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란 제목의 실장석 참피 소설 평범한 학대파인 내가 귀가 길에 보통이 아닌 실장석을 탁아 당했습니다. 하편
녀석을 세면대에 몰아 넣고 5분 뒤에 꺼내준다고 했는데 그만 깜?☆빡.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우걱우걱 먹으면서 Tv보고 있으니 세월이 가는지 네월이 가는지 몰랐지 뭐람!
먹고 일어서서 치우려고 책상 정리하다가 아까 먹으라고 떨궈 놓은 치킨 조각을 보고서야 생각났거든.
학대하던 시절 기억을 되집어 보면 이 녀석들은 이 정도로 죽지 않으니까 느긋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녕..?"
[5분은... 옛저녁에.. 지난테치...]
문을 열자 그곳엔 내 허리보다 조금 위에 위치한 세면대에 다리를 꼬고 걸터 앉아 나를 노려보는 진이 있었다.
뭉툭한 다리를 대체 어떻게 꼰겨? 그보다 노려보는 눈빛이 워낙 싸늘해서 나도 모르게 멍청하게 인사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은 아직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옷도 몸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걸로 보아
바로 얼마전까지 세면대에 고인 물에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엄청 추웠겠는걸.
화장실은 특히나 보일러가 지나지도 앉아 타일이 바깥 온도보다 차가워지는 곳인데.
[....]
"치킨.... 남은거 먹자."
[알겠테치]
똥이라도 던져 올까 주의하며 살금살금 다가가 손바닥을 내밀자 능숙한 발걸음으로 올라 탄다.
적당한 무게감. 왜 이렇게 내가 잘해주고 있나 싶지만 의도치 않은 폭력을 행한 셈이니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런다~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화장실에서 나와 녀석을 책상에 수건 하나 깔아 그 위에 앉혀 놓고 식을대로 식은 치킨 한 조각을 앞에 놓아주었다.
물론 아까 녀석이 후후 불던 그 치킨이다. 녀석은 치킨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게 들리게끔 크게 입을 열었다.
[닌겡상. 이 치킨에 얽힌 스토오리를 아는테치?]
"뭔 소리여? 그리고 스토오리면 오리에 관한 얘기 아니니?"
녀석은 뭉클 솟아 오른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말을 이어갔다.
[졸라 재미 없는 농담인테치. 드립 실력에 눈물이 나버린테치]
"아 닥치고 뭔데"
[이 치킨에겐 겨우 3마리의 자식이 있던테치... 어미도 모른채 태어나자마자 좁은 레일 위에서
자신과 같은 병아리들 속에 뒤엉켜 생애 첫 각인를 병아리 성 감별사로 한 녀석인테치. 그렇게 어미라 믿는
닌겐 손 안에서 부끄럽게 성기를 보이고서 수컷이 아닌 암컷으로 판명되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공장을
나올 수 있었던테치. 그후론 닭장에 갇혀 계속 알만 낳은 테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갈수록 좁아지고
종국엔 목만 철장 밖으로 내밀고서 사료를 쪼아 먹게 되었지만 먹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간신히 버텨온 테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스트레스, 매일 낳지만 뒤로 돌아 볼 수 없는 자신의 알들. 결국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13개월 만에 폐사 판정을 받아 닭고기 가공육 공장으로 보내진테치. 그곳에서 참으로 즐겁게도
병아리 시절 때 잠깐 보고 헤어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테치.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재잘재잘 떠들기도 전에
목이 베이고 온몸의 털이 뽑혀나간테치. 무리한 산란으로 피부가 거칠어 닭털 뽑는 기계 속에서도
우당탕당 벽에 부딪혀 죽은 피가 고기에 맺힌테치. 하급 닭고기로 생을 마감한 이 치킨은 결국 동길이란 닌겐의
백속으로 한 끼 식사감이 되어 이 세상을 완전히 뜬 테치...]
"그래서 안 먹?"
[존먹, 존맛]
"그래."
