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이야기 Let's! 바람의 그랜드 바자르와 맞먹는 실장석 참피 소설 독라노예사육실장 작물재배 11화 -훈육기 7-
[이렇게 살 수는 없는테치!]
[테치테치! 아타치타치의 독립을 요구하는테치!]
아침부터 자실장 둘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독립이라느니, 처우 개선이라느니, 여러모로 자기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며 삶의 질 개선을 요구하는 말이다. 물론 난 코웃음을 치면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마마인 빨강이만 질색하면서 말릴 뿐이다.
[오, 오마에타치! 닌겐상을 화나게 하면 안 되는데스! 들어가는데스!]
[닌겐 때문에 이모토챠가 둘이나 죽은테치! 분명 나머지도 곧 죽고 말테치!]
[그 둘은 분충이었기 때문에 죽은데스!]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는테치! 닌겐상은 실수도 봐주지 않고 막 죽이는 학살파테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보단 자유로운 삶이 행복한테치!]
[아타치는 이모토챠타치를 지킬 의무가 있는테치!]
이 ‘실장독립운동’의 주동자는 장녀다. 동생을 끔찍이도 아꼈던 장녀는 자기 동생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내 집에 있다간 위험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이 집을 나가고자 하고 있었다. 차녀가 장녀의 뜻을 이어 이 운동에 동참했고, 4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고민하는 상태였다. 빨강이가 장녀 차녀의 생각을 오해라고 하면서 말리려 하고 있었지만 이제 막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한 자들은 그런 말을 모두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난 나가는 놈 안 붙잡는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 내가 문까지 활짝 열어둘게.”
[니, 닌겐상! 조금만 시간을 주는데스! 와타시가 이 자들을 설득하는데스!]
[마마! 닌겐에겐 말이 통하지 않는테치! 5녀차가 죽는 걸 본테치! 사육실장이라 속이고 학대파에게 보내서 끔찍하게 죽인테치!]
[마마도 닌겐에게 세뇌당한 게 틀림없는테치. 이대로 있다간 마마에게 죽을 지도 모르는테치!]
[오마에…….]
빨강이가 심란한 눈빛으로 장녀와 차녀를 훑는다. 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란 마지막 희망으로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걸어본다.
[오마에타치가 그렇게 떼를 쓸수록 닌겐상의 화만 돋우는 셈이라는 걸 모르는데수? 닌겐상의 집에 있는 게 안전한데스! 이곳엔 밥이 있는데스! 물이 있는데스! 보금자리도 있는데스! 바깥엔 아무 것도 없는데스!]
[그리고 우릴 죽이려하는 닌겐도 있는테치! 우리가 뭘 하든 닌겐은 화만 내는테치! 분노조절장애테치! 아타치타치가 여기서 죽어도 아타치타치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테치!]
사람의 입에서 나왔으면 참 감동적인 말이었을 텐데, 실장석의 입에서 나오니 가소롭지도 않다. 자실장들은 내 편만 들어주는 빨강이를 상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4녀를 설득해 이 집에서 빠져나가자고 유혹했다.
[마마는 틀린테치. 닌겐의 거짓말에 현혹된테치. 이모토챠에겐 아직 기회가 있는테치! 아타치타치랑 여길 나가는테치!]
[아, 아타치는……. 아타치는 마마랑 함께 있고 싶은테치…….]
[마마랑 함께 있으면 3녀처럼 되는테치! 5녀처럼 되는테치!]
[마마가 닌겐상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 무사하다고 한테치. 오바상타치도 그렇게 말한테치. 닌겐상도 그렇게 말한테치.]
[다 거짓말테치! 닌겐상 말을 잘 들은 5녀챠가 어떻게 됐는지 다 까먹은테츄!]
장녀가 4녀를 설득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아직 어린 4녀는 죽는 것보다 마마와 떨어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4녀는 빨강이 뒤에 숨어서 장녀와 차녀에게 가기 싫다는 의사를 단단히 전했다.
[3녀 오네챠랑 5녀 이모토챠는 분충이라 죽은테치. 닌겐상의 말을 듣지 않은테치. 집에 운치를 하는테치. 닌겐상의 물건에 손을 대는테치. 아타치는 마마의 말을 듣는 착한 자테치.]
[아닌테치! 이모토챠타치는! ……3녀 이모토챠는 분충이 맞는테치. 아타치도 인정하는테치. 하지만 5녀는 왜 죽은테츄? 5녀챠는 사육실장이 되고 싶었을 뿐인테치! 5녀챠가 분충이 된 건 닌겐상이 괴롭혀서 그렇게 된테치! 아타치타치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는테치! 괴롭힘 당하지 않고, 우마우마를 먹고, 세레브한 옷을 입을 권리가 있는테치! 지금 닌겐상이 아타치타치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는테츄! 실수 한 번 할 수도 있지, 실수 한 번을 가지고 참살하는테치!]
장녀와 차녀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4녀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아직 생각이 어린 건지, 생각은 깊어도 행동으로 실천할 용기가 없는 건지. 목청이 높아질수록 마마에게 더 찰싹 달라붙는 4녀가 태도를 굽힐 생각이 없자 차녀가 한숨을 푹 쉬면서 4녀를 설득시키길 포기하고 장녀에게 말했다.
[4녀챠도 틀린테치. 마마처럼 닌겐에게 세뇌되어버린테치. 아타치타치가 할 수 있는 게 없는테치.]
[4녀챠……. 오마에 후회하게 될 것인테치. 5녀챠처럼 고문당하고, 강제로 자를 낳고, 독라가 되어버리는테치.]
[그럴 리 없는테치! 닌겐상은 말을 잘 들으면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던테치. 아타치는 닌겐상을 믿는테치!]
