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이야기 Let's! 바람의 그랜드 바자르와 맞먹는 실장석 참피 소설 독라노예사육실장 작물재배 12화 -훈육기 8-
당근들이 꽤 성장하자 2차 솎아내기에 들어갔다. 1차 솎아내기에서 살아남은 당근중 제대로 자라나지 못 한 당근을 뽑아낸다. 이렇게 해야 뿌리가 굵직하고 맛이 좋은 당근이 나온다. 그리고 며칠 있다 또 솎아낼 게 있으면 3차로 솎아내고, 잡초를 뽑아주면서 당근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올해 농사일은 끝이다. 솎아낸 당근은 뿌리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란 상태라 작물이라는 티는 난다. 내가 솎아낸 작물은 먹어도 된다고 했기에 맛이 궁금해진 4녀가 당근 뿌리를 한 입 깨물어보고 달달하니 맛있다며 마구 먹어댄다. 상품가치가 없지만 맛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배불러서 밥 못 먹는다고 빨강이가 한 소리 할 때까지 4녀는 4뿌리의 당근을 먹었다.
홀로 남은 4녀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마마인 빨강이나 다른 성체독라들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일을 열심히 하려는 태도만으로도 이 집에 남아있기엔 충분했다.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실수해서 잎사귀를 뜯어버리거나 하긴 해도 잘못된 당근을 뜯어버리는 일은 없다. 나와 독라들이 뽑아낼 당근을 잘 골라주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 연약한 4녀의 손이 모래와 자갈에 쓸려 상처가 생기고 옷에 흙먼지가 가득 묻지만 4녀는 일에 열중했다. 슬슬 일에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았다.
난 솎아낸 당근을 모아서 이웃집에 토끼 밥으로 쓰라고 갖다 주고 여러 가지 일상생활 이야기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앞 울타리에 더러운 들실장 두 마리가 자기들을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하도 안 보인다 싶더니 안 보이면 섭섭하다 이거냐. 내가 냅다 걷어차려고 했는데 들실장이 날 보면서 반갑게 달려드는 것이다.
[닌겐상! 닌겐상! 아타치타치가 돌아온테치!]
[보고싶었던테치! 바깥생활은 힘들었던테치!]
“뭐야, 너네. 난 너네같은 애들 모르는데.”
[아타치타치를 잊은테츄? 장녀와 차녀테치!]
하찮은 들실장들의 말이다. 발로 툭 쳐서 넘어트리고 홀로 집에 들어갔다. 밭에서 일하던 독라들도 들실장의 소란이 영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특히 4녀와 빨강이는 동요가 심했다. 들실장들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오네챠타치테츄?]
[오네챠가 아닌데스. 들분충데스.]
[닌겐사아아아아앙! 아타치타치를 들여보내주는테치!]
이 새끼들 봐라,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땐 언제고 다시 들여보내달라고? 실장석들이 다 그렇지만, 장녀와 차녀도 한 번 고난을 겪고 나면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기 마련이다. 그새 3녀와 5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새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거기다 한 번 내 집을 나가고 나면 들실장이 된다고 말해두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알려주지 않은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자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들실장이 찾아온 일이 거의 없어, 들실장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오늘이 좋은 기회가 되겠다. 들여보내주지 않겠다고 말해놨었지만, 장녀와 차녀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뭔가. 난 씨익 웃으면서 울타리를 치웠고 울타리를 열어주자마자 살았다고 쫑쫑 뛰어와서는 먹으라고 한 적도 없는 솎은 당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우마우마테치! 하지만 부족한테치! 콘페이토가 있는 건 알고 있는테치! 어서 가져오는테치!]
[아타치는 스시가 필요한테치! 계란이나 유부로 만든 싸구려따위를 가져오면 쳐죽여버리는테치!]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일도 안 하고 당근을 처먹으면서 콘페이토랑 초밥까지 가져다 달라고? 내 뇌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이 자기만의 두뇌가 먼저 달린 것처럼 알아서 뛰쳐나갔다. 배에 발길질이 들어오자 씹던 당근이 푸확, 하고 뿜어져나와 내 장화에 묻는다. 더럽고 짜증나서 한 번 더 걷어차줬다.
[테찌야악!]
[아픈테치! 무슨 짓인테치!]
“무슨 짓? 이 새끼들이 제멋대로 뛰쳐나가놓고 이제 와서 다시 받아달라고?”
[아, 아타치타치는 닌겐상의 사육실장테치! 사육실장을 해치다니 닌겐실각테치!]
무슨 일을 겪었기에 별 이상한 말을 하고 앉아있나. 노예생활 싫다고 빠져나갈 땐 언제고 이번엔 자기들이 사육실장 대우를 요구하면서 욕설을 해대길래 장녀와 차녀의 머리통을 걷어차고 밭에다 몰아넣었다.
[테에에엑…….]
“사육실장은 지랄, 바깥생활 좆같은 거 알았으면 일이나 해!”
[일단은 좀 씻고 싶은 테치…… 찌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쓸데없고 건방진 말을 하는 장녀의 양 팔을 잡고 뜯어낼 것처럼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팔이 빠지는 듯한 고통에 장녀가 흥이 나는 비명소리를 들려준다. 좀 더 잡아당기니 뿌득, 소리가 난다. 뼈가 부러진 건지 팔이 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녀는 팔을 잘만 움직였다.
“일 할래, 달마 될래?”
[일하는테치! 일하는테치! 살려주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치베엑!]
살려달라는 장녀를 당근 밭에 내던져 처박고 차녀를 쏘아보았다. 차녀는 내 시선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아치눈을 뜨고 장녀를 비웃고 있었다. 들실장 생활을 겪고 나니 분충이 되어버렸구나. 나야 좋지만.
[치프프프프, 오네챠는 노예생테치. 닌겐상, 오네챠가 벌을 받았으니 아타치는 상을 주는테치.]
“좆까. 너도 빨리 일해.”
[테에? 어째서 아타치가 일을 해야하는테츄?]
주머니에서 작물 가지치기할 때 쓰는 가위를 꺼내 차녀의 왼팔을 물었다. 살짝 힘을 줘 가위날을 팔뚝에 박지만 자르지는 않는다. 차녀는 장녀보다 흥을 돋우는 비명을 질러대며 빠져나가려고 팔을 파닥파닥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가위 날은 깊게 박혀만 간다. 혈관이 눌렸는지 잘린 상처에서 끈적한 피가 울컥 흘러나왔다.
