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편 실장석 참피 소설 대한민국판 실장석의 일상 뉴월드 12화 - 절망뿐인 미래(완결)
[마마, 옛날 이야기 해 주는 테치]
달빛이 어렴풋이 비추는 토굴 안, 자실장 하나가 잠이 오지 않는지, 우지챠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친실장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친실장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프프, 알겠는 데스 차녀, 와타시타치 실장석들은 먼 옜날에 이 세상을 지배했던 데스, 그때는 닌겐도 있었고, 파란 분충이나 빨간 분충, 검은 분충도 있었던 데스, 그것들은 모두 와타시타치의 노예였던 데스.]
[테햐아~] [대단한 레후~]
프니프니를 받은 뒤 자고 있던 우지챠도 일어나 친실장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자실장과 우지챠는 계속되는 친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닌겐 노예들과 분충들은 매일 와타시타치들에게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를 바친 데스, 지금처럼 직접 찾아낼 이유가 없었던 데스, 하지만 닌겐들과 분충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데스.]
[테에? 왜 사라져버린 테치?]
[그건 마마도 모르는 데스, 마마도 마마의 마마에게 들은 이야기인 데스~ 그럼 이제 자는 데스~ 내일은 장녀가 오는 날인 데스, 장녀를 만나려면 일찍 자야하는 데스요?]
[알겠는 테치!] [우지챠도 큰오네챠가 보고싶은 레후!]
우지챠와 차녀는 토굴의 구석으로 가 잠을 청했다, 친실장-초록잎-은 쥐의 가죽으로 만든 이불을 그들에게 덮어주고 토굴 밖으로 나갔다. 초록잎은 수많은 별들과 커다란 달이 빛나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장녀를 만나는건 오랜만인 데스, 장녀는 이 공원의 보배인 데스.]
초록잎은 수많은 실장석들이 살고 있는 숲속 ‘공원’의 장로다. 얼마 전 중실장이 된 초록잎의 장녀는 차기 장로 후보로서 다른 ‘공원’ 들과 교류하거나, 많은 동료들을 이끌고 나가 스테이크의 재료가 될 작은 동물들, 콘페이토의 재료가 될 달콤한 열매들을 수집해오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별님 와타시의 소원들 들어주시는 데스. 장녀가 무사히 자라 와타시의 이름을 이어받은 위대한 실장이 되게 해주시는 데스.]
초록잎의 소원을 듣기라도 한 듯, 그날 밤 별들은 다른 때 보다 훨씬 밝게 빛났다.
다음 날 아침, 초록잎은 많은 성체실장들을 이끌고 ‘공원’의 입구로 나갔다. 장녀가 이끄는 원정대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언제 오는 데스?]
[원정대가 이렇게 늦는 건 처음인 데스.]
그들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기다렸으나, 원정대는 오지 않았다. 보통 원정대는 해가 밝아오는 새벽에 ‘공원’에 도착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는데스..]
[장로상! 저기보는 데스! 왕발인데스!]
초록잎이 공원의 입구 쪽을 보자, 왼쪽 발보다 오른쪽 발이 더 큰 성체실장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에다가 왼쪽 팔까지 잘려나가 버린 왕발은 얼마 걸어오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데에에! 큰일인데스!]
초록잎과 다른 성체실장들은 입구 쪽으로 뛰어가 쓰러진 왕발을 안아들었다. 몇몇은 상처에 바르는 약초를 찾기 위해 보존식을 모아 둔 토굴로 들어갔다.
[왕발! 정신차리는 데스! 와타시의 장녀! 장녀는 어떻게 된 데스!!!]
[죄송한데스.. 장로상의 장녀는 죽은 데스.. 괴물이 장녀를 죽인 데에...스.. 터져버린 데스... 데에..]
파킨-
왕발은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파킨해서 죽고 말았다. 하지만 초록잎에게 왕발의 죽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끼던 장녀의 죽음. 초록잎은 당장에라도 주저앉아 오열하고 싶었으나, 자신은 이 ‘공원’의 장로, 그런 모습을 모두의 앞에서 보일 수는 없었다. 초록잎은 애써 슬픔을 감추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와타시의 보검과 갑옷을 가져오는데스.. 당장 가져오는 데샤아아악!!!!]
*****
[장로사마.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않겠는 데스?]
[오마에, 와타시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데스? 혼자서 찍찍씨 3마리도 잡는 초록잎인 데스, 걱정 말고 기다리는 데스, 와타시가 장녀와 동료들을 죽인 괴물을 반드시 죽이고 돌아오겠는 데스!]