4녀의 구슬픈 미래라도 보았는지 장녀가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리기는 빨강이도 마찬가지였다. 장녀와 차녀는 4녀를 설득하길 포기했고, 빨강이는 장녀와 차녀를 설득하길 포기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내가 끼어들어서 이 하찮은 일에 매듭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너흰 여기서 나가겠다고?”
[죽일 테면 죽이는테치! 아타치타치는 죽음을 각오한테치! 아타치타치가 죽어도 아타치타치의 뜻을 알아주는 오바상이 반드시 있을 것인테치!]
[바깥으로 나가면 죽는데스. 3녀 5녀보다 끔찍하게 죽는데스. 오마에타치는 닌겐상 밑에서 안전하게 살아봐서 하나도 모르는데스.]
[바깥으로 나가도 죽고 집 안에 있어도 죽으면 아타치타치는 차라리 나가서 죽는테치!]
굳건한 결의를 내보이는 차녀. 난 그 둘을 양 손에 붙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바깥은 아침인데도 칙칙한 먹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는다. 내 뒤로 시무룩한 빨강이와 4녀가 따라왔고 파랑이 연두 점박이는 현관 앞에서 날 지켜본다. 대문 앞에 서서 울타리를 마주한 나는 울타리 바로 앞에 장녀와 차녀를 놓아주고 울타리를 치워주었다. 쇠창살 울타리가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열리자 여태껏 자들이 범접할 수 없었던 외부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수십 번은 왔다갔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던 곳, 수많은 들실장들이 넘쳐흐르는 곳, 삶으로 넘쳐흐르고, 그보다 많은 죽음이 넘쳐흐르는 곳. 가을이 깊어지자 산에는 화사한 단풍이 들고 있었고 논에는 황금빛으로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려 물결치고 있었다. 마치 자연이 장녀와 차녀를 맞아주기라도 하는 듯 은행나무 잎사귀 하나가 하늘하늘 날아와 장녀의 발 앞에 내려앉는다.
“이 바깥으로 나가면 너흰 이제 들실장이다. 내 집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어.”
[필요없는테치. 들어오라고 애원해도 들어가지 않을 것인테치.]
“그럼 됐고. 어서 나가.”
[4녀챠, 정말 아타치타치를 따라오지 않는테츄?]
[오네챠, 4녀챠는 이제 잊는테치. 죽은 실장석이나 다름없는테치.]
그렇게 장녀와 차녀는 대문 바깥으로 나왔고 울타리는 닫혔다. 마당은 다시 외부로부터 차단되었고 그 어떤 실장석도 들어올 수 없다. 장녀와 차녀는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행복해지기 위한 그 첫 단계라 생각하던 그 자유를. 장녀와 차녀는 마당에 난 풀을 만져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벌레들을 관찰하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는 길을 달려갔다. 둘은 행복해보였다. 장녀와 차녀는 골목으로 들어가 사라져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빨강이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도 오마에라도 남아서 다행데스.]
[오네챠타치는 이제 어떻게 되는테츄?]
“5녀보다 심한 일을 겪겠지.”
친실장 없는 자실장 둘이, 그것도 원사육실장이 되어서 바깥에서 살아남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친실장이 있어도 자실장의 생존률이 바닥을 기는 판에 장녀 차녀 둘이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난 둘의 최후를 관찰하고 싶었지만 둘을 애써 쫓아가지는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모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난 자매를 모두 잃고 혼자 남은 4녀에게 가서 물었다.
“이제 너만 남았네.”
[아, 아타치는 닌겐상의 말을 잘 듣는테치.]
“알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지. 너 혼자 남았으니까 특별 사면의 기회를 주마. 내가 지난번에 너네한테 줬던 경고 2회 기억하냐?”
[콘페이토를 받고도 밥을 안 준다고 떼쓰고 똥을 싸서 혼났던테치.]
제대로 기억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살아남았지. 3녀와 5녀는 분명 기억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 경고 2회를 지워주마. 이제 네가 받은 경고는 없어.”
[아타치를 용서해주는테츄?]
“그래. 그렇다고 규칙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용서해줬다고 또 규칙 무시하고 경고 3번 쌓이면 쫓겨나는 거야.”
[제대로 기억하는테치.]
빨강이가 기특하다며 4녀의 머리를 두드려주었다. 나는 다시 울타리를 쳤고, 세상은 평소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
[장녀챠……. 이모토챠를 잘못된 방향으로 아껴버린데스…….]
[장녀 오네챠도 분충이 되어버린테치.]
“분충이 아니야. 멍청한 거지.”
난 장녀가 분충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동생들을 챙겨주었고, 내게 반항하긴 했지만 날 굴복시키고 노예로 삼겠다는 말 보다는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이 집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말을 했으니까. 3녀나 5녀였다면…… 자매들의 피의 복수를 하겠다고 설치다가 허수아비가 됐겠지. 내 말의 의미가 헷갈렸던 4녀가 물었다.
[멍청한 거랑 분충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테츄?]
“멍청한 놈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지도 못 하다 죽고, 분충은 자기가 하는 일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다 죽어.”
[결국 죽는테치. 테에…….]
