씹어삼키는 99번 일행 앞에서 대놓고 기름기 넘치는 우마우마 만찬을 포식해대며 조롱하기 일쑤였다.

'데프프 데챱데챱~ 오마에! 이리 와서 좀 드는 데스요. 군밤이랑 버섯튀김이 아주 맛깔나는 데스네.'

'맛도 모르는 똥벌레들인 데퍄퍄! 보스상 굳이 부를 필요 없는 데스. 와타시타치나 실컷 즐겨주는 데스웅~'

그래, 아주 먹기 좋게 살이 올라가는구나? 그동안 해온 운동 가락과 격렬한 실장태보 덕에 쉽게 비곗덩어리로 돌아가진 않고 있지만, 굽고 튀겨서 칼로리를 더한 산실장 식단 급여 덕에 근육 위를 지방층이 적절히 덮으며 고기로 쓰기 최상의 상태로 변해가는 몸뚱이다.

'데에...'

여전히 근육질 몸씨를 자랑하는 99번과 동료들은 그 먹성 좋은 실장석답잖게 먹방 찍느라 바쁜 분충들을 놔두고 오늘의 점심을 어떻게 씹어삼켜야 할 지 고민하는 중이다. 사람도 질리는 보디빌더용 식단을 3주째 먹고 있으니 영 고역인 것이다.

'이렇게 먹으면 먹을 만해. 마늘즙이랑 후추를 좀 쳐줄테니 한번 참고 먹어봐라. 정 먹기 힘들면 갈아줄게.'

'데에, 이러니 좀 먹을만한 데스우.'

그래도 녀석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건 옆에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정 관장의 존재였다. 처음엔 그렇게 실장석이 싫다고 하더니, 여기서 봐온 대로 저 아저씨 애호파 맞긴 한가보다. 좋은 쪽으로.

음식 고문 다음에는 눈갱 공격. 끙끙거리며 중량 운동을 하는 녀석들 앞에서 팬티까지 벗어재끼고는 돼지 멱따는 목소리로 고성방가를 부르고 총구댄스를 추어대며 운동에 집중하는 걸 방해놓는다.

'뎃데로게! 뎃데로세에-엑!!! 똥벌레들은 와타시타치의 세레브 앞에 무릎꿇는 데스요~ 닌겐상도 메로메로되는 마성의 매력에 빠져보는 데스웅~'

메로메로는 개뿔이! 살색 덩어리들이 총구를 과시하는 꼬라지는 나나 관장 아저씨나 조수들이나 덤벨을 꼬나쥐고 돌진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제지하는 가영씨 때문에 그럴수가 없었다.

'아오, 저것들을 확 그냥!'

'이틀 남았어요. 족발은 건져야 하잖아요?'

'데샤아악! 오마에타치 시끄러운 데스. 제발 운동 좀 하게 곱게 내비두면 안되는 데스카?'

참다 못한 한 마리가 목청을 높여 항의하지만 돌아오는 건 분충성 넘치는 적반하장뿐이다.

'똥오마에 말이 지나친 데샤! 와타시타치도 운동 좀 하는 중이지 않는 데스, 무슨 문제데스까? 데퍄퍄퍄!'

그 꼬라지를 가만히 보고 있던 립톤이 기가 막히는 듯 주인 따라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다음 눈에 살기를 가득 담는다. 분충들 짓거리를 며칠 내내 참아온 거다.

'주인사마, 저 똥벌레는 족발 삶는 날 와타시가 직접 떠버리면 안 되는 다와? 정말 매를 버는 분충인 다와.'

'13번 족발은 너가 자르게 해줄게. 깔끔히만 뜯어내라?'

'맡겨만 주시는 다와.'

여기서 하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하얀 이를 반짝이며 웃는 립톤을 본 춤추던 똥벌레들이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일제히 굳어서 벌벌벌 떤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저쪽들은 쿨하게 운동이나 계속 하실 뿐이다.

