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참피가 고전문학에 나와 살아남는 길은 유사인간 생물체뿐인 소설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저실장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 뒤에서 레후-레후-하고 저실장의 울음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초록네 저실장(은 살집이 좋고 투실투실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저실장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레훗! 하고 면두를 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레훙! 하고 모가지를 물었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물릴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레삐, 레삣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물어 적녹의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초록네 저실장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초록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실장석 년이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금평당 조각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사육실장 나부랭이가 산책을 나왔으면 나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오마에! 오마에 혼자만 일하는 데스?”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 척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황차 망아지만한 실장석이 남 일하는 것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오마에 일하기 좋은 데스카?”

또는,

“데프프, 볼 때 마다 일만 하고 있는 닝겐 데스요.”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데프프 웃어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실장석이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옆으로 어슷하게 맨 가방으로 손을 넣더니 뭔가를 집어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금평당 세 개가 손에 쥐였다.

“오마에 집엔 이거 없는 데스카?”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오마에, 일제 콘페이토가 맛있는데스.”

“난 금평당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금평당을 도로 어깨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 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서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태껏 살찐 초록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적녹의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가방에 다시 집어넣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힁허케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주인집 어른이, ‘너 얼른 시집가야지?’하고 웃으면,

“신경 쓰지 마는데스. 갈 때 되면 어련히 가는데스요!”

  이렇게 받는 초록이였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실장석도 아니려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허리를 한번 모질게 후려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금평당을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오마에 집엔 이거 없는데스카’는 다 뭐냐. 그러잖아도 초록네 주인은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초록네 주인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달리면 주인집에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주인집 애완실장 근처에 어슬렁거리지 말라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혹여 주인집이 애지중지하는 초록이 몸이 상하는 날이면 주인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실장석이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나무를 한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저실장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 집에서 구더기를 잡나, 하고 주인집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 초록이년이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저실장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우지! 죽는데스, 죽는데스.” 

  요렇게 암팡스레 패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비단실도 못 뽑으라고 그 배때지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주인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 지게 막대기를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분충! 남의 구더기 실 못 뽑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초록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구더기 가지고 하듯이 또 죽는데스, 죽는데스,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저실장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너 보란 듯이 내 앞에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 들어가 사육실장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저실장이 맞을 적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나 후려칠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하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야, 이년아! 남의 구더기 아주 죽일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저실장을 내팽개친다.

“에이, 더러운데스! 더러운데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분충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니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 라고 하는 것은 저실장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찌똥을 찍 깔겼는데 그걸 본다면 실 만드는 집이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데스!”

“오마에! 오마에 배냇병신데스까?”

그만도 좋으련만,

“오마에! 오마에 파파상이 마라가 없다는 데스요?”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초록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데스데스 퍼붓는 것이다. 실장석 따위에게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마디 못 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치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초록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저실장을 들고 와서 우리 저실장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저실장은 썩 튼실하게 생기고 쌈이라면 자신 있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저실장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저실장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분충이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우리 저실장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저실장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저실장 똥과 섞은 후 주둥아리께로 들이밀고 먹여 보았다. 저실장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세는 용을 못 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들도록 사육장 속에다 가두어 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저실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초록이만 저희 울 안에서 공을 굴리고 노는지 혹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초록네 저실장이 노는 밭으로 가서 우리 저실장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구더기는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다. 멋지게 무는 바람에 우리 저실장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돌기만 꿈지럭꿈지럭 할 뿐으로 제법 한번 물어 보도 못 한다.

  그러나 한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상대의 꼬리를 물고 면두를 쪼았다. 초록네 저실장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저실장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무니 그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은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라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우지싸움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초록이도 입맛이 쓴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저실장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무는 서슬에 우리 저실장은 찔끔 못 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초록이가 데퍄퍄 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저실장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 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저실장을 반듯이 누이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고추장 물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이부었다. 저실장은 좀 괴로운지 레핏, 레핏 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는 나는 그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저실장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사육장에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할 분충이 필연 우리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사육장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저실장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분충의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초록이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레훼엥 하고 들리는 저실장의 비명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저실장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무 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저실장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저실장도 저실장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저실장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저실장은 푹 엎어진 채 돌기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지이!’하고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초록이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똥닝겐! 왜 남의 우지챠를 때려죽이는 데스?”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라고 한 데스까! 와타시의 주인사마 우지챠인데스!” 

하고 육중하게 다 큰 놈이 내 정강이를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초록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오마에 이 담부턴 안 그럴 것인 데스?” 

  하고 물을 때에 자존심은 상하지만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초록이년은 전에 본 데 없이 얼굴을 붉히고 몸을 배배 꼬더니 나에게 말한다.

“요 담부터 또 그래 보는데스, 와타시가 자꾸 못살게 굴 테니...다음번엔 이불 속에서 데스.”

“그래 그....뭐?”

“오마에...일 할 때마다 다 본 데스. 팔뚝도 종아리도 범강장달이 마냥 탄탄한 것이 와타시의 비리한 똥주인보다 더 맛깔나보이는 데스. 와타시의 장차 서방님은 오마에로 할 터이니 너무 빼지 않는 것이 좋은데스.”

  내 눈썹은 점점 위로 딸려 올라가며 8자를 그리고 지팡이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그러나 초록은 양 손을 뺨에 댄 채 눈까리를 꼭 감고 저만의 망상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눈치를 못 채는 모양이다.

“부끄러운데스....어째서 와타시의 마음을 몰라준 데스요?”

나는 고개를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낸다.

“우지챠 죽은 건 염려 마는데스. 와타시, 안 이를 테니...”

나는 고무신 신은 발로 마치 공떼기를 차듯 초록의 배때지를 퍽 하고 찬다.

얼마전 어머님이 장터에서 사오신 새 신이지만 몹시 화가난 나머지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 바람에 초록의 몸뚱이는 산비탈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살집 좋은 몸이 땅에 한 번 튈 때마다 모래와 돌멩이가 날리고 초록은 죽는 소리를 내었다.

“덱! 데엑! 데끄! 서방, 서방사마! 덱!”

  초록의 몸은 한참을 굴러 내려가더니 산비탈 아래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쳐박힌다.

주변을 살펴보니 산실장 일가가 보인다.

초록이 애초부터 닌겐의 눈길을 피해 나를 기다리고 일을 벌였을 터이니 당연지사로 제 무덤을 제가 판 격이 되어 버렸다.

초록이를 주워들고 근처 짱돌을 주워 앞발과 뒷발을 으깨버린 후

나는 그것을 주워 저 아래 산실장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훅 던져 버렸다.

"오로롱...오로롱...!"

"데프프픗! 데샤아! 데슷!!"

"테챠앗!!"

잔뜩 신이나 소리치는 산실장 일가들을 보며 허리를 펴면서 숨을 들이킨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동백꽃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초록아! 초록아! 요 분충년이 또 집안에 똥칠을 해 놓고 어디루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주인이 역정이 대단히 났다.

나는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신이 나 집으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