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편 실장석 참피 소설 어느 날 찾아오는 일상 이야기2 2편 두 번째 장

 

 -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저긴가 본데.”

 가을 낙엽이 떨어진 광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목적지를 확인하는 윤형과 달리 유시는 연신 핸드폰으로 각도를 달리하며 주변의 풍경을 찍기 바빴다.

 “자자, 그쯤 하고... 슬슬 들어가자. 오늘 일 바뻐.”

 유시는 윤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약간 아쉬운 듯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깐 일이 일찍 끝나면 주변에 좀 드라이브 하자. 물론 빠르게 끝내야만 가능하겠지?”

 마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뜬 것 마냥 유시는 차에서 꺼낸 장갑을 재빠르게 손에 끼웠다. 푸른색의 청바지와 검은색 항공 점퍼, 그리고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는 포니테일처럼 올려져있다. 윤형의 옷도 마찬가지로 푸른색 청바지와 검은색 점퍼, 그리고 장갑이 전부다. 가을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곤 있지만 아직 여름의 날씨가 체 가지 않은 산뜻한 날씨다. 그랬기에 야외에서든 실내에서든 무슨 일을 하기에는 꽤나 적합한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여름날 더위에 지쳐 옷을 아무리 얇게 입어도 효율이 안 나오는 상황이나 겨울날 옷을 두껍게 입어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면 서서히 짓누르는 옷과 피로감의 무게가 은근 압박되는 상황은 없으니 말이다. 적당한 바지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의 정도면 충분히 편한 복장이다.

 장장 40분 거리. 도심 지역을 벗어나서 한참을 국도로 달려왔다. 익숙한 길이 아니었던 탓에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느라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도심권을 지나 국도로 벗어나기만 해도 꽤나 풍경이 달라진다. 어느 국가를 가던 그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문득 드는 굳이 먼 시골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근처 땅을 사서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은 꽤나 허황된 것일 것이다. 그랬기에 아주 잠깐 생각해본 부동산 문외한의 한심한 생각이다. 윤형은 그리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높은 건물들을 지나 점점 층수가 낮은 건물들을 지난다. 단독 주택처럼 지어진 마을을 지나나 도착한 곳은 꽤나 한적하다 못해 꽤나 고요한 곳이었다. 주변에 컨테이너 창고나 물류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들이 몇 개 보였다. 주로 주변에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농기구와 같은 다양한 물품을 파는 곳과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지어진 몇 개 식당. 한적한 곳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주변의 물류창고처럼 최소 2층에서 3층으로 구분지어진 적당한 높이를 자랑했다. 큰 차량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창고 문과 주변에 쌓여져 있는 낙엽 무더기. 지금도 잘 관리되고 있는 외형을 보면 목적지가 분명 맞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은근히 풍겨오는 미세한 실장취까지.

 윤형은 핸드폰을 킨 후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두세 번 정도 전화음이 가더니 곧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도착하셨나요?”

 “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어디로 들어가면 되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 너머로 다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휴대폰을 켜놓고 유시와 같이 기다리고 있던 찰나, 바로 앞에 있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성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일을 부탁하신 윤형 씨 맞으시죠?”

 “네,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남성은 서둘러 윤형과 유시를 안내하며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마 다급히 일을 처리하던 도중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윤형과 유시는 천천히 남성을 따라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엔 수많은 물류들이 출고되기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쌓여있는 것을 막연히 생각했지만 의외로 마치 사무실과 같은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엿한 건물이 있는 사무실과는 분위기랑 비교하면 허름한 편이었지만 구색은 갖춘 것이 꽤나 공을 들인 구조다. 남성은 윤형과 유시를 사무실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소파로 안내한 후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구조가 꽤 제법 구색을 갖춘 곳이군요.”

 “하하, 많이 듣습니다. 외부보다는 내부에 좀 치중을 두었지요. ‘일’이 ‘일’인 만큼 트럭 정도 되는 차량이 들어와서 물건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차고를 제외하면 적어도 혼자서 근무하기엔 적합한 곳이지요. 가끔 아르바이트생도 쓰긴 하지만요.”

 “그러면 작업실은 이 위층......?”

 “네, 조금 있다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찍 도착했던 ‘물건’들은 미리 2층 작업실로 옮겨두었습니다. 정리는 못했지만요. 자자, 여기 커피 드세요.”

 “충분히 감사드립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윤형과 유시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평범한 믹스 커피지만 물 조절을 잘하는 것이 상당한 숙련가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단련된 스킬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인 만큼 영양제만큼이나 섭취하고 있는 일상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는 꽤나 바쁘게 일하고 있던 것인지 수염이 덜 정돈되어 있었다. 적당히 까무잡잡한 피부에 중간 중간 하얗게 세어버린 수염. 그리고 얼핏 보면 마른 체형으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팔뚝과 손에 박혀 있는 힘줄, 그리고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이 다부지다.

 “일정상 조금 일이 밀려 있던 탓에 좀 무리를 한 것도 있네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급하게 연락을 드려서 일정을 잡아서요.”

 “아뇨, 괜찮습니다. 다만 제가 혼자 일하다 보니깐 때때로 이렇게 되더라고요.”

 “고생하시는군요.”

 “뭐, 좋아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돈’이 되니깐 말이지요.”

 남자는 그리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피곤해 보여 하지만 적어도 활기는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 그러면 일단 선생님께서는 예정대로 ‘일’을 처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세한 부분은 조금 세팅해야 하지만 그 부분은 조금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우선 제가 부탁드린 것이기도 하니까요.”

 “뭐, 그래도 저도 부수입을 남길 수 있어서 좋지요. 마침 이러한 시스템은 저도 구상만 한 것이지 실제로 써보는 것은 처음이라 말이에요. 대부분 생각은 해도 실제로 시행으로 옮기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한 터라 쉽게 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사실 이 ‘일’이 이것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죠.”

 “뭐, 그 부분은 공감합니다. 저도 나름 프리랜서긴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생각하면 다양한 일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렇죠. 역시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잘 아시는 부분이죠. 그래서 다양한 활동으로 수익을 좀 창출하고 취미 겸 당당히 한 분야로 삼아 해보려고 하는 시도를 마침 선생님께서 딱 부탁해주시니 저도 흥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남자는 빠르게 커피잔을 비워나갔다. 일은 밀려있고 잡담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때에 맞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커피잔을 비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보니 개인적으로 원래 이런 것은 묻지 않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뭐 하나 여쭤봐도 될런지요.”

 “네.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남자와 윤형, 그리고 유시는 천천히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흠....... 보통 이런 일을 맡기시는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복수 차원에서 직관하시거나 영상을 찍어 보내드리는 분도 계시지만 대량의 실장석을 가지고 하는 것은 보통 개인적인 취미로 즐기지요. 어설프고 수가 작더라도 직접 하시는 방법도 있긴 하지요. 실험파나 관찰파들이 많이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 들실장들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뭔가요? 실험? 아니면 영상 투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2층 작업실에 도착했다. 작업실을 구분 짓기 위해 문을 달아놓은 것은 좋은 방법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윤형은 남자의 질문에 답을 말했다.

 “흠. 복수와 선별이겠군요.”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윤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멀리서 위문을 드리니 혹시 나중에 뵈면 전해주세요.”

 윤형은 고개를 끄덕거리곤 남자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남자는 자신작을 내놓는 예술가, 요리사 등. 그에 준하는 열정을 가진 자만이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윤형 또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 공간이었다. 누구나 상상하지만 실제로 이루기엔 너무나도 힘든 그것.

 “자,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영화에서 감명을 받아 만든 ‘생존 게임’! 실장 서바이벌 룸입니다.”

 

 

 #

 

 미도리는 천천히 문을 지나 네 번째 방을 향해 발을 옮겼다. 네 번째 방은 기존의 방들과는 매우 달랐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방까지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면 네 번째 공간은 중간을 기점으로 양 옆에 무언가 있었다. 하수구의 모양처럼 음푹 파여져 있는 굴과 같은 형태의 공간이 여러 있었다. 그리고 입구를 닫을 수 있는 은색의 문까지. 미도리는 천천히 다가가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소량의 물이나 음식물이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품었지만 역시나 였다.

 “데, 미도리 상! 뭐가 있는 데스?”

 “...아무 것도 없는 데스.”

 자신을 따라온 동료 실장석. 그리고 뒤이어 따라오는 실장석들도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며 굴처럼 생긴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미도리처럼 혹시나 하며 들여다본 것인지 원하는 것이 없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도리 상.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대충 알고 있는 데스?”

 중간 줄에 섞여 들어온 성체 실장석이 말을 걸었다. 두 번째 방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면식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그 실장석이었다.