시간은 시나브로 흘러서 마침내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열두 시가 넘어서 정 관장도 자러 들어가고, 체육관에 아직 불이 켜진 곳이라곤 구르메에 보낼 헬스실장 트레이닝 루틴과 동료 브리더에게 보낼 진짜 헬스실장들의 자료 파일과 교육 자료를 정리하느라 밤을 세우는 가영씨의 방뿐이었다.

'데그그극... 데끄윽!'

그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에 의지해서 99번이 마지막 3대 50에 전념하고 있었다. 49kg... 어제 녀석이 달성한 무게다. 1kg 늘리고 한 세트씩 다 마치면 목표인 1대 50이 완성되는 것인데, 쉽지가 않아 보였지만 용쾌도 여기까지 왔다.

'99번상, 이제 1킬로그램씨 남은 데스. 조금만 힘 좀 내보는 데스!'

몇 안되는 동족씨들은 친구 35번을 빼면 모두 자러 들어갔고, 옆에서 봐 줄 닌겐상들도 하나 없는데도 혼자만의 싸움을 해나가는 그 모습에선 어느새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이제 35번도 구석에서 끄덕끄덕 졸고 있다. 덤벨에 무게를 더 얹고 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이제 마지막 한 번만 더...

'...데그그그그그... 데샤아아!'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마침내 마지막 데드리프트를 해낸 99번이 덤벨을 힘차게 내던지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드러누웠다. 숨을 몰아쉬는 사이 놀라 깬 35번이 자기 친구를 부르며 두 눈을 끔벅인다.

'데갹?! 99번상? 설마 해낸 데스카?'

녀석은 답이 없다. 그저 바닥에서 씩씩 숨을 몰아쉬면서도 만족감에 차서 한바탕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데퍄퍄, 데퍄퍄퍄퍄퍄!'

'데데! 해낸 데스! 축하하는 데스웅!'

실장석 웃음소리가 뭐 그리 듣기 좋겠냐만은, 그간의 노고를 보답받고 순수한 기쁨과 만족감에 찬 99번 교육생의 쾌활한 웃음소리는 학대파가 된 내 입가에도 미소를 번지게 만든다.

웃음소리를 듣고 나온 가영씨도 99번을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밑바닥 식실장으로 시작해 온갖 어려움을 다 넘겨내고 자기 운명을 바꿔 실장승리를 해낸 녀석이다. 묻지마 학살파나 어지간한 또라이가 아닌 이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실장석한테 행복이란 게 어울리기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 녀석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이제 인정해야 할까봐요.'

'관장님이 보시면 참 좋아하실텐데. 어이쿠, 말이 씨가 되었네요?'

이런, 안 자고 있던 사람이 우리 둘뿐은 아니었나보다. 어느새 사무실에서 뛰쳐나온 정 관장이 장본인만큼이나 기뻐해주며 99번을 번쩍 안아올리고 있다.

'잘했다 욘석아! 그래, 너야말로 진정한 헬스실장이야!'

'데퍄퍄퍄퍄퍄퍄퍄!'



[헬스실장 프로젝트 종료일, 12:02PM, 헬스클럽 '벌크 앤 짓소']



'자, 102번 교육생? 너가... 마지막이네. 온전한 참피로 돌아온 거... 축하드린다야.'

'데에에! 이제 독라는 영영 사요나라데스네! 세레브한 나날이 시작되는 데프프프!'

'자, 너가 마지막이지? 그럼... 어서 구르메로 가자! 헥헥... VIP 모실 준비해야지.'

'데프프 벌써 VIP 대접인 데스카? 그간의 정을 보아 특별히 가주는 데스웅.

전날부터 시작해 거의 이틀을 서류 작성하느라 새다시피 한 가영씨가 반쯤 시체가 된 몰골인데 반해서 3주간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마지막 실장복인 앞치마까지 받고 온전한 실장석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교육생들은 전에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자신감이 늘다 못해 분충 특유의 근자감마저 대놓고 비치는 중이니까.

'데프프 세레브에 실장복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제 마리닌겐 메로메로도 금방인 데스우.'

'온 우주에 빛나는 세레브데스. 이제 그 덩치만 큰 똥벌레도 와타시의 세레브엔 그림자도 못 미치는 데스.'