“팔 잘라버리기 전에 일 하라고 했다.”
[테츄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대답 안 해?”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위 날을 더욱 깊숙이 박았다. 뼈가 걸리는 것이 느껴진다. 닭뼈와 비슷한 강도이니 가지 자르는 가위로 간단히 잘라낼 수 있다. 자르지 않고 빼내는 것보다 잘라내는 게 훨씬 덜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자르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모르면 안 해도 되냐?”
[하는테치! 하는테치! 일하는테치! 자르지 말아주는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치벳!]
차녀도 장녀 옆에 똑같이 처박았다. 너덜너덜한 팔뚝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줄줄 흘러 땅을 적신다. 다시 땅을 밟은 장녀와 차녀는 아픈 팔을 이끌고 독라에게 가서 징징거리면서 똥을 흩뿌리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거기다 더 웃긴 건, 마마라면서 빨강이가 아니라 파랑이에게 가서 떼를 쓴다. 애당초 자도 낳은 적이 없는 파랑이에게.
[마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똥닌겐이 아타치타치를 해치는테치! 오네챠의 팔을 자른테치! 아타치의 팔을 뽑아낸테치! 똥닌겐을 해치우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타시는 자가 없는데스. 꺼지는데스, 분충.]
[테, 테에?]
장녀와 차녀라면서 행동거지는 들실장같고, 파랑이를 마마라고 부르다니 마치 실장석이 뒤바뀐 것 같다. 뒤바뀌어? 오호라. 들실장이 장녀와 차녀를 잡아먹고 그 옷을 뺏어서 장녀와 차녀의 흉내를 내려고 했던 모양이지. 이거 더 재밌겠다. 빨강이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냥 막 죽여도 될 테니까. 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안 된다. 4녀에게 들실장을 어떻게 죽이는지 훈육시켜줄 필요가 있다. 짜낼 수 있는 엑기스는 모두 짜내고 내다 버리는 것이 옳다. 실장석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자비니까.
“이 새끼들이 일 안 하고 딴청을 피워?”
[마, 마마? 마마! 어딨는테츄! 똥닌겐을 죽여버리는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
“지들 마마가 누군지도 모르는 병신새끼들.”
장녀와 차녀라고 주장하는 들실장의 뒷덜미를 집어들었다. 내 무서운 손아귀에 붙들린 두 자실장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몸서리를 치고 똥을 싸대지만 무용지물이다. 일단 두 자실장을 독라로 만들었다. 좀 재밌는 반응을 보여줬으면 했지만 비명소리만 더 커지고 싸던 똥만 더 많아졌을 뿐, 3녀나 5녀보다 재밌는 반응은 아니었다. 재미없는 두 자실장을 운치굴에 처박았다. 일도 못 하는 이런 분충들을 데리고 있다간 밭이 망가지니까. 이 녀석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치굴에 든 운치를 먹어 알아서 청소하게 만드는 일 뿐이다.
[테에에에에에엥! 운치굴 노예는 싫은테치! 아타치타치는 사육실장 대접을 원하는테치! 아타치의 팔도 원래대로 돌려주는테챠아아아아아아아!]
[마마에게 속은테치! 마마가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테치! 마마가 병신같은 노예를 잡아와서 아타치타치가 이런 꼴을 당하는테치!]
마마가 따로 있단 말이지. 자들을 데려오지 않고 옷만 바꿔서 보낼 생각을 한 걸 보면 상당히 영리한 녀석이다. 자들을 찾기 위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내가 찾아갈 수도 없고. 어쩌면 사육실장으로 만들려고 보낸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솎아내려고 보냈을지도. 어느 쪽이든 감히 실장석주제에 인간을 속이려들다니 건방지다. 그리고 아무리 영리해봤자 실장석이다. 자를 보내줬다는 것은 곧 자가 나의 나침반이요 나의 목자다. 특히 이 녀석들은 분충이라 자신들의 마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 분명하다. 이 녀석들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 녀석들은 받아야 할 벌이 아직 남았으니까.
“그 똥 다 먹기 전까지는 안 내보내줄 거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마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럽게 울어제끼는 들실장들을 내버려두고 작업으로 복귀해 당근을 솎는다. 이미 1차에서 많이 솎아낸 뒤였으므로 2차 솎아내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은 쉽고 빠르게 끝났고 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난 독라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려주었다.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똥마려우면 다 싸고 들어와라.”
[데스.]
군말 않고 잘 따라주는 독라들이다. 독라들은 운치굴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실장들 위에 똥을 퍼부었다. 비명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조금 들리다가 목소리가 똥에 묻혀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과연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제대로 한다고 해도 꺼내주지도 않을 거지만. 저 녀석들이 먼저 거짓말을 했으니 나도 거짓말로 대해줘야지.
밥 냄새좀 솔솔 풍기라고 일부러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냄새도 진한 된장찌개를 끓여 밥을 먹었다. 똥냄새로 가득한 운치굴까지 냄새가 닿았을지는 모르지만, 닿았다면 분명 자실장들에게 훌륭한 희망고문이 되었을 것이다. 자린고비처럼 똥 한 입 먹고 찌개냄새 한 번 맡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려무나. 자실장들은 빨라도 내일 꺼내줄 생각이다.
다음날, 운치굴에 와서 자실장들을 찾아보니 똥 속에 상반신만 튀어나온 두 마리의 들실장이 보였다. 팔에 가위를 댔던 차녀는 상처에 똥독이 올라 곪아서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들실장들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내게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 이 행동 하나만큼은 장녀 차녀와 다를 바 없었다.
[똥닌겐! 지금이라도 늦지 않는테치! 아타치타치를 꺼내주고 사육실장으로 발탁해주면 노예로 만들지는 않는테치! 아타치타치의 집사가 될 좋은 기회를 주는테치! 아타치타치의 밤시중을 들 기회도 주는테치!]
“닥쳐, 이 집 주인은 나야. 너네들, 너희가 왜 운치굴 노예가 되었는지 아냐?”
[그야 오마에가 병신이기 때문테치!]
시끄럽게 쫑알쫑알거리는 장녀의 팔을 차녀처럼 만들어주었다. 차녀는 한 팔만 상처냈지만 장녀는 욕까지 했으니 양 팔 다 가위집을 내주었다. 벌집 삼겹살처럼 잔 칼집도 많이 내주었다. 맛은 없어보인다. 역으로 입맛이 떨어지게 만드는 모양새였다.
