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개문제보다 신뢰를 쳐날려 먹어서 영원한 증오를 보여주는게 더 재미있는 실장석 참피 소설 버림받은 것들의 이야기

찬란했던 실장석 붐은 끝났다.

귀엽고, 영리해서 기르기 쉽고, 잔병치레나 산책 등 손도 많이 갈 필요 없는 이상적인 애완동물.

기업들의 마케팅에 혹한 사람들은 사육실장을 기르길 원했고,

번식장에선 셀 수 없는 실장석들이 텟테레를 울리며 가정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분충성과 끝을 모르는 탐욕 등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실장석의 단점은 실장석 사육을 짧은 유행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사육실장의 수요는 급전직하.

번식장에선 수많은 실장석들이 데챠악 단말마를 울리며 땅 속으로 파묻혔고

많은 번식장들이 도산하면서 번식장에서 뿔뿔이 도망치는 종실장들이 사회문제로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도시의 사육실장들의 운명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길거리엔 하루가 멀다하고 길러주세요가 적힌 골판지 상자들이 버려졌고

유기동물 보호소는 주인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는 유기실장들로 가득 찼다.

그럼에도 버려지는 유기실장들은 너무나 많아 보호소에 유기실장을 데려가도

직원에게 법으로 정해진 보호기간이 끝나고 안락사가 결정돼서 빈 공간이 나기 전까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올 지경이었다.

결국 많은 유기실장들은 자연스레 인간의 생활권과 가깝고 여러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공원에 둥지를 트며 지금의 들실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실장석 붐이 끝나고 수년간 들실장들은 공원에서 평온하다면 평온하고 시끄럽다면 시끄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골판지, 음식물 따위의 쓰레기를 모으는 습성으로 공원을 더럽혔고

봄이 되면 마구 번식하고 겨울이 되면 또 떼죽음하면서 공원의 주인인양 행세했다.

대가 바뀌어가며 사육실장시절 배웠던 한 조각의 훈육이나 교양도 사라진 들실장들이 보여주는 작태에 사람들의 공원을 향한 발길은 점차 끊겼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애완동물 업계는 다시금 호황을 맞게 된다.

평균 소득과 생활수준의 상승, 저출산 및 핵가족화 등의 여러 요인은 애완동물의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었다.

일부는 지나간 실장석 붐을 되돌리려 했지만 한 번 꺼진 악명높은 불씨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이번 애완동물 호황의 가장 선두에 선 것은 애완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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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올 댕댕씨들인데스 감상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데스)


『왕! 왕왕! 왕!』


"챠아아악!! 테차아아아!"


"아이고, 메리야 그만! 지지에요 그만!"


메리(비글, 2세)를 기르는 사육주 A.

A는 과거 사육실장을 길렀던 경험이 있었다.

A는 사육실장과 교감하는 대신 외로울 때만 찾는 인형처럼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했다.

결국 A의 사육실장은 주인을 노예취급하는 분충이 되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사육실장을 내버리고 최근에 메리를 입양한 A는 올바른 사육주와 반려동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관계 형성의 일환인 공원 산책은 A의 빼먹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공원 산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인식을 하면서도 A는 메리와의 공원산책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공원의 들실장들.

사냥개 출신인 견종답게 뛰어난 후각능력, 체력과 호기심을 타고난 메리는 공원에 도착하기만 하면 땅에 코를 붙이고 추적을 시작한다.

A는 평범하게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집에 가기를 희망하지만 이미 불이 붙은 메리의 추적본능은 A의 희망을 가볍게 무시.

냄새의 주인을 찾아 온 공원을 뒤집고,

마침내 어미를 잃은 한 자실장이 숨은 덤불숲까지 가서 짖음으로써 주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때까지 메리의 추적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왕! 왕왕!』


"지이이이! 어디론가 가버리라는테챠아악!"


중형견인 비글이지만 고아 자실장에 비해선 집채만한 크기인 메리.

그 메리가 침을 튀겨가며 우렁차게 짖어대고,

도망치거나 숨으려해도 자실장의 영혼을 꿰뚫어보듯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고정하며 쫓아오는 통에 자실장은 신경쇠약 상태다.