아주 오를 대로 오르셨구만? 속성교육의 부작용과 분충화 유도가 합치니 풀죽었던 식실장 시절과는 영 딴판인 분충들이 되셨다.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는 모습이 저런 건지 원...

'빨강 똥벌레! 근육노예! 그 동안 작작 까불어제끼니 오마에타치가 세레브라도 된 줄 안 데스카? 여기 진정한 세레브가 납셨으니 얌전히 찌그러지는 데퍄퍄퍄!'

'다후후, 그래 오마에가 세상에서 제일 잘나신 다와.'

'뭐 이제 와타시가 오마에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은 데스. 가시는 길 편안히 가시는 데스요.'

'지금 쪼개는 데스카? 꼴도 보기 싫으니 이 음식쓰레기나 바치던 운치소굴에 평생 박혀사는 데샤아!'

특히 저 13번 녀석, 세상 다 가진 양 으시대는 게 그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꼴이다. 지금도 한껏 기세가 올라서는 립톤과 99번을 세트로 몰아까고 있는데, 저 둘은 물론이고 마담이 이 꼬라지를 봤어도 비웃음을 참을지는 잘 모르겠다.

뭐 좋다. 그 동안은 실장석이 행복하신 시간이었지, 이젠 닌겐상이 행복해질 시간이다. 자기들이 맞을 꼴은 짐작도 못한 채로 99번과 에이스들을 뺀 90여 마리의 똥벌레들이 차에 실려 구르메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찾은 브리더룸을 둘러보는 교육생들의 기분은 그야말로 금의환향한 듯 한껏 올라버렸다. 옷을 받고 난 그 짧은 사이 어찌나 분충화가 심해졌는지 조수실석들이 무기를 들이대며 위협에 나서서야 가까스로 학대방 쪽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데프프 고귀하신 와타시가 자수성가해서 이 운치굴에 돌아온 데스.'

'똥마마가 식실장으로 낳았지만 온 세상씨가 다 부러워할 세레브 실장이 되어서 돌아온 데스요. 미천한 출산석 따위는 아마 슬픈 일을 당하는 그날까지도 와타시의 출세를 모르고 공장에서 썩다 갈 것인 데스웅.'

'이제 고생은 다 끝난 데스, 우아한 세레브 실생의 막이 열린 데퍄퍄퍄!'

'아오 얼른 들어가라 좀!'

'좀 조용히 하고 들어나가라에요!'

겨우겨우 학대방으로 몰아넣고 마담과 주방 팀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제 슬슬 족발 다듬을 시간이 되어가나 보다.

'자자, 어서 여기들 모이시고? 접대에 앞서서 준비 절차는 갖추셔야지?'

'데에... 이 방은 왜 이리 오싹한 데스카? 뭐 좋은 데스, 대접이 시원찮으면 똥노예는 모가지인 데샥!'

멍청한 것들. 사육이나 들이면 이쯤 되면 슬슬 의심부터 하려 들건데, 근본이 식실장들이라 속기도 잘 속는다. 한데 뭉친 녹색 덩어리들을 향해 가영씨와 함께 준비해 온 시비레 스프레이를 조준하고 방 안이 매케한 시비레 연기로 가득 차도록 퍼부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

'데겍! 왜 몸이 안 움직이는 데스카?'

몸이 마비된 채로 눈만 뒤룩뒤룩 굴리는 분충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에는 최철웅 실장과 석기 군, 준혁이가 잘 드는 도축칼을 들고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몸이 마비되었는데도 정신들 못 차리고 매춘을 하려 안달들 나셨다.

'데프프 똥벌레가 마라닌겐을 셋이나 데려온 데스요. 구속 플레이였던 데스카?'

'어서 와타시타치에게 VIP 대접이나 준비하는 데샥!'

막이 올랐다. 가영씨가 학대파 본색을 드러내며 얼굴에 비웃음을 가득 담는다. 그 골수 학대파 짱가가 여태껏 잘도 참아왔다.

