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카오스 럭키짱 천일모험기를 능가하는 진정한 판타지 실장석 참피 소설 실장석과 환상 60화 : 공간의 폭풍
전투준비태세를 완화되었고 동원되었던 마법사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쁜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괴생물학파를 필두로 수많은 학파생들이 모인 수색대가 미라익스로 출발해 실험장으로 쓸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마력공학파와 흑마법 심문관들이 날틀을 타고 날아다니며 가능한 나무가 없는 개활지를 찾아보고, 2차로 키 작은 나무가 모인 곳, 그마저도 안 된다면 불을 질러서라도 개활지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괴생물학파생들은 주기적으로 그리폰부엉이의 울음소리나 바실리스크 울음소리를 틀어가며 괴생물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사전 차단했다. 그 사이 공간조율학파는 차원문을 실험하는 데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이론적인 문제들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범위에서 모조리 실험해보고 있었다. 키아시토의 차원문의 조종간이 전부 후타비아 찬넬어로 쓰여있었고 두르마르 차원문과 용어도 달라 후타비아 찬넬어를 할 줄 아는 콜드펌과 후타비아 찬넬 출신 흑마술엽사들이 달라붙어서 실험을 돕고 있었다. 한 공간에 놓인 두 개 차원문 중 두르마르의 차원문을 먼저 가동시키고 대기한다.
“자, 저희 차원문은 가동 준비 됐어요.”
“어……. 이게 1단계 방출기 맞습니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누릅니다. 셋, 둘, 하나.”
단추를 누르자마자 차원문 장치에서 무시무시한 소리와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 단추 아니에요! 정지! 정지!”
그리고 놀라면서 비상 정지용 크고 빨간 단추를 눌러 급히 끈다. 적어도 정지단추 하나는 크고 빨간 색이라 다행이었다. 비상 정지 단추만 그날 몇 번을 눌렀는지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최초의 차원문을 가동하는 방법만큼은 숙달할 수 있었다.
“됐다, 그럼 여기 있는 게 좌표 맞지? 하아, 숫자도 후타비아 찬넬식이잖아.”
“맞습니다. 좌표도 일치합니다.”
“그럼 가동합니다. 셋, 둘, 하나.”
키아시토의 말대로 최초의 차원문 가운데에 아무 마력동석이나 집어넣어보았더니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동석이 깨지더니 그 파편들이 아치 형태를 이루면서 차원의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균열은 두르마르의 차원문과 이어져 서로 왕래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균열이 열리는 데는 조금의 지연시간도 없어 차원문이 열릴 때 가까이 있으면 그 균열 사이 공간에 끼어 모든 것이 절단될 위험도 있었다. 학파생들은 그 차원문 안에 갖가지 물건들을 다 던져보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비마법 물품을 던져보고는 마력동석을 던질 차례였다. 공간조율학파장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가락지에서 마력동석을 빼고 차원문 안으로 던져넣었는데 학파생들은 기겁을 하면서 실험실에서 뛰쳐나가려고 했다.
“으아! 학파장님! 폭발할 수도 있다잖아요!”
“너희들은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고드니스?”
“네! 차원 균열부는 마력 출력부이기 때문에 던져넣은 마력동석이 깨지면 깨졌지 차원문은 터지지 않습니다!”
“장하다.”
평소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공간조율학파장이지만 리베라나는 지금 들은 칭찬이 제일 좋았다. 과연 리베라나의 말대로 마력동석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대충 가동법은 알았고 기록도 마쳤으니 다시 꺼둘까?”
“잠시만요. 실장석을 실험체로 쓰기로 했잖아요. 근데 실장석은 몸 속에 이미 마력동석이 들어있으니까 그냥 실장석을 던져넣기만 해도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맞다, 맞다. 그것도 실험해봐야지. 괴생물학파에 연락좀 해야겠다.”
“아뇨! 제가 갈게요. 지금 미라익스에 실험 장소 찾는다고 엄청 바쁠 거에요. 그리고 저만큼 실장석 잘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씀씀이도 넓지. 알았어, 힘내줘.”
헐레벌떡 공간조율학파를 뛰쳐나가 갈색 머리 바람에 휘날리며 익숙하게 괴생물학파로 들어간 리베라나는 이젠 괴생물학파에도 이름이 날 정도로 익숙해져있었다. 비록 괴생물학파의 문을 열어준 것은 리베라나의 명예 마법사 증표였지만 명예 마법사 증표가 아니더라도 괴생물학파에 출입허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고 근거없는 자존심이 차오른다. 리베라나는 땀이 흘러 미끄러져내리는 안경을 고쳐쓰면서 안내원에게 인사했다.
“학파장님 찾아오셨죠?”
“네!”
“잠시만요.”
잠깐의 통화 후에 리베라나는 피시스에가 지하 4층의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 방이 무슨 방인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무슨 방인지 알 수 있는 자신이 참 대견했다. 리베라나는 승강기를 타고 4층으로 가 유일하게 유리가 검게 칠해진 방 앞에 서있는 피시스에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학파장님!”
“리베라나, 안녕. 실장석 데리러 왔다구?”
“네! 실험 장소 물색은 잘 되어가나요?”
“그렇대. 엄청 넓은 바위산을 찾았다나봐. 검정 탁상지라나.”
“왜 불길하게 이름에 ‘검정’이 들어가는 거예요?”
“바위산이 검은색이래.”
피시스에는 리베라나를 특별한 흡혈귀 제조실 앞에 세워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었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리베라나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른다.
“저기, 언제 들어가요?”
“때가 되면 안에서 인공생물들이 열어줄 거야.”
피시스에의 짙은 녹색 눈이 불안하게 깜박였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실험실의 문이 열렸고 실장석들의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함께 터져나왔다. 본능이 그 소리에 외설이 섞여있다고 소리친다.
“데헤프픗, 데흐프프픗, 데헤에…….”
“데갸아아앗! 데샤아아아앗! 데아아아앗!”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실험실의 문을 열어주는 인공생물들은 리베라나가 차원문을 설치할 때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인공생물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유니콘의 갈기와도 같이 보드랍고 찰랑이는 금발의 미녀다. 보고 있는 리베라나도 질투가 날 정도였다. 몸매는 어지간히도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져있는지 인간으로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곡선을 지닌데다 입고 있는 옷은 도대체 입는 의미가 있는가 싶을 만큼 천을 아낀 곳이 많았지만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인공생물이 피시스에에게 말을 거는데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는 저리 가라 싶을 목소리가 난다.
“괴생물학파장님, 앗, 저, 저 분 앞에서 이야기를 드려도 될지…….”