[테찌야아아아아아아부헤헤헤헥!]
진중한 대화를 나눠야 되는데 비명소리가 나면 안 되니까 장녀의 머리를 운치굴 깊이 처박아 소리를 막고 차녀와 대화를 시도한다. 썩어가는 상처가 가려웠는지 팔을 자꾸 긁고 있었다.
“너희가 왜 운치굴 노예가 되었을까?”
[아, 아타치타치는 잘못 없는테치! 아타치타치를 이곳에 보낸 똥마마의 잘못테치!]
“흠, 그래? 그럼 마마가 잘못했으니 마마가 벌을 받아야겠구나?”
은근슬쩍 마마를 깎아내려줬더니 차녀가 더욱 분발해서 움직였다.
[맞는테치! 옳은테치! 닌겐상은 어서 똥마마를 해치워주는테치! 아타치타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테치!]
“그러고 싶은데 어렵네. 너희 마마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아타치가 아는테치! 아타치가 닌겐상에게 알려주는테치! 똥마마를 해치워주겠다고 약속하는테치!]
걸려들었어. 멍청하긴. 친실장을 해치워버리기로 약속한 뒤 차녀를 운치굴에서 꺼내주었다. 장녀는 그대로 냅두었다. 아무 유용한 정보도 주지 않았으니까. 운치 속에서 익사하든가 똥독 올라서 죽어버려라. 그쪽이 너한테는 훨씬 편하겠지. 혼자 운치굴에서 빠져나온 차녀는 장녀를 비웃고 나를 마마가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진짜 장녀와 차녀는 자매애라도 있었는데, 들분충 사이엔 자매애고 뭐고 이기심만 가득했다.
[치프프프프픗, 똥오네챠는 평생 운치굴노예테치~. 닌겐상, 이쪽테치!]
“나 어디 나갔다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데스.]
“아, 잠깐. 빨강아, 4녀야. 같이 좀 가자.”
갑자기 자기들이 불리자 두 실장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 둘에게 바깥 세상 구경도 좀 시켜주고, 들실장을 직접 죽여서 나와 같이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고 들실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려주기 위한 현장체험학습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두 실장석은 내가 따라오라고 하자 군말 없이 날 따라와주었다.
그렇게 난 들실장 차녀를 앞세우고 빨강이 4녀와 함께 걸었다. 차녀는 전력으로 달리는 것 같지만 사람의 걷기 속도와 비슷하다. 난 느긋하게 걷지도 못 하고 정말 답답할 정도로, 차라리 삼보일배를 하면서 걷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천천히 걸었다. 걷는 일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발 근처에서 벌레처럼 움직이는 차녀를 밟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는 일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짓밟아버릴 수 있는데. 참아야 한다. 난 인간이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실장석이 아니니까. 이성이 본능을 제어하지 못 하는 순간 사람은 짐승이 되어버린다. 조심해야 한다. 거기다 지금 차녀를 밟아버리면 건방진 친실장을 잡을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진짜 삼보일배를 하면서 정신수양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빨강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 했다. 이따금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이빨을 드러내보였다. 반면 4녀는 생전 처음 보는 바깥세상의 화려한 풍경에 넋을 놓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차녀는 우릴 길에서 벗어난 작은 숲으로 인도했다. 이 근처엔 냇가가 있어서 여름에 휴가 나오기도 참 좋은 곳이다. 가을이라 물 흐르는 양이 여름에 비해 좀 줄었다. 숲 속 살구나무 아래, 갈색 얼룩이 군데군데 진 스티로폼 박스가 있었다. 그 박스 근처에는 주변에서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모으는 성체실장이 하나 있다. 의외로 들실장 치고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우리집 독라들에 비하면 여전히 들실장이지만, 살구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주기적으로 먹고 살아온 반쯤 산실장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차녀가 그 성체실장에게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한다. 저 녀석이 친실장이 분명하다.
[마마! 아타치가 돌아온테치! 똥닌겐 노예도 데려온테치!]
[데에? 오마에, 오마에가 어떻게 여길…… 어째서 오마에가 독라가 된데수! 파, 팔은 어떻게 된데수!]
[똥닌겐이 아타치를 괴롭힌테치! 이제 저 닌겐을 없애버리는테치! 마마!]
“반갑다.”
친실장이 차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핥아보면서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가늠한다. 똥독 올라서 썩어가는 상처에서는 썩은 치즈 냄새와 똥냄새가 난다. 거기다 장녀는 없고 차녀만 혼자 독라가 되어 찾아왔으니 친실장의 눈엔 근심과 걱정이 가득 어렸다.
[감히 와타시의 소중한 자를 독라에 팔병신으로 만들고도 무사하길 바란데수?]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운치굴이 어디냐?”
[그래도 주제를 아는 노예인데수? 와타시는 운도 좋은데스. 운치굴 노예가 이미 둘이나 있는데 똥닌겐 노예까지 생긴데스. 데프프프프프.]
친실장은 내 속도 모르고 알아서 운치굴로 날 인도한다. 참 단순무식한 생물들이다. 그래서 좋다고 해야 할까. 운치굴은 살구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에, 대체 뭘 먹고 똥을 싸는지 운치굴 냄새가 지독했다. 우리 집의 운치굴은 이런 냄새는 안 났는데. 자주 청소해서 그런 걸까. 들실장의 똥냄새가 이 정도라니 방독면이 시급했다. 빨강이도 운치굴 노예 시절이 있던 독라여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기가 와타시의 운치굴데스. 빨리빨리 들어가는데스. 오마에가 자청한 일이니 특별히 달마로 만들지는 않겠는데스. 와타시는 자비로운데스.]
이 작은 구덩이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난 숨을 꾹 참으며 운치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운치굴 안에는 이미 독라노예 한 마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팔다리는 잘려있었고, 똥을 잔뜩 먹었는지 입가에 암녹색의 얼룩이 져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달마노예는 내 쪽을 쳐다보았고,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덜덜 떨면서 우리를 불렀다.
[니, 니, 닌겐상……! 마마……! 이모토챠……!]
빨강이의 차녀였다. 결국 들실장에게 잡혀 운치굴 독라달마노예가 되었다. 내 얼굴을 본 차녀는 눈에서 피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자신의 처절한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아타치가 잘못한테치! 아타치가 분충이었던테치! 닌겐상의 말이 옳은테치! 마마의 말이 옳은테치! 다시는 바깥에 나오고 싶지 않은테치! 아타치를 용서해주는테치! 아타치를 다시 받아주는테치!]