'VIP? 그래, 구르메에 VIP가 오실 거긴 하지. 근데 니들이 아니라 닌겐상 VIP가 오실 거지 뭐람?'

'덱? 그럼 와타시타치는 뭐인 데스카? 꾸물거리지 말고 냉큼 털어놓는 데갸악!'

'뭐긴 뭐겠어, 요리 재료지! 여러분, 족발감들 세팅 다 끝났습니다요!'

준혁이가 마비된 식실장들을 보며 이죽거린다. 성격 좋고 무던한 애지만 그건 어디나 닌겐상 한정이다.

'브리더님이 제대로 키워놓으셨네요. 헤헤 멍청이들, 헬스하면 세레브해진다고 얼마나 좋아서 했을까?'

석기 군도 매한가지, 학대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실장 앞에서 칼 빼는 거 망설일 사람은 더욱 아니다.

'족발로 쓰기 딱 좋겠군요. 어지간한 돼지들도 이것들 보면 백기 들고 드러눕겠습니다.'

최 실장이야 뭐... 참피들 썰어오길 15년은 족히 넘게 해온 사람이다. 눈이나 깜박할까?

'살이 잘 올랐군. 마담, 시작하시지요.'

'데갸아! 똥닌겐, 이게 무슨 소리인 데스카? 와타시를, 와타시타치를 세레브 실장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은 데스카!!!'

한 녀석이 겁먹어 발악하지만 눈썹 하나 깜박안한다.

'만들어 줘? 하기사 똥벌레들이 처음 한 말 기억이나 제대로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말은 신랄하게 비꼬는 말투지만, 얼굴은 터지는 웃음기를 참지 못하고 점점 비틀리고 있다.

'다시 말해줄까? 그건 너네 스스로한테 달린 거라고 했잖아. 아가씨가 말한 것 중에 뭐 하나 지킨 것도 없는 것들이 어디서 세레브를 논하셔? 니넨 그냥 족발이야!'

'데...데데...에? 똥벌레가 뭐라고 했던 데스가...'

꼭대기에 오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 듯 분충들이 일제히 마담에게 처음 들은 말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느린 머리 회전이 끝나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마담과 가영씨 손바닥 안에서 철저히 놀아난 것이란 걸 깨닫자 90여마리 똥벌레가 일제히 분노어린 절규를 토해낸다.

'똥닌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엔!!!!!!!!!!!!!'

나락으로 떨어지는 식실장들의 절규를 들은 가영씨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자지러져라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아까의 비실비실 모드와는 180도 다른 모습, 저 여자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깔깔깔깔깔깔깔깔!!! 아 내가 이래서 학대를 못 끊는다니까? 그간 공짜 밥 쳐먹고 공짜 운동도 하고 발모제에 실장복에 온통 닌겐상 돈으로 세레브 타령했었지? 이제 월말정산 시간들이야 똥벌레!'

그 웃음소리를 신호탄으로 주방 팀이 행동에 나선다. 머리를 뽑고, 옷과 팬티를 벗기고, 파킨도 못하도록 위석 강화제를 주입한다.

'똥닌겐!!!! 죽여버리는 데샤아!!! 와타시의 머리씨에, 실장복에 손가락 하나 못 대는 데샤아아아아!!!'

'와타시가 어떻게 받은 세레브데스! 이렇게 똥닌겐한테 뺏길 수는 없는 데샤아아!!!'

'죽여주는 데스, 와타시의 핵펀치로 머리통을 뽀개고 운치굴 독라달마로 만들어주는 데스아아! 아니 그것도 모자란 데스! 파킨하기 직전까지 뜯어먹고 또 뜯어먹어주는 데샤아아아아!!!!'

울고불고 욕하고 반항하고 화내고 떼쓰고, 아무리 발악해보아도 굳은 몸씨는 움직이지 않는다. 숙련된 실장요리사 넷에 학대파 둘까지 가세하니 독라행은 순식간에 끝났다. 운치 대신 뀌어대는 텅 빈 방귀소리와 모든 걸 잃고 도로 독라로 되돌아간 서러운 울음소리가 학대방을 가득 채우며 울리고 있다.