“리베라나, 귀 좀 막아줘.”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라는 걸 알기에 순순히 귀는 막지만서도 언젠가 리베라나는 귀를 막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지시하신 대로 실장석 두 마리를 한 칸에 넣어두었습니다만, 자꾸 수컷이 암컷의 목을 물어뜯어 피를 마셔서 작업 진행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태껏 피 빠는 거 구경만 했어?”
“네, 학파장님.”
“아이고, 못 살아. 억지로라도 시키란 말이야! 원래 흡혈귀가 성욕을 제대로 못 느껴. 그, 저, 수컷은 묶어놓고 암컷은 그, 내가 이걸 꼭 말로 다 설명해야 하니? 인공생물이란…….”
당황해하는 모습도 어찌나 매력적인지 실장석의 애정행각을 눈 맞추고 설명하기도 고역이다. 지시를 제대로 이해한 인공생물은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며 외설의 통곡은 문이 닫히면서 사그라든다. 피시스에는 인공생물이 걸을 때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의도한 것처럼 튕기는 골반을 보면서 인공생물학파가 새삼스레 부러워졌다.
“학파장님.”
“어, 어.”
“눈빛이 야해요.”
“아잇! 쟤가 그, 제품명이 다킴이라고 해서, 그……. 밤시중을 드는 인공생물이거든. 내가 일부러 달라고 한 거 아냐! 저기, 노일람한테 인공생물 필요하다고, 자세한 이유는 말 못한다고 했더니 쟤를 추천해주더라고!”
“그럼 그냥 반품하시지 왜 계속 데리고 있으세요?”
“……일은 잘 하니까……. 아니! 그! 실험 일 말이야! 밤일 말고! 나 아직 쟤한테 손도 안 댔어!”
“누가 뭐라 했어요? 손 대면 어때요, 사람도 아닌데. 흡혈귀 실장석은 언제 주실 거예요?”
피시스에는 자기 바지의 벨트를 단단히 조인 것에 안심하며 리베라나와 함께 승강기로 향했다. 지하 5층의 실장석 보관소에는 이미 실험용으로 골라놓은 실장석들을 따로 빼둔 채였다. 간택받지 못한 실장석들은 그저 통곡할 뿐이지만, 정작 간택받은 실장석들 중에는 이빨을 죄다 뽑아놓은 평범한 흡혈귀 실장석이 이성을 잃고 가장 가까운 피냄새를 향해 달려들려고 악을 써댄다. 흡혈귀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실장석들은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있었다. 흡혈귀 실장석이 제대로 공격도 못하게 처음엔 혀를 내밀며 약올려댔지만, 학파생들이 흡혈귀에게 아주 살짝 가까이 밀어주니 흡혈귀의 손이 닿았다. 그 순간 실장석들은 바로 태세를 바꿔 시끄럽게 울면서 흡혈귀에게서 벗어나려고 살려달라 애원했다. 그래서 실장석들은 모두 신발이 없었다.
“뎃샤아아아아아악! 데기이잇! 샤아아아아아악!”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찌에에에에엥!”
“일부러 마력동석 안 빼놓은 애들로 골라놨지. 지금 바로 데려갈 거야? 그냥 우리 애들 부르지.”
“다들 바쁘시잖아요. 저도 흡혈귀 정도는 다룰 줄 안다구요.”
“근데 얘들로 무슨 실험을 할 건데?”
“실장석 몸 속에 마력동석이 있잖아요. 그걸로도 차원문을 가동할 수 있나 보려고요.”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특별한 흡혈귀도 필요해?”
“있으면 좋죠.”
“없어서 그래.”
피시스에는 자기 팔길이만한 목걸이를 준비해서 자실장 하나, 성체실장 하나, 흡혈귀 자실장 하나, 흡혈귀 성체실장 하나를 준비해주었다. 흡혈귀 실장석들은 빛을 완벽히 차단하는 보자기에 잘 싸둔다. 철창 안의 실장석들은 실장석에게 목걸이를 매어주는 꼴을 보면서 오열하고, 목걸이를 매는 실장석들은 자기 목에 매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알아보는 눈치였지만 리베라나가 잡아서 들어보니 줄이 애매하게 짧아서 팔을 살짝만 들면 실장석들이 공중에 뜨며 숨통을 조여왔다. 팔을 다 내려주면 발은 닿았지만 리베라나가 끌고 가려고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바로 줄이 목을 잡아 끌어서 실장석들이 켁켁 소리를 냈다. 목 졸려 죽지 않으려면 발걸음을 맞춰서 리베라나와 맞춰 걸어야했다.
“데켁! 케헥! 게에에엑! 켁!”
“좀 긴 줄 없어요?”
“일부러 짧은 거 준거야. 이게 더 통제하기 편하거든. 줄 긴 거 주면 어떻게 되겠어? 제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네 옷에 똥칠할 거 아냐.”
“그렇구나. 근데 지금 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너네 바쁘다고 안 했어? 지금 데려간다며?”
“히히, 쭙쭙이좀 보고 가려구요.”
“그건 안 돼.”
리베라나는 오히려 피시스에가 단칼에 거절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반응을 보였다.
“왜, 왜요?”
“왜긴 왜야! 자꾸 쭙쭙이, 쭙쭙이 하다보니까 우리가 좀 무뎌진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쭙쭙이도 결국은 레테크 격리소에 들어갈 만큼 위험한 흡혈귀고 원래 레테크 격리소도 사적인 이유로 출입하는 건 엄금이라고. 지금까지는 우리가 쭙쭙이랑 매듭지을 일이 있었고 너도 명예 마법사 증표 있었으니까 들여보내줬는데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앞으로 쭙쭙이 못 보는 거예요?”
“그래. 네가 괴생물학파장이 된다면 모를까.”
“으에…….”
리베라나가 팔에 힘을 축 빼니 공중에 살짝 들려있던 실장석들도 땅에 발을 딛는다.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쭙쭙이한테 무슨 볼일 있어?”
“아뇨. 그냥 요새 직접 얼굴 본 지 되게 오래 된 것 같아서.”
“수정구슬로 봤잖아?”
“쭙쭙이보다 실장석을 더 많이 봤잖아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피시스에는 회담 내내 수정구를 앞에 두고 있었으니 리베라나와 시선 차이가 있음을 인정했다.
“중요한 말 아니면 편지로 써. 내가 전해줄게.”
“그렇게 할게요.”
“보내도 흑마법 심문관들이 먼저 검열하니까 쭙쭙이가 못 볼 수도 있고, 쭙쭙이가 답장은 절대 못 하게 되어있어. 그건 알아둬.”