 “...... 잘 모르는 데스.”

 “그런 데스......? 그럼 뭐라도 짚이는 것이 있는 데스?”

 “잘 모르는 데스.”

 미도리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만약 여기서 쉴 수 있다면 꽤나 무난한 공간이었다. 성체 두 마리 정도는 들어가도 충분히 여유 있는 공간이다. 자신과 장녀 정도라면 들어가서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만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든 미도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략 6개의 굴이 서로를 마주보고 가지런히 파여 있다. 구겨 넣는다고 해도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같이 잔다는 것은 상당한 도박이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다급한 상황 속에서 잠시 잊었던 허기가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바짝 타는 입술도 지금 수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11마리째의 실장석이 들어오자 자동으로 열려있던 문이 갑작스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실장석들은 일제히 닫힌 문을 향해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한 느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의 시작이다.

 “마라된 데스.......”

 

 - 자비심. 때로는 강자가 약자에게. 때로는 약자가 강자에게. 우위에 있든 없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말의 도덕심이지. 여기 남은 녀석들은 최소한 그 정도는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수가 굉장히 적어지기도 했고 패닉에 빠질 정도로 소란에 빠지는 정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불쾌하고 귀가 먹먹해질 듯한 소음은 나지 않았다. 바로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가 나오자 방 안에 있는 실장석 모두가 긴장하며 경청하기 시작했다. 정말 멍청하지 않고서야, 사실 멍청하다면 벌써 죽었겠지만. 어쨌든 그러지 않고서야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죽음만을 자초한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 그 정도의 자비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날’ 너희들이 ‘낙원’에 도착했을 때는 왜 그러지 않았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빼앗아 자신만이 잘 살고자 하는 욕심이었나. 이번에는 너희들의 그 욕심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욕심.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미도리의 뇌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날들의 기억.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욕망, 욕심, 욕구를 조절하지 못한 그것. 손에 꼭 품고 있는 장녀.

그리고 희미하게 지나가는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가 전한 ‘그 날’의 기억.

 

 - 시간은 단 30초만이 주어진다. 살고 싶다면 옆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 기왕이면 문까지 닫는 것이 신상에 좋겠지. 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이 작열의 고통이라고 했지. 그것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문을 잘 닫는 것이 중요할 거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저번처럼 가장 가운데 화면에 시간이 표시되었다. 점점 줄어들어가는 시간. 2분, 1분, 그리고 30초.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살아남은 실장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았다. 가장 먼저 피신처를 향하여 들어가는 것.

 “미도리 상! 어서 가는 데스으으으으!”

 옆에 붙어있던 동료 실장석이 미도리를 잡아끌었다.

 “데...데뎃!”

 “멍하니 있으면 뒤지는 데스! 어서 굴로 들어가야 하는 데스!”

 미도리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료 실장석처럼 주변의 실장석들이 쏜살 같이 굴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늦어지면 죽는다. 닥친 현실에 미도리 또한 현실로 돌아오며 정신을 차렸다.

 “멀리 가는 데스! 가장 떨어진 곳으로 가는 데스!”

 “알겠는 데스!”

 미도리와 동료, 그리고 장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피난처를 향해 달려갔다. 순간의 판단은 정말 탁월했다. 주변의 실장석들이 황급히 달려간 곳은 가장 본인과 가까운 피난처였다. 불행히도 같은 생각을 가진 주변의 동족들 또한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는 와타시가 들어갈 곳인 데스! 오마에 같은 약해 빠진 년은 얌전히 뒤지는 데샤아아아!”

 “오마에야말로 뒤지는 데스! 와타시는 꼭 살아서 남편상을 만나야 하는 데스으으읏!”

 조금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녀석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라는 의식은 온데간데없다.  ‘낙원’을 향해 같이 험난한 여정을 보냈던 것은 누구였던 것인가.

 “똥마마! 자인 와타시를 먼저 보내는 것이 마마의 도리 아닌 테스?!”

 “웃기는 소리 말라는 데스! 자는 언제든지 낳을 수 있는 데스! 와타시가 죽으면 세상의 끝인 데스! 장녀는 다른 곳으로 향해 가는 데스! 오마에가 집안의 보배라면 마마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데샤!”

 사실 양 옆의 피난처들은 그리 멀지 않았다. 열 발자국만 가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선택인 것이 바로 실장석들이다.

 “미도리 상, 먼저 들어가는 데스!”

 “...고마운 데스! 장녀 먼저 들어가는 데스! 그래야 들어가기 편한 데스!”

 “테..테......!”

 다행히 주변의 실장석들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싸우고 있는 형편이라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쇠약해져 있는 장녀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버텨온 불굴의 의지를 가진 녀석이다. 바로 미도리의 말을 듣고 최대한 낼 수 있는 속도로 피신처를 향해 들어간다. 미도리도 따라서 천천히 피신처로 깊숙이 들어갔다.

 “친구 상! 들어오는 데스!”

 “알겠는 데.......!”

 “거기는 와타시의 자리인 데스야아아아아!”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들어오는 순간 피를 흘리고 있는 한 마리의 실장석이 달려들었다. 바로 대응할 새도 없이 동료 실장석의 목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달려든 성체 실장석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급소를 물어뜯었다.

 “여기는 와타시의 것인 데스! 와타시는 끝까지 살아남아...데갹!”

 다급한 나머지 성체 실장석은 자신이 쓰러뜨린 상대가 완전하게 쓰러진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동료 실장석은 완전히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비록 목을 물어뜯기는 중상을 입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쓰러질만한 체력은 아니었다. 자신을 밀치고 피난처로 들어가려던 녀석의 목을 똑같이 물어뜯는다.

 “데그아아아아악! 오마에! 똥노예가 감히!!!!!”

 “은혜도 모르는 년인 데스으으으!”

 미도리는 쏜살 같이 달려 나가 성체 실장석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곧게 내질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로 주먹을 꽂아버리자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미도리는 상대를 바깥으로 밀쳐내고 목을 막고 있는 동료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 한바탕의 소동을 생각하면 간발의 차였을 수도 있다.

 “친구 상! 괜찮은 데스?”

 “데...데그으으윽.......! 미친 년인 데스! 분명 그 년은 와타시타치가 구해준 년인 데스! 어떻게 이런 짓을 하는 데스.......!”

 이마에 핏줄이 설 만큼 동료는 분노의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만큼 역류하는 피가 많아져 상처를 막은 손을 타고 바닥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하는 데스! 더 이상 말을 하지 마는 데스! 곧 나을 것인 데스.”

 “데...데헥.......데헤액.......”

 “마마....... 오바상이 괜찮은 테츄......?”

 “괜찮은 데스. 장녀는 안심하는 데스.”

 미도리는 장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차분히 진정을 꾀하며 말을 했다. 동료 또한 장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실장석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동료의 상처는 충분히 나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레탄 바디라 소문난 실장석의 몸도 사실 그것보다는 놀림 받는 강도에 비하면 더 튼튼하기도 하고 재생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가혹한 상황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동료뿐만 아니라 미도리를 포함하여 대부분 체력이 좋지 않았다. ‘낙원’을 향해 달려온 만큼 이미 소모할 체력은 대부분 소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던 것은 ‘낙원’에 도착했던 처음의 ‘그 날’ 덕분이었다.

 “조금만... 참는 데스! 거의 끝나갈 것인 데스. 오마에는 무조건 체력을 아껴두는 데스.”

 미도리는 장녀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조용한 목소리로 동료에게 속삭였다. 동료 또한 의지가 있는 실장석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동료를 보자 미도리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 웨애애애애앵-!

 

 “뎃?!”

 닫힌 문 너머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공원에 있을 적 들어본 소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 속에서 다른 동족들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공격도 받은 만큼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동족을 챙기는 것은 거의 무리수에 가까웠다. 그리고 결과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독한 비명소리. 그리고 무언가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 막을 수만 있다면 팔을 뻗어 귀를 필사적으로 막고 싶은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미도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동료의 피가 묻은 손으로 장녀의 귀를 온전히 가려주는 것만이 전부였다.

 마치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부터 이곳은 정말 지옥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그 날, ‘낙원’에 도착했던 그 날 결국 죽어버려서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적어도 장녀는 무슨 죄인가. 온갖 생각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데... 멈춘 데스?”

 비명이 멈추었다. 그리고 타들어가는 소리도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으로 사이렌이 멈추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쓰러진 동료가 내는 거친 숨소리뿐이다.

 “멈춘 것이 맞는 데스. 장녀, 그리고 친구 상! 이제 나가는 데스.”