“장녀는 어딨냐?”
[테, 테…….]
[이모토챠, 결국 마마의 말을 듣지 않더니 독라에 달마가 되어버린테치. 아타치의 결정이 옳았던테치!]
운치굴에 장녀는 없었다. 땅굴을 파고 빠져나갔을 리는 없고.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장녀가 어디 있냐고 물어도 차녀가 대답하길 주저한다. 운치굴은 그렇게 깊지 않아 내부가 다 보일 정도다. 장녀가 다른 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았다. 빨강이가 내 발을 툭 건드렸고, 나도 대충 맥락은 알 것 같으니 더는 묻지 않으려 했지만 멋모르는 4녀가 계속 대답을 요구했다. 멍청한 차녀를 비웃으려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마 장녀가 있었다면 장녀에게도 비슷하게 조롱을 했을 것이다.
[장녀 오네챠는 어딨는테츄!]
팔이 없는 차녀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지도 못 하고 훌쩍거렸다. 목표를 찾지 못 한 시선은 운치굴로 갔다가 잘린 팔다리로 갔다가 빨강이에게 갔다가 내게 갔다가 4녀에게 갔다가 하더니, 벌벌 떨면서 목이 메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먹은테치…….]
[테, 오, 오네챠가, 들분충에게 먹혀버린테츄?]
[아타치가…… 먹은테치…….]
차녀가 스스로, 시체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장녀를 깔끔하게 먹어치웠다는 사실에 4녀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4녀는 표정이 굳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빨강이가 그런 4녀를 감싸 안아주고, 난 운치굴에서 고개를 떼고 지독한 냄새에 혀를 내두른 뒤, 멍청한 결정을 한 차녀를 비웃으면서 말했다.
“분충새끼. 너, 집에 돌아가면 다시 열심히 일 할 거야?”
[테치테치! 열심히 하는테치! 운치굴도 치우는테치! 훌륭한 노예가 되는테치!]
“어떻게? 팔다리도 없으면서.”
[테?]
이미 잘리고 나서 아물어버린 상처라 활성제를 쓰는 의미가 없다. 잘려나간 팔다리의 복구는 불가능하다. 의수 의족을 달아줄 수는 있어도 이딴 들실장에게 그런 비싼 물건을 달아줄 여유는 없다. 팔다리가 없으니 일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노예가 되겠다는 건가.
[하지만…… 아타치를 구해주러 온 게 아닌테츄……?]
“아닌데? 너 놀려주러 온 건데. 마마 말도 안 듣고 네 좆대로 돌아다니다가 이 꼴 났잖아. 병신.”
[테…… 테에…….]
[와타시도 한때 오마에처럼 들실장의 운치굴 노예였던 적이 있는데스. 그래서 오마에에게 바깥은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던데스. 오마에는 듣지 않은데스. 와타시가 그렇게 말해줘도 듣지 않은 분충의 최후데스. 오마에에게 걸맞는데스.]
빨강이도 차녀를 버렸다. 차녀가 그럴 수는 없다며 자기를 꺼내달라고 없는 손을 뻗으려 어깨를 움직여보지만 빨강이의 반응은 한결같고 냉담했다.
[마…… 마마……! 아타치는 마마의 자테치……!]
[이젠 아닌데스.]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4녀는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부으며 차녀를 욕했다. 4녀가 제일 좋아했던, 빨강이 일가 중에서 가장 믿음직스럽고 듬직했던 장녀가 차녀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흔적 하나, 유언 하나 남기지 않고 차녀의 똥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5녀의 동족식을 본 적이 있는 4녀였지만, 인간이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하는 동족식과 자발적으로 나서서 행하는 동족식의 차이는 컸다. 4녀는 더 이상 차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오네챠를 먹을 수 있는테츄……? 장녀 오네챠는 아타치타치를 모두 아껴준테치! 분충 3녀챠가 잘못을 숨길 때도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 착한 오네챠였던테치! 닌겐상에게 혼나도 아타치타치를 감싸준 정 많은 오네챠였던테치! 어떻게 차녀 오네챠가 장녀 오네챠에게 그럴 수 있는테치! 오네챠는 분충도 아닌테치! 실장석도 아닌테치! 괴물테치! 흉물테치! 악마테치!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테치! 죽어버리는테치! 죽는 것도 아까운테치! 평생 운치굴 속에서 오마에의 운치가 되어버린 장녀 오네챠랑 같이 썩어버리는테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들한테까지 버려진 차녀는 얼굴에 실시간으로 다크서클이 끼는 것이 보였고 몸 곳곳에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날만을 기다리며 장녀를 먹어치우면서까지 살아남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저 들실장들이 죽는 꼴을 보고 다시 빨강이에게 돌아와 깨끗하고 배부르고 행복한 삶을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기회는 딱 한 번, 자들이 태어났을 때 주어졌을 뿐이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겨 제발로 행복을 걷어찬 차녀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적을 부정하면서 주마등을 달리기까지 했다.
[아타치도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닌테치! 운치를 먹어야만 했던테치! 하지만 운치는 맛 없는테치! 운치는 먹기 싫었던테치! 아타치도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닌테치…… 아닌테치…… 이건 꿈인테치…… 현실이 아닌테치…… 마마가 아타치를 버릴 리 없는테치…… 아타치는 오네챠를 먹은 게 아닌테치…… 아타치는 닌겐상의 집에 가는테치…… 아타치는 오네챠랑 이모토챠랑 마마랑 아방궁에서 행복하게 사는테치…… 배부르게 먹는테치…… 따뜻하게 자는테치…… 오네챠…… 장녀 오네챠 어디있는테치…….]
파킨.
위석처리마저 되지 않은 차녀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 표정은 마치 새로 태어나는 아이처럼 숨을 쉬기 위한 울음을 터트리려고 되는 대로 찡그리는 표정인데도 묘하게 웃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운치굴 속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소리에 들친실장이 다가와서 운치굴을 살피더니 죽어버린 차녀를 보고 우릴 욕하기 시작했다.
[데샤아아아악! 누가 오마에타치더러 노예가 되라고 했지 다른 노예를 죽여버리라고 한데수!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노예를 자청한데샤아아아악!]
“뭐래. 누가 네 노예가 되고 싶대? 야, 빨강아.”