와중에 자실장의 새된 비명에 흥분한 메리가 벌떡벌떡 뛰어서 코로 밀쳐대고 발로 때리고 입질을 할 수록

자실장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깊은 상처가 늘어나 점점 피투성이, 벌거숭이가 된다.

위로는 피눈물과 거품을 물고 아래로는 빵콘하며 귀를 막고 웅크린 자실장...

자실장은 자신의 운명을 메리에게 내맡긴채 어서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길 기도할 뿐이다.


"아이고~ 애를 걸레로 만들어놨네.

이리오세요 메리! 수돗가에서 씻고 들어가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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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공원의 또다른 곳에선 한 들실장 일가가 골판지상자 안에서 식사시간을 가지고있다.


"마마, 배고픈테치! 와타치도 동생들도 밥이 부족한테치!"


"조용히하고 먹는데스우! 밥투정하는 자는 멍멍씨가 물어가는데스!"


"테에엥…"


최근 A처럼 공원을 찾는 견주와 애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친실장은 일가를 위한 최소한의 밥을 구하는 것도 목숨을 건 모험이 되고 있다.

견주들이 많이 찾는 오전과 저녁 시간에 공원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졌다.

해도 채 뜨지 못한 새벽과 어두워서 다니기도 힘든 늦은 시간 등 인파가 적은 시간에 밥을 충분히 구하지 못하면 그날은 쫄쫄 굶거나,

제발 별일 없기만을 기도하면서 살금살금 먹이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기의 자실장들에겐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매일같이 개짖는 소리와 동족의 비명이 울려퍼지는 공원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매일 두려움과 땀에 절어 돌아와서 작은 소리에도 안색이 파래지는 친실장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실장들이란, 매일 골판지집에 갇혀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잠깐의 산책을 나가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차곡차곡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자실장들에게 유일한 낙인 밥조차 충분히 받을 수 없다는 건 아무튼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테챠아아앗! 매일 멍멍씨! 멍멍씨!

멍멍씨 핑계만 대면서 밥을 구해오지 않는 것도 지겨운테치!"


"텟, 차녀쨩! 조용히 하는테치!"


"네가 닥쳐라테챠아아아!

어제도 벌레씨 시체랑 풀, 오늘은 물에 불린 풀, 이런 걸 먹고 언제 어른이 되냐는테-"


친실장이 차녀의 입을 주먹으로 급하게 틀어막자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차녀를 향해 체벌이나 솎아내기를 할까 긴장한다.

하지만 친실장의 시선은 차녀따위 안중에도 없다.

골판지집 안에서 당황한 얼굴로 골판지 벽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친실장을 자실장들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 골판지벽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박, 박, 박-


단단한 발톱으로 골판지를 긁어대는 소리.

자실장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 직전, 친실장은 자실장들 앞으로 주먹을 흔들어 주의를 환기하면서 그 주먹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 쉬- 소리를 낸다.


-박 박, 킁킁… 박 박…-


"초코 뭐해~ 가자~"


『왕!』


골판지를 긁는 소리가 멈추고 발소리가 멀어지며 일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때,


"레후~♬ 언니들 밥 다 먹었으면 구더기도 밥 달라는레후~♬"

"밥시간레후? 오늘은 운치 말고 콘페이토 먹으면 좋은레후~♬"

"밥투정하는 구더기는 나쁜 아이레후~♬ 구더기는 운치 좋은레후~♬"


골판지집 구석의 접시에서 최후의 비상식으로 기르던 구더기들이 잠에서 깨어나 일가를 향해 밥을 요구한다.

당황한 미도리가 급히 자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자들 역시 헐레벌떡 입을 막으려 구더기들을 향한다.

하지만 이내 중력이 사라진듯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위아래를 분간할 수 없이 골판지벽 사방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느낌에 빠진다.


『왕!왕! 왕! 왕왕!』


초코(코카 스파니엘, 4세)의 조상들은 대를 이어 호수, 늪지의 수풀 속에 숨은 새들을 놀래키도록 훈련받았다.