'오로롱!!! 도로 독라인 데스! 와타시한테 왜 이러는 데스카 똥닌겐!!!!!!'

'그거야 내가 즐기려고 그랬지! 니네들 똥세레브 운치탑 쌓아주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니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게 다 내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내가 내 독라노예들 올렸다 떨구는 게 잘못된 거니? 응? 깔깔깔깔깔깔!!'

'닥치는 데샤아아- 으읍! 읍읍읍!'

'식당까지 울리겠어요. 어서 활성제도 물려놓죠.'

마담의 지휘하에 팀이 둘로 나뉜다. 도로 독라로 돌아온 헬스 식실장들을 하나씩 팔다리의 재생을 도울 활성제와 영양제 혼합앰플을 입에 끼우고 락앤락에 담아 구멍 뚫은 뚜껑을 닫아놓고, 다른 팀은 13번을 포함한 분충기가 가장 심했던 똥벌레들을 10여 마리 가량 선별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구르메를 방문해 여사장님의 솜씨와 헬스실장 족발세트의 맛을 평가하실 족발집 단골 손님들을 위한 접대용 실장족을 채취하려는 것이다.

'데그그그그으! 퉤엣! 퉤엣!'

13번, 어찌나 증오가 심한지 시커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길 향해 히죽히죽 웃는 가영씨를 향해 닿지도 못할 침을 뱉으며 노려보고 있다. 물론 그걸 가만 냅두고 있으면 학대파가 아니지.

'립톤! 니 포상 시간이야. 깔끔하게 잘라라?'

'다후후후후후... 와타시 상받는 시간 다햣-햐!!!'

머큐리에게 식칼을 넘겨받은 립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왼팔 어깨관절부터 찔어넣는다. 뼈 꺾이는 소리와 함께 13번의 살 째지는 비명소리가 방 안 사람들의 귀를 날카롭게 찔러댄다.

'데햐아아아아아아아아!!! 어떻게 만든 섬섬옥수인 데스캬아아아! 건드리지 마는 뎃샤아!!!!'

'오마에 제일 놀아재낀 멸치벌레치곤 육질이 제법 좋은다와? 써는 맛이 끝내준다햐햐햐햐햐!!!'

한 팔 뽑아내고, 다른 팔과 양 다리도 차례대로 잘라내고 뽑아낸다. 자기들 보스의 울부짖는 괴성에 선별되어 나란히 누워있는 분충들이 다시 한 번 일제히 방귀를 뀌어댄다.

모두 잘라내고, 마담이 13번을 락앤락에 막 넣으려던 참이다. 립톤이 이제는 제 주인만큼이나 사악해진 눈빛을 보이며, 머리좋은 실홍석답게 의표를 찌른다.

'주인사마, 마담 오바상. 어차피 저 똥벌레 면상은 안 먹는 거 아닌다와?'

'뭐 그렇지. 아하, 우리 싸구려챠가 응용 코스를 한번 해보시겠다? 좋아. 몸뚱이는 건드리지 마?'

허락이 떨어졌다. 게거품을 물며 바들거리는 13번을 향해 립톤이 잠시 눈을 마주보고, 잠깐이지만 예전 안젤리카가 떠오르는 한 마디를 남긴다.

'오마에가 처음 나댈 때부터 이렇게 해주기로 다짐했던 다와. 오마에는 그 재수없는 눈깔이 제대로 마음에 안 들었다우와아아악!!!'

[푸욱, 쑤욱]

'히갸아아아아아아아아'

흉폭한 포효성과 함께 13번의 적록색 두 눈알이 뽑혔고, 똥벌레가 또 한 번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다. 나머지 족발감들도 주방 팀 손에 차례차례 팔다리가 잘렸고, 수육과 육수용으로 고기가 뜯기고 뼈까지 뽑힌 다음 걸레짝이 되어 락앤락에 넣어졌다. 일곱여덣번 정도 리필이 가능하고 다음 조가 올 때까지 한 달은 족히 걸릴 것이니, 그 한 달 동안 차라리 죽여주는 게 나을 지옥같은 실생이 녀석들을 기다릴 것이다.