독라가 되어 팔다리는 잘리고 장녀를 먹어버린데다 위석까지 부서져 죽어버린 차녀를 보고 들실장에 대한 증오를 불태운 빨강이는 양 주먹을 탁탁 부딪히고 콧김을 쉭쉭 뿜으며 전의를 다진다. 빨강이가 이빨을 드러내자 들실장이 당황해서 품에 지니고 있던 쇠못을 꺼내들었다.
[노예주제에 반란을 일으키려드는데수? 덤벼보는데스! 와타시의 보검으로 오마에를 두 쪽 내주는데스!]
“못이 있어? 하! 전리품이 늘겠네.”
걱정도 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못을 빼어든 친실장에게 빨강이가 날쌔게 접근한다. 빨강이의 속도는 실장석 치고는 굉장히 빨랐다. 농사로 단련된 잔근육에 내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길러진 튼튼한 신체 덕분이다. 제대로 운동을 하는 실장석에 비하면 덜하겠지만, 상대 들실장은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들판에서 주울 수 있는 쓰레기 잡동사니뿐인데다 자다가도 무슨 문제가 생길까봐 불침번을 서거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 하기 일쑤이므로 몸에 기운이 없어 움직임이 훨씬 느렸다. 빨강이의 움직임을 어떻게든 눈으로 좇으며 못을 휘둘러보지만 빨강이는 자세를 낮추고 못이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곧바로 멈춰 못을 피한 뒤 큰 동작을 하느라 빈틈이 생긴 친실장의 옆구리에 주먹을 2연타로 때려박았다.
[데배핵!]
선공을 맞았는데도 친실장은 못을 놓지 않았고 그대로 빨강이에게 휘두른다. 빨강이는 당황하지 않고 친실장에게 딱 달라붙어 혹시나 맞을지도 모르는 못을 피하고 휘두르는 팔을 가로막은 뒤 친실장의 인중에 강력한 박치기를 먹여 뒤로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점박이에게 전수받은, 빠르고 유연한 실장권법이다. 거기에 빨강이의 힘이 더해지니 실장흉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캬아악!]
[뎃!]
친실장이 뒤로 넘어지면서 마구잡이로 휘두른 못을 예상치 못 한 빨강이가 그만 못 끄트머리에 얼굴을 긁히고 말았다. 얼굴에 기다랗고 빨간 줄이 선명하다.
“빨강아!”
[마마!]
[괜찮은데스!]
나와 4녀가 놀라서 빨강이를 불렀지만 빨강이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며 친실장을 덮쳤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 무심결에 튀어나온 못에 긁힌 생채기 수준이다. 그래도 얕은 상처라지만 못에 한 번 상처를 입은 빨강이는 드러누운 친실장의 손을 물어뜯어 못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데샤아아아아악!]
[마, 마마! 마마가 죽는테치! 아타치는 죽고 싶지 않는테치! 도망치는테치!]
들실장 차녀가 친실장이 죽는 꼴을 보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자 빨강이는 친실장에게서 잠깐 떨어지고 차녀에게 다가가 몸을 날려 뒤통수에 날아차기를 꽂는다. 팔도 성치 않고 나약한 차녀는 발길질 한 번에 쓰러진다. 빨강이는 그 차녀를 쓰러진 그대로 머리통을 마구 바닥에 박힌 돌멩이에 찍어댔다.
[오마에같은 분충이 와타시의 자를 흉내내려고 하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텍! 테벡! 테벡!]
대여섯 번 찍으니 눈알이 안와에서 빠져나와 대롱대롱 매달려 뒹굴지만 빨강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뒤에서 피가 흐르는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친실장이 눈이 뒤집어져서 멀쩡한 다른 손으로 대못을 쥐고 일어선다.
“빨강아! 뒤에!”
[와타시의 자에게 무슨 짓인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급히 불렀지만 반응이 늦었다. 못을 찔러들어오는 친실장을 제때 피하지 못 한 빨강이는 팔의 끄트머리가 못에 찔려 움푹 패인 상처가 생겼다. 방금 전의 생채기와 달리 피까지 나는 상처였다. 다른 손으로 친실장에게 어퍼컷을 날려 떼어내긴 했지만 이번 건 많이 아파보였다. 녹까지 슬어있으니 파상풍도 걱정이 된다.
[마마아아아아! 테에에에에엥!]
[와타시는 괜찮은데스! 닌겐상에게서 떨어지면 안 되는데스!]
[닌겐사아아앙! 마마가 죽을 지도 모르는테치이이이이이이! 가서 구해주는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못을 든 상대는 조금 버거운가. 내가 빨강이를 도와주러 발을 떼려고 했지만 빨강이는 어퍼컷을 맞고 비틀거리는 친실장의 나머지 팔도 물어뜯어낸 뒤 못을 역으로 뺏어 배에 깊숙이 푹 찔러넣었다. 내가 도와줄 필요도 없어보였다.
[와타시의 자의 복수는 와타시가 해야하는데스! 닌겐상의 도움은 필요 없는데스!]
“말 조심해. 난 필요 없다면 정말 안 도와줄 거야.”
배를 깊게 찔린 친실장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빨강이를 떼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싸움으로 힘이 많이 빠진데다 체격 차이까지 크게 나는 친실장은 무슨 수를 써도 빨강이를 떼어낼 수 없었다. 빨강이는 친실장에게 박힌 못을 빼지 않고 머리를 뭉개버린 차녀의 썩어가는 팔을 뽑아서 친실장을 마구 때렸다. 피가 심하게 튀었다.
[지옥에나 떨어지란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옥에 가는…… 건…… 오마에…… 데샤아아악!]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나고 쌍코피를 터트리는 친실장의 한 쪽 눈에 빨강이가 차녀의 팔을 거꾸로 잡아 뼈가 튀어나온 부분을 푹 박아 넣었다. 눈에서 팔이 돋아난 모양새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연장이 없어진 빨강이는 들실장의 배에 박힌 못을 뽑았고 그 못을 친실장의 오른팔에 박아 팔을 잘라냈다. 마치 차녀의 복수를 하려는 것 같았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와타시의, 와타시의 섬섬옥수 씨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번 팔이 잘리니 들실장이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날뛰어댔다. 그 격한 움직임에 손목에서 흐르던 피가 철썩, 빨강이의 얼굴에 튀었다. 빨강이가 질겁하면서 못을 버리고 친실장에게서 물러났지만 이미 빨강이의 녹색 눈에 피가 스며들어있었다. 빨강이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아…… 안 되는데스…… 와타시의 자가…… 나오면 안 되는…… 뎃데레엑…….]