감성 자극하려 이야기를 꾸민거야 실장치곤 대단하다만 겨우 그정도론 안된다구? 게다가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레퍼토린데. 완전 실장 가공육 공장 아니냐? 출산석 얘기인 줄. 그런데 듣고보니 닭이나
출산석이나 삶은 비슷하네요. 녀석의 말이 딱히 틀린건 또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닭들에게 쬐금 미안해졌다.
그렇다고 치킨 안 먹을건 아니지만 후후후...
그나저나 이 자식을 이제 어떻게 처분한담. 맘 같아선 오래간만에 학대파의 혼이 불사오를 정도로
학대하고 싶지만 그건 용돈 받던 대학생 시절에나 가능하던 소리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후에는
아까워서 학대 용품을 쓰지 않았다. 생활 속의 물건들로 학대하는 것도 만화나 소설로 볼때야 좋았지
실제로 해봐라. 숟가락으로 눈알 파버렸다간 다음 날부터 플라스틱 수저로 밥 먹어야 하는 찝찝함이 생기고
믹서기는 1회용품이냐? 절대 사용 금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목욕한다는 가정하에 줘패버리는건데
이건 그냥... 피곤해. 내일이 일요일인데 세상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쓰겠는가. 그냥 공원에 돌려 놓자.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려도 되지만 원룸의 창문은 쇠창살로 굳게 닫혀 있기 때문에 게다가 괜히 문 열어서
찬 바람 들어 오는 것도 싫다. 이래저래 핑계 대고 있지만 결국 귀찮으니 내일로 미루자~ 로 이미 마음이
굳혀져 있었다. 사람이 귀찮으면 바퀴벌레가 지나가도 '아~ 지나가네~' 하게 됩니다.
"얌마 조용히 하고 있으면 내일 공원으로 돌려줄테니까 가만히 있어라."
[공원테치?]
"그래 임마."
녀석은 마치 공원이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원이 뭐인테치?]
"니 집 임마."
[와따시는 임마가 아니라 진인테치.]
"진임마"
[임마 아닌테치. 진인테치]
"진마"
[아닌테츄아아아!!]
발광하는 녀석을 손으로 집어 올려 버리려고 놔뒀다가 한 3개월 묵은 먼지만 쌓인 냄비에 넣었다.
물론 수건 한 장도 깔아 줬다. 5장에 만원짜리 수건. 너무 얇아서 세면용으로 밖에 쓰질 못하는 애물단지 녀석.
망할 난 상술의 피해자야.
[이게 와따시의 집인테치? 좀 작은테치..]
"집 아냐 임마. 내일까지만 있다 너 나갈꺼라니까?"
[테겍. 와따시 버려지는테츄까? 거둬진지 아직 한 시간 정도 밖에 안된테치!]
"아 글쎄 기를 생각 없대두."
먹잇값이며 똥 처리며 기타 등등 온갖 비용을 계산해 볼 때 명백히 손해! 손해!
안 그래도 돈도 없어 죽겠는데 기를 수 있을리가?
[마음대로 하는테치! 흥테츄!]
녀석은 콧김을 세게 내뱉더니 이내 수건을 돌돌 말고서 누웠다. 어째 저리 능숙한겨.
학대도 안 할거고 애호도 안 할거다. 이내 잠들었는지 감긴 두 눈으로 조용히 숨을 내뱉는 녀석을
보고서 책상에 앉았다. 어휴.. 간만의 휴일인데 즐거운 손장난도 못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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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같은 원룸 공기가 코와 기도에서 사정 없이 수분을 징수해간 탓에 바짝 말라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냉장고 칸이 없어 바깥에 놔둔 물통 속 미지근한 물로 적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안 미지근해. 차가워.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서 자기 때문에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야 멀쩡하다만 으으으.. 이불 바깥으로 나가기 싫다.
발만 살짝 빼내봤는데도 얼어 디질것 같다. 머리 맡에 놓이 폰을 보니 평소 일 나가는 준비 시간에 맞춘 7시였다.