아쉬웠지만 리베라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피시스에에게 꾸벅 허리숙여 인사하고는 실장석들을 끌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팔을 축 내리고 평소처럼 터벅터벅 걷는데 실장석들이 자꾸 바닥에 질질 끌렸다. 실장석들은 걷고 싶어하지 않았고, 바닥에 발이 닿는 즉시 주저앉아 테에엥 데에엥 울어댔다. 목이 졸리기 전까지는. 인간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으면서 데에엥 데에엥 울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기는 실장석의 신체능력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라 실장석들은 숨이 턱에 닿도록 뛰면서 목이 졸리지 않게 리베라나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리베라나는 실장석이 똥을 싸지는 않을까 걷다가도 한두 번씩 살펴보았다. 실장석들은 깔끔했다. 실장석 보관소에서 먹이는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었다.
그러나 흡혈귀 실장석의 괴성은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고, 그런 실장석을 끌고 다니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주변 눈치는 살피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되고, 어느새 리베라나는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안경까지 벗어버린 채 걸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입고 있는 공간조율학파의 로브에게 부끄러웠다.
“다녀왔어요.”
“수고했어……. 어어? 얘! 고드니스! 왜 울어! 피시스에가 너더러 욕하던? 이 자식을 내가 그냥…….”
“아무 것도 아녜요. 아무 것도…….”
“힘든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 내가 우는 애들 나무라고 그러지는 않잖아?”
“네, 학파장님. 죄송해요, 걱정 끼쳐드려서…….”
“우는 사람이 왜 사과를 해! 울린 놈이 사과를 해야지! 안 되겠어, 어떤 놈이야! 지금 실험이고 뭐고 당장 가서…….”
“아무도 아니에요! 그냥 요새 너무 힘들어서…….”
리베라나가 데려온 실장석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고 카부스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러나 리베라나는 눈물을 닦아내고 안경도 고쳐쓰면서 묶어놓은 실장석들을 풀었다.
“빨리 끝내요. 쉬고 있을 시간 없잖아요.”
“그래. 이것만 빨리 끝내자. 다시 가동 준비해!”
최초의 차원문은 다시 꺼지고 묶어놓은 실장석들 중 그냥 자실장을 먼저 데려왔다. 장갑 낀 손으로 들린 자실장은 팔다리를 바둥거리면서 자기를 든 인간에게 손가락 없는 삿대질을 하고 테치테치 명령을 하고 있었다. 무슨 명령인지 알아듣는 이는 없다. 리베라나는 이젠 익숙하게 후타비아 찬넬어로 쓰인 조종간으로 최초의 차원문을 가동했고 다른 학파생들이 벌벌 떨면서 벽 뒤에 숨어있는 동안 학파장이 자실장을 최초의 차원문 위로 던진다.
“자, 간다. 하나, 둘, 셋!”
“테챠아아아아아앗!”
자실장의 몸뚱아리가 최초의 차원문 위를 향해 날아가고, 몸 속의 마력동석이 차원문에 응집된 마력과 반응하면서 자실장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찢어놓았다. 아주 잠깐 녹색 번갯불이 튀었지만 그 뿐이었다. 차원문은 열리지 않았고 자실장의 피와 살만이 차원문 실험실 곳곳으로 퍼질 뿐이다. 묶여있던 성체실장은 그 모습을 보면서 바닥에 구르면서 웃어댔다.
“데퍄퍄퍄퍄퍄퍄핫! 퍄하하하하하하하핫!”
“자, 다음!”
그렇게 웃어대는 성체실장이 다음 실험체였다. 방금 전까지 배를 잡고 웃어대던 성체실장은 학파장이 자기를 집어들자 자실장과 마찬가지로 손가락 없는 삿대질을 하며 명령을 하더니, 자신을 든 인간이 방금 자실장이 터져죽었던 이상한 기계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 좋지 않은 직감을 느꼈다. 성체실장은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그냥 보내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물론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실장석으로 차원문 가동하기 2번째, 하나, 둘, 셋!”
“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성체실장의 몸뚱아리도 자실장과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으로 찢어져 차원문 실험실 곳곳에 튀었다. 언제나 말끔한 상태를 유지하던 실험실이 순식간에 살점조각이 사방에 튄 도살장으로 변했다. 해당 실험을 기록하던 콜드펌은 기록지에 성체실장의 살점이 튀어 종이 한 장을 못 쓰게 되었다. 자실장보다 훨씬 큰 마력동석을 지니고 있던 성체마저도 차원문을 여는 데는 실패했다.
“둘 다 실패네.”
“그냥 실장석은 마력동석에 마력이 너무 없어서 그런가봐요.”
“그럼 이번엔 흡혈귀를 던져보자. 이것만 하면 끝나!”
“테샤아아아아악! 샤아아아아악! 텟쌰아아아아아아악!”
피시스에가 잘 감싸놓은 보자기 안에서 흡혈귀 자실장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부스는 그 보자기를 풀려다가 생각해보니 보자기가 마법용품도 아니고, 보자기를 풀어봤자 물릴 위험만 커질 것 같아 풀지 않기로 결정을 바꿨다. 카부스는 흡혈귀를 밧줄채로 집어들고는 차원문을 향해 휙 던졌다. 번쩍, 하고 연둣빛 번개가 치더니 보자기가 산산조각나며 갈라진다.
“열렸다!”
“으아! 흡혈귀 조각이다!”
“조각 말고 이빨 조심해, 이빨!”
“이빨 다 뽑아놔서 없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게 있잖아.”
흡혈귀 실장석 몸 속의 마력동석이 최초의 차원문에 반응하여 산산이 부서지고, 그 부서지는 힘은 흡혈귀의 강화된 육체라도 버틸 수 없었다. 흡혈귀 실장석은 안에서부터 찢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조각나 그 건조한 육신을 감싼 보자기와 함께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그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학파생들은 흡혈귀 조각이 입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황급히 입을 감싸며 흡혈귀 조각을 가능한 피해보려 발을 놀렸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최초의 차원문은 문제없이 열렸다. 흡혈귀 실장석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아치가 차원의 균열을 안정시키고 있다. 그중 한 조각에는 실장석의 눈알도 멀쩡히 달려있어서 기괴함이 더하다.
“좋아, 실험 성공……. 징그럽네.”
“흡혈귀도 두 마리나 데려왔는데 굳이 한 마리는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그래도 흡혈귀를 그냥 여기 둘 수는 없어. 우리가 뭐 대산송장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있을 필요 있나요? 지금 대낮인데.”