[[[알겠는 데스 장로사마!!]]]
초록잎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고 ‘공원’을 나섰다. 녹이 좀 슬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보검과 분충들의 옷과 질긴 풀로 만든 갑옷으로 무장했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공원’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초록잎을 덮쳤다. 하지만 초록잎은 죽은 자신의 장녀, 그리고 동료들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데에.. 데에....]
얼마간 걷자, 숲속 어딘가에서 성체실장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초록잎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신음소리가 들려오던 방향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성체실장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 성체실장은 한쪽 귀가 없었다.
[한쪽귀인 데스!]
장녀와 함께 나갔던 자신의 오른팔, 한쪽귀가 분명했다. 초록잎은 한쪽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쪽귀! 정신차리는 데스! 와타시가 온 데스!]
한쪽 귀의 상태는 처참했다. 두 눈은 터져버렸고, 팔 다리는 여기저기가 찢어져 뼈가 훤히 보일 정도였으며, 총구에서는 분대의 일부가 튀어나와 있었다.
[장로상.... 저 앞으로 가면 안되는 데스.. 피하는 데스, 어서 피하는 데스...]
파킨-
초록잎은 경고를 남기고 죽은 한쪽귀의 시체를 뒤로 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장녀는 물론이고, 동료들을 죽인 놈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쪽귀.. 오마에의 복수는 와타시가 반드시 해주겠는 데스.]
한쪽귀가 가면 안 된다고 했던 방향으로 걸어가자, 초록잎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새하얀 몸을 가진 그것은, 마마의 마마의 마마에게서부터 전해져오던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다. 초록잎은 겁에 질려 잠시 수풀 속에 숨었으나, 곧 장녀와 동료들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용감하게 뛰쳐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마에가 죽인 장녀와 동료들의 복수를 하러 온 데스! 정체를 밝히는 데스!]
-나는 너희가 인간이라고 불렀던 존재들 중 하나이다, 이제는 인간의 육체를 초월해, 너희의 두뇌로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시공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얀 형체는 마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로 답했다. 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체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초록잎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저것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장녀를 죽인 놈이니, 잡아서 노예로 만들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데프프프프.. 닌겐이라고 한 데스? 닌겐은 와타시타치의 노예였던 데스! 쓸모없는 노에들이라 모두 죽여 잡아먹었다고 마마가 말해줬던 데스! 오마에 같은 노예 닌겐 따위가 와타시의 자를 죽인 데스? 그 대가는 제대로 치르게 해 주겠는 데스! 독라달마 출산노예로 만들어 죽여 달라고 말하게 만들겠는 데스!]
초록잎이 네 발로 땅을 짚고 위협자세를 취하며 큰 소리로 하얀 형체를 죽여 버리겠다며 온갖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지만, 형체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땅 위에서 흘러가듯 움직이며 초록잎에게 다가갔다.
-진실을 깨달아라, 너희는 인간을 노예로 부린 적이 없다. 너희에게는 인간을 죽일 힘도 없다. 오히려 너희가 인간의 노예였으며,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리씩 죽어나갔던 길가의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들이었음을.
[거짓말하지 마는데스! 와타시는 고귀하고 세레브한 실장인데스! 와타시타치들 실장석만큼 위대하고 고귀한 것은 없는 데샤악! 당장 와타시타치의 공원에서 꺼지는데스!]
초록잎은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로 하얀 형체를 위협했으나, 오히려 형체는 아무것도 없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공원이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로구나, 너희는 여전히 너희들이 사는 땅을 공원이라고 부르고 있구나, 5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너희는 여전하구나.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데스? 당장 머리카락과 옷을 바치고 도게자하는데스!]
-네놈들은 너무나도 멍청하고 미개했기 때문에 선택되지 못했다. 500년이라는 너희 열등한 종족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진화는커녕,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너희의 형제와 같았던 다른 실석류들은 이미 인간과 같은 몸을 얻어, 너희와는 차원이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말이다.
하얀 형체가 크게 손짓하자, 초록잎의 배가 깨끗하게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초록색의 위석이 빠져나왔다. 초록잎은 위석을 다시 되찾기 위해 팔을 뻗으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갈라진 부위는 순식간에 치유되고, 빼앗긴 위석은 하얀 형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너희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마. 자, 이제 보아라. 진실을 부정하지 마라. 거부하지 마라. 직접 보고 깨달아라. 너희 종족의 덧없음을, 너희 종족의 미개함을, 너희 종족이 맞이하게 될, 끝없는 지옥을.