 미도리는 장녀와 친구를 흔들며 말했다. 장녀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가파른 숨을 내쉬고 볼이 홀쭉할 정도로 먹은 것이 없어 기운을 차릴 수 없는 모양새더라도 아직 장녀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료 실장석도 마찬가지다. 피를 예상외로 많이 흘렸지만 적어도 실장석이라는 종족 자체가 그리 쉽게 죽지 않는 생명이다. 때때로 쉽게 죽는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이런 부상으로는 쉽게 죽지는 않는다. 긴 여정으로 인한 쇠약이 제일 문제지만 어차피 뒤처지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미도리는 장녀와 동료를 조금씩 부축하며 은색의 문을 열었다. 아주 조금 열렸을 뿐인데 뜨거운 바람이 피난처 안으로 들어왔다.

 “데액!”

 뜨거운 바람을 무릅쓰고 문을 열자 그곳은 정말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문 바로 아래엔 동료를 공격했던 실장석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었다. 온전했던 옷은 모조리 타버렸고 실장석들이 자랑하는 긴 머리 또한 온데간데없었다. 온몸에는 화상자국이 나있다. 물집이 잡히고 기포가 올라오며 우둘투둘한 모양새가 되어 꽤나 징그러운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바로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몸을 비트는 실장석의 모습은 너무나도 기괴하였다.

미도리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살아남지 못한 실장석들의 수가 여럿 되었다. 대부분 쓰러트린 실장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마리는 어떻게든 닫힌 문을 열어보겠다고 발버둥 쳤는디 그대로 매달려 있는 형태로 남아있었다. 그 녀석은 제대로 죽은 것인지 눌러 붙은 손과 축 늘어진 몸이 미동이 없다.

 “사...살은 테스!”

 “데히이... 와타시는 살아남은 데스.......!”

 미도리처럼 저마다 문을 열고 살아남은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세 마리. 미도리와 장녀를 포함해 6마리가 전부였다.

 “... 저년들을 보는 데스.”

 동료가 힘 빠진 목소리로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열려 있는 문 바로 앞에 두 마리의 실장석들이 뒤엉켜 사이좋게 불에 타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기심. 두 마리 모두 살 수 있었지만 결국 두 마리 모두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다음 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소리를 듣자 살아남은 실장석들이 천천히 죽어가는 실장석들을 피해 다음 방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와타시타치도 가는 데스!”

 미도리는 한 손에 장녀, 그리고 한 손으로 동료를 부축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오마에, 미도리.”

 익숙한 목소리다.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도리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마주했다. 분명 자신을 알고 있는 그 녀석이었다. 용케 살아남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처럼 멀리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숨어 들어가는 전략을 취했던 것인지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왜 그러는 데스?”

 “옆에 있는 동족은 버리는 것이 좋은 데스.”

 “......그런 소리는 듣지 않는 데스.”

 “와타시의 충고를 잘 듣는 데스. 결국 그 선택은 오마에를 죽음으로 이끌 뿐인 데스. 오마에의 장녀는 살려야 되지 않는 데스?”

 “와타시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 데스? 오마에와 무슨 상관인 데스?”

 “별 이유 없는 데스. 오마에는 ‘낙원’으로 떠나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데스. 자들을 데리고 이동한 데스. 그리고 예상대로 장녀를 빼곤 모조리 죽은 데스.”

 미도리는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들었다. 그것은 매우 불쾌하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오마에가 부축하는 저 년도 곧 그렇게 될 것인 데스. 와타시는 무조건 살아남아 ‘낙원’으로 떠날 것인 데스. 부디 오마에의 판단 때문에 와타시까지 위험해지는 일은 없는 것이 좋은 데스. 지켜볼 것인 데스.”

 그 실장석은 부축을 받고 있는 동료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다른 실장석들을 따라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데히... 미... 미도리 상. 와... 와타시는 살 수 있는 데스.”

 “...알고 있는 데스. 조용히 힘을 아껴두는 데스.”

 “약속...해주는 데스. 와타시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는... 데스.”

 “......약속하는 데스.”

 미도리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도리는 동료와 약속을 걸었다. 미도리의 약속을 받은 동료는 그제야 안심한 듯 편한 표정을 지으며 미도리의 부축을 받아 걸어 나갔다. 미도리는 옆의 장녀를 바라보았다. 숨은 쉬고 있지만 힘이 없다. 아주 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녀를 본 미도리는 입을 꾹 다물며 무언가를 다짐하였다.

 미도리를 바라보고 있는 장녀의 표정은 어딘가 한쪽 구석에 불안감을 감춰두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미세하였기에 그것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도리도, 동료도. 그리고 뚜렷하지 않은 정신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는 장녀까지도.

 

 그곳은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아무것도 없다. 이전의 방처럼 피난처가 있는 기묘한 방의 형태도 아니었고 어딘가 가로막혀 있는 곳도 아니었다. 마치 처음에 깨어났던 방처럼 그 무엇도 건질 것이 없는 무의미한 공간으로 보였다.

 “저건 뭐인 데스?”

 그 실장석이 말했다. 가리킨 곳을 향해 살아남은 실장석들이 일제히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으로 얼핏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방 한가운데 무언가 놓여 있었다. 모든 실장석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가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하고도 익숙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목소리다.

 

 -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지. 물론 쓸데 없는 무의미한 죽음이 동반되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살아남았지. 생각해보았는가. 왜 너희들이 여기에 있는 지를. 사실 죽음을 목전에 둔 모든 상황 속에서 그것을 생각하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너희들이 겪어온 것들은 모두 원인이 있었기에 겪어온 것들이다.

 

 “무슨 개소리인 데스!”

 “고귀한 와타시는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는 데스! 면상을 보는데스! 어서 나오는데스야아아아아!”

 “오마에 때문에 마마가 죽은 테스! 이것은 와타시의 매력을 알아주는 잘생긴 왕자사마의 사육실장이 되어 흑발의 자들을 낳아야 갚을 만한 대죄인 테스!”

 

 - 지금까지 겪어오며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너희들이 바래왔던 그 ‘낙원’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행복을 쟁취하려면 무언가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하지. ‘포기’해야 진정으로 너희들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고 염원하던 ‘낙원’으로 갈 수 있는 테스트를 받을 것이다.

 

 기계음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와 동시에 방 한 가운데 놓여있던 무언가가 껍질을 벗기고 속의 자태를 드러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껍질은 비닐이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비닐이 벗겨지면서 감추었던 것을 보여주었다. 단언컨대 분명 그것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내건 ‘게임’ 중 가장 어려운 난제임이 분명했다.

 “콘페이...토...! 콘페이토인 데스!”

 비닐이 벗겨지며 드러낸 내용물은 별사탕. 사육실장이건 들실장이건 염원해 마지않는 궁극의 음식. 단 맛을 추구하는 실장석들의 입맛에 가장 적합한 별사탕이다. 그녀들이 말하는 ‘콘페이토’. 분명 한 것은 들에서 살아갔던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접하기 어려웠던 먹거리였다.

 “기... 기다리는 데스! 코로리이면 어쩌려는 데스!”

 “와... 와타시는 먹는 테스! 배고픈 테스! 와타시의 배가 꼬륵 거리는 테스! 아무 것도 못 먹었던 테스! 어차피 뒤질 바에는 와타시는 먹을 것인 테스!”

 망설임도 잠시였다. 염원을 외치며 달려가는 중실장을 본 나머지 실장석들도 별사탕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별사탕, 콘페이토와 정말 닮게 생긴 코로리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과 달리 죽음을 선물해주는 약품이다. 여태껏 코로리를 먹고 죽어버린 동족들을 본 것이 수번이다.

 “마...마마! 와타시도 먹고 싶은 테츄......!”

 “기다리는 데스. 뭔가 이상한 데스.”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별사탕의 무더기에 파묻혀 손에 가는 데로 한 주먹씩 쥐고 입에 게걸스럽게 처넣고 있는 실장석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처음에 경계했던 것처럼 코로리는 아니었다. 코로리였으면 오색의 별사탕 무더기는 이미 녹색과 적색의 핏빛으로 물들어 있을 테니 말이다.

 미도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지금까지처럼 게임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벽에 숫자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이건 함정인 데스.”

 산과 같은 별사탕에 현혹되어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투명한 벽면에는 익숙한 숫자가 보였다. 꿈만 같은 광경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이질적인 숫자다. 어느덧 40초의 시간을 남겨두고 있는 붉은 숫자를 보고 미도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여유롭게 별사탕을 음미할 때가 아니었다. 분명 시간이 모두 소모되어 숫자가 0을 가리키면 처음처럼,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죽어온 녀석들보다 더한 고통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방에 남아있다가는 무조건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친구 상! 여기서 나가야 하는 데스!”