이제는 더이상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쏴 맞혀줄 사냥꾼들과 함께하진 않지만,

골판지상자에 숨은 들실장 일가의 속삭임은 언제나 초코의 혈관에 흐르는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초코는 안에 있는 것들이 뛰쳐나오도록 골판지 상자를 물어서 흔들고, 이리저리 끌고다니고, 발톱으로 마구 긁고 상자의 틈 안으로 맹렬히 짖는다.


"데하앗, 샤아, 멈춰, 멈춰데-스!"


""""테,텟챠아아-!""""


친실장은 체급 자체만 보면 중형견인 초코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예측 못하게 흔들리며 끌려다니는 골판지 상자 속에서 친실장은 그저 무게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친실장이 구르는 와중에 상자 안에 있는 것들…

밥그릇, 보존식, 자실장들과 구더기들은 친실장에 으깨지고 짓뭉개진다.


"초코~! 가자! 간식먹자!"


『...왕! 왕왕!』


"데햐아… 끝난데스…"


발걸음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가 멀어지고,

친실장은 엉망으로 뒤집힌 상자에서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비틀비틀 기어 나온다.

골판지 안에 있던 각종 쓰레기, 오물, 밥찌꺼기와 조금 전까지 자들이라고 불렀던 뭉개진 것들로 범벅이 된 친실장.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느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넝마가 된 골판지집을 돌아보는 친실장은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끝...나버린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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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의 고아 자실장과 친실장은 목숨만은 건져 며칠을 더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들실장들은 너무나 많다.

공원의 조금 한적한 곳, 맹구(불 테리어, 5세)는 주인과 공원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다.


"엎드려! 뒤집어! 빵! 옳~지, 잘했어!"


이 시간은 맹구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주인이 시키는 간단한 지시만 통과하면 칭찬과 간식이 복사가 되는 즐거운 시간이다.

맹구가 다음 주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자니 주인의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린다.


"어, 맹구 앉아! 그래, 잠깐 기다려!"


맹구는 전화기를 붙잡은 주인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충직하게 주인의 뒤를 지키고있다.

그때 맹구의 뒤편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뎃… 멍멍씨가 있는데스"


성체 들실장 세 마리는 올봄에 독립한 자매들이다.

세 마리는 먹이를 찾아 공원을 배회하던 중 들리는 인기척에 혹시 먹을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탐색하고 있었다.

공원의 보통 들실장이라면 소형견이라도 애견들과 마주치는 걸 꺼리지만 세 마리는 중형견인 맹구와 갑작스런 조우를 해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삼녀, 위험할 것 같은데스?"


"덩치는 크지만… 데프프, 저녀석 멍청해보이는 얼굴 하고있는데스"


세 마리는 독립한이래 힘을 합쳐서 각종 위험에 대응해왔다.

자신들을 덮쳐온 것들이 덩치 작고 호전성이 낮은 애견들이 많았다는 걸 본인들은 몰랐지만,

몇 차례 애견들과의 조우를 똥을 던진다거나

세 마리가 어꺠를 맞대고 스크럼을 짜서 덩치를 크게 해보인다거나

정말 운좋게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줄을 잡아끄는 견주에 의해 개가 물러나면서 애견들을 격퇴한(?) 경험이 있었기에

세 마리는 이런 순간에서도 불필요하게 겁먹고 소란부리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인 맹구 또한 새끼때부터 온화한 성격을 가진데다가

주인도 첫 눈에 맹구라고 이름붙일만큼 모난데없이 둥근 얼굴, 작은 눈 그리고 하얀 피부에 얼빠진 외모로 주변에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너희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가는데스"


위압감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 녀석, 장녀 쪽이 더 위압감을 주는 듯하다.

치와와의 발톱에 얼굴 피부가 찢겨지고 한 쪽 눈이 비틀려 사시가 되었으면서도 격한 주먹질 끝에 격퇴를 성공한 이래

자매들에게 끝없는 존경을 받는 장녀의 한 마디에 두 마리는 군말없이 발걸음을 뗀다.


"데풉, 하지만… 데뿌뿌, 줠라게 못생긴 녀석데스"


자매들이 수풀 속 그림자로 사라지기 전 삼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맹구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웃음을 흘린다.

그 신경 긁는듯한 소리에 마침내 맹구가 주인에게서 삼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쳐다보면 어쩔 거냐는데스?