[마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안 돼!”
[텟테레후~.]
[텟테레후~.]
[텟테레후~.]
눈에 피가 들어가 양 눈이 새빨개진 빨강이는 싸우던 와중에 강제출산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와 4녀가 경악하면서 빨강이에게 다가갔지만 출산이 멈췄을 때엔 이미 다른 5마리의 저실장을 낳아버린 뒤였다. 풀밭에서 뒹구는 저실장들을 본 빨강이는 얼굴에 귀신같이 절망의 빛을 드리우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현 상황을 부정했다.
[아, 아닌데스……. 아닌데스……. 와타시가 자를 다시 낳으면 안 되는데스……. 닌겐상의 허락도 받지 않은데스…….]
허락없이 자를 낳아버렸을 때의 스트레스성 트라우마가 재발한 빨강이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저실장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특수했으므로 괜찮다고 내가 빨강이를 다독여주었지만 빨강이는 내 말이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손으로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똑바로 보게 해도 내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눈동자가 산만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괜찮아, 괜찮아!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잖아. 다 저 녀석이 그런 일이야!”
[와타시를 쫓아내지 말아주는데스……. 그렇게 힘들게 버텨서 4녀만 남겨냈는데 다시 이런 일을 겪을 수는 없는데스…….]
“빨강아, 정신 차려! 나 화 안 났어, 안 내쫓을게! 약속할게! 정말로!”
[마마! 닌겐상이 마마를 용서해주는테치! 괜찮은테치!]
[하, 하지만 이 자들을 그냥 둘 수는 없는데스. 이 자들은…… 이 자들은…….]
빨강이는 아직 점막에 싸여 꿈틀거리는 저실장 한 마리를 잡아들었다. 저실장은 자신의 점막을 닦아내주려는 줄 알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빨강이는 저실장을 입으로 가져갔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입에서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침이 흘러내렸다. 순순히 점막을 벗겨내주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허락 없이 자를 낳아 쫓겨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빨강이는 저실장의 배에 자신의 이빨을 박았다. 형체도 남으면 안 된다고 꼭꼭 씹어서,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4녀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물론이요 남은 저실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실장의 핏물이 빨강이의 입가를 물들이고 저실장의 살점이 뜯어져 땅바닥에 흩어진다.
[레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마가 우지챠를 먹는레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
[레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 돼, 먹지마!”
태어나자마자 다른 누구도 아닌 마마에게 학대를 받은 저실장 4마리는 연이어 파킨해버렸다. 내가 빨강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빨강이는 말릴 새도 없이 저실장 한 마리를 꿀꺽 삼켜버렸다.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난 다른 죽은 저실장까지 먹어버릴까봐 빨강이가 손 대기 전에 저실장들의 시체를 운치굴에 던져넣었다. 빨강이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저실장을 먹자마자 똥을 싸버렸고, 그 똥마저 저실장이라 생각하며 주워먹었다. 내가 먹지 말라고 손을 쳐내도 빨강이는 똥을 어떻게든 한 입은 집어먹었고 똥을 먹고 다시 똥을 싸내서 저실장의 조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쫓기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실실 웃고 있었는데, 웃음인지 광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 자들은 없는데스……. 닌겐상에게 걱정 끼칠 일도 없는데스…….]
그러나 내게 걱정끼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빨강이가 살려달라는 저실장을 참혹하게 먹어버리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4녀는 장녀를 먹었다는 차녀를 봤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아 눈에 생기가 없어져있었다. 그리고 차녀처럼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마가…… 마마가…… 우지챠를 먹은테치…… 아타치의…… 이모토챠타치를…… 마마도 오네챠랑 똑같은테치…… 마마도 악마인테치…… 아타치도 먹어버리는테치…….]
[아닌데스, 4녀. 오마에는 와타시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데스. 닌겐상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데스. 와타시는 절대 오마에를 먹지 않는데스…….]
4녀를 설득하려는 빨강이는 초점이 흐리멍텅하고 입가에서 피와 똥을 흘리면서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완전히 정신나간 들실장처럼 보였다. 4녀는 더 이상 빨강이를 자신의 마마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4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빨강이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4녀의 고개 젓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종국에는 눈까지 헤까닥 뒤집고 혀를 쭉 내민 채 게거품을 물며 미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싫은테치…… 싫은테치…… 아타치는…… 괴물의 자였던테치…… 악마의 자였던테치…… 아…… 아타치도 괴물인테치…… 아타치도 악마인테치……. 싫은테치…… 아타치는 괴물이 되기 싫은테치…… 아타치는 악마가 되기 싫…….]
파킨.
“4녀야!”
[데, 데에! 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4녀, 4녀챠, 4녀챠! 4녀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4녀는 스스로 가족을 먹어치우는 끔찍한 괴물로 변해버린 차녀와 빨강이의 모습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의 행복이 모두 무너지며 파킨해버렸다. 새로 낳은 자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는데도 마지막 남은 4녀까지 잃어버린 빨강이는 그 자리에서 4녀를 마구 흔들어대며 목이 찢어져라 통곡했다. 나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일엔 내 책임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4녀를 훈육시키겠다고 빨강이를 시켜 들실장을 죽이게 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빨강이는 4녀의 시체를 붙들고 오열하다가 번뜩 들실장에게 눈을 돌렸다. 친실장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움직이지도 못 하는 상태였다.
[오마에가 와타시의 자를 죽인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살릴 수 있었던데샤! 와타시가 어떻게 살려낸 4녀를 오마에가 죽여버리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4녀챠는 오마에의 목숨보다 수천 배의 가치가 있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빨강이는 여때껏 들어본 적이 없는 처절한 절규를 하며 친실장의 몸에 되는 대로 못을 박았다. 팔다리가 찢어서 말린 오징어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목구멍에 목이 꽂히자 붉은 피가 울컥울컥 흐른다. 배를 갈라내고 분대마저 찢어버렸더니 질척하고 썩은 똥이 부르륵 흘러나왔다. 빨강이는 그 똥을 못에 발라가며 친실장을 더욱 격하게 찍었다. 머리를 마구 찍어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놓았더니 친실장은 루빠모 메빠소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다가 빨강이가 입에 못을 찍어버려서 그런 소리도 내지 못 하는 몸이 되었다. 총구는 유난히 강하고 많이 찍어내렸다. 덕분에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다른 부위중에서도 총구만큼은 햄버거 패티처럼 잘게 다진 고기가 되었다.
