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실장석 참피 소설 이것은 실장석이 아니다

현대 실장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곽 화백의 개인전. 초현실주의를 도입한 신작을 발표한다는 소식에 곳곳에서 실장미술에 내로라하는 권위자들이나 실장미술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신작 발표 시각은 정오, 아직 20분 가량 남은 상태다. 사람들이 신작을 기대하면서 기존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동안 전시장의 뒤편에서는 신작에 쓰일 자실장들의 교육이 한창이다.


“자, 여러분들은 이제 실장모델로서 경쟁하게 될 거예요. 마치 패션모델이 된 것처럼, 관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어필하는 거예요.”
[테치테치!]
[관객들이 좋아하면 어떻게 되는테치?]
“사육실장이 되거나 아이돌 실장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답니다? 그건 이제 관객분들이 결정하시겠지만요.”


자실장 수조가 테치테치 소리로 요란해진다. 다들 귀엽거나 요염한 자세를 뽐내보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든지 표정관리를 한다든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등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는 염원 하에 자기관리에 여념이 없다. 혹시나 긴장해서 빵콘하면 모든 것이 낭패로 돌아갈까 봐 어제부터 불굴의 의지로 식사까지 굶으며 참아가는 중이다.


[아타치가 여기서 제일 세레브하니 바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테치!]
[그렇게 말하는 분충이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 하는테치!]
[테테텟! 누굴 보고 분충이라는테치!]
[싸우면 안 되는테치! 싸우는 실장석은 둘 다 분충인테치!]
[무슨 소리인테치! 이 수조에서 아타치를 제외한 모든 실장석은 분충인테치!]


사육실장이 될 것이라면서 저런 분충을 왜 수조에 넣은 걸까? 학대파에게 끌려가라고 일부러 넣어놓은 낚시 개체일 것이다, 라고 자실장들이 속으로 분충 자실장을 욕했다. 각자의 노력에 맡겨 자실장들이 몸을 가꾸는 동안 신작 발표 시간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자 전시 관리인이 나타나서 자실장들을 한 번 슥 둘러보고 가장 눈에 띄는 자실장 한 마리를 집어든다.


[아타치테치! 아타치가 선택된 테치!]
[테갸앗! 어째서 아타치가 아닌테치! 아타치가 훨씬 윤기있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테치!]
[걱정 마는테치. 모두 선택 받을 수 있는테치. 순서만 달라도 다같이 사육실장이 되는테치.]


남겨진 자실장들은 떠나가는 자를 손 흔들며 보내고 계속 자기 모습을 가꾼다. 때가 되면 자신들도 저 손에붙들려 사육실장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선택된 자실장은 관리인의 손에 이끌려 베일에 덮인 유리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유리 상자 안에는 가만히 서서도 자실장을 모든 방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천천히 회전하는 원반이 설치되어있었다. 속도는 적당히 느려서 자실장이 멀미를 하지 않을 정도다. 자신이 선택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자실장은 유리 상자에 홀로 남겨지자 곧 다가올 운명을 생각하며 행복회로를 돌린다. 새로운 주인님은 어떤 분일지, 사육실장이 된다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과연 얼마나 행복한 삶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기도 모르게 테프픗, 하고 웃다가 이렇게 웃으면 경박해 보인다고 사육실장으로 발탁되지 않을까봐 자기 뺨을 톡톡톡 두드리면서 웃음기를 없애기 위해 애썼다.


[인사부터, 인사부터 하는테치. 당황하지 말고, 말을 더듬으면 바보로 보이는테치. 아타치는 바보가 아닌테치. 아타치는 세상에서 체고로 세레브한 실장석인테치.]