공간조율학파에서 흡혈귀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리베라나가 흡혈귀를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차원문 실험실 청소하는 게 귀찮아서 그랬던 거지만, 다른 학파생들도 흡혈귀를 만지기는 영 겁이 나서 리베라나의 용기를 치하했다. 그냥 간단하게 학파 문 앞에 던져놓고 타죽는 걸 구경하려던 리베라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떠올라 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춘다. 대신 승강기를 타고 학파 아파트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쌀쌀한 찬바람이 살갗에 닿으면서도 눈부신 햇살이 그 살갗을 비춰주니 차갑다가도 따스하다가도 포근하다. 대규모 순간이동진이 그려진 아파트 옥상은 전투준비태세 이후로 사용 금지령이 내려져 지금은 아무도 없다. 차원문 상업화까지 끝나면 이 순간이동진도 지워지겠지, 기분이 오묘해진 리베라나는 염동력으로 보자기를 높이 들고 물리지 않게 조심해서 보자기를 풀었다.
“데샤아아아악! 뎃, 뎃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보자기가 풀리자마자 흡혈귀 실장석이 발악을 해대지만, 그 발악은 얼마 가지 않았다. 햇빛이 선명하게 흡혈귀의 살갗을 핥자 피부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이를 불에 태우듯 검댕이 피부 곳곳에서 나타나더니 흡혈귀의 몸을 잠식해나갔다. 옷을 입고 있어도 햇빛을 완전히 막지 못하는 실장석의 옷은 흡혈귀의 살갗을 옷이 짜인 모양대로 자국을 내며 태워나간다. 흰 눈은 이미 불타올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고, 힘 좋게 파닥이던 팔다리는 근육마저 숯이 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옷에 가려진 어깻죽지와 골반만이 남아 통나무처럼 곧게 뻗은 팔다리를 움직일 뿐이다. 타오를대로 타오른 팔다리는 숯을 지나 재가되었고, 실장석의 바둥거림에 휘날려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흡혈귀 실장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녹색의 옷과 흰색의 속옷만이 남아있었다.
“……쭙쭙아…….”
한동안 에립마브와 가까이 지냈던 리베라나는 가끔 에립마브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태양 아래에서도 몸만 잘 감싸면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고, 맛나는 피비린내 풀풀 풍기는 처녀 옆에서도 일부러 실장석 피만 빨고, 툴툴거리기는 해도 부탁이 있으면 얼마든지 들어주는 흡혈귀. 리베라나는 에립마브를 떠올리면서 키아시토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키아시토도 얼마든지 흑의 계약서를 쓸 수 있었고 에립마브처럼 그 힘을 남용해가며 가이더링을 휘두를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 자신의 영물함을 바쳐가면서까지 가이더링에 협력하는 키아시토가 리베라나에게는 그리 나쁘게 비춰지지 않았다. 에립마브와 키아시토, 리베라나에겐 모두 삶의 다른 방법을 택한 인간처럼 느껴졌다. 찬바람이 리베라나의 옷자락 안을 비집고 들어가고, 리베라나는 자기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차린다.
“안 돼, 안 돼. 쭙쭙이는 흡혈귀고 키아시토는 리치잖아…….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가나봐…….”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실험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지금 리베라나에게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새로운 차원문 실험장의 건설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커다란 탁상지가 있으니 평지는 마련됐고, 마법사들이 할 일은 그저 그 탁상지 주위로 괴물들이 쳐들어올 수 없게 울타리를 치는 것과 그 울타리를 순찰하는 병력을 배치하는 일 뿐이었다. 탁상지의 한가운데에는 차원문과 마력변압기만이 외롭게 놓여있다. 광활한 탁상지의 테두리 부분에는 순간이동진을 그려놓고 그 순간이동진을 중심으로 수많은 실험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험에 필요한 물품은 전부 준비되었고 실험체로 쓰일 키아시토와 괴생물학파에서 만들어낸 평범한 흡혈귀 실장석도 햇빛을 완전히 가리는 장막 아래에서 철창 속에 갇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흡혈귀 실장석은 자다가 강제로 끌려와서 잠도 깬 와중에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바깥에 놓여있어 성질이 날카롭다. 키아시토는 흡혈귀 실장석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스?”
“데샤아아아아악! 데아아아아아아아악!”
“둘 다 입 다물어.”
키아시토를 지키고 있던 흑마법 심문관은 흡혈귀의 철창을 저 멀리 치워버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자 실험을 주도한 인원들이 마침내 순간이동진을 타고 도착했다. 공간조율학파장 카부스와 리베라나, 콜드펌이 앞서고 요정과 러트너, 피시스에, 쿱이 뒤를 따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아시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차원문 실험에 공간조율학파장이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러트너 씨와 요정 님은 마법사도 아닌데 이곳은 어쩐 일이시오?”
“네놈이 죽는 꼴을 이 몸의 눈으로 직접 봐야 속이 후련하겠구나.”
미라익스의 검은 탁상지 산은 러트너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크다. 넓고도 평평한 산 꼭대기에 와이드스트림을 5개는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탁상지 가운데 있다고 하는 최초의 차원문은 러트너가 서있는 탁상지 동쪽 테두리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카부스는 차원문 조종간으로 가서 조종간과는 따로 떨어져있는 작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탁상지 전체에 커다란 경고음이 울리더니 곳곳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평범한 새가 아니라 하피나 칼수리같은 괴물 새다. 울타리에서 사주경계를 펼치던 전투마법사들이 날아오르는 괴물 새들을 쏘아 바로 떨어트렸다.
“시작합시다. 고드니스, 위험한 일인 건 알지만, 여기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으니 네가 대신 관측을 해줘야겠어. 네가 가서 차원문을 작동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반질량 분광기를 8할로 조정하고 실장석을 넣을 때까지 대기할 거야.”
“욘손이여, 리베라나가 직접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니더냐. 그대들에게는 귀신들린 물건도 있거늘 어찌 위험하게 리베라나를 직접 시키느냐.”
“넣는 건 직접 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마세요. 저희도 인공생물을 써볼까 했는데, 똑같이 움직이는 거라면 그냥 실장석을 직접 움직이는 쪽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고 싸잖아요.”
리베라나가 자기 자신에게 가속 주문을 사용하고 차원문 쪽으로 열심히 뛰어간다. 납작한 차원문보다 키가 훨씬 큰 리베라나는 멀리 있어도 모습이 잘 보인다. 차원문 옆에서 팔로 크게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이는 리베라나의 신호에 맞춰 카부스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차원문 조종간 위에서 손가락을 분주하게 놀렸다. 그 어떤 차원문에도 연결되지 않고 홀로 동력이 들어간 최초의 차원문에서 좌표에 오류가 있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알린다. 카부스는 그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절차를 계속 수행했다.
“1단계 방출기 작동 시작. 셋, 둘, 하나.”
너무도 멀리 있고 형상도 납작해서 차원문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리베라나가 그 차원문을 살피더니 지팡이로 광원을 만들어 자기머리 위에서 세로로 곧은 직선을 그려냈다. 1이라는 숫자다. 카부스는 자기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예상했던 위상 배열이 보여야 할 텐데. 2단계 방출기 작동 시작, 지금.”