멍청하든, 분충이든 죽는다. 똑똑해도 분충이면 죽고, 멍청한 분충이라면 말 해봤자 입만 아프다. 난 밭의 당근들의 상태를 확인한 뒤 다음 작업 일정을 잡고 집에 들어갔다. 자연이 내려준 휴가는 오늘까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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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 바깥으로 나온 장녀와 차녀는 자기들 마음 가는대로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싱그러운 향기가 나는 풀숲은 마법의 기운이 감도는 것처럼 무성했고 단풍이 든 나뭇잎들은 꽃이 핀 들판보다 아름다웠으며 벼가 자라나는 논은 자매가 본 그 어떤 금의 색깔보다도 화려했다. 자매가 진짜 금을 본 적은 없었지만 진짜 금을 보게 되더라도 벼의 금색보다 아름답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닥을 기는 개미들이 줄지어 가는 길을 따라 가보기도 하고 강아지풀 이삭 위에 앉은 잠자리에게 손을 뻗다가 갑자기 휙 하고 날아가 놀라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
자매는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달콤한 자유를 평생동안 억압하고 자신들을 괴롭힌 인간에게 적대심을 느꼈다. 아직도 집 안에 가족들과 다른 독라들이 갇혀있는데 자신들만 이런 자유를 누려도 되는 건지 부담감도 들었다. 가족에 대한 감정은 잊기로 했다. 그들이 선택한 일이고, 이 자유는 자신들이 선택한 일이다. 세상엔 노예로 사는 게 더 행복한 이들도 있는 거라며 자매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실컷 뛰어놀던 자매는 허기를 느꼈다. 이맘때가 되면 항상 인간이 밥을 차려줬다. 인간의 집에서 먹던 따뜻한 밥과 달콤한 반찬이 생각났다. 밥 생각이 나자 입에 침이 감돈다. 어서 빨리 밥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자매가 돌아갈 집은 이제 없다. 들 생활에 대해 조금도 들어본 적 없는 자매는 배가 고플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해했다.
[배가 고픈테치 오네챠…….]
[괜찮은테치. 주변에 풀이 잔뜩 있지 않은테츄? 닌겐상은 풀을 키워서 밥도 하고 다른 닌겐상에게 판다고 했던테치. 먹을 수 있는 풀이 분명한테치.]
자매는 주변에서 자라나던 들풀들을 살폈다. 화려하게 꽃이 핀 코스모스가 보였다. 꽃이 예쁘니 맛도 좋을 것이라며 대차게 코스모스 줄기를 물어뜯는다. 생코스모스즙 맛을 본 자매는 말도 못 하게 쓰고 떫은맛에 질색하면서 입을 떼었다.
[테패패패패패팻! 이게 무슨 맛테츄! 엄청 맛없는테치!]
[아, 아직 덜 익은 게 틀림없는테치.]
자매는 바닥을 기면서 찾을 수 있는 들풀은 모두 찾아서 입에 되는 대로 넣어보지만 익히지도 않은 생들풀은 전부 쓰고 떫다. 어쩌다 운 좋게 빨갛게 익은 열매를 찾아 입에 넣어도 전혀 달지 않았다. 허기 때문에 억지로 입 안에 집어넣고 있긴 하지만 도저히 만족스러운 맛도 아니었고 배도 차지 않았다. 심지어 한 풀은 장녀가 먹어보고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배……. 배가 아픈테치……! 우…… 운치가 나오는테치……!]
장녀는 격하게 설사를 했다. 독초를 잘못 주워먹고 탈이 나고 말았다. 맛이 없어서 많이 먹지 않아 치사량에 달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배도 고픈데 설사까지 해서 기운도 빠지고 몸의 수분도 잃은 장녀는 얼굴이 홀쭉해졌다.
[이상한테치……. 닌겐상의 밭에서 자라던 풀과는 전혀 다른 맛테치…….]
[독이 있는테치……. 들풀은 먹으면 안 되는테치…….]
허기를 채우지 못 한 자매는 들판에서 벗어나 밭으로 눈을 돌렸다. 사람들의 손길을 받고 쑥쑥 자라나는 작물들은 잎사귀도 싱싱하고 뿌리도 굵었다. 무엇보다 이미 한 번 작물의 맛을 알아버린 자실장들은 작물들을 보기만 해도 그 맛이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장석이 출몰하는 동네의 밭은 모두 울타리로 둘러싸여있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밭의 입구는 단 하나고, 그렇기에 인간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실장석이 몰래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 자매가 울타리 앞에 서서 넘볼 수 없는 작물을 바라보며 풍겨오는 냄새로 배를 채우려는 듯 숨을 헐떡댄다.
[어째서 먹을 수 없는테츄…….]
[닌겐상이 말해준테치. 밭을 망치면 죽는테치. 3녀챠처럼 되는테치. 닌겐상이 캐내지 않은 작물은 먹으면 안 되는테치.]
지금은 수확철이라 사람들이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있었다. 사람 허벅지만큼 굵직한 김장무가 힘 줘서 당기는 족족 쑥쑥 뽑혀나온다. 뽀얀 색깔을 자랑하는 튼실한 무는 실장석이 보기에도 맛있어보였다. 사람들은 수확한 무를 밭 곳곳에 쌓아두고 있었고 일부는 경운기에 실어 어디론가 나르고 있다. 자매는 저 무라면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닌겐상이 캐낸 작물은 먹어도 될 것인테치. 가서 닌겐상에게 부탁해보는테치.]
바깥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매는 스스로 식량조차 구하지 못 해 벌써 인간에게 손을 뻗는다. 혹시나 밭에 무작정 들어갔다가 사람들에게 혼이 날까봐 두려웠던 자매는 울타리 입구 바로 앞에 서서 가장 가까운 인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닌겐상! 닌겐사앙!]
갑작스런 테치테치 소리에 챙 넓은 모자를 쓴 백발의 주름진 인간이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본다. 웬 녹돼지 두 마리가 자기를 부르고 있다. 이 인간에겐 링갈이라곤 없었고 미개한 실장석의 언어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설령 이해할 수 있었더라고 해도, 농가의 철천지 원수와 다름없는 실장석들이 스스로 나타나서 자기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으니 인간의 기분은 언짢을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저, 저, 녹돼지새끼들!”