 미도리는 게걸스럽게 침을 흘려가며 별사탕을 입에 쑤셔넣고 있는 동료 실장석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피를 양껏 흘리고 간신히 부축을 받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던 동료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탐식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저리 비키는 데스! 와타시는... 환자인 데스! 환자는 먹어야 사는 데스! 방해하면 오마에도 적인 데스!”

 동료는 미도리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미도리는 동료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던 동료의 눈이 아니었다. 의지를 잃었다. 초점을 잃었다. 동공이 흔들리며 무언가에 사로잡힌 눈이다. 그리고 그 눈을 미도리는 알고 있었다. 엄지. 들에서 살며 소수이 실장석 무리만이 엄지를 자로 키울 정도로 무가치한 존재다. 기껏 정을 주어 가족으로 길렀지만 결국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다 죽어버린 엄지. “아타치는 아가인 레치! 아타치는 귀여운 레츙! 아타치를 길러줄 것인 레츄아아!” 라는 말을 외치며 인파 속으로 달려간 엄지는 수십 걸음도 체 못가 바닥의 껌딱지 마냥 흔적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의 눈과 비슷했다. 어떠한 말도 닿지 않는 그 눈을 말이다.

 미도리는 동료를 설득하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미도리는 뿌득 거리며 입술을 잘근 씹은 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별사탕 한 주먹을 손에 쥔 체 장녀를 안고 다음 방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까지 지나온 것처럼 가려져 있는 천막을 지나 문을 통과한다. 통과하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니 여전히 게걸스럽게 별사탕을 먹어치우고 있는 동료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떠나가는 자신을 흘깃 바라본 동료는 아주 잠깐 미도리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비웃는 모습. 보란 듯이 별사탕을 입에 물고 힘차게 씹는 모습을 과장하여 보여준다. 그것은 멸시였다. 그녀와의 관계는 거기까지였다. 자신을 의지하며 버텨온 나날은 원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동료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터덜터덜 걸으며 방을 지나온 미도리는 장녀를 편하게 벽에 기대어 눕히고 가져온 별사탕을 입에 넣어주었다.

 “콘페이토인 테츄......? 테츙! 맛있는 테츙!”

 “많이 있는 데스. 이것을 먹고 기운을 차리는 데스.”

 “마마 사랑하는 테츙!”

 미도리는 가져온 별사탕을 모두 장녀에게 주었다. 한사코 자신의 입에 넣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정신을 차려왔던 단 하나의 목적이자 이유기도 했다.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적잖게 의지했던 동료였다. 어쩌면 목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있는 것은 동료가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간의 선택들 중에서 적어도 일말이나마 동료의 작은 도움 덕분에 해내온 것도 있었다. ‘낙원’을 향해 가던 그 시절에도 적잖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었다. 같이 살아남아 ‘낙원’에서 서로를 이웃으로 삼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자 했던 것은 한낱 꿈이었다.

여유가 있었다. 하나 둘씩 사라졌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과 장녀 뿐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넘어온 방도 여전히 아무 것도 없는 이질적인 방이었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고요했다. 그곳에서 미도리는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했다. 욕심, 자비심....... 그리고 선택과 포기. 익숙한 단어들이다.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겪어 왔던 시험, 그리고 브리더가 말했던 사육실장으로서의 덕목들이다.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죽은 녀석들은 그것을 모르는 평범한 들실장이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생사를 가르는 게임에 참가하였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주 흐릿한 기억들이 미도리의 뇌를 자극하였지만 오히려 그것은 속을 울렁거리게 할 뿐이어서 금방 잊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오마에도 여기 있던 데스? 데프프픗.”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미도리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그 실장석이 서 있었다. 양 손에는 별사탕을 두 세 개씩

쥐고 있었다.

 “.......”

 “잘난 동료는 결국 남은 데스. 방해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스스로 남아서 다행인 데스.”

 “오마에. 그렇게 말하지 마는 데스. 그래도 한 때는.......”

 “친구 상? 데프프프픗, 오마에는 아직도 멀은 데스. 들에서 사는데 그런 것이 있는 데스? 자나 마마조차 때때론 적이 되는 것이 바로 들에서의 실생인 데스.”

 “그건 매정한 데스. 오마에는 두 번째 때 왜 남은 데스? 적어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 남은 것이 아닌 데스?”

 “무슨 소리인 데스? 와타시는 살아남기 위해 남았을 뿐인 데스. 그까짓 년들 죽어도 상관없는 데스. 중요한 것은 와타시인 데스. 결과적으로 살아남지 않은 데스?”

 “...와타시는 동의하지 않는 데스. 와타시는 와타시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인 데스. 오마에도 오마에의 방식대로 사는 것처럼 관여하지 마는 데스.”

 “웃기는 소리하고 있는 데스. 오마에. ‘낙원’에 도착했을 때 와타시 덕분에 살아남은 것 기억하지 못하는 데스?”

 “.......오마에, 설마 그 때.......”

 “와타시의 도움을 받았으면서 무슨 오마에의 방식대로인 데스? 물러터진 데스. 데퍄퍄퍄! 오마에도 결국 저 머저리들과 다를 바 없는 데스!”

 “아닌 데스! 그 때 오마에가 없었어도 좋게 해결됐을 수 있던 데스!”

 “지랄하지 마는 데스! 아무리 우연이었어도 와타시가 없었으면 오마에는 그대로 죽었을 것인 데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기껏 도착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해서 오마에가 사랑하는 장녀랑 같이 사이좋게 콘페이토 별로 떠났을 것인 데스!”

 “오마에......!”

 미도리를 벌떡 일어섰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그 실장석의 모습. ‘낙원’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사건 한 가운데 있던 녀석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그 일. 살아남기 바쁜 와중에 계속 생각났던 그 것. 흐릿하게나마 잊지 못하고 있던 그 일.

 주먹을 불끈 쥐고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모든 것을 예상했던 듯 그 실장석 또한 눈을 부릅뜨며 미도리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서로의 주먹이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려던 찰나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지금 싸움이 중단되는 신호. 과열됐던 분위기를 되돌려 놓는 신호였다.

 

 - 방금 지나온 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탐욕에 빠진 자들에게 알맞은 형벌이 내려졌다. 끝끝내 녀석들은 손과 입안에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 체 발버둥치며 서서히 익사해 가고 있지.

 

 “데... 친...구 상.......”

 

 - 마지막 테스트다. 지금까지 내가 말해왔던 것과 느낀 것들을 생각하면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겠지. 신중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천막이 올라간다. 마지막 테스트가 맞는 듯 다음 방으로 넘어가는 문이 있던 자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천막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천막이 올라가며 가리고 있던 내용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기계음과 함께 천막이 모두 올라간다. 천막이 멈추고 기계음이 멈춘다. 가려져 있던 내용물. 건너편의 무언가를 본 미도리는 그제야 자신과 장녀, 그리고 ‘낙원’을 향해 같이 고군분투했던 동료와 동족들이 왜 이런 곳에 갇혀있게 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

 

 #

 

 그것은 아주 작은 계기였다. 남자는 한 마리의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다. 적당히 비싼 값을 자랑하는 일명 ‘세레브 실장석’이었다. 좋은 브리더를 만났던 덕분인지 수년을 살면서 이렇다 할 분충의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남자가 해주는 것만큼 실장석도 주인을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보통의 ‘세레브’란 명칭을 달고 있는 녀석들은 주인이 베풀어주는 은혜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애초에 실장석 따위를 터무니 없는 가격을 주고 사는 정도의 그룹은 애오파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비율은 현저하게 낫긴 했지만 그 오만함은 두고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자가 기르고 있는 실장석은 정말 수백, 수천마리의 실장석들 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런 개체였다. 그런 녀석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실장석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사람이란 것이 원래 자신을 위해 좋은 일만 골라 해주는 사람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남자는 자신이 기르고 있는 실장석을 위해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었다.

 ‘애완 실장석도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공원을 만들자’

 그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이 담긴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사유지를 공원처럼 꾸며놓고 배역들을 놓는 것은 애초에 원하는 방향도 아니었거니와 ‘세레브 실장석’ 정도 되는 실장석들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마치 무대처럼 모든 것을 꾸며낼 수는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실장석을 위한 무대를 꾸며낼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의 준비만 한다면 자신의 실장석을 위한 가상의 공간, 위조된 낙원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남자는 좀 더 쉬운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평소 남자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같이 실장석이나 아종들을 기르면서 상호 교류하는 이상적인 동호회다. 남자는 그 동호회에 발언하였다.