아직 한을 풀지 못 한 빨강이는 들실장 차녀의 시체에 다가갔다. 차녀의 양 발을 잡아 들고는 차녀의 얼굴을 뭉개놓았던 돌멩이에 내려쳤다. 못에 찢기는 것도 아니고 패대기쳐져 너덜너덜해지던 차녀는 상반신의 피부가 전부 벗겨지고 근육도 점점 벗겨져 뼈만 남은 형체가 되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빨강이의 물리력에 뼈도 뭉개지고 갈비뼈에 감싸여있던 폐와 심장까지도 똑같이 뭉개져 피부와 근육과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이윽고 차녀에게 남은 것은 빨강이의 손에 들려있던 두 다리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빨강이가 먹어서 없애버렸다.
[데에…… 데에…… 데에…….]
“빨강아.”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나긋한 목소리로 빨강이를 불렀다. 빨강이는 날 돌아보지 않았다. 죽어버린 4녀를 다만 바라볼 뿐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은 갔지만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빨강이는 못을 들고 터덜터덜 나무 옆으로 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자기 몸의 절반이 들어갈 정도로 깊이, 넓게 파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 4녀의 시체를 넣고 파냈던 흙을 덮어 묻어주었다. 4녀의 묘를 만들어주고 나서 비석으로 쓰려는 듯 못을 꽂으려 했지만, 주춤하면서 꽂으려던 못을 치운다. 아예 저 멀리 던져버렸다.
[못을 보고 분충들이 묘를 파헤칠지도 모르는데스…….]
빨강이는 초췌해보였다. 눈물샘마저 말라버려서 눈이 건조했다. 못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흘러 굳어있다. 내가 닦아주려고 했지만 빨강이는 내 손길을 거부했다. 한숨마저 쉬지 않고 죽은 것처럼 가만히 4녀의 묘를 바라보았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유감의 말을 전했다. 어떤 말을 해도 빨강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경고까지 없애줬건만, 이렇게 가다니.”
빨강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5마리의 자를 잃은 기억을 어떻게든 지워보려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걸음걸이가 휘청거렸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했다. 난 그런 빨강이를 들어 안아주었다. 옷에 피와 똥이 묻는 것은 상관없었다. 옷은 다시 빨면 되니까. 4녀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빨강이가 슬피 중얼거렸다.
[이래서 닌겐상이 자를 가지지 말라고 했던데스. 와타시는 자가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분충이 되지 않을 줄 알았던데스. 분충 하나 때문에 무고한 자들이 전부 죽어버린데스. 닌겐상의 말을 들었어야 했던데스. 와타시가 바보였던데스. 와타시가 멍청했던데스. 와타시가 분충이었던데스. 와타시가……. 와타시가…….]
빨강이는 내 품에 들려 데에엥, 데에엥, 하고 울었다. 난 빨강이를 계속 안아주고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코스모스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따금 풀숲에서 들실장들이 코스모스를 가지고 음행을 하는 것도 보였다. 구역질이 나왔다. 살의가 솟구쳤다. 난 들실장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빨강이의 귀를 막아주었다. 빨강이를 안고 있는 나를 애호파로 착각한 들실장들이 자기도 받아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그런 들실장들의 얼굴을 짓밟아주는 것으로 응수하며 덤덤히 집으로 갔다.
[돌아오신데수?]
[데, 빨강이 다친데스! 데?]
[4녀는 어디있는데수?]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독라들이 날 맞이하고 4녀의 행방을 묻는다. 나는 빨강이를 마당에 내려주고 파랑이 연두 점박이를 불러모았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빨강이의 모습에 세 독라가 빨강이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4녀가 좀…… 불행하게 죽었다. 그것 말고 다른 일도 좀 많았고. 빨강이가 그것 때문에 충격을 많이 받았으니까, 웬만하면 앞으로 자 얘기는 꺼내지 마라.”
[데스.]
[데에…….]
[운치굴의 분충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데수?]
아 참, 운치굴에 처박은 장녀를 잊고 있었지. 아직 살아있나? 운치굴에 가보았더니 장녀가 상반신도 아니고 머리만 빼꼼 내밀고 날 보자마자 꺼내달라고 욕지거리부터 내뱉어댔다. 저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끼워줘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젠 아타치의 인내심도 한계인테치! 오마에를 용서하지 않는테치! 아타치가 이 운치굴에서 나가면 오마에는 마마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테치! 이 집을 아타치가 차지해주는테치! 오마에를 독라로 만들어서 아타치의 노예로 만들어주는테치이!]
이 녀석도 그 들실장의 분충이니까, 빨강이에게 처리하게 할까. 하지만 빨강이의 상태를 보아하니 손에 피를 더 묻혔다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다. 빨강이가 보지 못 하게 처리를 해야 할까. 내가 테찌야악 비명을 지르는 장녀의 머리를 막대기로 눌러 운치 속에 넣어가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파랑이가 날 쿡쿡 찔렀다.
“뭐야?”
[와타시에게 생각이 있는데스.]
파랑이는 내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그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야, 명안이다.”
다음 날, 난 빨강이를 데리고 제일 먼저 실장병원을 찾았다. 시내까지 나가야 해서 왕복하는 데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어제는 갔다오지 못 했기에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빨강이는 파상풍 예방접종을 받고 상처가 상대적으로 얕으니 입원치료는 하진 않기로 했으나 한동안 푹 쉬고 틈틈이 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위석은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금이 꽤 깊게 갔고 색깔이 탁해졌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진작 파킨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며 균형잡힌 영양상태와 평소 마음가짐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의사의 조언대로 위석 적출 수술을 한 뒤 활성제 처리를 해주기로 하였다. 깨진 위석이 다시 붙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급성 파킨이 발현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와타시는 괜찮은데수?]
수술을 받고 나서 그렇게 묻는 빨강이에게 나는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곤란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은데 괜찮다고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충격을 주면 파킨할 지도 모른다고 해서 나는 빨강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했다.
“괜찮대. 앞으로 몸 상태 좋아지려면 푹 쉬고, 밥 잘 먹고, 일은 하지 말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닌겐상이 와타시를 쫓아내는데스.]
“안 쫓아낼게. 의사양반이 그렇게 하라는데 어쩌겠냐.”
