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을 능가하는 인분충 범죄를 응징하는 소설 실석견문록 18화 - 실석견문록 (9) 실장석은 무엇일까? (하)

이 시리즈는 실장석 학대를 위한 내용보다는 실장석을 포함한 아종들의 이야기와 실장인을 비롯한 실석인류와 인간이 함께살아가는 세계관입니다.


이 세계관은 다른 실장석물에 비해 설정이 다소 다릅니다. 즉 실장석을학대하고 고통을 주는 위주의 실장석물이아닌 좀더 큰세계관과 세세한 설정들로 재설정된 인간들과 실석들의 세계관을 거의 한 인물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관찰위주의 스크입니다 흥미로울수 있으나 그렇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이 세계관은 대체역사물과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어 있으며 대체적으로는 다른스크에 비해 조금은 더 과학적 혹은 현실적이게나마 나오다가 판타지적인 느낌이나 말이안되는 설정도 가끔 나옵니다 역사적인물도 간혹 등장할수 있으며 실제역사3와는 다른 전개가 나올수 있으나 큰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간혹 분충,인분충의 추태의 이야기와 그런 부조리 이에 맞서는 선량한인간과 양충들의 에피소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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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석견문록 (9) 실장석은 데체 무엇일까? (하)


[카와네 유키하라의 실석 기록지 실장석의 현재실태]

인류사에서 기록된 실석들의역사의 기록은 많다 유럽의경우 실장석의 아종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도 상당하다.

실창석과 잔다르크, 프리드리히2세와 실등석, 아우구스투스와 실금석, 실홍석과 귀족의 예절교육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실장석의 역사와 기록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데 특히 실장석의 기원지인 일본에서 조차 관심이 없는지 아는사람도 매우 적다 심지어 한국인들보다 더더욱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실석tv에서 일하면서 얻은 지식과 실석학자와 실석류에 관련된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갼략하게나마 실장석의 역사를 서술해본다.





실장석의 기원은 전편에 소개했듯이 실원석에서 이어진 후손이다 하지만 무슨이유인지 다른실석류와 다르게 많은부분이 퇴화되어 지금의 분충이 되어버렸다.

실장석에 대한 인류의 기록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았다 이중 대부분은 일본이고 그 다음은 한국으로 많은기록이 존재한다.

인류는 실장석을 거의 어떻게 취급했까?

미스터조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말한 대사내용으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자 여러분 인류사에서 실장석은 주로 어떻게 쓰였는지 아시는분 있습니까?"

"에이 선생님 쉽잖아요! 학대! 실장석하면 학대!"

"아니 그런 귀여운걸 왜학대해욧!"

"그 똥벌레를 애호할리가..."

"미스터조선생님 실장석은 학대로 많이 쓰였죠?"

"다들 학대아니면 애완용 이야기군요 사실 둘다 맞지만 실장석은 오래전부터 주로 식용으로 쓰였습니다 정확히는 전투식량이 가장 비중이 컸죠."

"?!!!"



그렇다 실장석은 주로 식실장의 역사였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본은 고대때 실장석을 풍요의 신으로 숭배하던적은 있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식실장을 위주로 이어져왔다 가끔은 애완용으로 키워졌지만 대체적으로는 가축으로 사육해온것이다.

학대파가 원하는 실장석학대의 역사는 대략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찿아볼수는 있겠으나 실석학자들에겐 이건 딱히 큰 관심은 없고 자료도 쉽게 찿아볼수있다보니 학술적가치는 크지않다.

다만 실장석은 일본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유럽까지 퍼져나갔는데 자세하기 설명하기엔 너무 길다보니 세부적으로는 적을수가 없어서 지금은 간략한 역사설명과 현재의 실장석에 대한 실태를 적어보도록 할것이다.



[실장석의 간략한 연대기]


일본 죠몬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실장석형상의 토우. 학자들은 짓소토우로 명했으며 총 9개 정도가 발굴되었고 과거 실장석을 풍요의신으로 숭배되었음이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실장석학대파들의 알수없는 열폭으로 인하여 6개가 파손되어 일본의 귀중한 역사유물임에도 불구하고 남은3개는 한국, 독일,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다.