올 테면 와보라는데스 데프프"


맹구의 목줄 끝엔 인간의 손이 있다.

그리고 맹구와 자매들의 사이엔 덤불이 우거져 길을 막고있다.

안전을 확신한 삼녀는 마치 동물원 쇠창살 건너편의 맹수를 상대하듯 맹구를 향해 초승달 눈으로 비웃으며 등을 보인다.


『아르르르… 컹! 컹!』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노골적인 도발에 맹구는 고개를 낮추고 귀를 뒤로 젖힌다.

맹구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보이지만 삼녀는 마치 사신이라도 씌인 것처럼 맹구의 그러한 모습에 더 신이 난다.

내가 저 녀석을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삼녀는 허리를 낮추고 팬티를 내리더니, 엉덩이에 힘을 줘서 똥을 한 무더기 싸고 한 조각을 집어든다.


"못생긴 주제에 감히 와타시에게 으르렁대다니… 너같은 건 운치나 쳐먹으라는데스!"


삼녀의 투분은 수풀의 가지에 막혀 맹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의도만큼은 정확하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맹구는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듯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드러낸다.


"뎃"


그것이 삼녀가 생전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맹구는 둘을 가로막는 덤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번개같이 뛰어넘어 삼녀의 목덜미를 덮친다.

그리고 삼녀의 목덜미를 문 이빨에 힘을 주고 거칠게 목을 흔들어댄다.


"뎃, 뭐 무슨일데스? 삼녀!"


"데갸앗, 언제 이쪽으로 넘어온데스!"


장녀와 차녀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삼녀는 머리통이 어꺠에서 뽑혀나와 척추를 덜렁이고 있다.

이윽고 차녀가 눈앞의 광경에 힘이 빠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지자,

맹구는 물고있던 삼녀의 머리통을 뱉어내고 차녀의 다리에 달려들어 이빨을 박아넣은채로 다시 목을 흔든다.


"데빗, 밧바비이이-"


삼녀는 맹구에게 휘둘려 온몸의 뼈가 부러지면서 실시간으로 늘어진 빨래처럼 변해간다.

다리가 뜯겨나갈만큼 거세게 휘둘리지만, 맹구의 절묘한 힘 조절로 맹구의 턱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삼녀는 이내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흩뿌린다.

그제야 장녀는 상황의 파악을 마치고, 지금껏 해왔던 방식으로 위험에 대응하려한다.


"와타시의 동생을 놓으라는 데스! 지금 당장 쳐죽여버리는 데샤아아아아-"


장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맹구에게 돌진하고,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암흑으로 변해버린 시야에 어리둥절한다.


"헤우-?"


움푹 패인 얼굴을 한 장녀가 땅바닥에 쓰러져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무리하는동안 맹구는 질겅이던 장녀의 낯짝이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인지 이내 뱉어버린다.


"맹구~ 거기서 뭐해 가자~"


주인의 부름에 맹구는 귀를 쫑긋인다.

그리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핥으며 길게 늘어진 자동 리드줄과 함께 다시 덤불을 넘어 주인에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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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는 삼녀의 어리석음으로인해 죽음을 스스로 벌었다고,

억울함이 덜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공원의 실장석들엔 불합리한 죽음이 근처를 맴돈다.


『『『컹! 컹컹! 컹컹!』』』


"빨강! 파랑! 보라! 가!"


교외 어딘가의 한적한 공원.

더 넓은 공원이지만 사람의 기척은 거의 없는 곳을 세 마리의 잭 러셀 테리어들이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정적을 가르며 달린다.

지금도 세계의 어딘가에선 현역 사냥견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잭 러셀 테리어들은 크지 않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사냥본능으로 굉장히 높은 사육 난이도를 자랑한다.

이 세 마리의 견주 역시 일곱 마리에 달하는 새끼들 중 네 마리를 분양보내고 훈련소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음에도 세 마리의 활동량을 감당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적이 드문 교외의 공원에서 세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풀어준 것이,

견주에겐 어깨의 짐을 더는 것의... 공원의 들실장들에겐 매일매일 지옥같은 나날의 시작이었다.


"자들! 마마의 뒤로 모여 서는데스!

절대로 흩어지면 안되는데스!"


