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카오스 럭키짱 천일모험기를 능가하는 진정한 판타지 소설 실장석과 환상 1화 : 별 이상한 미친놈들
소녀가 울창한 숲을 칼 한 자루 차지 않고 거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안전이 보장된 행위, 위험이 없다는 확신. 소녀는 나뭇잎 사이로 부스러지는 온기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손에 들린 바구니를 흔들었다. 포도주의 찰랑거림이 귀를 간질인다. 가을을 맞이하는 숲은 빛깔마저 뜨거웠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서 열매로 자라나고.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그 바구니는 숲에 사는 사냥꾼에게 갖다줄 것들이었다. 빵, 치즈, 포도주. 사냥꾼은 그 양식을 받고 자신이 사냥한 고기를 준다. 사냥꾼은 그렇게 식량을 농부의 딸은 이렇게 고기를 벌었다. 거기다 수확철을 앞두고 설치는 쥐들을 잡기 위해 쥐덫도 놓아달라고 부탁까지 해야 해서 바구니는 평소보다 묵직했다.
급한 이유는 없었지만 소녀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날이 좋아서, 사냥꾼을 만나러 가는 게 설레어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생각에 들떠서.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많다 보니 이젠 이유도 어찌 됐든 좋았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소녀의 손에 들린 바구니가 점점 크게 흔들렸다.
“테치얏!“
“엥?”
소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야생동물의 메아리치는 울음소리 같았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소녀는 흥에 가득 차서 걸었다. 꾀꼬리 소리처럼 고운 소리였으면 좋을 텐데, 괴상한 소리가 분위기를 망가트린 것은 소녀의 감성에 누를 끼쳤다.
“테챠아앗!”
“어어?”
그 소리가 또 들렸다. 소리는 별 것 없는 노루 소리였지만 소녀를 굉장히 신경 쓰게 만드는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 소리가 하필이면 자기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빵과 치즈가 마법에 걸렸는지 맛이 가도 한참 가서 말을 할 정도로 맛이 갔구나, 하면서 소녀는 대수롭지 않게 바구니를 들췄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가을을 맞이하는 숲의 바닥에 앳된 바구니가 나뒹굴었다.
나란히 선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넓은 보자기가 펼쳐져 묶여있다. 삐뚤빼뚤 그려진 붉은 고리가 백 보 떨어진 거리에서도 잘 보였다. 보자기로부터 백 보 떨어진 곳에서는 뭉툭한 촉과 멧비둘기 깃을 단 화살이 그 고리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목 단궁 위에서 두 눈의 인도를 따라 목적지를 알려주고, 갈 곳을 정한 화살은 길을 떠난다.
“아저씨이이이이!”
화살은 보기 좋게 보자기를 넘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사냥꾼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화는 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에 이런 곳에 찾아올 사람이야 단 한 사람 뿐이었으니까.
“아윽.”
“아저씨! 러트너 아저씨! 숲에 괴물! 괴물이!”
“그래, 그래, 데아르. 또 뱀을 봤구나. 징그럽게 생겼다고 다 괴물이 아니라니깐.”
“아니이이이! 진짜라니까요! 막 녹색 옷을 입은 난쟁이가 똥을 우장창창 싸는데…….”
보고 들은 일을 열정적으로 설명할 때면 데아르의 눈은 언제라도 얼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흰자가 눈꺼풀에 가리는 부분이 없도록 눈을 크게 뜰 수 있을지 러트너는 늘 궁금해했다.
“데아르, 내가 이 숲에서만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괴물이라 할 만한 건 본 적도 없다구. 내가 멧돼지한테 물린 적은 있어도 말이지…….”
“진짜라니까요! 아, 이 아저씨 속고만 살았나. 빨리 와요!”
“그래, 그래…….”
화살 주워야 하는데, 간만에 사냥할 일도 없어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지낼 수 있겠다 싶었더니 이런 일이라니, 사냥꾼 러트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쩔 수 없이 데아르를 따라갔다. 이번에도 뭐 덩치 큰 벌레를 잘못 봤겠지, 하면서 들고 있던 활과 안장에 매인 메서도 챙길 생각 없이 빈손으로 따랐다. 하도 급하게 후다닥 뛰어가는 데아르를 쫓느라 러트너도 느닷없이 뛰어야 했다. 좋지 못했다. 데아르는 몰라도 러트너에겐 숲의 나뭇가지들이 너무 낮았다. 자꾸 눈앞을 가로막는 나뭇잎 때문에 고개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데아르가 갑자기 멈췄다. 러트너도 따라 멈췄다. 데아르는 사냥꾼을 돌아보고 숲길 한복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기 있잖아요!”