인간이 흙을 팔 때 쓰던 호미를 들고 자매를 향해 달려온다. 인간이 달려오는 모양새가 심상찮았던 자매는 인간의 얼굴에 화의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급히 도망치려 했다.
[니, 닌겐상?]
[오네챠! 도망치는테치! 닌겐이 화난테치!]
[아, 아타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도망치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
두 자매는 부리나케 도망치지만 인간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노인은 고령에 접어들어 머리카락은 전부 하얗게 세고 관절이 성치 않고 몸에 기운이 없어 실장석들을 쫓아오기만 할 뿐 정말 근소한 차이로 잡지는 못 했다. 자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 뛰었고 노인은 숨을 헉헉대면서 자매를 잡지 못 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리고 만다.
“헉, 허억, 아이고, 나도 인제 다 늙었네, 아이고.”
“어머니! 갑자기 왜 그렇게 힘을 쓰셔요!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글쎄 저기 녹돼지들이 나타났지 뭐냐. 안 잡으면 새끼를 쳐서 또 온단 말이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자식이 살펴보지만 자매는 수풀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자식은 노인을 부축하여 다시 밭으로 옮기면서 가벼이 꾸중을 했다.
“다음부턴 저흴 부르셔요. 혼자 하시지 말고.”
“그래야 쓰겠다. 아직은 팔팔할 줄 알았더만.”
어쨌든 밭에 아무 해가 가해지지 않은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행운이었고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은 자매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풀숲으로 도망친 자매는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계속 달렸다. 멈추면 죽는다, 잡히면 죽는다,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쫓겨야 하는 지도 몰랐지만 자매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추격은 끝난지 오래였지만 자매는 계속 달리고 달린다. 자매의 도주는 차녀가 풀뿌리에 걸려 넘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테햑!]
[이모토챠아!]
차녀가 넘어지자 장녀가 놀라서 차녀를 향해 달려오고,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아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을 향해 도게자를 하며 사정한다.
[멈춰주는테치! 아타치타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테치! 아타치타치를 살려주는테치!]
[오, 오네챠? 닌겐이 없는테치.]
[테츄?]
주변은 고요했다. 바람마저 불지 않았다. 자매가 숨을 죽여 주위에서 다가올 지도 모르는 위협을 경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 그 자체다. 드디어 무사히 도망쳤다고 생각한 자매는 턱에 닿아 터지려고 하는 숨을 고르면서 안도의 울음을 터트렸다.
[테에엥…… 죽을 뻔한테치…… 무서운테치…….]
[아직 배도 고픈테치…….]
[어째서 닌겐은 아타치타치를 죽이려 하는테츄……. 아타치타치는 무고한테치…….]
[여긴 어디인테츄? 길을 알 수가 없는테치.]
다시 인간에게 들킬까봐 행선지를 조심해서 골라야 했지만 주위가 온통 풀 뿐이라 뵈는 게 없었다. 자매는 일단 뒤로는 가지 않기로 하고 쭉 앞으로 걸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쓰겠다고 가는 길에 있는 풀을 꺾어서 같은 길을 빙빙 돌지 않도록 표시도 해두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정도인데도 수풀은 끝날 기미가 없었고 자매의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은 맑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풀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을 텐데도 날씨는 가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배가 고픈테치…….]
[목도 마른테치…….]
[마마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는테치…….]
[그런 말 마는테치! 마마랑 같이 살면 배부르고 등 따뜻할지 몰라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테치! 배고프고 추워도 자유로운 삶이 최고테치.]
사기가 떨어져가는 차녀를 장녀가 다독인다. 서로를 위로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수풀을 걷고 걸었다. 걷다보니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잔잔하고 명랑했다. 인간이 내는 소리도, 들실장이 내는 소리 같지도 않았다. 몸이 찝찝하고 갈증이 날 때 그 갈증을 풀어주던 시원한 소리, 물소리였다. 자매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자매가 수풀을 빠져나오자 그곳엔 시냇물이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물이 졸졸 흐르는, 선선하고 상쾌한 냇가. 목이 타들어가던 차에 마침내 물을 만난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물테치! 물테치! 이렇게 많은테치! 아타치타치는 낙원에 온 테치!]
[전부 마시는테치! 배를 채우는테치! 목을 축이는테치! 아타치타치는 살아남은테치!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테치!]
자매는 냇가에서 신선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니 포만감도 생겨서 배가 꽉 찰 때까지 들이마셨다. 허기와 갈증을 달랜 뒤에는 냇물로 몸을 씻었다. 물은 차가웠고 비누도 없어 인간의 집에서 목욕할 때보다 불편하고 더러웠다. 몇 번을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는다. 그래도 안 씻는 것보단 낫다. 몸을 씻은 자매는 기분도 상쾌해지고 다시 사기가 쭉쭉 올랐다. 역시 인간의 집을 벗어나길 잘했다, 자매가 생각했다. 자매는 서로 물을 튀기면서 장난을 치고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아보려 하다가 헛손질만 하며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다 신이 나서 물에서 물장구를 치던 자매중 장녀가 분위기를 너무 타서 냇가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버렸다. 가장 깊은 곳도 사람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내지만 사람 무릎보다 키가 작은 자실장에겐 마리아나 해구와 다를 바 없었다. 물에 빠진 장녀가 허우적대면서 빠져나가기 위해 헤엄을 치지만 수영할 줄 모르는 장녀는 계속 가라앉을 뿐이다.
[테해액! 테퍄! 푸하! 이모토챠아아아아아아!]
[오, 오네챠! 오네챠아아아아아!]
[살려주는테치! 구해주는테치! 아타치 수영 못 하……. 테푸캬하!]