"""""테히익… 챠아아아!"""""


한 손에 젓가락을, 다른 손엔 컵라면의 플라스틱 왕뚜껑을 든 들실장이 등뒤의 새끼들을 감싸며 주변을 경계하고있다.

세 마리는 고개를 낮추고 들실장을 포위한채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상황을 살핀다.

어지간한 들실장이라면 눈앞에 닥친 위험으로 공포에 질려 위석을 자괴하든 팬티를 똥으로 부풀리며 전의를 상실하든 할 상황이지만 들실장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듯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다.


공원의 터줏대감을 뽑는다고 하면 후보에 오를 정도로 들실장은 이 공원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리고 들실장은 자신을 위협하는 수많은 적 -같은 들실장, 들개, 길고양이, 새 등- 을 상대해야했다.

이 들실장이 그 과정에서 쌓아온, 위협적인 적과 대적하는 방법이 바로 이 것.

창과 방패.

허리를 숙이고 왼 손을 내밀어 손에 쥔 왕뚜껑으로 적의 시야와 공격 범위를 좁히고,

상대의 빈틈이 보이면 시야의 사각인 왕뚜껑의 뒤에서 적의 급소를 향해 꼬나쥔 젓가락을 세게 찔러넣는 것.

들실장은 이 방법으로 수많은 적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이날도 어디선가 가까워오는 흥분한 울음소리와 발소리에 들실장은 비닐봉지에서 무장을 꺼내들었고

상대의 덩치가 그렇게 크지 않음에 조금 안심하며 세 방향을 향해 방패와 창을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올 테면 와바랏데샤앗!"


"마마 힘내테치잇!!"

"마마 저녀석 옆구리가 빈테치!"

"날려버리는테치!"


3대1,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이지만 들실장은 물러서지 않는다.

이윽고 빨강이 왼쪽에서 덤벼들자 방패를 내밀어 빨강의 코를 때려서 격퇴하고,

동시에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오른쪽의 파랑에게 창을 휘둘려 견제한다.

와중에도 의식의 일부는 빈틈없이 정면의 보라에게 할당하고있다.


『낑!』


"좋은테칫!"

"그대로 밀고나가테치!"


빨강이 한 걸음 물러서고, 나머지 두 마리도 컹컹 짖어대지만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다.

홈그라운드의 일방적인 응원을 힘입은 들실장은 창으로 방패를 탕탕 떄리며 포효한다.


"죽기 싫으면 썩 꺼지는데샤아앗!"


초전의 기선을 내준 빨강은 신중히 상황을 살핀다.

그리고 몸을 최대한 낮추고, 번개같이 들실장의 뒤로 접근해 자실장 중 한 마리의 머리에 이빨을 박아넣는다.


"테캬아아-!"


"데잇! 차녀!"


들실장은 급하게 뒤를 돌아 젓가락으로 빨강을 노려 힘껏 찌른다.

하지만 빨강은 잽싸게 몸을 틀고 빠져나가, 젓가락은 빨강의 옆구리에 작은 흉터를 남길 뿐이다.

그리고 찌르기의 큰 동작으로 생긴 빈틈을 파랑과 보라는 놓치지 않는다.


"데갸앗! 와타시의 팔이…!"


들실장이 내지른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보라가 순식간에 들실장의 젓가락을 쥔 오른팔로 쇄도한다.

들실장이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젓가락을 놓치자 파랑이 들실장의 다리 한 쪽을 물고 당겨 늘어진다.


"데갸아아아-! 놓는데스-!"


순식간에 기동력과 공격력이 무력화된 들실장은 움직이는 고깃덩이일 뿐.

남은 팔과 다리를 흔들어 저항하려고 하지만 파랑과 보라에게 어떤 데미지도 입히지 못한다.

그리고 그 무력한 들실장의 목줄기에 빨강의 엄니가 꽂힌다.


"데피잇… 햐앗… 갸아아…"


"마마아악-!"


"도망치는테칫, 일가실각테챠악-!"


목 동맥에서 피가 뿜어져나오며 들실장의 눈동자는 빠르게 빛을 잃는다.