이래서 알바 인생이란... 이불 밖으로 나가려던 몸을 다시 머리 끝까지 말아 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크으.. 따뜻해... 그런데.. 뭔가 더 있는것 같은데 이불 속에.
[배 안 고픈테치?]
"아오! 씨발! 깜짝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배게 아래 누워서 날 올려다보는 진이 있었다. 진심 방금 심장 떨어질 뻔.
화들짝 놀라 이불을 확 걷히자 찬 공기가 애써 데운 이불과 내 몸에서 따스함을 앗아간다.
[테갹? 추운테치! 이불 다시 돌려 놓는테치!]
"너 임마! 어떻게 들어왔어!?"
냄비가 높인 곳은 부엌 씽크대. 그래봐야 내가 상체를 쭉 뻗으면 닿을 거리라지만 이 녀석에겐 그리 만만한 거리가
아녔을텐데? 게다가 침대라고! 침대! 쉽게 올라오면 안되는거 아냐!?
내가 황당해 하든 말든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간히 추운 모양이군 저 놈도.
[테헤후우우... 찬바람에 잠이 확 깨버린테치. 어서 아침이나 먹는테치.]
"야야... 여기가 너네집인 줄 아냐... "
졸려 죽겠는데 진짜... 짜증나지만 추운게 먼저라 들췄던 이불을 다시 덥고 꼬물꼬물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침은 안 먹는테치?]
"귀찮다..."
알바가서 일하려면 싫어도 먹고 힘내야해서 먹는 아침. 오늘 같은 날 굳이 챙겨 먹을 이유가?
녀석을 집어 다시 냄비 속으로 넣을까 싶다가 어차피 어제 목욕도 시켜놨으니 깨끗하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냅뒀다. 똥사면 어쩔려고.
[배 안 고픈테치?]
"안 고파.. 그냥 잠이나 자자 좀..."
[피곤한테츄까?]
"졸라게..."
[왜 피곤한테치?]
"너 임마.. 사람은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테에에에!? 사람도 일하는테챠아!?]
뭘 놀라는거야. 너네도 먹고 살려면 일해야하거든..?
"그래... 나 같은 흙수저는 말이다.. 대학 내내 알바 뛰고 학점 받고 노력해도 어디 중소기업에나 간신히 들어가서
엿 같은 상사의 꼬장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결국 때려치고 원룸 방이나 돌아다니는 인생이란 말이다..."
[중소기업? 상사? 꼬장?]
아무래도 실장석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이였으려나. 계속 입을 놀렸더니 잠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미묘한
경계에서 진의 물음에 답 해주었다.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의 크기에 따라 대, 중, 소로 나뉘는거다... 그래봐야 대기업 말고는 죄다 거기서 거기지만...
꼭 이런 곳에 가면 나에게 명령 내리는 상사란 놈들이 있는데 아주.. 너네 같은 놈들이지."
[와따시타치같은? 귀엽고 깜찍한 인간들이 명령을 내리는테츄까?]
"미안. 네녀석들이 자기 중심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단걸로 묶은건데 이해하기 힘들었나 보네."
[보에~보에~ 힘드러쪄테츄우?]
"디진다.. 진짜.."
[그래서 그거랑 아침이랑 무슨 상관인테치?]
"그래서... 그런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 먹고 갈굼 당하다 보니 내 정신이 피폐해져서 '아, 이대로면
진짜 내가 홧병에 뒤지던가 저놈을 찌르던가로 인생 끝나겠구나' 싶어서 때려치고 나왔단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나와보니 돈이 없어.. 간신히 구한 알바도 멘탈은 그럭저럭 케어 가능한데 육체가 너무 고돼서
아침을 꼭 먹어야 하거든 평일엔.. 하지만 오늘은 주말이잖니.. 아침 안 먹고 잠을 자면 돈도 아끼고 늦잠으로
피로도 줄이고 얼마나 좋니.. 안 그러냐?"
내 말에 진은 상체를 일으켜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뭔데 이거. 이해한거야?
[뭔가 다른테치.]