 “위험천만한 공원은 결국 여러분들께서 기르고 있는 실장석들에게 정서적으로도 안전상으로도 위험합니다. 심지어 해골 등급을 받은 일부 공원들은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상적인 공원 환경을 조성하기를 소원합니다.”

 그 뒤로부터는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우선 비교적 양호한 인근의 공원을 선정한다. 그리고 각 공원에서 양충 무리를 선별한다. 선정한 공원 중 한쪽 영역을 구분지어 양충 무리를 이주시킨다. 마지막으로 조성된 양충의 영역에서 사육주와 사육실장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좋은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이상적인 공간을 조성하는데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 다행히도 남자와 그 동호회의 사람들은 노력, 쉽게 말하면 돈과 시간의 제한에서 꽤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양충의 선별은 브리더에게 의뢰를 맡겼다. 확실히 전문가인 만큼 충분한 돈을 사용하니 금방 양충의 무리들을 선별할 수 있었다. 이주하게 되는 공원에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교육하는 것도 모두 브리더가 진행했다. 브리더는 그렇게 선별한 실장석들을 동호회에 넘겼다.

 선정된 공원 또한 작업을 거쳐야 했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실장석들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른바 구제 작업. 시청의 허가를 받고 진행된 구제 작업 또한 시청에서 주관하는 보편적인 구제원들이 아닌, 사설 업체에 의뢰한다. 그 사설 업체 또한 쓰여진 돈만큼 충분한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공원에 살고 있던 들실장들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그룹도 들실장들을 위한 동정의 표를 주지 않았다.

 구제 작업 또한 말끔하게 끝나자 양충의 무리들을 이주했다. 좋은 골판지 집과 풍부한 식량을 지원 받은 녀석들은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 들실장들이 지켜야 할 것은 그저 단순했다. 사육실장과 사이좋게 지내며 무슨 일이 있을 때 사육실장을 보호하고 분충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브리더에 의해 선별된 양충 성향의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회의 최약층과 같은 실장석이란 종에게 있어 자신들을 비호할 크나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운인 일이었다.

 그렇게 조성된 공원은 아주 자그마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갔다. 멋모르고 분탕 치는 소위 말하는 학대파나 학살파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도 있었다. 미처 솎아내지 못한 자실장들의 분충 행보로 인한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정당한 법적인 처분에 의해 무마되었다. 남자와 동호회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과 돈을 보유하였다. 소문은 소문을 타고 결국 소규모로 조성된 그 공원의 그룹을 건드리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자실장들은 친에 의해 솎아내졌다. 때때로 그것을 숨기려고 했던 녀석들은 일가 자체가 솎아내졌다. 브리더에게 말이다. 개입부터 종결까지 완벽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그들에게 의해 몇 몇 일가는 빠르게 솎아내졌다. 그렇게 그 이상적인 공원은 만들어졌다. 사육실장이 안심하고 놀 수 있다. 공원에 사육실장, 사육실석 등이 자유롭게 놀게끔 한 후 한참 동안 볼일을 보고와도 문제없는 그런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원에서 사육실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에 대한 우월감에 빠져 들실장을 얕잡아보고 괴롭히는 녀석들도 없었다. 애초에 최소한의 올바른 사육실장 사육법을 인지하고 있는 그룹에서 만든 것인 만큼 그런 짓을 보이는 실장석들은 기르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남자를 비롯한 동호회는 결과물을 보고 뿌듯해했다. 자신들이 이룩한 이상적인 ‘낙원’을 자랑한다. 자연과의 공존. 실장석들과의 올바른 공존 방법. 계기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예상 외로 유명해진 결과를 보며 남자는 한층 자랑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적인 ‘낙원’이 붕괴되었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수년이 지나도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공원의 모습은 한 계기로 인해 모조리 박살났다.

 예쁜 무늬도 그려져있던 갈색의 골판지 상자는 온통 피범벅이다. 원래 거주하고 있던 들실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의 내용물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진한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사방에서 자실장 성체실장 가릴 것 없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마아아아아아!”

 “안 되는 데스! 다가오지 마는 데스!”

“와타시가 뭘 잘못한 테츄아아아아아악!”

 “찌야아아아아아! 아타치는 먹는 게 아닌 레츄아아아아아아!”

 “장녀어어어어! 와타시의 자를 먹지 마는 데스으으으으읏!”

 “눈이...! 눈이!!!!! 와타치의 눈이이이이이!”

 “데에에에엑! 히무라 메빠소?!”

 비명이 가득 퍼진다. 무언가를 씹어 먹는 소리가 들리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친실장은 자신의 자가 잡아먹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린 자실장과 엄지 실장들은 무저항인체로 뜯어 먹혔다.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머리의 가운데가 음푹 파인 녀석들도 보인다.

 “왜 이러는 데스! 이런 짓을 하면 닝겐상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 데스?!”

 저항하는 녀석들도 있다. 자신이 평소 숨겨두고 있던 보검이라 부르는 못을 꺼내어 무리에 처한 위기를 저항하고자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다.

 “닝겐상! 루비사아아앙! 와타시를 도와주는 데스! 와타시는 죽고 싶지 않은 데스!”

 도움을 요청하는 녀석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국 끌려가며 피를 흩뿌린다. 흙과 가시로 인한 상처가 날 정도의 저항을 해보지만 무의미하다.

 시간이 지나 잠잠해진다. 비명이 잦아들고 점차 조용해진다. 그래도 간간히 자실장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안타깝게도 양충의 무리, 공존하고 있는 실장석들을 구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도 운이 없게도 그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친구라 여겼던 사육실장들을 위해 해온 노력을 보답 받을 기회도 받지 못한 체 모조리 죽어갔다. 그 참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이 지나 날이 밝아진 이후였다. 항상 아침 일찍 사육실장과 같이 산책 겸 공원을 한 두 바퀴 둘러보며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던 동호회의 한 일원에 의해 그것은 발견되었다.

 “예?!”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믿지 않았다.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들려온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남자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작정 손에 잡히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은 체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어 공원으로 달려갔다. 페달을 밟는 내내 ‘이건 꿈이다’ ‘그저 장난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되뇌였던 남자였지만 공원에 도착하고 광경을 목도하자 현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사육실장과 함께 손을 가로 막고 지켜보고 있는 동호회 회원. 산책 겸 출근을 위해 공원을 방문하고 지나가던 주변인들의 아연실색하는 표정. 그리고 무심하게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뭇가지와 풀밭에 즐비해 있는 핏자국과 실장석들의 잔해로 추정되는 무언가. 풀숲 너머로 보이는 핏자국이 즐비해 있는 골판지. 익히 알고 있던 광경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룩했던 ‘낙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자는 충격에 휩싸여 있는 동호회 회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

 

 “이곳이 ‘낙원’인 데스?”

 공원 입구에 수십 마리의 실장석들이 즐비해 있다. 저마다 지친 기색이었지만 ‘낙원’에 도착했다는 성취감에 고양되어 저마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리들은 이주 실장석이었다. 수십 마리가 도심 속을 어떻게 이동한 것인지 불분명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도심 속을 뚫고 이주에 성공했다. 분명 출발하기 전에는 더 많은 무리의 수가 있었을 테지만 이주라는 것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희박한 생존율. 10에 9. 10에 10은 실패한다는 이주.

 수십 마리의 실장석들이 이주하는 광경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단체가 이주하는 것은 산에 사는 산실장의 공동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학계에서 한 번 쯤은 주목해볼만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과정이 어찌됐고 계기가 어찌됐든 그 실장석의 무리는 ‘낙원’이라 부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데... 들었던 것과 다른 데스.”

 “‘낙원’에 도착하면 우마우마한 것들을 마음껏 먹고 닝겐 노예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던 데스?”

 다른 공원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다. 도착했다는 기쁨에 젖은 것도 잠시 뿐이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낙원에 대한 환상과 매우 다른 모습을 확인한 이주 무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도리 상... 어떻게 해야 하는 데스?”

 “일단 쉬는 데스. 장녀도 그렇고 오마에도 그렇고 와타시도 매우 지친 데스. 여기가 ‘낙원’이라고 하면 분명 소문과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인 데스.”

 “하지만 밤인 데스. 어서 잘 곳을 찾아야 하지 않는 데스?”

 “.......”

 미도리와 장녀. 그리고 옆에 있는 성체 실장석은 다른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이렇다 할 계획도 없었다. 그저 소문만을 믿고 험난했던 여정을 겪어왔다.