BC15세기~ BC10세기 혹은 BC3세기 일본죠몬시대

일본의 실장석숭배가 있었다 그 시대의 유물중 실장석의 유골이담긴 작은관과 실장석을위해 만들었던 각종 물건이 출토된점을 보아 숭배받거나 애지중지하였음이 드러난다 실장토우가 대표적인 유물이며 처음부터 학대하거나 실장석이 원래부터 분충성이 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수두룩하게 나오자 학대파들은 매우 불쾌해하는듯싶다.

학자들은 실장석의 분충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가 야요이시대 이후로 추정하고있으며 인간의 손에 의해 서서히 오르다가 최근들어 급격하게 올라간것으로 보여진다.


BC3세기 일본 야요이시대

실장석이 숭배받던 시기는 야요이시대가 시작되면서 끝이났다 한반도와 대륙에서 도래인들이 일본열도에 상륙하고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장석을 가축으로 삼았던 증거가 이때부터 나타났는데 아무레도 실장석이 새끼를 많이낳고 성체까지도 길지읺다보니 고기를 위한 가축으로써도 훌륭했기에 이렇게 되지않았나 싶다.

학대파들은 이 시대를 학대파의 시작이라 불리며 좋아한다지만 사실 일본 유적지들을 살펴보면 가축으로 쓰다가 실패한 흔적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보아 한정적으로 하지 않았나 싶다.




서기4~5세기 한국 삼국시대

신라의 내물왕시기에 일본과의 전쟁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사실 신라와 일본의 충돌은 신라의 건국시기때부터 계속이어져 왔었지만 특히 4~5세기때가 가장 심했다고한다 그리고 왜병들이 전투식량으로 사용하기위해 실장석을 데려왔는데 이때부터 한반도에 처음 기록되기 시작했다

추가로 신라사람들은 땅을 황폐화시키는 실장석을 처음 접하고는 경악하며 녹색의 돼지라는 뜻으로 녹저라 불렸다 농토가 오염되어 농민들의 고통이 심했다 전해지는 기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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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마립간 38년(393년) - 왜병들이 죽거나 도망치면서 남기고간 녹색의 기묘한 돼지는 두발로 걷고 기묘한 목소리를 내는게 심히 불쾌하게 느끼는이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이 배설하는 녹색의 배설물은 너무 지독한지 그자리에 풀한포기 자라지 않았으며 농토에 배설할시 치우기힘들고 농사가힘들어 고통받는 농민들이 많았다 기묘한것은 이 녹저가 새끼를 그렇게 많이 낳았어도 겨울이면 전부 죽고 없어지니 매우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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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음 왕부터는 실장석의 기록이 고려 말기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기껏 왜병들이 한반도에 데려왔으나 적응하지 못했거나 토종실석에의해 전멸된듯하다.




서기7~8세기 일본 아스카시대

일본에서 불교가 성행되기 시작하면서 육식이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류나 새고기는 육식금지에서 예외되었는데 실장석도 그 예외사항에 들어갔다고한다 본격적으로 실장석이 식용으로 활용되는 시기가 이때부터로 보인다.

이후로 1200년간 실장육의 기나긴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장석고기는 쉽게 부폐되기쉽고 취급이 한정적인탓에 그리 다양한 요리법은 나오지 않았다.






13~14세기 한국 여말선초 일본 무로마치시대

왜구의 준동으로 고려말기의 혼란기때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때도 역시 실장석을 데려왔는데 황산대첩때의 패배로 왜구와함께 궤멸을 당했다 이후 소수 살아남은 실장석은 조선 초기까지 살아남았으나 이후 행방이나 기록을 찿을수 없었던걸로 보아 세조시기때 완전히 사라진것같다 재미있는것은 조선초 세종대왕께서는 실장육을 한때 즐겼으나 즉위된지 5년째되는해 부터는 실장육을 금지시키고 더이상 안먹었다고하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카오스실장으로 추정되는 실장석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국책을 논하는 기록이 있었다.