“그래 어디 한 번 보…….”
러트너가 기대 없이 숲길을 보았다.
“뭐야 저거.”
“내 말 맞죠?”
그곳엔 난쟁이가 있었다. 녹색 옷을 입은 난쟁이가, 큰 놈 한 마리와 작은 놈 네 마리가 있었다. 땅딸막한 몸집과 커다란 귀, 돼지를 연상케 하면서도 콧대는 또 없어서 평면처럼 보이는 얼굴, 적록의 눈알이 금방이라도 안와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상판은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못생겼다. 빗자루같은 두 갈래 머리카락을 가진 그 난쟁이들은 엎질러진 바구니에서 쏟아진 빵과 치즈를 처먹고 있었다. 손에 집히는 게 뭐가 됐든 일단 얼굴에 갖다 박고 보는데, 빵과 치즈가 코로 들어가든 입으로 들어가든 귀로 들어가든 상관도 않고 있었다. ‘처먹다’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을 때 보여주면 누구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모양새다. 거기다 입으로 들어가는 족족 엉덩이 쪽에서도 늪지대 진흙같은 것이 쭉쭉 나오고 있었다. 러트너와 데아르 모두 그 진흙의 정체를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고 탄식했다.
“오크랑 드워프의 혼종인가?”
“아저씨도 몰라요? 숲에 사는 요정은 아닐까요?”
“그런 말 하지 마. 요정이 듣는다고. 저런 괴물들이랑 요정이랑 비교당하면 기분 엄청 더러울걸.”
“봐봐, 아저씨도 괴물이라 하네. 내가 괴물이랬잖아요.”
“아 뭐, 그야. 옷을 입고 있으니까. 짐승들은 옷을 안 입잖아? 큰놈이랑 작은놈이 똑같이 생긴 걸 보면 어미랑 새끼겠지.”
“정체가 뭐가 됐든, 빨리 잡아야죠! 아저씨 빵 다먹네. 아으, 갓 구운 건데…….”
“어, 잠깐만…….”
러트너는 난쟁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날카로운 손발톱은 없었고 이빨은 누렇다 못해 검게 썩어있었다. 할퀴거나 물려도 아플 일은 없겠지만 그런 짐승들은 발톱과 이빨 대신 독을 품기 마련이다. 마침 색깔도 온통 녹색이고 눈도 적록으로 얼룩덜룩하고 엉덩이에서 똥까지 배어 나오니 독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게 생겼다, 독 중에서도, 똥독. 하필이면 활을 두고 온 것이 이럴 때 크게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또 활을 쏜다고 해봤자 한 마리, 많아 봤자 세 마리 정도 잡고 나머지는 도망칠 것이 뻔하니 활이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평소 사냥을 해도 한 번에 두 마리 이상 잡아본 적 없는 러트너로서는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당장은 무리인데……. 다 잡을 수는 없어.”
“한 마리라도 잡아야죠! 수도 줄이고, 사람한테 데어봐야지 다음부터 사람한테 안 붙는다구요.”
“그럴까. 근데 생각보다 위험하면 어떡해? 독을 쏜다든가, 마력을 다룬다든가 하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는데.”
“끙, 그것도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해요.”
“오, 뭐야?”
“아저씨가 저 괴물들이랑 용감히 싸우고, 전 아저씨의 무용담을 책으로 남겨 후대에 길이길이 알릴게요. 표정이 왜 그래요? 제가 가서 싸울 순 없잖아요.”
러트너는 고개를 휘휘 젓고 말했다.
“이렇게 하자.”
“네.”
“난 집에 가서 도구를 갖고 올게. 칼, 활, 그물 이런 거.”
“네.”
“그동안 네가 저놈들이 도망치지 않는지 좀 봐줘.”
“어디로 도망치는지 보려면 아저씨가 지키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냥감 추적은 사냥꾼이 해야죠.”
“그럼 연장은 네가 가져오려고? 내 도구 어딨는지 알아?”
“뻔하죠 뭐. 다 안장에 쑤셔놨죠?”