이번에도 리베라나는 광원을 만들어 숫자 2를 그려보였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뛰어서 차원문 실험장으로 달려왔다. 가속 마법 덕분에 힘든 티도 나지 않았다.
“잘 됐어?”
“잘 됐어요.”
“좋아, 고드니스. 이대로 차원문이 얼마나 견뎌줄 지 우리도 알 수 없어. 이 실험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예상할 수 없고.”
제일 먼저 평범한 실장석을 두 마리 준비했다. 괴생물학파의 철창에서 꺼낸 그냥 성체 실장석은 다른 실장석들의 마력동석이 뽑힐 때 인간들이 자신은 건드리지도 않는 것에 자신에게 알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직감대로 인간들은 실장석을 철창 밖으로 꺼내더니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목에 줄도 매어주고, 이 광활한 바깥으로 산책까지 시켜주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사육실장 라이프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하고서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가지를 않고 있었다.
“데헤~ 데흐프프프프.”
“데프프프프, 데프프프프프.”
“이것을 또 집어넣으려면 리베라나가 고생을 하여야 하지 아니하느냐.”
“제가 굳이 넣을 필요는 없죠.”
리베라나는 손바닥만한 황동 상자와 평범한 실장석을 챙겨서 다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뛰어갔다. 먼저 실장석을 차원문으로부터 10보 떨어진 곳에 올려다놓고, 차원문을 지나 또 10보만큼 떨어진 안전한 거리에 황동 상자를 놓는다. 리베라나가 황동 상자에 지팡이를 대고 마력을 불어넣자 황동 상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데스데스거리는 실장석의 말이다. 언어(言漁)를 가지고 있지 않은 리베라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 말은 러트너가 직접 녹음한 음성이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데스웅~. 우마우마한 스시와 스테이크가 세상천지에 깔려있는데스웅~. 데프프, 이건 모두 세레브한 사육실장 양충 와타시의 차지인데스웅~.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는데스웅~.]
그 말을 들은 실험체 실장석들은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데깃! 감히 어떤 분충이 진정한 세레브 사육실장 와타시 앞에서 양충 타령인데스! 와타시가 응당히 취해야 할 스시와 스테이크를 갈취한 죄로 오마에를 능지처참에 처해버리겠는데샤아아아아아앗!]
[스시와 스테이크는 당연히 와타시의 것인데스! 오마에같은 분충 따위에게 넘겨줄 것 같은데샷!
그리고 가짜 실장석 소리를 재생하는 황동 상자쪽을 향해, 그 황동 상자와 실험체 실장석의 가운데 놓여있는 차원문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실장석이 차원문을 닿기 전에 리베라나는 또 열심히 달려 실험장으로 돌아왔고 평범한 안경을 천리안 주문이 걸린 특수 안경으로 바꿔 쓰며 상황을 관찰했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
일촉즉발의 순간 모두가 말이 없어진다. 울타리를 지키는 전투마법사들마저도 차원문의 실험 결과를 지켜보느라 한눈을 팔고 있었다. 실장석은 차원문 위로 발을 올리고, 그 몸 속에 있는 미약한 마력동석이 차원문의 마력에 반응하자 녹색 번개와 함께 붉은 피보라가 일었다.
“뎃샤아아아아아아악!”
“들어갔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는 사람, 귀를 막는 사람, 눈도 감는 사람, 아예 등을 돌리는 사람, 흥미가 가득해서 눈도 떼지 못하는 사람, 여러 사람이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장석이 피보라가 되어, 그 피보라도 거센 바람에 날려 사라졌을 뿐, 차원문도 그 주변 광경도 모두 그대로다. 바람이 세게 불자 말라죽은 둥근 풀 덤불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차원문 위를 지나갔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 모두가 김 빠지는 한숨을 쉰다.
“……별 일 없네.”
“마력이 너무 미약했소. 조금 더 강한 것을 써야 하오.”
“우리도 알아!”
첫 번째 실험이 허탈하게 끝나고 다음 실험은 흡혈귀 실장석이다. 스스로 걸어는 가되 타죽어버리지 않도록 극락조 깃털로 만든 옷을 입히고 벗을 수도 없게 단단히 꿰맨다. 옷을 입히는 것은 피시스에의 몫이었는데, 이빨을 뽑아버린 흡혈귀임에도 사람들이 물리는 걸 영 두려워해서 피시스에가 직접 물려가면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 없이 잇몸으로 물어봤자 상처도 하나 나지 않고 기분만 나쁠 뿐이다.
“다 됐다, 얘도 데려다놓고 올게요.”
“몸 조심하거라, 리베라나.”
뛰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힘들만큼 열심히 뛴 리베라나는 방금 실장석을 놓았던 자리에 극락조 깃털로 감싼 실장석을 놓았다. 방금 전 실장석을 유혹하던 황동 상자가 아직도 멀쩡해서 교체할 필요는 없었다. 흡혈귀 실장석에게도 그 소리가 들렸고 리베라나는 잽싸게 도망쳐나왔다.
“자, 이제 진짜 실험이에요.”
“으, 긴장된다.”
“러트너, 이 몸의 손을 잡거라.”
“저보다 요정 님이 더 떨리시는 것 같은데요.”
“그리하여서 잡아달라고 하는 것이니라.”
콜드펌의 자동펜이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 쿱은 불안감에 자신의 나뮈 교단 표식을 감싸쥐고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도 못하게 기도문을 읊는다. 러트너는 쿱이 픈글뤼 므글루나흐 라고 말하는 걸 들었지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루빠모 하무라뾰같이도 들렸다.
앞이 온통 어두웠지만 그래서 더욱 편안함을 느끼는 흡혈귀 실장석은 자리에 앉아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천리안 안경으로도 아주 잘 보인다. 이제 일어나서 걷기만 하면 된다. 실장석은 황동 상자 쪽을 잠깐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냥 자리에 엎드려 웅크렸다. 그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 가끔 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보이니 살아있는 것은 확실했다. 자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안 들어가고 자네?”
“잔다고?”
리베라나가 또 열심히 뛰어 실장석을 살펴보니 정말로 실장석은 엎드려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발로 차서 차원문에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참고 발 끝으로 툭툭 건드려서 깨운다.
“데샤아아아악! 데아아아아아악!!”
“얘! 빨리 저기로 가봐야지!”
“데아아아아아아악! 갸아아아아아아악!”
“뭐라는 거야, 속 터지게 정말…….”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 황동 상자의 음성을 녹음한 러트너도 왜 움직이지 않는지 갑갑해서는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마음이 들 때까지 백금검으로 살갗 곳곳을 지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자식은 스테이크랑 스시도 모자라서 뭘 더 바라는 거야?”