[아, 아타치도 수영은 못 하는테치! 오네챠아아아아! 누가 도와주는테치이이이이이이!]
도와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차녀의 걸음보다 빠른 물살에 휩쓸린 장녀는 떠오르다 가라앉다를 반복한다. 장녀는 빠르게 차녀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차녀는 보이지 않는 장녀를 향해 소리치면서 처절하게 물살을 쫓았다. 장녀는 숨을 쉬지 못 하고 물을 잔뜩 먹어 정신을 잃었다가 굽이치는 부분에서 물 위로 툭 튀어나온 바윗덩이에 옷이 걸렸다. 덕분에 장녀는 더 이상 휩쓸리거나 물을 먹지 않을 수 있었고 눈물지으며 달려온 차녀에게 구조될 수 있었다. 순전히 행운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차녀가 장녀를 뭍으로 올려주었지만 이미 물을 잔뜩 먹은 장녀는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테에에에에에엥…… 오네챠…… 죽으면 안 되는테치…….]
혈육을 잃은 위기에 처한 차녀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5녀의 영상이 떠올랐다. 목욕하던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을 인간이 꺼내 프니프니로 살려주던 그 영상이. 인간은 5녀를 괴롭히기 위해 살려준 것이었지만 차녀는 장녀를 살리기 위해서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장녀에게 프니프니를 해주었다. 제발 깨어나라고, 자기 혼자 버려두고 가지 말라고 펑펑 울면서, 온 힘을 다해 체중을 실어 누르며 프니프니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차녀의 극진한 노력 덕분에 장녀는 간신히 입에서 물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캐핵! 테패핵! 컬럭, 쿨럭, 페학, 테챠악.]
[오네챠! 오네챠아아아아! 오네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이모토챠……. 아타치를 구해준테치…….]
자매는 서로 살아남은 것을 감사하며 얼싸안고 눈물흘렸다. 한 번 물맛을 실컷 본 자매는 다시는 물 속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고 목이 마를 때면 반드시 뭍에 발을 붙이고 물을 마셨다. 자매는 이것도 낙원에서 내리는 가르침이라 생각했다.
[낙원이라고 해도 너무 흥분하면 안 되는테치. 낙원은 분충은 들어올 수 없는 곳테치. 아타치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낙원에서 벌을 준테치.]
[낙원에 와서까지 죽으면 억울한테치! 아타치가 어떻게 이 낙원에 당도했는데, 죽어버리면 너무 아까운테치!]
자매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빠진 기운을 다시 시냇물로 채우고 냇가를 따라 걸었다. 배도 채웠고 죽을 위기도 넘겼으니 허기가 극심하게 느껴져 배가 꾸르릉 울렸다. 자매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낙원에는 분명 먹을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냇가를 따라 밤나무, 도토리나무, 호두나무같은 견과류 나무가 꽤 많았다. 그러나 모두 실장석의 이로 열어젖히기엔 너무 단단하다. 특히 밤나무는 밤송이에 가시까지 단단하게 뻗쳐있어서 더욱 열기 힘들다. 그래서 주변에 밤송이가 수없이 널려있는데도 자매가 먹을 수 있는 열매는 거의 없었다.
[무슨 열매가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긴테츄?]
[분충을 솎아내는 열매테치. 뭔지 모르고 건드리는 분충은 저 가시에 찔려 죽는테치.]
[오네챠는 똑똑한테치!]
먹을 것을 찾아 걷던 자매는 물에 빠졌던지라 물이 마르면서 급격한 한기를 느껴 바람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냇가엔 골판지도 스티로폼 상자도 없어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겨울로 넘어가는 차가운 가을 바람을 맞아 몸을 덜덜 떠는 자매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골판지는 들실장이나 사는 허름한 집테치. 낙원은 분명 웅장하고 화려한 아방궁이 있을 것인테치.]
[닌겐상의 집보다 큰테츄?]
[닌겐상의 집은 골판지로 보일 정도테치!]
[어서 가보고 싶은테치!]
그러나 자매가 상상하는 아방궁은 아무리 걸어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있을 리가 없는 상상속의 물건이지만, 자매는 낙원의 아방궁인 만큼 분명 다른 분충이나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꽁꽁 숨겨져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생각을 한들 자매의 배는 계속 꼬르륵 소리를 냈으며 허기지고 물에 젖어 무거워진 몸은 점점 힘이 빠져갔다. 자매는 휴식이 절실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태풍에 휩쓸렸는지 줄기가 부러져 썩어가는 통나무가 있었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 텅 비어있었고 이는 자매가 쉬어가기에 완벽한 안식처를 마련해줄 수 있었다. 자매가 그토록 바라던 아방궁은 아니었지만, 없는 살림에 이것마저도 감사하게 여긴 자매는 통나무 안으로 들어가 바람을 피했다. 몸을 차게 하는 바람이 멎자 꽤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방궁은 얼마나 가야 나오는테츄?]
[아타치도 모르는테치……. 포기할 수는 없는테치. 힘들다고 포기하는 분충들이 아방궁을 눈 앞에서 놓치는테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아방궁에 닿을 수 있는테치.]
[포기하지 않는테치! 아타치는 오네챠랑 같이 아방궁에서 평생 행복하게 사는테치!]
[아방궁에 가면 마마와 4녀챠를 초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테치. 독라 오바상타치도 초대할 수 있을 것인테치. 사악한 닌겐상의 손에서 아타치타치가 모두를 구해내는테치.]