 이주 전, 살던 공원은 매우 황폐했다. 넘쳐나는 동족으로 인해 일찍이 먹을 것을 수급할 수 있는 쓰레기봉투는 원천 봉쇄되었다. 화장실도 막혔다. 물을 뜰 수도 없었다. 사람도 다니지 않았다. 오로지 실장석만이 사는 곳이었다. 벤치는 오래전에 녹색으로 변색되었고 길가에는 깨끗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면 살아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하얀 악마’가 온다. 그 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공원 전체로 퍼져나간 소문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도리를 비롯한 일부 실장석들의 무리는 이주를 선택했다. 사실이어도 문제였고 거짓이어도 사실 그 공원에서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동족과의 치열한 경쟁, 약탈이라는 선택지 외에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 공원보다는 낫지 않은 데스? 조용한 데스.”

 “그렇긴... 한 데스.”

 “여기서 조용히 정착해서 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데.......”

 

 - 데갸아아아아악!

 

 밤을 가로지르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미도리와 성체 실장석, 그리고 장녀는 비명이 울려 퍼진 곳을 향해 놀라하며 바라보았다.

 “여기 다른 년들이 있는 데스! 좋은 골판지 하우스인 데스! 푸드가 있는 데스! 여기가 바로 ‘낙원’이 맞는 데스야아아아!”

 “여기가 ‘낙원’이었던 데스?!”

 “좋은 데스! 모조리 죽여 버리고 와타시의 것으로 만드는 데스!”

 “데프프프픗! 와타시에게도 자판기가 생기는 데스?!”

 “모두 돌격하는 데스! ‘낙원’은 와타시타치의 것인 데스으으으!”

 앞서 모였던 무리들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당황하며 나왔던 ‘낙원’에 먼저 살았던 무리들이 무방비로 습격당하기 시작했다. 합심하여 성체 실장석 한 마리를 묶어두고 자실장들을 한 마리씩 나눠 가지며 먹어치우는 녀석들. 장난감이 생긴 것이 마냥 기쁜 것인지 울부짖으며 도망치려는 녀석들을 붙잡아 가지고 놀기 시작하는 녀석들. 못을 이용해 눈을 먼저 공격한 후 무저항 상태로 만들어 자판기로 만들어버리는 녀석들.

 “그... 그만 하는 데스! 이러는 것은 옳지 않은 데스!”

 미도리는 경악했다. 끝끝내 동족을 약탈하지 않았던 미도리였다. 남들 다 하는 동족식도 하지 않았다. 먹이가 부족하여 결국 굶어 죽는 엄지 실장이 발생했어도 동족식만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묻어둘 뿐이었다. 그런 미도리에게 있어서는 갑자기 벌어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마...! 무서운 테츄! 무서운 테츄아!”

 “진정하는 데스, 장녀. 우... 우선 어디로 몸을 숨기는 데스.”

 미도리는 살육의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장녀를 안고 풀숲으로 도망쳤다. 최대한 저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일절 생각할 수 없었다. 이미 같이 고비를 겪어온 동료도 살육의 현장에 참가하여 신나게 자신의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

 “사... 살려주는 데스!”

 “데뎃?!”

 우연찮게도 미도리는 풀숲에 숨어 있는 일가를 향해 도망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안전하리라 생각했던 곳은 사실 현장의 일부에 속한 곳이었다. 풀숲에 숨어 있는 일가는 두려움에 떨며 미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자실장들을 지키고 있었다. 적어도 4마리가 넘어 보이는 자실장들이 저마다 두려운 눈빛으로 미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진...진정하는 데스! 와타시는 해칠 생각이 없는 데스!”

 “꺼지는 데스! 와타시를 살려주는 데스! 오마에들이 이러는 것을 알면 닝겐상들이 반드시 복수할 것인 데스!”

 “진정하는 데스! 그 보... 보검을 내려놓는 데스! 와타시는 얌전히 떠나는 데스......!”

 위기의 직감을 느꼈다. 일찍부터 살고 있던 녀석들. 동족들. 갑작스럽게 참변을 겪고 있는 동족들에게 있어선 미도리를 비롯한 외부 실장석 무리는 그저 침입자에 불과했다. 목숨이 오가는 그 현장 속에서 자신의 생존권, 터전을 지키려는 동족들의 눈은 너무나도 처절했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미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데극?!”

 일순간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못을 치켜들고 경계하던 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테츄아아아아아아아! 마마아아아아아!”

 자실장들의 비명이 퍼진다. 든든히 자신들을 지키고 있던 버팀목, 유일한 구원자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뭐...뭐인 데......?!”

 미도리는 고개를 돌렸다. 앞에 있던 동족을 쓰러트린 것이 무엇인가 확인한다. 쓰러진 실장석의 머리에 박혀있는 못을 빼낸 것은 다름 아닌 같이 이주를 했던 동족이었다. 그 성체는 흥겨운 듯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못을 다시 한 번 쓰러진 동족을 향해 쑤셔 넣었다. 그리고 휘젓는다.

 “마마에게 떨어지는 테챠아아아아아!”

 “죽여버리는 테치! 떨어지는 테치이이이!”

 자실장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어미를 습격한 성체를 공격하였지만 당연하게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실장들의 공격에도 개의치 않는 성체는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성체를 천천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판기로 만드는 행위다. 뇌를 손상시켜 백지 상태로 만든 후 죽을 때까지 구더기를 뽑아내게 하는 방법이다. 그 성체는 자실장들을 무시한 체, 그리고 미도리를 한 번 흘겨본 후 유유히 자판기가 되어버린 동족을 끌고 풀숲 너머로 사라졌다.

 “마마아아아아!”

 “테애애애애앵! 테애애애애앵!”

 속절없이 끌려간 어미를 바라보며 남겨진 자실장들을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한밤 중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유일한 보호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동족이다. 그것도 저 풀숲 너머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잔혹한 비명소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약탈자의 무리 중 하나.

 “이...이모토타치들은 살려주는 테치!”

 장녀로 추측되는 자실장이 용기있게 나서며 동생들을 가로막았다. 얼굴에는 적록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미를 잃은 것들이 들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명확하다. 무리다. 절대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작은 녀석들, 제 한 몸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약한 자실장의 힘으로는 오래 살기가 힘들다. 그것도 자신의 여동생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불가능한 목표다. 작디작은 몸으로는 하루 먹는 것을 조달하는 것조차 버거울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먹이가 풍족해지는 가을을 맞이한다 해도 결국 보온재와 월동식을 모으지 못해 겨울에 모조리 죽어버릴 것이다. 고통의 연장선이었다.

 자실장으로 거둘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이주 끝에 장녀를 제외한 나머지 자실장들을 떠나보내긴 했어도 남의 자식을 제 자식처럼 키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자실장들은 명백하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비수를 품은 자를 거두는 것은 장녀를 위험하게 할 것이다. 만약 자들을 모조리 잃어버렸더라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장녀는 살아 있었다. 장녀를 위해서라도 고아들을 거두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다.

 차라리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자실장들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자실장들의 친이었던 동족이 떨어트린 못이 보인다. 일순간일 것이다. 차라리 이 행위가 면식 없는 자실장들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자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마......!”

 장녀가 나지막이 속삭이듯 어미를 불렀다. 미도리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충격과 함께 천천히 옆을 향해 돌아보았다. 오랜 여정 끝에 쇠약해져버린 장녀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녀.......”

 ‘마마, 안되는 테치.......’

 입을 통해 전하지 않았지만 장녀의 눈은 마치 이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오직 느낌이었다. 타고난 감이 아닌 어미가 된 자로서의 모성에 대한 감.

 뒤편에서는 여전히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조금씩 잦아들고 있지만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리와 무언가 찢겨가는 소리. 고통에 찬 비명소리. 정말로 듣기 싫은 격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어지러운 상황, 혼란 속에서 미도리는 장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자실장들을 바라보았다.

 

 #

 

 미도리는 알아볼 수 있었다. 가리고 있던 천막이 올라간 자리에는 무수히 많은 동족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머리는 온데간데없이 몸뚱아리만 달랑 남아있는 시체, 신체가 여기저기 훼손되어 내장이 나와 있는 시체, 오직 머리만 존재하고 있는 시체까지. 분명 그것은 그 날, ‘낙원’에 도착했던 그 때 희생당했던 ‘낙원’의 원주인들이었다. 알 수 있었다.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죽은 녀석들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미도리 본인도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마리의 크고 작은 실장석들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그 어떤 시체도 온전한 상태인 녀석은 없었다. 철저하게 약탈 당하고 죽어간 동족들의 최후는 너무나도 비참한 모습이었다. 미도리는 그렇게 동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탐욕과 이기심으로 도배된 너희들이 저지른 결과다. 너희들은 그저 ‘낙원’에 도착해서 살고자 했을 뿐일 수도 있지만 여기 죽어간 녀석들은 과연 죽고 싶어 했을까? 좋은 말로 포장하고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해도 죽어간 녀석들 입장에선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이유일 뿐이지.