러트너가 말문을 잃고 데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오두막으로 향한다. 러트너는 데아르를 믿기로 하며 난쟁이들에게 집중했다.
난쟁이들은 여전히 빵과 치즈를 처먹고 있었다. 새끼들 중 하나가 와인병도 따려고 하는 건지 병입구를 마구 때려대기도 한다. 기름 먹인 헝겊을 실로 감은 것이라 단순히 실 가닥만 당기면 풀리는 구조인데도 그걸 풀 줄 몰라 때리고 있다. 하다못해 다섯 살짜리에게도 속는다는 고블린마저 와인병 정도는 쉽게 열거늘, 와인병은 바닥에 박힌 것마냥 꿈쩍하지 않는다. 지능은 고블린보다 형편없음, 힘은 슬라임보다 형편없음, 러트너는 머릿속에 특징을 잘 새겨두었다. 활을 쏠 필요도 없이 육탄전으로 몰아치면 반항도 하기 전에 끝장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코에 해괴한 냄새가 기어 들어왔다. 평소 사냥감 추적을 하느라 배설물 냄새를 맡을 일이 잦은 러트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여태까지 살면서 맡아온 냄새 중 가장 고약한 것이라면 데아르의 아버지 그리가 일을 마치고 신발을 벗었을 때가 최악이었는데(시체 썩는 냄새도 포함해서), 이 냄새를 맡고 나니 그리의 향은 치즈 냄새처럼 느껴졌다. 그리 치즈, 러트너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말이 되는 설명은 저 난쟁이들이 엉덩이에서 뿜어내는 끈적질척한 녹색 점액에서 풍기는 냄새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육탄전으로 맞선다는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은 그저 숨을 참을 뿐이다. 필시 독이 있을 냄새라 입으로 숨을 쉬기도 꺼려졌다. 다행히 숲속이라 주변에 산이슬초가 많았다. 방향제이자 벌레독을 풀어주는 약초다. 러트너는 즉각 산이슬초를 잔뜩 따다 옷자락에 수북히 모아서 코와 입을 가렸다. 참았던 숨을 깊게 들이쉬니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자연과 이치의 신 루노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난쟁이들은 그런 냄새는 신경도 안 쓰이는 모양이다. 똥을 너무 많이 싸서 빵이랑 치즈를 적시고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처먹고 있었다. 냄새만 독하고 맛은 좋은 걸까? 러트너는 구역질을 하며 그딴 생각을 한 자신을 욕했다. 난쟁이들에게 맛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결론으로 만족했다. 슬슬 보고 있자니 역겹고 짜증이 확 올라왔다. 생긴 것마저도 말라붙은 호밀빵이 돼지우리에서 구르고 밟혀 찌그러진 것처럼 생겨서는, 처먹으면서 쩝쩝대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데찹, 데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절대 뭔가를 먹으면서 불가피하게 날 소리가 아니었다. 지금 난쟁이들은 의도적으로 데찹 데찹 소리를 내는 것이다. 볼수록 의미를 알 수 없는 생명체였다.
“아이구, 아니 이게 지금 뭐하는 냄새야.”
마침 데아르가 러트너의 메서와 단궁을 들고 돌아왔다. 코를 막아야 하는데 남는 손이 없어 표정을 되는 대로 찌푸리고 있었다. 러트너가 빠르게 칼과 활을 받고 산이슬초를 뭉쳐 데아르에게 건넸다. 데아르는 능숙하게 손수건으로 받아 입과 코를 가렸다.
“설마 이거 난쟁이 냄새에요?”
“보통 난쟁이가 아냐. 산송장 정도인데.”
“산송장!”
“그래……. 그래. 맞아. 산송장. 그러면 모든 게 말이 되네. 똥 싸는 걸 주체를 못 한다든가, 그걸 또 좋다고 처먹고 있다든가, 지능도 모자라고…… 확실히 산송장이 보일 만한 행동들이야. 그럼, 그럼 일이 더 심각해지는데 이거…….”
“으아, 으아, 으아…….”
러트너는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고 데아르는 덜덜 떨면서 이를 따다닥 부딪는 소리를 냈다. 평생 괴물이라고 해봐야 슬라임 정도밖에 마주치지 않았고, 그마저도 이 숲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느닷없이 산송장을 마주치게 되니 그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일개 짐승으로만 착각해서 냅다 덤벼들었다간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화살이 귀 옆을 스쳐 지나간 느낌이었다. 러트너는 자신의 메서를 힘있게 쥐었지만, 고작 메서 따위로 산송장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힘찬 무력감을 느꼈다.