“저것은 흡혈귀잖소. 스테이크랑 스시가 눈에나 들어오겠소?”
“……아.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다시 녹음을 할까요? 우마우마한 피가 있다고.”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기다려봐요.”
피시스에는 실험장의 짐더미를 뒤지더니 리베라나가 들고 다니던 황동 상자와 비슷하게 생긴 황동 원통을 꺼냈다. 5개의 마디로 나누어진 원통은 각 마디가 또 10칸으로 나뉘어있고 그 칸마다 특이한 모양이 새겨져있다. 이 마디는 손가락으로 돌리면 돌아갔는데, 피시스에가 칸의 모양을 순서대로 맞추고 원통 끄트머리에 마력동석을 박자 곧 비릿한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으윽, 이 무슨 피비린내인고?”
“발향제에요. 흡혈귀는 사족을 못 쓴다는 처녀 피 냄새.”
“대체 그 냄새는 어떻게 알고 만든 거예요?”
“부검 과정의 부산물이라고나 할까요.”
요정이 리베라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오늘 몇 번이나 뛰는지도 모를 만큼 열심히 뛰는 리베라나는 어느새 피부에 구슬땀이 맺혀있었다. 카부스가 그 땀을 닦아주고 피시스에가 발향제를 건넨다.
“킁킁, 으. 피 냄새.”
“녹음기 대신 이걸 써봐.”
러트너가 건네주는 수통으로 물을 잔뜩 들이킨 리베라나는 잠시 다리를 가볍게 풀어준 다음 흡혈귀를 놓아둔 반대편으로 가 황동 녹음기를 치우고 발향제를 올려놓았다. 끄트머리에 마력동석을 박자마자 사방천지에 피냄새가 퍼진다.
“데샤아아아아악! 뎃, 데아아아아아악!”
흡혈귀 실장석도 벌떡 일어나 코를 킁킁거렸다. 얼굴까지 덮어버린 극락조 옷 때문에 앞은 보이지 않아도 냄새는 확실하게 난다. 스테이크와 스시가 있다고 하던 모르는 실장석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의 진한 향기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을 정도다. 흡혈귀 실장석은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피냄새를 향해 걸었고, 실장석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리베라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실험장을 향해 뛰었다.
“어라?”
세 발자국 쯤 뛰었을 때, 리베라나는 땅이 자신에게 가까워져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느리다. 얼굴에 거세게 부딪히던 바람도 약해졌고 가볍던 몸도 많이 무거워졌다. 리베라나는 땅을 팔로 짚었지만 발을 바닥에 붙일 수는 없었고, 자신이 넘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넘어져버렸다.
“가, 가속이!”
“고드니스!”
“이럴 수가, 리베라나!”
리베라나는 차원문 쪽으로 다가가는 실장석을 슬쩍 보고는 서둘러 지팡이로 가속 마법을 걸었다. 다시 일어나서 뛰기만 하면 되는데, 가속이 걸린 상태로는 일어나려는 것도 너무 빨라서 너무 힘차게 일어나 재차 넘어지고 말았다. 다분히 바보같이 보이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웃을 상황이 아니다. 흡혈귀 실장석이 차원문의 계단에 발을 올렸다.
“일어나지 말고 흡혈귀를 치워, 리베라나!”
“카부스! 빨리 차원문을 멈추거라!”
“잠시 기다리시오!”
금속이 구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뛰쳐나갔다. 이미 리베라나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던 이들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파악할 수 없었으나, 흑마법 심문관들이 경악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비상! 비상! 키아시토 탈주! 키아시토 탈주!”
“뭐, 뭐? 키아시토까지, 분명 백금줄로 묶어놓았을 텐데!”
“영물함 가져와! 빨리!”
피시스에가 놀라서 살펴보니 철창 안에는 끊어진 백금줄밖에 없었다. 어떻게 끊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키아시토는 차원문쪽을 향해 달려나갔고 흡혈귀 실장석은 차원문 위로 거의 다 올라갔다. 차원문 가운데 서는 순간 실장석은 리베라나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으, 으아, 으아아!”
“진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지팡이를 짚고 나서야 간신히 바닥에 발을 붙인 리베라나 앞에 키아시토가 강풍을 일으키면서 나타났다. 가죽이 말라붙은 인간이 눈에서 푸른 안광을 빛내며 나타나자 공포에 질린 리베라나는 다시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꺄아아아아악! 리, 리치가 어떻게!”
“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데스!”
“데쉬이이익, 샤아아아아아아악!”
“꺄악! 이거 놔! 아, 아니다! 놓지 말고 살려주세요!”
리베라나의 허리를 잡아서 번쩍 들어올린 키아시토는 실장석에게 잠시 멈추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장석은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걸어나갔다. 흡혈귀 한 마리는 염동력으로 잡아들었지만 두 마리까지는 손이 부족했기에 키아시토는 흡혈귀를 옮기는 대신 공중으로 펄쩍 날았다.
“영물함 파쇄…….”
“안 돼! 지금 부수면 리베라나가 위험해!”
공중에 뜬 리베라나는 키아시토가 무서워서 붙잡지도 못하고 바둥대다가도 지금 자신이 어마어마한 높이에 떠있다는 사실에 놀라 키아시토의 목을 붙잡다가 놓았다가 공황하기를 반복한다. 키아시토는 공중에 뜬 채로 가만히 있었지만 리베라나가 훨씬 움직임이 많았다.
“진정하시오, 진정하시오. 실장석이 차원문으로 들어가오.”
“꺄아아아악! 이거 놔! 이거 안 놔!”
“내가 당신을 놓으면 떨어져 죽게 될 거요. 해치지 않으니 걱정 마시오.”
흡혈귀 실장석은 피냄새를 쫓아 보이지도 않는 앞을 걷다가 차원문의 가운데로 들어섰다. 몸 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리베라나는 키아시토의 목을 어쩔 수 없이 단단하게 붙든 채로 차원문을 바라보았다.
“여, 여기 있어도 안전한 거 맞아?”
“불안하면 다시 위치로 돌아가드리겠…….”
그때 커다랗게 녹색 번개가 치더니 어마어마한 굉음이 주위를 휩쓸었다. 좌표가 지정되지 않은 최초의 차원문에 흡혈귀 실장석의 마력동석이 올라서자 두 마력원이 서로 공명하다가 강렬한 공간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위에서 봐도 백 보는 족히 될 것 같은 직경 범위에 지형을 갈아엎듯 번개가 몰아치더니 수풀이 돌 속에 박히고 공중에 모래구름이 떠다니는 등 공간이 그 고결함을 잃어갔다. 리베라나는 말도 잇지 못하고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폭풍은 10초도 되지 않아 가라앉았지만, 차원문이 있었던 자리는 폭풍이 치기 전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없었던 구덩이나 언덕이 솟아있기도 했다. 돌이 폭풍에 그슬리기라도 했는지 검은 돌멩이도 군데군데 굴러다녔다.