 마지막 게임이자 테스트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게임에서 살아남았던 것을 생각해라. 그리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말해라. 그 말이 너희들의 운명을 정할 것이다.

 

 “데프프프프프픗... 데퍄퍄파파파파팟!”

 살아남은 그 실장석, 그 날 한 일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그 실장석. 고작 자신을 위해 불필요한 피를 땅에 흩부린 그 실장석은 마치 실성한 듯 침을 튀겨가며 웃고 있었다.

 “데프파파파팟! 배...배가 아파 죽겠는 데스! 웃겨 죽는 데스! 고작 그 따위 것들이 와타시를 뭐라고 단정하는 데스? 웃기는 소리 마는 데샤아아아아아아!”

 그 실장석은 허공을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지랄하지 마는 데스! 거기가 ‘낙원’이든 아니든 상관 없는 데스! 와타시는 그저 살기 위해 저 갈보년들을 죽인 데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 데스! 어떤 년이 좋다고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는 데스?! 저 년들한테 ‘우릴 위해 우마우마한 푸드를 나눠주는 데스웅~?’이라고 물으면 퍽이나 잘도 나눠주는 데스! ‘낙원’에 도착하기 전에 와타시는 무슨 생활을 한 줄 아는 데스? 사랑스런 자들을 위해 나눠줄 것이 없었던 데스! 굶어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주변 동족들을 습격하여 고기를 조달한 데스! 그렇게 살아온 데스! 오마에가 뭐라고 들의 실생을 정하는 데스!”

 그 실장석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말들을 토로했다.

 미도리는 그 실장석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했는데 결국 신세 한탄이었다. 미도리도 같은 신세였다. 말해도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을 비참한 이야기였다.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듣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미도리는 창 너머로 보이는 시체 중 한 마리의 성체 시체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 날 자실장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다 자판기가 되어 끌려가버린 친실장의 시체가 있었다. 끌려갔을 때의 모습과 달리 독라의 상태였다. 억지로 뜯어낸 듯한 머리카락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운치굴로 끌려간 후 모조리 뜯겨나간 것이다. 옷도 팬티도 모두. 못으로 쑤셔진 머리의 구멍은 여전하였다. 그 구멍을 보는 미도리는 잊어버리고 싶었던 그 기억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상기시켰다.

 “미...미안한 데스.......”

 적록색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죽어버린 친실장을 위해. 그리고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자실장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와타시가... 애초에 그쪽으로 가지 말았어야 했던 데스....... 아니면 차라리 그냥 그 때 오마에의 자들을 거뒀던 것이 옳았던 데스....... 그러면 적어도 여기서 이렇게 소중한 돌씨가 아프지 않을 것인 데스.......”

 미도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태어난 후보들 중 하나였다. 공감하고 인내하고 규칙을 알아가고 이타심을 배워갔다. 그랬기 때문에 자실장 시절 높은 등급을 받아 사육실장으로 팔려나갈 수 있었다. 비록 자를 가져서 쫓겨나긴 했지만 적어도 멀쩡히 자실장들과 함께 버려진 것은 그만큼 미도리는 사육실장으로서 주인을 위해 헌신을 다했던 덕분이었다. 쫓겨나기 전 선택지가 주어질 정도로 미도리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브리더에게 교육 받았던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하고 지켜왔다.

 그랬기 때문에 시체들을 보며 미도리는 울 수 있었다.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무엇을 위해 그 게임을 통과했던 것인지. 어째서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위석이 아려왔는지.

 “마...마.......조....ㄹ...ㄴ... 테...츄우우.......”

 “장ㄴ......!”

 희미해져가는 장녀의 목소리를 들은 미도리는 황급히 고개를 돌아보았다. 쓰러져가는 장녀를 바라본 미도리는 장녀를 향해 달려가과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이 흐릿해진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어둠이 깔려진다. 마치 조명이 서서히 꺼지는 것처럼 암전되어 간다.

 “장......녀.......”

 힘없이 낮게 깔려가는 목소리를 끝으로 미도리의 의식의 심해로 추락해갔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초점 잃은 회색의 눈을 가진 친실장의 기억과 함께.

 

 #

 

 “영상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네, 어떠셨는지요.”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주 약간 입술이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만족하였습니다. 적어도 후련한 복수 정도는 되는 것 같군요.”

 “그럼 다행입니다만.”

 “남은 둘... 아니, 세 녀석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 녀석들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적절한 ‘처리’를 했습니다.”

 “흠. 제가 듣고 싶었던 답과는 조금 거리가 있군요. 저는 상태를 여쭤본 것인데요.”

 윤형은 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남자의 말에 정면으로 응수했다.

 “두 마리는 일단 선생님께서 원하신 처분대로 했고... 역시 듣고 싶으신 것은 그 성체 한 마리겠지요?”

 남자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 녀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상대방의 성향을 고려하면 조금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이른바 독라 달마가 되어 공원에 서식하는 보호 개체 ‘외’ 무리에게 넘겼습니다. 물론 위석은 특수 강화제로 코팅 및 영양제에 처리가 되어 지독한 꼴을 계속 당해도 최소 1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이 정도면 원하시는 답이 되었을까요?”

 윤형의 말을 들은 남자는 그제야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원하던 답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커피를 마저 천천히 마시며 입을 열었다.

 “자연의 섭리. 제가 잊은 것이 있었더군요. 인위적인 화단을 꾸며 놓아도 결국 장마나 폭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속에서는 들에서 자라나는 잡초보다 못하다는 것을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처럼 이주한 녀석들로 벌어진 사건이나 유기된 실장석들로 인해 기껏 꾸며놓은 무대가 망가지는 것을요.”

 “업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결국 그것은 선생님의 자산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것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업무 외적으로는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언제가 됐건 결국 벌어질 일이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은.” 윤형은 잠시 말을 뜸들이고는,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하실 것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가꾸어 놓은 것입니다. 완성되었다고 해도 손 놓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지요. 그래서 동호회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앞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 어느 정도 이런 사태들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계획입니다.”

 “일단 계속 하실 의향은 있으신 거군요.”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동호회 사람들도 좋아했던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선별된 실장석 무리들 외에는 어느 정도 눌러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데스넷’ 일부 회원들에게 일을 맡길 계획입니다. 사실상 아무리 저희가 실장석들을 옹호한다고 하지만 분충까지 옹호해줄 여력은 없습니다. 주인을 무는 개나 떠돌이 들개를 처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폭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탐탁치는 않아도 최소한 그 사람들의 성향을 만족해주면서 이른바 경찰 노릇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번처럼 갑작스런 사태에는 대응하기 힘들 수도 있을 텐데요.”

 “... 어쩔 수 없지요.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뭐 일단 이 부분은 저희가 알아서 해야 할 내용들이고 오늘 선생님을 이렇게 뵙자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일을 하나 맡으실 수 없나 해서입니다.”

 “선생님 댁의 에메랄드와 제 유시랑 같이 사진 촬영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있으셨군요.”

 윤형의 말에 남자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네. 지금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저번처럼 온순하고 착한 녀석들을 선정하여 다시 처음부터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혹시 선생님께서 일부 맡아주실 수 있나 해서 말이죠.”

 “흐음... 어렵지 않습니다만, 기존에 했던 분들처럼 잘 선정할 수 있을까 모르겠군요.”

 “아하하, 실력은 이미 제가 부탁드린 일을 잘 처리해주신 것으로 증명 되었다 생각합니다. 이것도 인연이지 않습니까. 제 쪽에서 드리는 메리트라면 조금 더 수당을 얹어드려서 어려울 때 바로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하나의 협력원을 얻는 것이기도 하고... 일단은 윈윈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시급한 만큼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악수를 청해왔다. 협의의 표시와 함께 새로운 활동을 알리는 신호다. 윤형도 악수를 건넨 후 인사를 나누었다. 업무적인 일이다. 어떠한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은 업무적인 차원에서 선을 긋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붕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콜로세움도 지금은 그저 유명한 옛 역사 유적지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법이다. 남자가 세운 그 무대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처럼 갑작스런 상황으로 인해 붕괴될 수도 있고 다른 요인으로 인해서 흐지부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 이주 무리들에 의한 습격은 자연 속에선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비록 사람과 밀접하게 살아가고 있는 실장석들이라도 말이다. 살아남았던 실장석들 중 하나가 했던 말은 객관적으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이주한 녀석들은 살기 위해 이주를 했고 이주 이후에도 살기 위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이주 무리를 반가워 할 생명은 아무도 없다. 그랬기 때문에 그 무리들은 자연스러운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아주 예외의 선택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은 결국 실장석의 생태를 떠나 실장석이라는 생물 자체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말이다. 깊게 파고들면 실장석이란 종족의 개념을 벗어나 모든 종족 또한 누군가의 관리를 받고 있는 ‘자산’의 개념이 될 경우에는 자연이라는 섭리도 우스운 말 중 하나다. 이주 무리의 비극적인 결말의 원인을 굳이 꼽자면 하필 그 ‘낙원’이라고 불렀던 것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낙원’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너무나도 운이 없었기에, 많고 많은 공원들 중에 하필 그것이었기에 종말을 맞이했다. 무리들 중 그 어떤 실장석도 그런 결과를 맞이할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임’이 끝난 이후에는 윤형은 남자의 요청대로 모든 것을 처리했다. 염두는 했지만 애초부터 그런 가능성을 상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살아남았던 실장석 한 마리는 들에서 살아가는 실장석들의 평균 수명보다 더 오래 살면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생존을 목적으로 했던 녀석의 또 다른 결말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설마 했던 그 예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윤형은 남자에게 문의 했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처리를 하면 좋겠습니까?”