“저…… 저것들이…… 내, 내 바구니에…… 여차하면 나도…… 그…… 그치만 지금은 대낮이잖아요? 산송장이 어떻게 낮에 돌아다녀요?”
“낮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흡혈귀랑 유령 얘기야. 대부분의 산송장이 밤에 되살아나긴 하지만, 낮에 돌아다니지 못할 건 또 없지.”
지금이라도 둘은 뒤를 돌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두막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 적어도 내일 뜨는 해는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막상 돌아설 수는 없었다. 저 산송장 난쟁이들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않는다면 저것들이 마을로 기어들어 갈 것이고, 어마어마한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책임감이 무거웠다. 비단 손에 잡힌 칼 때문만은 아니었다.
“데아르, 불 피울 수 있어?”
“부, 부, 부, 부, 부, 부, 부……”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내지 못 하는 데아르의 어깨를 러트너가 다독여주었다.
“불 말이야. 산송장은 불태워야 다시 살아나지 않거든.”
“부, 부, 부싯돌 있어요.”
러트너는 슬쩍 난쟁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빵을 먹다가 목에 걸렸는지 켁켁대고 있었다. 거기다 치즈도 한 덩이 남아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빨리 피워줘.”
“서, 설마, 아저, 씨, 저것들이랑 싸우려고요!”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저것들이 마을로 들어갈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 그것도 그렇지만…….”
“활도 있으니까 상관없어. 짐승이었으면 그냥 도망갈 테지만 산송장이면 적극적으로 덤벼들 테니 다 잡을 수 있을 거야.”
데아르는 울상이 되어서 러트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저씨가 잡히면 어쩌려구요!”
“안 잡혀. 사냥꾼은 절대 잡히지 않아.”
“못 해요! 아저씨 혼자 두고 제가 어떻게 그래요! 안 돼요! 일어나지 마요. 가지 마세요, 제가 집까지 가서 사람들 불러올 테니까…….”
“집까지 거리가 얼만데. 늦어. 말을 타도 늦어. 그리고, 왜 최악의 상황만 생각해? 내가 그렇게 느슨한 사람으로 보이디?”
러트너는 데아르를 다독이며 자신의 메서를 만져보았다. 날이 좀 무뎌보였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도 돈 때문에 시간 때문에 미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설마 산송장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운명의 신께서 러트너의 천성을 반성하라는 기회를 주신 모양이다.
“수, 숫자에서 밀려요. 아저씨가 싸우면, 저, 저, 저, 저도 싸, 싸울래요.”
“장하다. 그럼 이제 제발 불좀 붙여줘. 그거면 충분하니까.”
데아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부시와 부싯돌을 부딪는 동안 러트너는 운과 실력과 운명의 신 아렌지에게 무운을 빌었다.
“매번 사냥감의 운명을 그대에게 저당 잡았으나 오늘 그 값으로 그대의 주사위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니, 놀리는 손의 오묘한 굴림으로 만사를 주름잡으소서.”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확, 하고 불꽃이 피어올랐다.
“기도에 응하심을 감사드리나이다.”
“아저씨, 불 됐어요.”
“고마워.”
러트너는 마른 이끼를 화살에 꽂고 불을 옮겨붙였다.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땅이 꺼져라 트림을 해대는 가장 큰 난쟁이를 겨누어 시위를 당겼다. 길다란 불똥이 밝은 하늘을 갈랐다.
“덱! 뎃, 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맞았…….”
“으악! 내 귀!”
엄청난 섬광과 천지를 뒤흔드는 비명이 고막을 두 동강 낼 듯했다. 가슴팍에 꽂힌 화살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난쟁이의 아래턱을 지글지글 구웠다. 일발필중의 축복을 아렌지에게 감사할 시간마저도 없이 러트너와 데아르는 귀를 막았다. 작은 난쟁이들도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덩치는 작은데…….”
“젠장, 밴시인가? 알 게 뭐야, 뒈져라!”