“너 당장 내려오지 못해! 우리 고드니스 내려놔!”
“고드니스 양, 내려보내드리겠소. 너무 움직이지 마시오. 놓칠지도 모르오.”
“고드니스라 하지 마! 리베라나야! 그리고, 그, 당신 오른손이…….”
“오른손이? 어이쿠, 미안하오. 상황이 너무 급박했소.”
키아시토는 자신의 오른손을 리베라나의 어깨로 옮기고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갔다. 키아시토의 착륙지점에는 수많은 흑마법 심문관들이 자신의 영물함을 조준하면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먼저 닿기 전에 리베라나를 먼저 땅에 내려놓은 키아시토는 리베라나가 두 발로 서서 멀쩡하게 걷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도 바닥에 발을 붙이고 손을 들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뛰쳐나가서 미안하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니 이해해주길 바라오.”
“고드니스! 너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네……. 네.”
러트너도 리치에게 칼을 겨누고 요정도 루노에게 산송장을 벌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빌고 있었다. 키아시토는 그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피시스에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끊어진 백금줄을 들고 왔다.
“이 백금줄은 어떻게 끊은 거야, 도대체?”
키아시토는 피시스에에게 백금줄을 받고는, 백금줄이 붉게 달아오를 만큼 열을 가하고 나서 양 손으로 당겨 가볍게 끊었다. 키아시토가 풀려나기 전 손목과 온 몸을 백금줄이 감싸고 있던 자리에 검댕이 묻어있었는데, 그 백금줄 때문으로 보였다.
“이제 믿으시겠소?”
“……그럴 수가……? 마력봉쇄목걸이에, 팔찌에, 발찌까지 다 찼는데, 어떻게 마력을 쓰는 거야!”
“마력봉쇄는 말 그대로 몸 속에 깃든 마력을 부분부분 나누어 한꺼번에 뿜어내지 못하게 할 뿐이오. 그 나누어진 마력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그 순간 피시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리치를 완벽히 포획한 줄 알았는데 리치는 그런 자신을 놀려먹듯 줄을 끊어냈다. 그는 지금 레테크 격리소에 갇혀있는 생물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수가 격리된 척 하고 있을지 몰라 두려워졌다. 흑마법 심문관들이 여분의 백금줄과 마력봉쇄장비를 가져왔지만 키아시토가 백금줄을 끊는 걸 보고서는 굳이 묶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아예 묶지도 않았다.
“그럼 차원문을 확인하러 가시겠소?”
“어, 어……. 가야지, 가야……. 가야지.”
“고드니, 아니, 리베라나 양은 괜찮으시오?”
“……문제 없어…… 요.”
리베라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을 뿐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키아시토는 자신의 영물함을 들고 있는 심문관에게 잘 챙기고 있으라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차원문 쪽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쳐야 했고, 움직이면 영물함을 부숴버려야 했지만 방금 전만 해도 사고로 죽을 뻔한 리베라나를 눈 앞에서 구해준 리치를, 지금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적대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막상 그러기도 참 심정이 복잡했다.
“사고 재현은 성공했구려. 그대들이 원하는 결과이기를 바라오.”
차원문 주변은 실험 전과 그리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였다. 실험 전에도 별다른 게 없는 황폐한 탁상지였기에 변화가 생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키아시토는 주위를 살피다가 무언가를 하나 주워들어보였다. 주먹만한 돌멩이였다. 실장석의 머리통이 절반쯤 박혀들어간 돌멩이. 키아시토가 그 돌멩이를 손날로 팍 쳐서 깨트리자 흡혈귀 실장석 두 마리의 머리통이 돌과 융화되어 어디가 어느 흡혈귀의 두개골이고 어디가 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흡혈귀의 육신도 햇빛을 받아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가다가 사라졌다.
“실장석(石)이 됐네.”
“이 큰 사고가 있었는데도 차원문은 어째 멀쩡하다?”
“차원문에서 터져나온 마력이 차원문을 주축으로 하여 주위를 휩쓸기에 차원문 자체는 영향을 받지 않소. 나는 이것을 폭풍의 눈이라고 이름붙였소. 내가 지금껏 수많은 실험을 해왔음에도 차원문이 멀쩡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오.”
리베라나는 키아시토가 반으로 나눴던 돌멩이를 집어들고 그 안에 박힌 실장석의 육신을 보았다. 키아시토가 없었다면 지금 이 돌멩이 안에는 리베라나의 뇌가 박혀있을 수도 있었다. 리베라나가 비틀거렸고 러트너가 옆에서 리베라나를 부축해주었다.
“괜찮으신 거 맞아요?”
“저 진짜 죽을 뻔 했던 거네요…….”
“진짜 리베라나 님은 운도 좋으시네요. 아렌지께서 제 운 다 뺏어다가 리베라나 님께 몰아주시나봐요.”
실장석이 박힌 돌멩이는 리베라나가 저 멀리 던져버렸다. 자신의 사지가 멀쩡하게 달려있는 것을 새삼 감사한다.
“괜찮으시겠소? 아직 해야 할 실험이 많이 남아있지 않소.”
카부스는 우선 리베라나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면서 키아시토의 말은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어휴, 우리 고드니스 하마터면 평생 못 볼 뻔했네. 실장석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줄 거라고 생각한 자체가 문제였어. 실험도 무서워서 더 하겠나. 이거 혼종 만들려는 실험이었는데 실장석 혼종은 나오지도 않았잖아!”
“마지막 실험이 남아있지 않소. 나와 실장석을 섞는 것 말이오. 리베라나 양도 수고 많았소. 이제는 나에게 맡겨주었으면 하오.”
리베라나와 카부스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키아시토를 불편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요정마저도 이를 갈면서 키아시토를 쳐다보다가 결국은 등을 돌린다.
“네놈이 리베라나를 구하지만 아니하였다면 당장이라도 처형하였으리라!”
“고맙소. 리베라나 양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겠소. 필요하다면 가이더링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아뇨, 아뇨. 무슨 일 벌어지는지 다 보고 갈 거에요. 돌아가시긴 누가 돌아가셔요. 저 오늘 여기 볼 꼴 못 볼 꼴 다 보러 왔으니까, 진행하자구요. 학파장님, 문제 있어요?”
진땀은 흘리고 있어도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리베라나의 눈에서 결의를 읽은 카부스가 장하다면서 등을 몇 번이고 두드려준다.