 남자는 말이 없었다. 전화 너머로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길었던 침묵이 끝나고 나서야 남자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예정대로... 뭐, 예정대로 처리해주십시오.”

 

 #

 

 눅눅하지도, 습하지도 않고 불편하지 않은 안락한 골판지 상자다. 땅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도 언제 그런 고통을 겪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안락한 공간이었다. 그 상자는 일반적인 실장석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상자는 쉽게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찾았다 하더라도 알맞게 집으로 만들기에는 오랜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들에서 사는 순간부터 그런 노력을 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 들의 실생이다. 출산부터 먹이 수급,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 과정까지 모든 것을 성체 실장석 한 마리가 하기에도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미도리는 지금의 환경을 만족하기도 하며 동시에 때때로 꿈이 아닌가 뺨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손가락이 있을 리가 있냐만.

때때로 적절하게 배분되는 실장 푸드. 들에서 살며 가끔 애호파가 찾아와 뿌리지 않는 이상 찾아보기 정말 힘든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사육실장으로 살아갈 때는 질리도록 마음껏 먹었던 것이 너무나도 감미로워진 지금의 삶이다.

 이전 공원에서 힘들게 새벽같이 일어나 경쟁을 뚫고 구해왔던 음식물 쓰레기도 굉장히 양호한 편이다. 눈치 보며 서로 좋은 것을 쟁탈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서슴지 않았던 이전 공원에서의 생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수급이다. 먹이의 질도 물론이고 ‘낙원’이라 불렀던 곳은 다툼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만 그 차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미도리는 그곳에 있을 수가 있었다.

 무사히 장녀는 기운을 차리고 건강을 되찾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포동포동해지고 실장석 다운 면모를 갖추어갔다. 홀쭉했던 볼살은 어느새 살이 차오르고 가끔 미도리를 도우기 위해 길거리를 나서기도 한다. 착실했던 장녀의 모습을 보며 미도리는 그저 지금의 상황을 마치 꿈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다.

 미도리는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의식을 차리고 처음 마주한 것은 주변에 먹을 것과 배변 패드, 잠자리가 놓여 있는 무난한 수조였다. 기분 나쁜 기계음도, 붉은 색의 숫자도 없었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처럼 주변의 수많은 동족도 없었다. 오직 있는 것이라곤 자신과 매우 아꼈던 장녀 오직 두 마리 뿐이었다. ‘설마’라는 감정을 품고 장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장녀의 상태는 양호했다. 호흡도 안정하고 ‘그곳’에 갇혀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을 때보다 살이 차오른 느낌이었다. 장녀의 상태를 본 미도리는 ‘적어도 이곳은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안도의 마음을 가질 찰나 수조가 열리며 한 사람과의 만남을 가졌다.

 자신을 브리더라고 소개함과 동시에 남자는 미도리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너는 살 수 있어. 대신 두 가지의 선택이 있지. 네가 말했던 ‘낙원’에서 ‘규율’을 지키며 살 것인지, 아니면 자유롭게 살 되 다른 공원에서 다른 동족들과 다시 한 번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는 두 가지의 선택 중 하나를 고르면 돼. ‘게임’을 통과한 머리 정도라면 충분히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겠지, 원사육실장?”

 미도리는 장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뺨을 어루만졌다. 고작 수초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미도리는 브리더를 바라보며 확고하고도 자신있는 말로 대답했다.

 “와타시는 ‘낙원’에서 살아가고 싶은 데스.”

 미도리는 브리더라고 소개했던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낙원’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율을 배웠다. 모든 것이 처음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서 배워왔던 것들보다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기억하며 가르침대로 행해왔던 미도리는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옆에서 같이 교육을 받고 있는 장녀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인지 군말 없이 따라와 주었다. ‘동족들과 다투지 않기’, ‘사육실장을 공격하지 않기’, ‘사육실장을 외부의 무리로부터 보호하기’, ‘어느 때나 즐거운 모습을 무조건 보여주기’, ‘분충이 있을 시에는 바로 솎아 내버리기’, ‘노예와 같은 자판기 등을 부리지 않기’, ‘독립시키는 자들은 무조건 시험을 통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 등. 평범한 공원에서 살아갈 때랑 너무나도 다른 규율이었지만 미도리에게 있어선 그렇게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살아왔다.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왔던 덕분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미도리는 1~2주간의 교육 끝에 장녀와 같이 그토록 염원하던 ‘낙원’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도리는 자신으로 인해 박살난 일가의 자실장을 입양했다. 그것은 브리더가 내건 조건 중 하나였다.

그 날 미도리는 자실장들을 살려주었다. 풀숲 뒤편 상자 너머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실장들을 숨겼다. 마치 기적처럼 자실장들은 이주 무리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를 정리하기 위한 작업 중에 자실장들은 구조 받을 수 있었다. 공원에 있던 동족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꺼내면 안 될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어미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럴 이유도 없었을 테니. 어쨌든 그 자실장들은 살아남았다. 단 한 마리만.

 친이 영리하다고 해서 자까지 영리하다는 보장은 없다. 구조된 자실장들은 자신들의 어미의 지식을 물려받지 못했다. 애초에 그 친실장은 자실장들의 교육에 조금 시간을 두고 했던 것인지 공원의 이치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실장들은 구조된 김에 사육실장이 된다는 환상을 품고 급격한 분충화가 진행됐다. 결과는 당연히 처분이었다. 오직 살아남은 것은 일가의 막내였던 엄지 실장 한 마리였다. 엄지의 언니들의 죽음을 목도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언니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영리했던 엄지는 선별 검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것을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엄지 실장은 자신의 친이 죽은 간접적인 이유를 제공한 자에게 맡겨졌다.

 “네가 무엇을 했던 것인지 관심은 없다. 다만 네가 여기서 살아가려면 최소한 죗값은 치러야지. 그 때 살아남은 녀석들 중 하나인 엄지를 네가 무사히 독립시켜라. 그것이 마지막 조건이다.”

 미도리와 장녀, 그리고 방관자이나 가해자이기도 한 미도리에게 주어진 엄지 실장.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형벌이었다. 미도리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또한 알고 있었다. 엄지 실장은 그 날의 기억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친이 죽고 자신을 기르고 있는 것이 생판 모르는 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남이 사실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대상이라는 것은 엄지의 머리로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다행이라 볼 수 있었지만 적어도, 엄지 실장이 성체가 되어서 독립하는 그 날까지 미도리에게 기나긴 형벌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정확했다. 매 순간, 미도리가 엄지를 보는 그 순간 모두가. 자실장이 되고 중실장이 되고 성체가 되고난 후 ‘인식표’를 당당하게 받는 그 날이 끝나더라도 무대가 막이 내릴 때까지 미도리는 눈을 영원히 감을 때까지, 혹은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 죄책감을 안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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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편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참고로 말머리는 삭제했습니다. 다방면으로 쓰는 옴니버스 식인 만큼 오해의 소지는 이제야 제거되었군요.

 

너무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바쁜 업무의 나날 속에서 간간히 끼적이던 글을 이제야 마무리 했습니다.

 

오랜만의 칼퇴를 통해 글을 완성했지요. 

 

일요일에 글을 마무리 하려 노력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충분히 잠을 자야 일을 하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이틀이 늦어졌습니다.

 

사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간간히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일은 맞추도록 노력은 해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주 글은 늦어질 것 같군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연재 속도가 느려질 것이 왠지 분명한 듯 합니다. 소재는 생각해두었지만 여력이...

 

늘 덧글을 달아주시고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3월을 접하고 경칩이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고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 3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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