15~16세기 포루투갈과 일본

서양의 대항해시대가 되면서 포르투갈이 일본에 도달하면서 서양문물이 최초로 일본에 전례되는 일이있었다 반대로 서양에 실장석이 최초로 상륙하는계기도 되었는데 이때부터 실장석이 세계로 퍼지는 발단이 되었다.

아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실장석이 좋아하는 콘페이토도 이때부터 들어왔는데 실장석의 3대 아마아마중에 이게 포함된건 이시기하고 연관이 있을까싶다.



16~17세기 한국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났었던 시대다 내가 한국사를 알게되면서 늘 느끼는거지만 역시나 왜구나 일본군들이 늘 그랬듯 실장석을 전투식량삼아 또 데려왔다... 하... 진짜 그만좀 대려가라... 이번에는 골때리게도 실장석의 운치의 불결함을 이용해 분충을 투척하여 조선군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이쯤되면 일본군이 실장석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후 조선군들은 실장석을 참혹한 가죽괴물이라는 뜻으로 참피라 칭했는데 이때부터 한국인들이 실장석을 칭하는 이름으로 계속 쓰이게 되었다.

그렇게 조선에 다시 나타난 실장석들은 왜란이후 계속 존속했지만 현종시기때부터 또다시 사라졌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경신대기근무렵에 식량을 구하기위해 실장석들을 잡아먹어 사라진것으로 추정하고있다 하지만 이후에 홀연히 실취석들이 한반도최초로 나타난 것으로 조선실록에도 나와있는것으로 보아 완전 전멸까진 가지는 않고 적응에는 성공한것으로 보인다.


학대파들은 실취석이 원시실장석이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반대다 원시실취석이 실장석이며 실취석의 역사는 다른 실석들에 비하여 상당히 짧은역사를 가졌고 한국,일본에동시에 출현했다 어떤이는 실장석이 이상한 퇴화현상없이 정상적으로 진화와 변화가 된모습이 실취석이 아닐까 라고 말하기도했다 현재 실취석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서식하며 나머지 극소수가 일본에서 서식하는데 아무레도 일본에서는 실취석을 환상종으로 분류할정도면 존재는 하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더럽게 나오기 힘든 환경인것같다.



17~18세기 조선,일본,유럽

최초로 실취석이 등장하고 조선의경우 실취석의 등장과 함깨 또다시 실장석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실취석이 등장하였다고한다 이후에도 아시아에서는 더이상 실장석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일본외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유럽에 실장석을 키우는 일이 조금씩늘어났다.












사라예보사건은 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19~20세기 세계

19세기쯤 와서 유럽에 세계최초의 실장붐이 나타났다 귀족들에의해 애호용으로 대대적으로 길러졌고 실장석의 개채수가 증가하였으나 1차세계대전이후 귀족들의 몰락으로 유럽의 실장석들도 같이 몰락했으며 극히일부만이 살아남아 일부지역애만 살아갔다 대표적인 생존실장석은 스코티시짓소와 돈실장이다.


한국역사의 최대의 치욕적인역사 경술국치의 시기였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암울한시기였으며 이때부터 한반도 실석생태계가 엉망이되어버린 계기가 되었다.

아시아의경우 조선이 일본에 강제로 합병당하면서 또다시 실장석들이 일본에의해 다시 나타났다 이때는 실장석들이 대량으로 한반도 전역에 퍼져나가버렸는데 한국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동안 약 2000만여마리로 늘어나는 말그대로 개판이였다 당시 일본은 개체수가 300만마리인것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조선에 실장석을 늘릴려고 작정했는지 잘보여주며 어떻게 어거지로 늘렸는지 분충문제로 고통받은 조선인들이 많았고 분충들의 낙원으로 불리며 그당시 일본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광복후 3년만에 30만마리로 감축되었다가 한국전때 자취를 감추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현재 까지의 한국과 일본]

(일본)