처음 날렸던 화살과 비슷한 속도로 러트너가 튀어나왔다. 번쩍이는 메서와 이글거리는 부지깽이가 뒤를 이었다. 러트너는 제일 가까운 난쟁이를 향해 돌진해서 곧바로 메서를 휘둘렀다. 칼날이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무색하게 난쟁이는 상반신과 하반신의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테걋! 테, 테챠……아앗?”
“테, 테찌!”
“테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테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러트너는 메서를 휘두른 여세를 이어 다음 공격을 이어갈 준비를 했다. 칼날에 맺힌 핏방울이 붉게 반짝였다.
“피가……?”
난쟁이들은 러트너가 등장하고 나서야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려 했다. 일행도 버려두고 자기들끼리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데 그 속도가 한심할 정도로 느렸다. 그 모습에 러트너는 잔뜩 긴장했었던 몸을 늘어트리고 허무하게 칼에 맺힌 핏방울을 바라보았다.
메서에 허리가 끊긴 난쟁이도 팔로 기어서까지 러트너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큰 난쟁이는 화살을 뽑으려다가 실패해 손이 다 구워져 있었다. 이도저도 안 되자 큰 난쟁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지르면서 팔다리를 휘저어댔다. 팔다리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팬티가 어마무시한 속도로 부풀어 오른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테쨔아아아아아아아아! 테쨔아아아아아아아아앙! 테찌이이이이이이이이!”
러트너는 상반신만 남은 난쟁이를 들어올렸다. 끊어진 척추와 내장이 잘린 몸 아래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몸은 따뜻했고 침범당하지 않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난쟁이는 새빨개진 얼굴을 있는대로 찡그려가며 새빨갛고 파릇파릇한 피눈물을 흘려댔다. 러트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이거? 산송장이 아니잖아?”
“테쨕!”
상반신의 난쟁이는 땅바닥에 처박혔다. 남은 난쟁이들은 아직도 러트너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러트너의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 사냥꾼은 어렵지 않게 난쟁이들을 따라잡았다. 이빨도 손톱도 없고 느려터진 난쟁이들이지만 맨손으로 잡지는 않았다. 그런 생물일수록 맹독을 지니고 있음을 러트너는 알았다. 눈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입고 있는 옷도 녹색이니 분명 건강에 좋지 않은 무엇(특히 똥독)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대신, 러트너는 여분의 화살 끝에 난쟁이들의 옷을 꿰어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가본 적 없었던 높이까지 솟아오른 난쟁이들이 울고불고 일제히 똥을 싸지른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테, 테츄웅~. 테치, 테치테치테치! 테치테츄? 테츙~ 테츄웅~.”
“테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것들은 먹고 울고 싸는 것밖에 못 하나보네.”
손에 들린 부지깽이가 애처롭게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덜덜 떠는 데아르를 본 러트너는 부지깽이를 바닥에 문질러 아주 쉽게 꺼트렸다. 큰 난쟁이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았다. 타오르는 화살이 박힌 채로 마구 날뛰다 보니 화살이 점점 안으로 파고 들어가 심장을 찔려 죽었다. 죽은 어미를 본 난쟁이들은 더욱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목놓아 울부짖는가 하면, 손을 등 뒤로 뻗어 화살을 빼보려하기도 하고, 사냥꾼에게 양손을 비벼가며 애걸하기도 했다.
“그래, 너넨 뭐하자는 괴물들이냐?”
“아……저씨? 그게……? 어……?”
“너도 어처구니 없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데아르는 러트너와 비슷하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산송장이라면서요!”
“나도 그럴 줄 알았지! 먹자마자 싸고, 시체냄새도 나고…… 막 달려들어서 물어뜯고 할퀴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근데 아니네. 산송장은 피가 검은색인데……. 아! 아! 왜 때려!”
“에잇, 아저씬 바보야.”
“처음 보는 것들인데 내가 이걸 무슨 수로 알아. 내가 나뮈의 수도사도 아니고.”
“아저씨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요! 산송장에게 잘못 물리면 물린 사람도 산송장이 된다는데! 아저씨 심장에 말뚝박고 관짝에 못질하게 될까 심장이 터질 뻔했어요!”
“안 해도 되니까 다행이지.”
“어휴, 이것들이나 어떻게 좀 해봐요.”