그 순간, 초록잎의 눈앞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인간들이 지배하던 시절의 지구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동족들이 살던 공원, 지금 자신들이 사는 숲속의 공터나 들판 같은 곳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수풀 속에 잘 숨겨진 갈색의 상자, 초록잎은 그것이 골판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석 깊숙한 곳에 새겨진 정보 덕분이었다.
[테츄웅~]
[오마에 똥닌겐! 와타시에게 스시와 스테이크를 바치는 데스! 그리고 귀여운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을 사육실장으로 할 권리도 주겠는 데스!]
초록잎이 보고 있던 공원의 한복판에서, 하얀 옷을 입은 인간 앞에 자들을 데리고 나와 자신을 키우라고 말하며 화내고 있는 성체실장 한 마리가 보였다. 초록잎은 당연히 하얀 닌겐이 그 성체실장을 데리고 가서 키워주고 스시와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노예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다음에 이어진 하얀 닌겐의 행동은 초록잎의 꿈과 희망을 박살내 버렸다.
[오마에! 와타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데스? 와타시를 기를 권! 데뵤옥!]
[테에에에! 마마! 지벳!]
닌겐이 몽둥이 같은 것을 들어 친실장의 머리를 박살내버리고, 옆에 있던 자실장을 밟아 터트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파란 분충이 남은 자실장들을 가위로 썰어버리는, 대학살이 펼쳐졌다.
[파란 분충인 테치! 마마아아아! 테뵤옥!]
[주인사마! 분충들은 와타시가 처리한 보쿠!]
“잘했어. 그럼 다음 분충들도 찾아서 처리하자.”
초록잎은 아이들이 학살당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업신여겼던, 다른 실석류들이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 보여주는 데스! 더 보기 싫은 데스으으으!!]
초록잎이 그만두라고 애원했으나, 환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독라가 되어버린 수많은 성체실장들이 무언가에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성체실장들은 모두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끊임없이 자실장들을 낳고 있었다.
[텟테레- 텟테레-]
갓 태어난 자실장들은 움직이는 바닥 위로 떨어져 탄생의 기쁨을 노래하다가, 곧 주변에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마마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테에챠아아아아아!!! 마마!! 마마아아아!!]
[마마가 없는테치!!!!]
곧 자실장들은 움직이는 바닥의 끝에 위치한, 적록의 액체가 곳곳에 묻어 있는 기분 나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
[테챠아아아!!! 죽기 싫은 테치! 죽기싫은테챠아아!]
[마마아아아-]
누구도 자실장들의 살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데에엑!! 데챠아아아아아아!!!! 거짓말! 모두 거짓말인데스! 거짓말인데샤아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초록잎은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당장 위석이 깨져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하얀 형체의 손에 있는 위석은 작은 금조차 가지 않고 여전히 탁한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테챠아아아아아아-]
바닥을 구르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두 눈을 쑤시고 귀를 찢어도 형체가 보여주는 환상은 멈추지 않았다. 행복회로도, 자위로 인한 현실도피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받아들여라. 너희의 과거와, 너희의 현재, 그리고 너희가 맞이하게 될, 절망만이 존재하는 미래를.
[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레에엥.. 마마는 언제 오는 레후?]
[삼녀가 착한 자로 있으면 금방 돌아오는 테치~]
토굴 안에서, 차녀 자실장과 삼녀 우지챠가 친실장인 초록잎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달과 별들이 하늘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초록잎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차녀와 삼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친실장을 기다렸다.
[오네챠, 우지챠 별씨들이 보고싶은 레후~]
[알겠는 테치!]
삼녀 우지챠가 별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차녀는 삼녀를 안아 들고 토굴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갔다. 나뭇가지들로 조잡하게 만든 문을 열고 토굴 바깥으로 나가자,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무슨 일인 테치?]
토굴 바깥의 풍경은 평소와는 달랐다. 많은 성체실장들과 자실장들이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겁에 질려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오네챠.. 별씨들이 무서운 레후.. 너무 무서운 레후..]
차녀는 삼녀 우지챠의 말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은은한 빛을 비추던 달과 별들이, 이제는 기분 나쁘고 공포마저 느껴지는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들뿐만 아니라, 나무와 풀들, 그리고 작은 날벌레들, 심지어 공원 중앙에서 고기를 굽던 모닥불까지도 자신들에 대한 적대감을 뿜어대고 있었다.
차녀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누리던 삶, 그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졌음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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