“고드니스, 그래도 네가 하지는 말자. 사람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어.”
“어차피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니오. 내가 맡겠소.”
“……. 이번 한 번만이야!”
“한 번이자, 마지막이오. 어차피 나는 여기서 죽을 운명 아니겠소.”
키아시토가 악수의 뜻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카부스는 그 손을 받기는 커녕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그리고 리베라나를 데려다 실험장 천막 아래 앉히고 따끈한 쇼콜라틀을 가져와주길 부탁했다. 그동안 괴생물학파장 피시스에는 마지막 실험체, 에립마브의 특별한 흡혈귀 흑발 자실장을 데려다 극락조 깃털로 옷을 짜서 입혔다. 다른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자고 있는데 깨워서 성질이 날카로웠지만 자신에게 옷을 입혀준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평범한 흡혈귀보다는 얌전했다. 키아시토는 그 자실장을 받았고 차원문을 향해 걸어가기 전 사람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오?”
“……우리 고드니스 구해준 거, 고마워.”
“…….”
“왜.”
“누군가 비꼬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소. 마지막으로나마 믿어주어 나도 고맙소.”
키아시토는 차원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자실장과 키아시토가 실장석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요정이 듣기에 그 말은 그냥 키아시토가 실장석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실장이 놀라워하는 것에 불과했다. 수상한 대화를 나누더라도 영물함을 심문관들이 가지고 있으니 별다른 수는 쓸 수 없으리라, 요정은 리베라나를 구해준 키아시토의 의도마저도 모든 것이 수상하게만 느껴졌다.
“……하아, 시작하자. 1단계 방출기 작동 시작. 셋, 둘, 하나.”
최초의 차원문에 다시 동력이 들어가고, 실험 절차는 이전과 같이, 그러나 훨씬 긴장이 가득한 상태로 진행된다. 콜드펌이 가져다준 따끈한 쇼콜라틀을 한 잔 마신 리베라나는 외려 긴장이 풀리고, 따스한 음료가 몸과 마음을 달래주니 의식하지도 않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리베라나 님, 괜찮으십니까?”
“그냥, 저……. 이제야 실감이 돼서요……. 방금 전까지 죽을 뻔 했다는 게…….”
표정은 덤덤하지만 눈에서 눈물만 흐를 뿐이다. 리베라나는 안경에 물 묻을까 벗어버리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은 뒤 다시 쇼콜라틀을 홀짝거렸다. 그러나 두 모금째, 표정마저도 일그러지고 만다.
“목숨 구해준 사람한테 고맙다고 인사도 못 하고……. 하, 진짜 속상해……. 어떻게 저는 제대로 하는 게 단 하나도 없을까요?”
“충분히 잘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리베라나 님이…….”
“충분하지 않아요! 하는 거라곤 엉망진창이고, 사람들 걱정이나 시키고, 남의 도움 없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나같은 게 무슨 학파장이야, 학파장은, 씨이…….”
“너무 자책하실 것 없습니다. 세상에 혼자서 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간조율학파장님도 리베라나 님의 도움으로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리베라나 님이 없었으면 학파장님도 이 실험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리베라나는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다가 마시던 쇼콜라틀도 자리에 놓고 일어났다. 터덜터덜 학파장 옆으로 가서는 양 손을 모아 입에 대고 키아시토를 향해 소리친다.
“2단계 방출기 작동 시작, 지금…….”
“이봐요 키아시토 씨-!”
키아시토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들리면 나좀 봐요!”
여전히 돌아보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학파장님, 저 잠시만 키아시토한테 인사만 하고 올게요.”
“아까 할 말 있을때 하지 왜 지금!”
“고맙다는 말 한 마디만요.”
“할 거면 그냥 여기서 확성기로, 얘! 고드니스!”
리베라나는 안경을 다시 쓰고 자기 자신에게 가속 주문을 건 다음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키아시토에게 마공탄을 마구 쏘아댔다. 비살상용 마공탄이든 살상용 마공탄이든 별로 고통없이 받아낼 수 있는 키아시토는 뒤통수를 툭툭 치는 감각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리베라나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손을 앞으로 뻗는다.
“거기서 멈추시오! 위험반경이오!”
“이거 한 마디만 하고 갈게요!”
키아시토의 손에 들고 있는 흑발의 흡혈귀 자실장이 꿈틀거렸다. 키아시토의 손가락을 물어댔지만 얼굴을 완전히 감싼 극락조 깃털옷이 이빨을 막았고, 뚫는다고 해도 별로 아프지도 않을 이빨이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제 목숨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요. 제 입으로 말하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그 한 마디 하려고 이 위험한 실험장에 일부러 뛰어오셨단 말이오?”
“멀리서 그냥 소리쳐서 퉁치려고 했는데 돌아보지도 않았잖아요.”
키아시토가 고개를 갸웃했다.
“들리지 않았소. 미안하오.”
“멀잖아요.”
리베라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키아시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볼게요. 수고 많으셨어요.”
“……리베라나 양.”
“네?”
떠나려고 뒤를 도는 리베라나를 키아시토의 말이 붙잡았다. 리베라나는 괜히 더 몰입했다간 또 울 것 같아서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나도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소.”
“제게요?”
리베라나가 뒤를 돌아보자 키아시토는 손을 내밀어보이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는 않는다. 천리안 안경을 쓰고 올걸, 눈살을 찌푸리면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본다. 키아시토의 손에는 글자같은 것이 쓰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리치 손의 주름인지 아니면 진짜 글자인지 알아보기가 영 힘들다. 그 사이 리베라나는 자기도 모르게 차원문의 위험반경 안으로 발을 들였고, 리베라나의 양 발이 모두 위험반경 안으로 들어온다.
“실험을 계속 해주기로 하여 고맙소.”
키아시토는 차원문 안으로 특별한 흡혈귀 흑발 자실장을 집어던졌다. 평범한 흡혈귀의 마력동석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녹색 번개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부터 솟아올라 탁상지 전체를 휘감을 듯 했다. 차원문 조종간까지 몰아치는 강풍에 서있기도 힘들었던 카부스는 비상 정지 단추를 부서져라 눌러댔고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리베라나를 향해 외쳤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앗!”
“무, 무슨!”
“안 돼! 고드니스! 광선에서 물러나!”
“자, 장비를 정지합니다! 정지하겠습니다! 안 되잖아? 어, 정, 정지가 안 돼! 정지시킬 수가 없어! 안 돼!”
“리베라나아아!”
차원문으로부터 뿜어져나온 공간의 폭풍은 리베라나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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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새로 합류한 전문가 영웅 고드니스 리베라나를 소개합니다!
네? 전문가라는 카테고리는 없다구요?
공간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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