"뭐가?"
[와따시의 마마를 데리고 있던 닌겐은 그렇게 살지 않았던테치]
"뭐, 어떻게 살았는데?"
그러고보니 이 녀석 사육 실장의 자였던가? 확실한건 아니지만 이름이 있었던걸로 보아 비스무리했겠지.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저녁에만 잠깐 나갔다 들어왔던테치.]
"뭐하는 사람이야..."
궁금증 반 귀찮음 반으로 되물어 주었더니 진은 턱을 괴고서 잠시 생각하는 자세를 잡았다.
[동길상. 와따시가 이제부터 그 인간에 대해 설명해보려 하는테치. 어떤 닌겐인지 말해 줄 수 있는테츄까?]
"그래. 그래 해봐라."
[먼저 그 닌겐상은 동길상처럼 남자였던테치. 그리고 항상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닌테치. 집은 무척 넓었던테치.
정원도 있었고 방도 엄청나게 많았던테치. 음식은 매일 향기롭고 달콤한 것들로 먹은테치. 그리고 와따시의 마마를
많이 괴롭혔던테치. 그래서 와따시가 죽인테치.]
"음..학대파 같고.. 뭐..?"
진의 마지막 말에 싸늘한 기운이 이불 안을 훑고 지나간다. 인간을 죽여? 비유적인 표현인가?
[마마는 언제나 말한테치. 와따시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을만큼 강해야지 똑똑한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한테치.
그래서 와따시는 강해진테치! 인간조차 이길 수 있을만큼 강해진테치이이이!]
나는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손가락으로 진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
가볍게 밀리는 것도 이기지 못해 쿵 넘어지는 녀석을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어휴~ 너무 강력하시네요."
[테갸아아! 뭐하는테츄아!]
"엄청 강력하시다길래~ 그마~안~"
진은 넘어진 자세 그대로 팔짱을 끼고서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그 닌겐은 마마와 다른 오바쨩들을 괴롭힐 때 말고는 일이란걸 하지 않은테치. 항상 즐거워 보였고
동길상 같은 걱정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테치.]
"완전 금수저 학대파네. 그런 사람이 많은 줄 알았냐?"
[솔직히 동길상을 보기 전까진 모든 닌겐이 그렇게 사는건 줄 알았던테치]
대충... 정리하자면 금수저 학대파가 학대하며 가지고 있던 실장석이 출산해서 낳은게 요놈이고
뭔일인지는 모르지만 학대파가 죽고 집을 나와 처음 만난 인간이 나란 소리지?
에고고.. 난 또 사육 자실장이면 돌려줘서 보상금이나 좀 받아 볼까했더니만. 별 영양가 없는 얘기였군.
[마마는 정말 똑똑했던테치. 하지만 너무 약했던테치. 와따시와 오네챠들을 안고서 매일매일 울며
사과했던테치. 이런 지옥에 낳아서 미안하다고 한 테치]
"...."
강제 출산으로 인한 모성 강화 학대인가. 나도 안 해본건 아니지만 이렇게 실장석에게 감정 이입한 상태로
들으니 좀 울컥하긴 하네.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모성을 내던지는 녀석들이라 해도 가지고
있을 때 만큼은 진짜니까.
[아무튼 그래서 동길상이 볼 때 그 닌겐은 어떤 것 같은테치?]
분위기 전환인가.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네. 축 가라 앉아 있던 공기가 경망스런 녀석의 목소리 톤에 맞춰
올라간 것 같다.
"그런 사람 흔치 않어. 대한민국에서 따져보면 한 2% 안에 드는 돈 많은 부자일거다."
방이 여러개에 정원 딸린 집이라. 여기가 경기도권인걸 감안해도 집값만 최소... 10억? 20억?
이런 씨발! 원룸에만 사니까 집 가격을 모르겠다! 대충 그정도 되겠지! 게다가 일을 안해?
아냐, 그럴리가 없지. 어디 건물이라도 서너개 가지고 있는 녀석일거다. 그런 사람 정말 흔치 않지.