난쟁이들이 화살촉에 매달려서도 똥을 어찌나 싸대는지 부푼 팬티 사이로 똥이 끈적하게 흘러내려 화살대를 타고 내려왔다. 러트너는 즉각 화살끝을 늘어트려 손에 닿지 않게 조심했다. 두 사람은 그날 식사는 다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산송장도 아닌 거, 죽이는 거야 간단하지.”
“죽이게요?”
“괴물이잖아. 빵이랑 치즈도 훔쳐먹었고.”
“그랬죠.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것들 어떻게 들어왔지?”
“네가 덜렁이던 거지 뭐.”
“아녜요!”
“얘가? 상식적으로 사람이 들고 가는 바구니에 이런 난쟁이가 슬쩍 들어가는 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니?”
“마, 마법을 썼을 수도 있죠! 순간이동이라든가, 투명화라든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얘들이 마법을 쓸 줄 알면 왜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또, 또, 입술 튀어나온다.”
세 마리의 난쟁이들은 러트너를 향해 파리 발 비비듯 손발을 비벼대면서 울어대고 있었다. 모양새가 자기들을 살려달라고 비는 듯하다.
“조금 딱해 보이긴 하네요.”
“그래도 괴물은 죽여야 돼. 짐승이었으면 살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 이런 옷을 걸치고 다니는 짐승이 어딨어.”
“자비롭게 한 번에 끝내주세요. 뭐 쟤들이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데아르의 말대로, 러트너는 화살을 땅에 꽂았다. 옷이 꿰인 채로 화살이 바닥에 꽂히니 난쟁이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옷이 걸려 도망칠 수도 없다. 난쟁이들은 옷을 잡아당기며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앙!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앙!”
“데아르, 칼좀 빌려줄래?”
“아저씨 칼 있잖아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겠니? 모가지만 따고 끝낼 거야.”
데아르는 치맛자락 속에 잘 매둔 칼을 러트너에게 건넸다. 짧고 뾰족한 칼을 단단히 쥔 러트너는 가장 시끄럽게 울던 난쟁이를 옆으로 누이고 부지깽이로 살짝 눌렀다. 난쟁이의 힘이 땅강아지보다도 약해 힘껏 누를 필요도 없었다. 쿡 찌르는 것만으로 움직임을 봉하자 난쟁이의 울음에 절망이 배어나왔다.
“테, 테, 테, 테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생명의 주인 양바니께서 죽음으로 삶의 균형을 바로잡으시길.”
“아저씨는 믿는 신도 참 많네요.”
“사냥꾼은 어쩔 수 없다구.”
칼을 푹 찌르자 칼이 들어간다는 느낌도 없이 순식간에 난쟁이의 목이 갈라졌다. 검붉은 피가 팍, 튀쳐나오더니 기세 좋게 꼴꼴꼴 흘렀다.
“테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테찌야아아아아아아악! 테찌……. 테찌이…… 테…….”
난쟁이는 처음엔 격하게 반항하며 피를 튀겼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흐린 눈빛과 창백한 피부로 변해가며 이내 기운을 모두 잃었다. 난쟁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땅에 박은 화살을 뽑아 거둔다. 바로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난쟁이들의 울음이 더욱 커져갔다.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테,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 시끄러.”
“빨리 끝내야겠다.”
나머지 두 마리의 난쟁이는 옆으로 눕힐 필요도 없이 그냥 머리를 붙든 채로 칼을 턱 아래에서 위로 찔렀다. 비명소리가 매우 거슬렸던 고로, 칼을 깊게 쑤셔 성대까지 끊어버리고 단번에 피를 빼냈다. 두 마리도 앞선 한 마리처럼 처음엔 날뛰다가 점점 힘이 빠지더니 축 늘어진 채 숨을 거뒀다. 모든 난쟁이가 희게 변하자 러트너의 긴장이 남김없이 풀려 나른한 한숨이 나왔다.
“휴우. 끝났다. 이렇게 쉽게 끝날 걸 산송장으로 헛짐작 해가지고…….”
“수고하셨어요.”
“아직 안 끝났어. 시체를 처리해야지. 냄새나니까. 아, 불 끄지 말걸.”
“그냥 묻어버리죠 뭐. 산불나요. 태운다고 빠질 냄새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러트너는 멀쩡한 난쟁이들의 시체를 한데 모으고 반 토막 내 던져버렸던 난쟁이의 시체를 찾아 나섰다. 아무 데나 신경도 안 쓰고 던져버린지라 무성한 수풀 속에서 녹색 난쟁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데 바닥을 보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원래 자리로 돌아와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짚던 러트너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오, 아렌지이시여.”