자매는 거창한 포부를 들이밀며 반드시 살아남자고 결의를 다졌다.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바람도 점점 차가워진다. 통나무 입구까지 쌀쌀한 기운이 들이치자 자매는 썩은 통나무의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였다. 조명도 하나 없어 어두웠지만 썩은 나무의 조직은 푹신푹신했고 바람도 들지 않아 따뜻했다. 오늘 밤을 이곳에서 나기로 한 자매는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다지다가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썩은 통나무와는 전혀 다른 감촉이다.
[뭐가 있는테치!]
[뭐인테츄? 살아있는테츄?]
[차가운테치. 동글동글 맨질맨질하고 단단한테치.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테치.]
[밖으로 나가보는테치!]
자매는 수상한 물건을 들고 빛이 들어오는 통나무 입구로 나갔다. 동그랗고 매끈하고 조금 묵직한 그 물건의 정체는 개암이었다. 밤과 비슷하지만 더 작고, 껍질도 부드러워서 실장석도 충분히 깔 수 있다. 거기다 맛까지 고소하니 좋았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나긴 시간 끝에 간신히 찾아낸 먹을거리다. 배가 관악기처럼 텅 비어 청량한 울림소리를 내던 자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머, 먹을 것인테치! 이 안에 먹을 것이 있는테치!]
[쓰지 않은테치! 떫지 않은테치! 독이 없는테치! 맛있는테치! 정말 먹을 것인테치!]
[아방궁에 가까워진 게 분명한테치! 포기하지 않은 아타치타치에게 낙원에서 상을 내려주는테치!]
[해낸테치! 이모토챠! 얼마 남지않은테치! 아타치타치는 산테치!]
자매는 신이 나서 개암을 까먹었다. 통나무 안에는 개암 뿐만 아니라 마른 산딸기나 오디, 보리수같은 열매도 들어있었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자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같은 음식이었다. 자매는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무속에 들어있던 음식을 전부 꺼내먹었고,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자 본능적으로 하품이 나오고 잠이 쏟아졌다. 바깥은 비가 오려는 것처럼 공기가 습했다. 자매에겐 상관없었다. 쓰러진 통나무가 안식처가 되어주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계속 움직이는테치.]
[내일은 아방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테치!]
[옳은테치. 자둬야 기운을 아끼고 훨씬 많이 움직일 수 있는테치.]
그렇게 자매는 잠에 빠져들었다. 썩은 나무의 푹신한 조각을 베고 잠든 자매는 아방궁에서 세레브실장이 되는 꿈을 꾸었다. 그곳에 실장석을 길러줄 인간은 없었지만, 길러줄 인간이 없을 정도로 풍족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종류별 스테이크와 스시가 즐비했고, 원하는 이는 운치굴을 치우지 않아도 콘페이토를 먹을 수 있었으며 모든 종류의 옷이 있고 아무리 지저분하게 놀아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을 할 필요도 전혀 없었고 학대도 당하지 않았다. 자매가 상상하는 아방궁의 세세한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놀랍도록 똑같았다. 자매는 꿈속에서 친실장 빨강이와 하나 남은 동생 4녀에게 편지를 썼다. 글은 쓸 줄도 몰랐지만. 장녀는 이 낙원에 둘과 독라들까지 초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고 차녀는 둘은 초대해주겠지만 독라들은 평생 인간의 옆에서 살면서 고통받으라는 이야기를 썼다. 초대를 해도 아방궁에 들어올 수는 없으니 입구에서 쫓겨나는 기분을 실컷 맛보라고 적었다.
다음날 아침, 자매는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떴다.
[와, 와타시의 비상식이! 분충들이 전부 먹어버린데스!]
바깥에서 한 성체실장이 버럭버럭 성질을 내고 있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 한 자매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체실장에게 말을 물었다.
[오바상은 누구테츄?]
[와타시가 묻고 싶은 말데스! 오마에타치야말로 누구데스!]
[아타치타치는 아방궁을 찾고 있는테치! 아타치타치는 닌겐상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테치.]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자 성체실장이 한 쪽 눈을 싱긋, 올려 뜬다. 그냥 분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성체실장은 자매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닌겐의 집에서 왔다는 건, 원사육실장이란 말인데수?]
[아닌테치! 닌겐상은 학대파였던테치. 아타치타치는 죽고 싶지 않아서 빠져나온테치!]
[오바상은 여기에 사는테츄? 아방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테츄?]
자매의 질문에 성체실장이 나머지 한 쪽 눈도 싱긋 올려 떴다. 자매는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 했고, 그저 자기들 눈앞에 나타난 이 성체실장이 자신들을 아방궁으로 인도해줄 신의 사자라 여겼다.
[오마에타치의 닌겐은 어디에 살고 있는데수?]
[집 안에 밭이 있는테치. 아타치타치는 거기서 태어난테치. 학대파 닌겐이 아타치타치의 마마와 독라 오바상타치를 잡아놓고 일을 시키는 감옥테치. 빠져나갈 수도 없게 울타리를 쳐놓는테치. 하지만 아타치타치는 빠져나온테치. 아타치타치의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인테치.]
성체실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장녀와 차녀를 훑어보았다. 둘 다 들실장 치고는 몸 상태가 좋았다. 특히모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체실장의 머릿결과 비교했을 때 장녀와 차녀의 머릿결은 비단결과도 같았다. 성체실장은 자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오마에타치는 운이 좋은데스. 와타시가 그 아방궁에서 나온 실장석데스. 와타시를 따라오는데스.]
[드디어! 아방궁으로 갈 수 있는테치! 오네챠! 해낸테치!]
자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희희낙락하여 성체실장을 따라갔다. 여전히 머릿속은 낙원과 아방궁으로 가득 차있었다. 장미 꽃잎이 깔린 길과 등나무 꽃이 치렁치렁 늘어선 통로,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향긋한 꽃내음이 코를 찌르는 그런 길을 상상했다. 그런데 성체실장이 자매를 인도한 곳은 허름한 스티로폼 상자 집이었다. 자실장까지 두 마리 딸려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방궁이라 할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와도 다를 바 없는 숲이다. 속았다, 자매가 생각했다.