'다아앙, 와타시가 이상해도 제대로 이상해져버린 다와... 이제 세레브는 영영 멀어버린 다우와앙~'

그새 내숭을 떠는 립톤이다. 나미가 한 마디 남긴다.'

'싸구려챠, 이제와서 수습은 다메인 거에요.'



[당일 저녁, 05:40PM, '마담 구르메' VIP룸]



그간 고생한 게 브리딩 팀만은 아니긴 했다. 여사장님께서 근 3주간 마담과 엄미애 차장님과 해온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던 듯 족발집 단골 고객 세 분 앞에 흐드러지게 차려진 헬스실장 왕족발과 식실장 족편, 몸통살을 삶아낸 보쌈 수육과 석기 군이 솜씨를 부린 쟁반국수 모두 내놓기 무섭게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오오! 싸장님, 육질은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특히 요 껍질이랑 비계, 집에 있는 마누라 피부보다도 더 탱글거립니다그려?'

'족편이랑 보쌈이랑 국수도 맛있어요. 하지만 족발이 진국인 것 같아요! 씹을 땐 쫄깃쫄깃! 녹을 땐 사르르르! 비결이 뭐에요?'

'아아, 죄송해요. 당장은 비밀이에요.'

아저씨와 아줌마 칭찬에 답하는 여사장님, 늘 말하지만 실장석만 오르는 게 아니다. 걱정하던 족발 공급이 무사히 잘 된데다 단골 손님들 칭찬까지 들으니 기분이 무척 좋아보인다.

짓소산 소스가 들어간 새콤한 쟁반 막국수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여태 조용히 계시다 마침내 입을 연다. 전 사장님이 처음 실장족발집을 열 적부터 꾸준히 찾던 오래된 손님이다.

'흘흘흘, 이제 할멈도 안심하고 북망산길 잘 찾아가시겠구먼. 사장님 족발맛이 이렇게 좋으니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겠어.'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감동해 훌쩍이신다. 그새 미니족 하나를 집어 껍질을 이로 훑던 어르신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허허! 이 늙은이가 한 게 무어 있다고 그러시나. 여기 마담과 요리사분들께 감사해야지. 안 그렇소?'

마담도 이제 안심한 기색이다. 손님들도 사장님도 더없이 만족하시는 분위기다.

'사장님께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저희는 그저 재료를 제공하고 조리를 도와드렸을 뿐이에요.'

'허허, 젊은 처자가 겸손도 하시구랴.'

잠시 웃던 어르신이 다시 리필된 족발 세트 접시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쪽들을 보면서 한 말씀 하신다.

'거 실례만 안 된다면 약주 한 잔 해도 되겠소? 그리고 고생하신 분들도 같이 좀 드시구려. 이거 이렇게 맛난 것들을 우리끼리만 먹으니 영 미안해지는구먼.'

'어르신 말씀이 맞네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먹어요!'

합석하자는 분위기인데? 사장님이 마담 쪽을 돌아본다.

'저... 마담, 괜찮으시겠어요?'

'한 두잔 정도는 괜찮습니다. 합석시켜 주셔서 감사드려요.'

정중히 받아들인 마담이 VIP룸에 있던 차장님과 최 실장, 내게도 합석을 권유했다. 업무 때문에 맛만 좀 보고 말았지만, 쫄깃하고 탱글거리는 껍질 속 비계와 양념 밴 고깃덩이, 우지젓 한번 살짝 찍어 소주와 곁들이니 3주간의 고생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3일 후, 10:00AM, 헬스클럽 '벌크 앤 짓소']



집에 돌아간 가영씨는 그 날 후로 하루를 꼬박 잤다고 했다. 3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가영씨의 친구에게 99번을 뺀 나머지를 데려가기 위해 정 관장의 헬스클럽에 들렀다. 아직 그쪽은 기쁜 소식을 모르는 참이었기에 이미 보낼 준비를 다 마쳐둔 후였다.