그렇게 5분이 지나고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이 상자 안에는 곽 화백의 신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를 수도, 완전히 같을 수도 있습니다. 허탈감을 느끼실 수도, 만족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미술계에 파장을 불러온 것처럼, 이번 곽 화백의 신작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나아가 실장미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작품을 공개하기 전에, 곽 화백 본인의 설명을 잠깐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관리인은 곽 화백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곽 화백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짧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우선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아…….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니, 제 작품과 비교하기엔 제가 한참 멀었죠. 현대미술이 다 그렇지만 너무 큰 기대를 품으셨다간 생각보다 초라한 몰골에 실망하실 분도 계실 테니 그저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교양채널을 본다는 느낌으로 여러분 마음에 드는 대로, 작품명을 읊으면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작품을 발표합니다!―


베일이 벗겨지고 자실장의 눈 앞이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 찬다. 수십 명의 인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느껴진다. 아타치는 드디어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된 것이다! 아직 발탁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육실장이 된 것 마냥 으스대면서 폼을 잡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실장을 보자마자 아, 하고 손가락을 딱 튕기면서 느끼는 바를 말하기 시작한다.


“르네 마그리트 작품의 오마주로군요?”
“맞습니다만, 자세한 설명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그러했듯, 이 작품 또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보면 편협한 내면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현대미술이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관람객의 본질적인 감각을 투영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실장이 든 유리 상자를 받치고 있는 하얀색 사각기둥 탁자에는 조그맣게 ‘이것은 실장석이 아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자실장이 자기소개를 하려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하세요테치! 아타치는 예의범절 교육을 받아 주인님을 제대로 모시는 방법을 배운테치! 잘 부탁드리겠는테치! 아타치는 또…….]


자기가 할 줄 아는 범위 내에서 잡다한 말을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자실장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집중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느끼는 바를 한 마디씩 꺼내기 시작한다.


“과연, 근본적 본질과 사회적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군.”
“실장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실장석이라는 단어는 다만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이군요. 세상 천지에서 실장석을 부르는 이름은 각양각색이겠지만, 그 본질은 하나이지요.”
“그 본질마저 희석된다면 이 실장석은 뭐가 되겠어요? 우린 이미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지만, 이건 실장석이 아니라고요.”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한 걸 보니 이 닌겐상타치는 정말 개념실장중에서도 초특급 개념실장을 찾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자실장이 긴장하며 어떻게 해야 자신의 세레브를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지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다시금 몸단장을 하면서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실장석이라는 점을 최대한 표현해보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약간씩 다른 단어가 섞여있을 뿐 그 의미는 같다.


“저건 실장석이 아니군요.”
“실장석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무엇이라 부르든, 그 질문엔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세레브한 이름과 의미를 붙여도 실장석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테텟? 아타치는 실장석인테치! 세레브한 마마에게서 태어나고 자라 사육실장 훈육을 받은 세레브 자실장인테치!]


인간들이 자신을 실장석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에 자기보다 실장석다운 실장석은 없을 거라 생각한테치. 자실장은 자신이 실장석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떤 방법을 써야 실장석다운 실장석이라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자신의 존재가치 때문에 자실장은 극도의 혼란을 느낀다. 분명 마마의 태교부터 사육주의 훈육까지 아타치가 세레브한 자실장이라고 한테치. 하지만 이 닌겐상타치는 아타치를 실장석으로 봐주지 않는테치. 아타치가 실장석 실격인테치? 뭐가 부족한테치? 아타치는 모든 걸 견뎌온테치!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시키기 위해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어필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반응은 흥미롭다는 듯 태도만 변할 뿐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실장석이 아니라고 하니 새롭게 보이는데.”
“그래? 내가 보기엔 실장석이 아니래도 거기서 거기인데.”
“그것도 하나의 관점이라 할 수 있겠지. 이것은 실장석이 아니다. 훌륭한 오마주다.”
[테에엥! 왜 밍나 아타치가 실장석이 아니라고 하는테치! 아타치는! 아타치는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실장석인테치! 세상에서 제일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발탁되는 줄 알았던 자신의 세레브가 계속되어 부정되자 자실장은 닌겐상의 말이 옳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타치는 정말 실장석이 아니었던테치? 아타치는 뭐인테치? 마마는 아타치가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될 거라고 했는데, 닌겐상은 아타치가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될 거라고 했는데, 아타치가 실장석이 아니면 그냥 사육되는테치? 실장석이 아닌데 사육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테치? 아타치의 자는 뭐가 되는테치? 아타치의 마마는 뭐가 되는테치? 아타치는 뭐가 되는테치? 여태까지 아타치가 배운 지식은 다 어떻게 되는테치? 사육실장이 못 되면 분충이 되는테치? 분충은 실장석이 아닌테치? 자실장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존재의미가 계속되어 부각되자 자실장은 이해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버린 자실장은 빙빙 돌아가는 원반 위에서 눈도 함께 핑핑 돌다가 곧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만다. 의문은 공포로, 공포는 절망으로, 절망은 광기로, 광기는 현실로 나타난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타치가! 아타치는 사육실장인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닌겐상! 아타치를 보러 온 것이 아닌테츄! 아타치를 기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테츄! 아타치는 실장석인테치! 아타치는 세상에서 제일 세레브한 실장석인테치! 아타치는 춤도, 노래도 다 보여줬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테치! 아타치는 뭐인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뭘 바라는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마에타치의 욕심은 끝이 없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인분충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이쿠, 이놈 왜 이래?”
“저런. 우리말을 듣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버린 모양이네요.”
“방음 유리가 아니었다구요?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신선하네.