[여기가 무슨 아방궁인테츄! 들실장 집인테치!]
[아방궁은 닌겐의 건물처럼 높게 솟아오르지 않는데스. 땅 속에 낮게 깔려있는데스. 아방궁이 그렇게 찾기 쉬울 거라 생각한데수?]
화를 내는 자매에게 친실장이 차근차근 자매에게 상황을 말하며 설득시킨다. 순진한 자매는 친실장의 말과 자신들의 상상을 맞춰가면서 친실장의 설명을 찰떡같이 믿어버렸다.
[테? 그랬던테츄? 처음이라 몰랐던테치!]
[이 굴인데스. 들실장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운치굴처럼 만들어 놓은데스.]
[이제야 알겠는테치! 아타치타치 말고도 아방궁을 찾는 분충이 엄청 많을 것인테치! 그 분충을 모두 받아줄 수는 없는테치!]
[오마에는 이해가 빠른데스. 먼저 들어가도록 하는데스.]
[오네챠랑 같이 들어가고 싶은테치!]
[입구가 작아서 한 번에 한 마리밖에 들어갈 수 없는데스.]
그 말마따나 바위 아래에 위치한 아방궁 굴의 입구는 차녀가 머리를 비집어 넣어야 할 정도로 좁았다. 썩은 운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녀가 손사래를 치며 빠져나오려다가도 이걸 참아야 아방궁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순순히 굴 속으로 들어갔다. 차녀가 굴 속으로 사라지고 장녀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냐고 굴 속에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차녀는 대답이 없었다. 굴이 넓어서 그런 것일 터라고 장녀가 생각했다. 이제 슬슬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장녀가 친실장에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오바상? 아타치는 언제테베헥!]
털썩, 장녀가 쓰러졌다. 이마에 커다랗게 난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피와 살점이 묻어나는 녹슨 대못을 손에 든 친실장이 장녀의 머리를 꿰뚫고서는 장녀와 차녀의 운명을 비웃고 있었다.
[오마에타치같은 좀도둑에게 아방궁은 사치인데스. 오마에타치는 운치굴이 걸맞는데스!]
장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눈에 초점은 사라졌고 팔다리가 아무 목적 없이 움직인다. 녹슨 못이 뇌를 헤집어놓아서, 장녀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움직임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친실장은 식물실장이 된 장녀의 옷을 벗기고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장녀의 눈에 바른 뒤 운치굴에 집어넣었다. 털퍼덕, 장녀의 몸이 운치굴에 착지하면서 총구에서 저실장들이 기어나온다.
[텟테레후~.]
[텟테레후~.]
[텟테레후~.]
그 소리에 놀란 차녀가 운치굴의 입구로 기어왔다. 굴의 끝이 막혀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빛이 들어오는 입구에 이마가 꿰뚫린 채 자를 낳고 있는 독라가 보였다. 차녀가 놀라서 독라를 향해 다가왔고, 그 독라가 장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오네챠! 오네챠! 무슨 일이 벌어진테치! 오네챠! 오네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녀는 대답이 없었다. 차녀의 말이 모두 장녀에게 들리긴 했지만 그에 맞는 대답을 해줄 능력을 잃어버렸다. 장녀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장녀는 다만 숨만 쉬면서 생명을 연명하는 식물실장이 되어있었다. 장녀가 죽었다고 생각한 차녀는 울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눈에서 알아서 피눈물이 흘렀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운치굴 밖으로 소리를 질러 친실장을 불러댔다.
[오네챠한테 무슨 짓을 한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방궁은 어딨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운치굴 밖에서 비웃음으로 가득한 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프프프프, 이미 아방궁에 와있지 않은데수? 그 운치굴이 오마에의 아방궁데스!]
[아타치를 속인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네챠를 죽인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러운데스! 오마에는 평생 운치굴에서 와타시의 식량이 될 자나 잔뜩 낳으라는데스!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오마에도 저 분충처럼 만들어버리는데스!]
[오마에가 분충인테치! 아타치는 오마에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는테치!]
[데프프프, 오마에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수? 시간이 해결해주는데스.]
그 말을 끝으로 친실장은 운치굴에서 멀어졌다. 차녀는 이 굴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치굴 벽에 매달려 악을 쓰면서 구멍을 기어오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벽이 무너져 구멍에서 멀어진다. 바닥에 등을 찧을 때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파왔다. 장녀의 초점 없는 눈이 차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녀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자신을 속인 복수를 하려고, 장녀를 아방궁에 데려가 치유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차녀의 움직임은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벽이 무너지면서 구멍도 점점 넓어지고 있었고, 차녀가 계속해서 몸을 날리자 계속해서 넓어지던 운치굴 구멍은 한계치 이상으로 넓어져 무너지면서 흙이 쌓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마침내 구멍이 완전히 무너지자 차녀는 그 흙더미를 기어올라 운치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장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스티로폼 집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 소리를 듣고 친실장이 스티로폼 집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운치굴에 빠져있어야 할 차녀가 운치굴에서 빠져나오니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친실장은 빠르게 자신의 보검인 녹슨 대못을 움켜쥐었고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려오는 차녀를 향해 뛰어나가며 대못을 길게 뻗었다. 속도를 주체 못 하고 달려오던 차녀는 찔러오는 대못을 피하지 못 하고 몸을 관통당하고 만다.
[테캐해액!]