피거품을 토하며 벌려진 입에선 곧 비명도 잦아들고,

마지막까지 세 마리를 탁탁 떄리던 팔도 땅바닥에 털썩 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목표의 제압을 확인한 빨강은 그대로 턱에 힘을 주고 주인을 향해 달린다.

파랑과 보라는 보호자를 잃고 공포로 새하얗게 질려 흩어지는 자실장들을 향한다.


『그래, 그래 잘했다. 고생했어.

성체 한 마리에 자실장 다섯 마린가, 많이 잡았구만.

그래도 아직 모자라지?

좋아, 빨강! 파랑! 보라! 다시 가!』


어느 날 견주가 세 마리를 공원에 자유롭게 풀어놓아줬을 때,

견주는 자신이 옆에서 목줄을 잡고 암만 같이 걷고 달리는 것보다

세 마리가 알아서 뛰어다니며 공원의 들실장들을 사냥하는 것이 세 마리의 활동량을 감당하는데 더 효율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날부터 공원의 들실장들은 세 마리가 우다다 뛰어다니며 동족의 비명이 울리고,

다시 동족을 입에 문 채 우다다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엔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숨죽여야 했다.

세 마리가 하루에 일가 이상을 실각시키면서 공원의 들실장 개체수는 빠르게 줄어갔다.

하지만 주인은 더 깊이, 더 멀리 숨은 들실장을 찾느라 세 마리가 공원을 더 샅샅이 뒤지는 것에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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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온한 휴식을 위해 찾는 공원에서 대놓고 유혈이 낭자한 사냥판이 열리는 게 여러모로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에 따라 외출시 목줄 의무화, 대형견의 입마개 의무화, 공원에서 적극적인 사냥행위에 대한 벌금 등 관련 법의 제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들실장들이 애견과 충돌하며 일어나는 여러 '사고'와 그로인한 들실장들의 피해에 대해선 책임범위나 소재가 애매해 규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들실장들의 처우는 여전히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었다.


공원의 들실장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머나먼 인간들의 건물에서 정해지고 있다는 걸 알 방도가 없었다.

일부 분충들은 아직 오지 않은 파멸과 자신의 생존이 행운이 아닌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경쟁자인 동족들이 죽어가는 걸 내심 좋아하며 그대로 공원에 남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다수의 들실장들은 공원이 더 이상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천적들이 횡행하는 공원을 떠나 아예 반려견들과, 반려견들을 몰고오는 인간과 영역을 겹치지 않도록 산으로 들로 머나먼 이주를 선택했다.


"데휴우… 이정도라면 꽤 좋은 곳이 아닌가 싶은데스.

오늘 밤은 모두 여기서 쉬면서 주변을 탐색해보는데스"


"알겠는데스, 보스 상"


국도를 따라가면 나오는 으슥한 산골짜기의 어느 곳에서 네 마리의 성체 들실장과 몇 안남은 자실장들이 짧은 행렬을 만들고있다.

이들은 친자나 자매도 아니다.

그저 출신의 공원에서 이주의 뜻을 함께하기로 한 난민들이다.

편의점 봉투에 수건, 먹이 등 피난을 위한 짐을 잔뜩 챙겨 짊어진 성체부터

최대한 짐을 나눠지기 위해 작은 쿠키조각들을 양손에 든 자실장들까지

종일 계속된 여정으로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공원을 출발하는 시점에선 이보다 훨씬 머릿수가 많았다.

지나가는 화물차까지 그 빽빽한 행렬을 보고 멀리서부터 브레이크를 밟을만큼이었던 수는

고양이, 담비, 부엉이 등 야생의 포식자들에 밤중에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당하기도 하고,

길을 잘못들었다가 멧돼지의 눈에 띄어 정면으로 달려온 멧돼지에 8톤트럭에 치이듯 박살나 산산조각이 나버리기도 하고,

여정을 계속할만큼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 중간에 낙오되거나 남아있기를 선택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게해서 여기까지 남은 그들은 그동안 함께한 곁에 있는 서로를 가족보다도 더 끈끈하게 여기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여정도 어느새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무리를 이끄는 3대 보스(선대들은 모두 여정의 중간에 희생되었다)는 자신이 보기에 물도 풍부하고, 천적의 흔적도 없고 먹이로 삼을 것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보스의 지시에 무리는 비닐봉지에서 수건을 꺼내 바닥에 깔고 겨우 지친 몸을 눕힌다.