자실장의 한맺힌 울부짖음은 인간들에겐 다만 얌전한 발광에 불과하다. 유리상자에 부딪히고 바닥에서 콩콩 뛰고 어떻게든 빠져나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켜보려고 해도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전시대는 자실장의 움직임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망가져버린 정체성과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자실장의 광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 자실장을 실장석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한 움직임은 갈 수록 격해지고 이 세상 것의 움직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서가 결여되어있지만 그 움직임이 이 작은 전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아타치는 실장석인테치! 아타치는 실장석인테치! 아타치는 세레브한테치! 아타치는 세레브한테치! 아타치는 실장석! 아타치는 세레브! 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아타치는실장석아타치는세레브…….]


광기에 이성을 잃고 몸을 멋대로 가눌 수 없게 된 자실장은 단어인지 문장인지 모를 말을 지껄이면서 먹은 게 없어 빵콘마저도 하지 못하고 온 몸에 근육이 경직될 정도로 과도한 힘을 주다가 어느새 뒤로 넘어지면서 청량한 소리만을 내뱉는다.


-파킨.


“앗, 자실장이 죽어버렸는데요.”
“비록 죽긴 했지만 자실장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미술이라니, 그 의의는 대단한데요?”
“영리한 실장석이라서 그럴 지도 몰라요. 자실장은 잔뜩 준비되어있으니, 다음엔 분충을 넣어보도록 하죠.”


위석이 깨져 죽어버린 자실장을 전시인이 꺼내 방부처리를 하고 곽 화백이 주도한 단체전 대표작 ‘좋은 실장석’이라는 작품에 새로 전시한다. 지금까지 실장미술을 하면서 죽은 실장석들을 모두 모아 죽은 모습 그대로 전시해놓은 작품이다. 관리인은 죽은 자실장을 대체할 새 자실장을 수조에서 꺼내오고, 새 자실장은 자신이 사육실장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금세 정신이 망가져 파킨하길 반복한다. 스스로 옷을 찢고 독라가 되는 실장석, 그 옷과 머리카락을 먹어치우고 스스로 빵콘할 거리를 만드는 실장석, 이마를 쥐어뜯어 눈을 강제로 빨갛게 물들여 구더기들과 함께 정체성을 어필하려는 실장석도 있다. 파킨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어떤 자실장이 가장 재밌는 반응을 보이는지, 과연 실장석에게 있어서 자기 정체성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즐길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사람들의 만족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거, 보는 재미가 있는걸요. 미술이라면 늘 정적이고 재미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관람객이 참여하는 순간 완성되는, 일부 미완성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후로도 수많은 자실장들이 유리 상자를 들락날락하였고 전시회가 끝날 즈음에 ‘좋은 실장석’ 작품에는 파킨한 자실장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현대 실장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곽 화백. 그는 학대와 애호를 넘나들며 혐오스럽기만 한 실장석이라는 생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경지에 이르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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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끝나고 짧게 쓰는데스. 노예에게 주말은 없는데스. 오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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