"야."
[왜테치?]
"배고프냐?"
[고프긴하지만 참을 수 있는테치]
"뭔 말이여."
실장석이 배고픔을 참을 수 있다고? 그런건 세레브나 가능한 소리라구~
[닌겐상이 피곤하다고 하지 않은테치? 와따시 그정도로 나쁜 아이는 아닌테치!]
"허 ㅋ 참"
지금 날 배려한거야?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네.
[그러니 좀 더 푹 자는테치!]
"그래 그래. 나 좀 잔다. 점심이나 같이 먹자."
[알겠테치!]
아침 유흥치곤 나쁘진 않았어. 진이 조용해지자 이불 안은 마치 폭풍의 한 가운데처럼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공기도 그렇고 움직임도 그렇고. 일주일간의 노고가 눈꺼풀 위로 다시 찾아옴을 느끼며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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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인테치!]
"아 쫌 기다려봐."
6시간이나 자버렸드아~. 황금 같은 휴일의 절반이 날라가버린 것에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냄비에 물 붓기. 어제 녀석이 들어 있던 냄비가 아니라 내가 자주 애용하는 냄비.
라면 먹을거거든.
[냄새가 끝내주는테치!]
"삼X라면은 정말 신의 라면이지..."
[카미사마의 라면인테챠아아!?]
"말이 그렇다고."
냉장고 위에 올려진 Tv 옆에 주저 앉아 내가 요리하는 것을 보며 진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와따시 그거 아는테치! 계란인테치! 치킨의 아이인테치!]
"올ㅋ 계란도 알아?"
[동길상은 어제 엄마를 먹고 오늘은 딸을 겁탈하고 있는테츄와!!]
"거 표현이..."
겁탈이라니. 중소기업 같은 단어는 모르면서 왜 저런건 알고 있는건데?
대충대충 진의 말에 대답하며 라면 두 개를 푼 냄비 위로 계란 두 개를 깨뜨려 넣었다.
파는 미리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둔게 있으니 이걸 조금 넣고.. 좋아 다 됐다.
원룸 바닥에 주저 앉아 식탁을 피고 진을 위에 올려 놓았다.
"야 졸라 뜨거우니까 만지지 마라."
[딱봐도 아는테치]
"아~ 뉘예"
식은 밥은... 없네. 젠장.
나는 앞접시를 꺼내 라면과 국물을 조금 담아 진 앞에 놓았다. 그나저나 이거 저녀석 손으로 먹을 수 있나?
[뜨겁다고 하지 않은테츄까? 어떻게 먹으라는테치?]
"후후 불어 먹던가. 어제처럼."
물론 어제처럼 쉽게 식진 않겠지만. 케케켘. 이쑤시개로 떠서 먹게 해줄까. 아 몰라 알아서 먹으라 그래.
일단 내가 배고픈게 우선이니까. 젓가락으로 라면을 적당히 집어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끝~내줘! 라면은 정말 최고야!
[절라 맛있는테치야!]
내 걱정이 우습게도 녀석은 손으로 잘만 라면 면발을 집어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게다가
국물도 안 튀게 먹고 있네. 학대의 결과인가? 훈육이나 학대나 거기서 거기니까.
그나저나 슬슬 이녀석을 돌려 놔야겠구만. 라면을 반쯤 먹었을 때 든 생각이다.
실장석치곤 똥도 안 싸고 말도 잘하는 놈이라 기르고 싶은 맘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원룸에서 동물 키우는건 서로 간에 민폐라고. 여기까지다.
나랑 진 모두 배가 빵빵하게 불러서 그릇도 안 치우고 널부러져 있기를 한 30분. 이윽고 마음을 굳힌 내가
먼저 일어나 말했다.
"자, 들로 돌려줄게."
[....]
"가야지 너도.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잖아?"
[맞는테치...]
"사람은 집에, 실장석은 들에. 이렇게 사는게 맞는거야."
[그런테치..]