성공적으로 몸을 뚫어낸 친실장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차녀의 배에 발을 짚고 대못을 쑥 당겨 뽑았다. 녹슬어 거친 대못의 표면에 살인지 내장인지 모를 살점들이 벗겨져 나온다.
[일개 자실장주제에 건방진데스. 와타시의 보검만 있으면 무찌르지 못 할 적이 없는데스. 닌겐마저도 와타시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데스!]
[테…… 테…….]
[오마에는 정말 멍청해서 구제불능데스. 얌전히 운치굴에 있었으면 사지라도 멀쩡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인데스.]
친실장은 차녀의 옷도 벗겨내고 머리카락을 뽑아 독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혈육과 옷과 머리카락을 잃어버린 차녀의 동공이 격하게 떨렸다. 하지만 친실장의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자들을 시켜 차녀의 팔다리를 붙들게 하고, 대자로 벌린 차녀의 어깻죽지와 허벅지에 대못을 박아가며 팔다리를 끊기 시작했다. 내장이 뚫리는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줄 몰랐던 차녀는 못이 한 번 박힐 때마다 새로이 비명을 질렀다.
[테치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타치의 섬섬옥수를 건드리지 마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차녀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자실장들에게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차녀도 들실장들과 마찬가지로 자실장이다. 배에 바람구멍까지 난 상태로 자실장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결국 차녀는 무력하게 친실장의 움직임에 따라 팔다리를 전부 잘린 독라달마가 되었다. 잘라낸 팔다리는 자실장들이 맛있게, 뼈다귀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자들이 배부르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 친실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장녀와 차녀에게서 빼앗은 옷을 건넸다.
[이 옷은 오마에타치가 받는데스. 이 옷을 입고 이 분충들이 있었다는 닌겐의 집으로 가는데스.]
[테츄?]
[이 분충들은 원사육실장데스. 닌겐의 손에서 길러지던 실장석데스. 분명 그 닌겐이 이 분충들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인데스. 오마에타치가 이 분충들처럼 행동하는데스.]
[그럼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테츄?]
[데스. 하지만 마마는 갈 수 없는데스. 마마까지 오마에타치를 따라가면 의심을 받고 쫓겨날 것인데스. 그러니 오마에타치가 우선 닌겐의 신임을 얻고, 적당히 기회를 봐서 닌겐을 죽이는데스. 그럼 닌겐의 집은 와타시타치의 차지가 되는데스!]
[들실장 생활도 안녕테치!]
[스테이크와 스시도 먹을 수 있는테치!]
[콘페이토도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테치!]
[착실하게 살아온 와타시타치에게 하늘이 선물을 주는데스~. 세상은 행복한데스. 어서 가는데스.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데스!]
[고마운테치! 마마!]
[훌륭한 사육실장이 되는테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계획의 정체를 들어버린 차녀는 집에 있을 친실장 빨강이와 여동생 4녀의 안위가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에 들실장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차녀의 팔다리는 이미 자실장들의 뱃속에 들어간 지 오래였고 장녀는 식물실장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친실장은 다시 차녀를 운치굴에 던져넣은 뒤 느긋하게 흥얼거리면서 장녀가 낳은 저실장들을 잡아 하나하나씩 천천히 맛을 음미해가며 씹어먹었다.
[마마……. 이모토……챠…….]
[데스데스~♪ 데스뎃승~♪]
[레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레후! 레후! 레후우우우우! 레에에에에에에에에에!]
운치굴 바깥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의 향연에 귀를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차녀가 통한의 피눈물을 흘린다. 마마가 보고 싶었다. 4녀가 보고 싶었다. 자실장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위험을 전달해야했다. 그럴 수 없다. 차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음침하고 축축한 운치굴에서 들실장과 장녀 차녀가 싸지르는 썩은 똥을 먹으면서 연명하다가 탈진하여 죽는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매정하게 빈 속은 꾸르릉 울렸다. 주변에 먹을 것이라곤 없다. 흙과 섞여버린 똥 뿐. 차녀는 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배고파도 똥을 먹은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하늘이 자신들에게 열매와 보금자리를, 그리고 운치굴에서 빠져나와 장녀를 멀쩡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태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의 일련은 다만 자매의 행운을 착각했을 뿐이다. 이제 자매의 운은 다했고, 자매의 일생도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차녀는 속에서 위산이 역류하려는 것을 억지로 넘기고 주저하면서 똥을 입에 넣었다. 끔찍한 맛이다. 맛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맛이다. 먹기 싫다면서 구토를 하던 5녀의 심정이 절절하게 이해되었다. 그래도 먹기 싫지만 먹어야 했던 5녀처럼, 차녀도 먹기 싫지만 먹어야 했다. 차녀는 억울했다. 비통했다. 아까웠다. 저 낙원의 아방궁에 거의 다 왔는데, 스테이크와 스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똥이나 먹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한 번 똥 맛을 본 차녀의 눈 앞에 스테이크와 스시가 어른거렸다.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고기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꿈 속에서 본 그 스테이크와 스시였다. 들실장은 이곳이 아방궁의 입구라고 했다. 드디어 아방궁의 문이 열린 것이다. 차녀는 스테이크와 스시의 냄새를 좇았다. 팔다리가 없어 애벌레처럼 어깨로 기어가며 스시에 가까이 다가가자 스시가 자신을 먹으라는 듯 바로 입 안에 들어왔다. 차녀는 스시를 크게 깨물었다. 신선하고 짭쪼름한 고기의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똥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고차원적이고 관능적인 맛이다. 한 번 먹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맛있었다. 매 한 입 한 입이 새로운 맛이고 먹어도 먹어도 깊은 맛이다. 차녀는 그렇게 스시를, 생자실장육회를 조금씩 먹어치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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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남지 않은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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