하지만 그런 곳에 주인이 없을 리 없다.

네 마리가 근처 개울물에서 물을 떠와 가져온 보존식과 함께 초라한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 때,

수풀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흙투성이 실장석이 나타났다.

녀석의 머리칼은 먼지와 낙엽으로 엉망진창에 옷도 누더기, 피부는 주름마다 까맣게 떄가 탄… 전형적인 산실장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신데스우♪ 당신들은 닌겐상들의 도시에서 온 사육실장 분들인데스?"


"뎃?"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생각한 곳에서 선주민을 만나자 이주실장들의 사이에선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데… 사육… 같은 건 아닌데스.

우리는 닌겐의 공원에서 도망쳐나온 들실장데스"


"아하, 그랬던데스♪ 와타시는 저쪽 산의 마을에 살고있는데스.

이렇게 공원에서 온 멋진 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반가운데스♪"


그것이 인간이든 다른 짐승이든 종에 관계 없이 낯선 이방인은 꺼리게 마련이다.

이는 들실장인 네 마리도 알고있고, 상대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기나긴 핍박과 이주로 피로에 절은 그들은 이제와서 정체도 모르고 몇마린지도 알 수 없는 원주민 산실장들과 보금자리를 두고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며칠만이라도 이곳에 머무르며 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들실장들.

그때 마침 자신들을 향해 살갑게 구는 산실장의 모습에 들실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씩 경계를 늦추었다.


"만나서 반가운데스 산의 친구상.

데에… 초면에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우리가 이곳에서 좀 쉬어도 괜찮은데스?

폐 끼치지 않고 좀 쉬다가 가급적 빠르게 떠날테니 허락해주면 고마운데스"


"떠난다니,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인데스?

우리는 새로운 친구는 언제든 환영인데스♪

자, 그런 곳에 있지 말고 우리 마을로 오는데스♪

오늘은 마을의 모두와 당신들을 맞이하는 잔치를 여는데스♪"


산실장의 말에 들실장들은 반색하여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산실장 마을의 일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또는 여의치 않다면 지친 몸을 쉬다가 새로운 낙원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날 수도 있겠다.

들실장들은 산실장을 따라 깊은 산 으슥한 곳에 있는 산실장 마을을 향했다.


"촌장 상! 데려온데스!"


"오우! 듣던대로 건강하고… 좋아 보이는 데스!

어서들 오는데스, 데프프프"


"데에… 촌장상, 초면에 이렇게 환대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스우…"


"데프프프, 그런 말 하지 마는데스 친구상.

산에서는 모두가 서로 돕고 도움받는데스.

당신들도 우리의 도움이 될 것인데스.

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을 것이니,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푹 쉬는데스!"


"감사한데스… 오로롱…"


들실장들은 산실장들의 굴 한가운데 있는 공터에서 산실장들이 날라오는 나무열매, 나물 등의 먹이를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비록 산의 거친 음식은 들실장들의 입에 맞진 않았지만,

개의 울음 소리나 동료의 비명 소리 없이 안전하게 식사를 대접받는 것만으로도 들실장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간만에 배도 부르고 안심한 들자실장들이 한마리씩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촌장은 들실장들에게 각자의 굴로 들어가 쉴 것을 권한다.


"데프프프, 배를 채우자마자 잠들다니 어린 것이 그간 고생 많았던 모양데스.

그럼 그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는데스, 내일부턴 당신들에게 도움받는데스"


"오로롱…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는데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는데스… 와타시가 어떻게 해서든 노력하는데스… Zzz…"



다음 날.

들실장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문득 잠에서 깨 눈을 뜬다.

그리고 피부에 맞닿는 쌀쌀함에 산의 추위란 이런 것인가 하며 이불로 삼는 수건을 끌어올린다.아니, 끌어올리려 했다.


"데…??"


팔이 움직이는 감각이 없자 들실장은 고개를 들어 몸을 내려다보고, 이내 경악한다.

눈 앞엔 팔 다리가 없는, 자신의 알몸의 몸뚱아리뿐이었다.