1960년대의 일본 2차세계대전 이후 폭망했음애도 냉전의 틈세와 한국전때의 특수를 노린덕분에 빠른발전을 할수있었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이후 빠른 전후복구와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실장석을 이용한 사업을 진행하였다 식용으로 주로 쓰였단 실장석을 에완용으로 키우기위해 실장개량사업을 진행시켰다 다만 야생의 산실장은 이미 메이지유신때부터 멸종되어 식육용으로 사육되는 실장석을 기본베이스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중 개량업자a는 실장붐이 언젠가 일어날것을 예측하였고 학대용실장석개조를 위해 분충성과 때려죽이고 고문을 당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않는 분충종을 개발하기에 나섰고 1990년대 실장붐이 터지자 대박을 쳤다.


실장개량업자a 그가 종적을 감추자 실장개량업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만약 그가 수장이되지 못하게 했거나 그의 개량이 실패했었다면 일본의 실장석의 분충성은 많이 달라졌을것이고 일본에 200만 학대파가 존재하지 않았을수도있다.

하지만 그의 독주와 학대파제일주의의 엇나간 사상으로 인해 실장사업의 다양성이 떨어지자 실장붐은 빠르게 식어버렸고 그가 개량한 분충종이 결국 피해를 키우기 시작하며 논란이 너무 커지면서 정부의 추궁과 견제가 그에게 향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책임을 회피하기위해 거액의돈을 가지고 잠적해버렸고 골때리게도 원종인 식실장들도 모종의 이유로 사라져버리자 실장개량사업은 기반을 잃어 완전히 망하고말았다.

이후 브리더들은 실장석사업 활성화를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소용없게도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심지어 분충화가 너무 올라버린 실장석은 안그래도 엄청난 번식력이 더 심각해지고 위석에 뒤죽박죽 세겨진 분충성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더더욱 심각해진것 때문에 탁아, 투분, 위생파괴등등 여러가지 해악을 끼치게 되었다.

1970년대 300만마리를 유지하던 실장석개체수는 2020년대에는 2억 3천만마리로 말도안되게 늘어났으며 일본동북부를 제외하면 일본열도 모든 지역은 실장석이 들끓는 분충지옥도가 되어버렸다.


현재 일본의 거리나 공원에도 실장석이 일으키는 기행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심각하다 탁아,투분,위생문제와 주택침입과 기물오염까지 다양하며 이미 양충화되어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한국과는 너무도 차이난다.


현재도 실장석문제는 아직도 심각하나 최근 미스터조의 일본방문과 그가 제시한 개선점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느리지만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2차세계대전이후 한국의 실석환경은 이주 엉망 그자체였다 일제의 수탈도 심각한데다가 2000만마리의 분충들이 한반도를 어지럽혔고 심지어 한국전이후로 산림과 생태계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이 세계관에서의 대한민국은 6.25전쟁의 피해는 현실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격동의시기에서 잘살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였고 악조건속에서도 경제향상과 파괴된자연을 복구하기위해 나무를심고 자연을 훼손하는 분충들을 소탕하는등의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분충들의 훼방에도 몇가지 기적으로 한반도자연과 실석환경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는데

실등석을 포함한 아종들이 한반도 유입으로 인해 한국산림에 해가되는 실장석분충과 해충들과 유해조수들의 제어가 가능해지면서 산림복구가 수월해졌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실장석의 양충화가 가속화되어 산실장에서 더더욱 양충화된 실장석들이 세대를 거치며 분충성을 스스로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멧참피의 등장이였으며 같은 실장석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개량으로 생태계에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토종실석과 실취석이 비무장지대나 깊은산속에서 나와 복귀하면서 제자리를 찿아갔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피땀도 작용했다 이들의 노력과 참여로 나무를 심고 가꾸었고 산림조성사업도 하며 시련을 이겨냈다 그렇게 대한민국 자연은 현재까지 지나며 해외에서는 유례없는 산림복원의 모범으로 보여졌으며 실석류들의 기여도 있었기에 매우 독특한 사례로 알려진다.