묘하게 힘이 없어 보인다. 나도 그새 정이 든건지 녀석이 힘이 없는 모습을 보이니 괜시리 울적해진다.
"아쉬울 때 끝내야 좋은 법이다. 나중에 놀러 오면 이렇게 라면은 주마."
[알겠테치. 와따시 꼭 다시 찾아오는테치!]
"하하 녀석도 참."
이윽고 집에서 택배 받아 남은 박스를 이용해 어제 녀석이 둘러 싼 수건과 냄비를 넣고서
만반의 준비를 해주었다. 진을 상자에 넣고 공원으로 가는 동안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이 적어
내심 쫄리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실장석 유기한다고 누가 보면 혼낸다구.
가까운 강가 근처 공원에 가서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위치를 찾아 골판지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자실장이니까 혼자 낙엽 모으기 힘들테니 주위에 쌓인 낙엽도 듬뿍 넣어주고.
신문지는 미안하지만 없다. 요새 누가 신문을 보냐.
[이정도만해도 괜찮은테치. 감사한테치.]
"헤어질 때가 되니 제법 예의바르게 됐네?"
[그럼 똥이라도 맞고 싶은테츄까?]
"절대 아니지."
끝으로 묘한 웃음을 교환하고 나는 등을 돌렸다. 왠지 뒤돌아 보면 녀석이 보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찡해 돌아보지 못했다.
"잘 살아라 짜샤..."
유난히도 추운 겨울 어느 주말의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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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란 묘한 실장석과 인연을 쌓은지도 벌써 반년. 녀석은 드문드문 내 집에 찾아왔었다.
어떻게 알고 온지 참 신기할 따름이지만 녀석의 울음소리가 테치-에서 데스로 바뀌는 시간 동안
나름 잘 살아 준것이 여간 뿌듯할 따름이였다.
[동길상. 그나저나 그거 기억나는데스우?]
"뭐?"
[닌겐은 집에, 실장석은 들에 말인 데스.]
"아... 널 처음 본 날 내가 한 말이지."
사실 까먹고 있다가 얘가 말해서 생각난거지만.
Tv를 보며 침대에 등을 기대고서 보고 있는데 녀석의 분위기가 어째 심상치 않았다.
뭐야, 이주라도 할 생각인가.
[그럼 된데스우]
"뭐가 된 데스우냐 따샤."
[그런게 있는데스우]
"싱겁기는."
이젠 나도 어엿한 알바 고참이다. 주말에 느긋하게 쉬고 있다보면 진이 찾아 오지 않을까 기다릴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곧 이사 간다 나."
[데엑!?]
"돈 좀 벌었거든. 이제 원룸에서 나가야지."
알바하며 모은 돈을 집으로 차곡차곡 보냈더니 부모님이 20년간 모은 통장이라며 하나 건내 준게 있거든.
이런게 있는 줄도 모르고 난 그런 방황의 시기를...
[언제 가는데스우?]
"빠르면 다음 달쯤? 일단 알아봐야지."
[다음 달 말인데스우...]
"응."
아쉽지만 이 녀석과의 인연도 여기서 끝인 모양이다. 이심전심인 모양인지 나도 녀석도 그 날은
더이상의 대화 없이 멍하니 Tv를 보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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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쌰..."
이사짐을 다 싸서 렌트카 트렁크와 뒤좌석에 모두 실었다. 말없이 헤어진 날 이후 녀석이 찾아 오지 않아
주말에 빈둥거리면서 짐을 하나 하나 정리한 덕분인가 막상 옷과 몇가지 생활 도구 말고는 챙길게 없었다.
"휑하구먼."
청소도 끝낸 원룸은 언제 그리 비좁았냐 싶을 정도로 넓어 보였다. 4년간 살았으니 정이 들만큼 들었지 나도.
이제 그만 가자.
"동길! 동길! 기다리는거에요!"
원룸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타려는데 누더기를 걸친 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뭐야 저 여잔.
비닐로 몸을 가려 놓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색기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죄다 쳐다 보고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정말 대담하네. 감사합니다.