다시 시체를 찾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순간, 수풀 속에서 연두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 보였다. 풀잎이 반짝인다고 보기엔 너무 이질적인 빛이었다.
“어. 감사합니다. 딱히 기도드린 것도 아닌데 과연…….”
러트너는 바로 그 빛을 따라 곧바로 난쟁이의 시체를 찾아냈다. 꼭 찾고 있을 땐 모르지만 찾고 나면 이걸 어떻게 못 찾았지, 한다 싶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체에서 영롱하게 연두빛이 반짝였다. 시체를 들어올리자 연두빛이 내장 사이에서 빛난다. 눈알이 내장 속에? 러트너는 의아해하며 시체를 살폈다.
“어?”
“찾았어요?”
“데……아르? 이것 좀 볼래?”
데아르가 어정쩡히 서있는 러트너에게 다가왔다. 데아르에게도 영롱한 연둣빛이 잘 보였다. 척추와 내장 사이에 끼어 반짝이는 무언가. 내장이 반짝인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다. 그것은 내장이 아니었다. 러트너가 눈알로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고 밝은, 투명하게 비치는 육각형의 돌멩이. 두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반사적으로 알았다. 두 사람의 입에서 한 가지 단어가 빠져나왔다.
“보……석?”
허겁지겁 손으로 꺼내 옷자락에 그 보석을 닦아보았다. 핏기가 닦이고 옷감으로나마 연마가 되니 보석이 더욱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살면서 이런 광채를 러트너도 데아르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귀족 부인의 목에 걸린 진홍빛 보석도 이 정도로 아름다울 것 같지 않았다.
“에……메랄드? 페리도트?
“이……게 지금 저것들 뱃속에서 나온 거죠?”
“어, 어 어, 그렇다면…….”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쟁이들의 시체를 쌓아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난쟁이들의 배를 차근차근 갈라보았다. 칼이 슥 지나가면 배가 쩍 벌어지고 내장이 쫙 퍼진다. 쏟아진 내장마다 반짝이는 돌멩이들이 하나씩 박혀있다. 하나같이 영롱한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도 있어!”
“여기도요! 뱃속마다 다 있다!”
“우, 우와악! 이것 봐! 큰 난쟁이는 보석도 엄청 커!”
“아…… 아저씨……?”
러트너와 데아르는 다섯 개의 보석을 서로의 손에 그러쥐고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어찌나 신나게 뛰었는지 모아둔 난쟁이 시체를 밟아 찌그러트리는데도 알지조차 못했다.
“보석이다!”
“보석이야!”
“돈이다!”
“돈이야!”
“얼마나 할까요!”
“나야 모르지!”
“시내로 가요!”
“당장?”
“당장!”
“진도가 되게 빠르구나!”
“저도 알아요!”
“부모님께 알려야 하지 않니?”
“돈자루를 두둑하게 들고 오면 이해해주실걸요!
두 사람은 폴짝폴짝 뛰면서 난쟁이들의 배터진 시체를 묻으려는 계획도 까맣게 잊고 러트너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다리를 거는 나무뿌리나 눈앞을 가리는 나뭇가지 정도는 유연하고 날쌔게 피했다. 애당초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다시 돌아가는데 정말 한 발만에 달려온 느낌이다. 오두막에서 한가롭게 풀이나 뜯던 러트너의 밤색 말은 숲속에서 별 이상한 미친놈들이 폴짝폴짝 뛰어오기에 흠칫하며 놀랐다가, 그 미친놈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는 어처구니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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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할 때 일병때부터 기획만 주구장창 하던 스크인데 쓰다보니 아귀가 안 맞고 스토리가 재미없고 산으로 가고 해서 공책 한 권 다 채운 걸 아예 폐기해가면서까지 고치기만 하다가 이제야 좀 괜찮겠다 싶어서 올려보네요.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항상 판타지랑 참피를 엮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양판소의 뒤를 따르지 않게, 너무 진부하고 뻔한 스토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도 큰일이었고, 스토리를 챙기면서 당연히 재미도 있어야 하니 곶통이 더더욱 컸죠. 제발 재밌었으면 좋겠네요. 밍나밍나 아가리또 고자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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