하지만 생태계와 자연과 별개로 한국의 실석업계와 그것에 관한 사회문제는 더 많은시련이 있었다 1990년대초 일본의 실장붐과 함께 대한민국도 실잠붐이 일어났는데 특히나 한국에서는 그 유행이 빨리꺼지며 학대위주의 붐이 일어났고 이로인한 광기의 시대가 펼쳐졌다 오죽하면 실장학대를 신앙으로 삼은 사이비종교와 학대파우월주의가 일본보다 심각하게 자리잡으면서 실장석학대의질은 더 지독했는데 양충이든 분충이든 학대가 진리가되어 피와 운치가 터져나가는게 일상이였다.


김철용의 검은위석은 전새계의 학대파들에게 유명하다 그의 전설적인 실석학대이후 수많은 학대파들이 양충이나 아종들만 골라 학대와 잔혹한 행위를 행하게 되었고 한국의 경우 피의공원사건의 원흉을 만들었다 광기의 시대가 끝나고 학대파의 암훅기가 진행중인 지금 극성학대파들은 그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으며 학대파들에게 신성모독자이자 사탄의재앙 그자체인 미스터조를 상대할수있는 유일한 인간이라 여긴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려는 시기 김철용이라는 학대파가 이룩한 검은위석의 전설이 시작되자 양충학대대란이 일어나 수많은 학대파들은 양충들 즉 개념있고 선량한 실장석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아종학대와 실장인을 향한 범죄도 늘어나 사회적 문제까지 도달하기에 이르었다 하지만 학대파종교의 성행과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힘이 없어 광란의 시기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혐한실석학자인 하난조겐지의 잘못된 흑발실장이론이 전세계에 퍼지자 한국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속출하기에 이르며 그가 퍼트린 혐한에 기초한 잘못된 실장석지식은 학대파의 광기에 불을 지펴 억울한 피해자가 나왔음에도 대책이 없었다.

2000년대초 결국 전국에서 피의공원사건이 벌어진다 이로인해 어마무시한 희생자가 일어났고 카오스실장의 등장에 대한민국전역이 들썩였다 당시 원인을 모르던 사람들은 애호파와 실장석,아종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끝이질 않았고 보복성 학대는 상황만 악화시켰다 그러나 미스터조라는 인물의 등장과 수많은 대책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문제는 간신히 해결을 보였고 양충학대와 학대파의 광기가 근본적인 원인임이 확인되자 학대파의 황금기는 2000년대 중반이후 끝이났다.

이후로도 실석에관한 사건사고는 계속되었고 실석과 실석인관련범죄를 전문적으로 해결할 특수기관이 필요하다 여겨진 대한민국 정부는 200x년 실석감시자를 창설한다.




2020년대 온갖사고와 시련끝에 대한민국은 나름의 경제대국과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로 거듭났다 그리고 각종 실석류사고와 학대파가 선망하는국가 1위였던 악명과 달리 실석들이 잘살아가는 국가3위이며 실석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가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분충과 극성학대파들은 광기의 시대동안 저지른 만행이 컸던탓일까?

분충들은 자연에서는 아종들과 양충화된 실장석들의 토벌작전에 죽어나가며 도심지에서는 점점더 살기 더 힘들어져 절멸된상태이며

인분충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광기의 시대때 버릇을 못버리고 만행을 저지르다가 경찰이나 감시자들에게 체포되기까지한다 지금순간에도 분충들과 인분충들의 절망적인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분충들과 인분충들은 사회와 자연에서 도태되어 사라지고있는 추세이다 과거 광기의시대와 실장붐의 황금기를 뒤로한체 역사는 계속 흐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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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석견문록 (9) 실장석은 데체 무엇일까? (하) 끝



검색능력이 잼병이라 적절한짤을 찿는데 힘들군요 삽화도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도중에 망한게 몇개나 되버려서 버리거나 스캐치로 때워버렸네요.

이번에는 대체역사물에 맞게 내용도 신경써봤고 관련된사진도 많이 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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