'그래, 그동안 수고들 많았어. 헤어지긴 싫지만 너희들도 열심히 배워야 좋은 사육이 되지.'

'데에에! 관장사마랑 떨어지기 싫은 데스웅...'

'녀석들 하고는... 가끔 찾아갈테니 말썽피우지 말고 잘들 지내거라?'

이미 관장 아저씨가 녀석들을 보는 눈은 사육이라기보단 제자를 보는 눈에 가까웠다. 폐업날만 기다리던 체육관에 헬스실장 육성 사업으로 재기의 기회를 안겨주고, 어느새 너튜브와 데스넷에 소문이 꽤 퍼져 헬스실장을 주문하는 애호파 손님들의 요청이 빗발치는 상황이니 복덩이도 보통 복덩이가 아닌 것이다.

'데에 관장사마, 몸 건강히 지네시는 데에엥...'

35번이 훌쩍이며 정 관장에게 인사한다. 모두들 나미의 뒤를 따라 체육관을 떠나지만 99번만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응? 99번, 너는 왜 안 가니?'

'브리더상, 이제 말씀해 주시는 데스웅.'

'관장님.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마담께서 부탁을 받아 주셨어요. 이제 이 녀석이 관장님 조수에요!'

'가영아! 고맙다! 흑흑흑흑...'

정말 떨어지기 싫긴 했구나. 근육빵빵 아저씨가 눈물까지 다 보이고.

'35번도 교육 잘 마치면 같이 도울 거에요. 이 녀석 혼자 두면 심심하잖아요?'

'그래, 정말 고맙다야...'

이제 99번을 보는 가영씨의 눈은 나미나 뺑덕이를 보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근감과 따스함이 담긴 눈빛이다.

'1대 50 달성 축하해. 다음은 1대 100인가?'

'아쉽지만 와타시타치 실장들한테는 1대 80정도가 한계라고 들은 데스. 그래도 그 때까진 열심히 해보는 데스우 브리더상.'

잠시 그녀의 표정에 진지함이 어린다.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사실 오를까봐 이 말은 안 하려고 했지. 하지만 지금 널 보니 해야겠어.'

'무슨 말인 데스카?'

'너도 아가씨 봐서 알 텐데? 너희한테는 그 너머가 있다는 거 말이야.'

'데에... 그 전설의 실장인 말인 데스가...'

'그래, 실석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로 가는 거지. 그럼 너가 하고 싶은 만큼 운동도 더 잘할 수 있겠고, 아마도?'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적록색 눈으로 가영씨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는 데스우. 와타시는... 그저 관장사마가 가르치시는 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인 데스.'

'훗, 그래. 내가 헛바람 넣은 거 아닌가 몰라.'

가영씨가 슬쩍 웃는 사이, 어느새 돌아온 나미가 제 주인을 부른다.

'주인사마, 다 태우고 온 거에요.'

'그래, 혜정이 기다리게 하면 다메지. 안 그래도 바쁜 애인데. 관장님? 99번? 저 그만 가볼게요. 다음에 뵈요!'

'살펴 가시는 데스요.'

'그래 가영아, 대리님! 다음에들 보자! 이제 너랑 네 친구 이름 지어주는 게 문제구나. 어느 이름이 좋을까나...'

99번의 손을 잡고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관장님의 발걸음이 가볍다. 앞으로 많이 바쁠 둘일 거고,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게 잘 되어 기분이 좋았지만, 나머지 녀석들을 데리고 가영씨의 친구에게 가기 전에 나미가 조용히 뇌까린 한 마디가 살짝 꺼림직했다.

'역겨워에요. 그래봤자 똥벌레인 거에요...'



99번이 실장인이 될 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번 2부 후반부 주요 인물 중 하나가 실홍인이라 실석인을 자꾸 등장시키기 애매하거든요. 1부를 꾸준히 읽으셨다면 한 번 보았을 겁니다.

다음은 잠시 메인 스토리로, 장도치의 생일을 맞아 한국식 중화실장요리를 예전 운치스크에 등장했던 단골집 마초반점에서 열어볼까 합니다... 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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