"저에요! 저인거에요!"
"누구신데요."
저 여자 사귀지 않은 날 이꼬르 생존일 수인 남잡니다. 귀염귀염하게 생긴 여자가 날... 어라 근데 얘 눈 색깔이..
"진이에요!"
"....."
"진이에요!"
"한 번만 말해도 알겠다..."
진짜? 진짜 진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인화 현상?
충격 받아 얼떨떨한 얼굴로 서있으려니 진이 두 팔을 벌려 내게 꼬옥 안겨왔다.
"사람은 집에.. 실장은 들에.. 저 이제 사람이에요. 집이 필요한거에요."
하. 하하.
"야, 사람은 일도 해야 한다고. 집을 날로 먹으면 안되는거 알간 모르간?"
"앞으로 알려 줄게 많은거에요!"
내가 너에게 알려 줄게 많겠지. 하! 하하.
싱숭생숭하지만 기분만은 좋다. 더 이상 놓치고 가는 것 없이 모두 챙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거든.
게다가 마음 속 어딘가에선 이런 일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실장석 흔치 않거든.
그러니 약간의 기적을 바랄 수 밖에.
"뭐, 일단 타라. 가자."
"보자마자 납치인거에요? 대담한거에요."
"니가 따라 온거잖아!"
"내 마음을 납치해버린거에요. 전 동길의 포로가 된거에요."
허흑.. 이게 여자들의 애교란겁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신에 가슴이 옥죄어 오는 이 달콤함이란!
"후후.. 그러면 제네바 협약에 따라 널 마음껏 다뤄주지!"
"그런 협약이 아녔을텐데요?"
"내 마음이야 임마!"
에어컨 빵빵하게 튼 렌트카 조수석에 진을 앉히고 새로운 집을 향해 차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건다.. 시동을... 역시 아이는 셋이 좋지 않을까 싶은거에요?"
"야!"
"불황이라 셋은 좀 많은걸까요?"
"난 넷까지 낳을거라고."
"욕심쟁이인거에요!"
"그래서 하나도 안 남기고 가져가잖아."
"후훗."
"하하."
"후후훗."
"하하하하."
"이번에도 제가 손해니 이쯤하는 거에요."
"그래. 그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티가 날까봐 앞만 보며 운전했다.
그나저나 부모님께는 뭐라 말씀 드려야하지? 엄마! 나 애인이 생겼어! 아이고 녀석 드디어 생겼구나! 어디 얼굴 함 보자!
근데 실장인이야! 이런 십장색이?
하하. 그런건 나중에 생각해야지.
"동길씨."
"맨날 뒤에 상 붙이다가 씨라 하니 좀 어색어색하다 그치?"
진은 대답대신 내 볼에 가볍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동길 오빠아야..."
"젠장! 섰잖아!"
깜짝 놀라서 차가 섰다는 소리 ㅎ.
"앞으로 행복해질거에요. 나도 동길 오빠도."
"무슨 자신감인지 원... 그래. 행복해져야지."
"마마가 항상 바랐던대로..."
"...그래."
어딘가 아득히 먼 곳을 보는 진을 보며 가볍게 웃고서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래. 행복해져야지. 헬조센의 흙수저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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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쓴 정통 실장인 엔딩 (^ㅅ^)/
카오스 맞는데영 위험하지 않은레치! 해치지 않는레치!
대회 출품작으로 쓰기엔 퀄이 frog나 하도 참가자가 없는걸 보니 대충 써도 되겠단 생각에 지른테치!
레프프프프픗!!! 마음에 안 드는레치? 안 드는레치? 마음은 무게가 없어서 들 수가 없는레치! 와따시는 영리해서 잘 아는레츄츄!
는 개소리는 여기까지하고 아 몰랑. 원래 카오스 설정대로 기니가 인간에 대한 증오로 키운 3녀(진)이
주인공이랑 대화하다 흑화하고 끔살 루트로 하려 했는데 술 먹어서 기분 좋으니 핵피엔딩 ^^
그럼 다들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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