"데, 데, 데, 데-"


"일어난데스 공원의 친구상?"


"데, 촌, 촌장상, 이게 대체-"


촌장은 독라의 오뚜기가 된 들실장의 옆에서 뭔가를 바스락거린다.

시시각각 불안과 초조함이 덮쳐오는 들실장이 참지 못하고 대답을 재촉하기 위해 소리치려는 찰나,

촌장이 독라의 눈앞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내민다.


"뎃-"


"너희들은, 골칫거리인데스"


"데…?"


촌장과 마을의 산실장들은 과거 실장석 유행의 황혼기에 번식장에서 도망친 것들 중 야생의 적응에 성공한 종실장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걸쳐 자연과 조화되도록 노력했고 많은 산실장 마을이 멸망을 맞이했지만 또 많은 산실장 마을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조용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최근의 애견 붐이 초래한 들실장들의 이주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떠도는 모습이 불쌍해서 마을에 들여보내 줬더니 마을의 보존식 창고를 텅텅 비워대는 것도 모자라,

콘페이토를 내와라 세레브한 자신과 자를 위한 캐노피 달린 침대를 준비해라 등 무리한 요구를 하더니

급기야는 들실장끼리 뭉쳐서 힘으로 겁박하며 산실장들을 노예로 부리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 산실장 마을 또한 형편은 다르지 않아, 떠돌이 들실장들의 집단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만 벌써 몇차례나 되었다.

결국 마을은 겉으론 떠돌이들을 받아들이는 척 환영하고

그들이 배불리 먹고 깊이 잠에 들면 옷과 머리를 뺴앗고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 전통처럼 굳어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인데스.

너희같은 것들은 어디서 갑자기 몰려와서는 밥 내놔라 간식 내놔라.

우리가 살기에도 빠듯한데, 남는 게 있다면 자들에게 먹이지 왜 너희한테 줘야하는데스?"


"우리는 밥을 원해서 온 게 아닌데스!

그저… 우리가 지낼 곳을 찾아서 떠돌고 있었던데슷!

당신들이 곤란하다고 이야기했다면 우린 알아서 떠났을 것인데스!"


"다들 그렇게 말을 하는데스.

곧 떠날 거라고 이야기 하면서 마을의 일을 돕지도 않고 마을의 일원이 되려하지도 않는데스.

그러면서도 맛나맛나한 밥과 포근한 잠자리는 꼬박꼬박 요구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데스?"


"데이익…-"


마음 속 혼란, 공포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억울함과 분노에 들실장은 입을 열어 항변하려한다.

하지만 들실장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촌장의 표정…

같은 실장석 동료를 바라보는 표정이 아닌,

공원의 분충들이 버려진 사육실장을 발견하고 띄우는 표정을 한 촌장의 들뜬 얼굴에 들실장은 혀가 굳는다.

이미 자신과 촌장 사이에 나눌 이야기는 없고 자신의 운명은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다.


"우린... 도움이 될 거였는데스…

어젯밤 밥을 나눠받았을 떄부터 우리는… 반드시 은혜를…"


"데프프, 걱정하지 마는데스,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은데스.

너희들의 옷과 털은 분명 돌아오는 겨울에 도움이 될 거인데스.

너희들이 낳을 자들 또한 새로운 자판기들이 지낼 굴을 팔 훌륭한 일꾼으로,

일꾼이 되지 못하는 자는 훌륭한 보존식으로 도움받을 것인데스 데프프프.

그러면 부디 노력해달라는데스"


"데갸아아아-!!"


말을 마친 촌장은 버둥대는 들실장을 즈려밟고 유리조각을 들실장의 녹색 눈 위에 긋는다.

그렇게 인간에게서 쫓겨나고 같은 동족에게서도 거부당한 또 하나의 들실장 무리의 미래는 흔해빠진 끝을 고한다.



한때 실장석들은 인간의 곁에서 전에 없던 황금기를 맞으며 번성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극소수의 애호파들을 제외한 인간의 곁에서 추방당했다.

버림받은 실장석들의 겨울은 어느 떄보다도 더 추울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실장석들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언젠가 세상을 자로 가득 채우는 세레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의 봄은 너무나도 멀어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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