실장병원을 나와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을 봐 오면서 빨강이에게 줄 특별식을 준비한다. 두꺼운 삼겹살, 과일맛 콘페이토, 모듬 초밥 기타 등등. 실장석 치고 사람보다 호화스럽게 사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 식구인데 이정도 대접은 해줄 수 있다. 여태까지 내 말을 거역하지도 않고 말을 잘 들어준 기특한 녀석이니까. 너무 말을 철저하게 잘 들어서 어제같은 사고가 나긴 했지만.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다.
―딩동―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라클렛은 잘 지내나요?”
“영상에는 곧 죽을 것 같다고 했었죠, 참. 설레발이었나봐요. 아직도 잘 지내요.”
파랑이의 조언대로 지난 번 만났던 그 학대파 여자를 찾아가 장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집에 있었던 일을 대강 말해주었다. 여자는 장녀 차녀 4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그 특유의 눈망울을 크게 떠보이며 경청해주었지만 그러다 빨강이가 충격을 받고 병원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급히 태도를 바꾸었다. 이해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여자의 손에 들린 장녀는 분충기를 버리지 않았다. 양 팔에 난 썩은 상처는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면도칼로 살을 발라내고 활성제에 푹 담가서 재생을 시켜두었다. 그래야 더욱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카메라가 없는 게 아까웠다. 투박한 솜씨로 살을 발라낼 때 장녀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는데.
“그래서 네가 장녀구나?”
[드디어 아타치의 진가를 알아보는 닌겐이 나타난테치! 미리 말해두지만 아타치의 입맛은 최고급인테치! 하찮은 스테이크와 스시 따위로는 아타치의 배를 채울 수도 없을 것인테치! 제대로 아타치의 수청을 들지 않으면 곧바로 죽여버리는테치!]
“여태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요! 꼭 영상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뭘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자, 장녀야. 뭐부터 할까? 그래, 라클렛이랑 같이 놀아보자! 정말 재밌을 거야!”
내 손을 더럽히지 않으니 좋고, 여자는 장난감을 얻었으니 좋고. 누이좋고 매부좋고구나.
집에 돌아와서 아직 일도 끝나지 않은 독라들을 방 안에 들였고, 방 한 구석에 놓여있던 휴대용 스토브와 불판을 꺼내 세팅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에 독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삼겹살을 스토브에 놓지 않고 가스레인지 불에 프라이팬 올려서 구워 먹여서 독라들은 스토브의 용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밭일이 아직 남은데스. 벌써 밥을 먹는데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내일 해도 상관없잖아.”
[그런데 밥은 어디있는데수?]
대답은 하지 않고 스토브에 불을 붙여 불판을 달궜다. 이게 대체 뭐하는 물건인가 싶어 독라들이 손을 대려고 하면 툭 쳐서 치웠다. 불판이 적절히 달궈지자 특별히 두껍게 썰어달라고 한 삼겹살을 불판 위에 척, 올렸다. 치이이, 고기 굽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이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독라들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날 쳐다보았다.
[오, 오, 오늘 밥은 스테이크인데수? 니, 닌겐상, 무슨 바, 바람이 분 데수?]
[진짜 스테이크인데스! 믿을 수가 없는데스!]
[살아있는 보람이 있는데스! 스테이크를 먹는데스!]
파랑이 연두 점박이는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사실에 양 팔을 하늘로 쭉 뻗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환호했지만 빨강이는 구워지는 고기를 보면서도 주륵 눈물을 흘렸다.
[4녀챠가 있었으면 정말 좋아했었을 것인데스…….]
“마음 아픈 건 알아도 기운 내야지.”
[그런 건 모르는데스. 이젠 더 이상 자를 가지고 싶지 않은데스.]
껍데기가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큼지막하게 잘라 독라들에게 주고 나도 오랜만에 맛보는 삼겹살을 즐겼다. 그렇게 열심히 키워 줬더만 결국 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구나. 실장석의 생존율에 대해 심오한 고찰을 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4녀가 살아있었으면 할 일이 분담되었으니 조금 나았을까. 활성제 병 속에 담긴 빨강이의 탁한 위석은 내 마음마저도 탁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진짜 스테이크도 아닌 삼겹살일 뿐이지만 녀석들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스테이크나 삼겹살이나, 부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니 스테이크라 해도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삼겹살을 다 먹고 난 이후에는 와사비 적게 넣은 초밥을 챙겨주었고, 당연히 독라들은 눈이 뒤집어졌다.
[스테이크에 이어서 스시까지 있는데수?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데수?]
“잔칫날이지. 오, 이 집 초밥 맛있네.”
독라들은 여타 실장석들처럼 회랑 밥을 따로 먹는 게 아니라 회와 밥을 같이 먹었다. 이전에 몇 번 사준 적이 있어서 초밥 좀 먹을 줄 아는 녀석들이다. 초밥을 다 먹어도 거기서 끝나지 않고 후식으로 콘페이토까지 대령해주자 이번엔 독라들이 불안한 듯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니, 닌겐상. 갑자기 와타시타치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데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데수? 와타시타치를 내쫓을 속셈인데수!]
“뭐? 너네들 없으면 난 누구랑 같이 일하라고?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토 달지들 말고 먹어.”
많이 부담스러워 보였지만 어쨌든 독라들은 맛있게 콘페이토를 핥았다. 그래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좀 뒷이야기를 붙이긴 했다.
“이거 사오느라 돈 얼마나 쓴 줄 아냐. 너네들 앞으로 일 더 열심히 해야 돼.”
[지, 지금보다 열심히 하면 몸이 남아나지 않는데스!]
“그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큼만 해. 일만 잘 하면 뭐든 못 해주겠냐.”
독라들을 안심시키고 콘페이토를 핥게 하면서, 난 아직도 풀이 죽어있는 빨강이에게 다가가 앉았다. 콘페이토를 보자 4녀 생각이 더욱 나는 모양이다. 내가 빨강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기운 내고 팍팍 먹어. 기분은 알겠지만, 의사가 그러면 건강에 안 좋단다.”
[……데스…….]
“미안하다. 내가 4녀를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설마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어.”
[닌겐상의 잘못이 아닌데스. 와타시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던데스.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든 장녀와 차녀의 탓인데스. 들분충들의 탓인데스.]
빨강이는 날 용서해주었다. 내게도 원한을 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쉽게 용서를 해준다니 고마웠고 다행이었다. 그래도 미안한 감정을 쉽게 지울 수 없었던 나는 빨강이에게 콘페이토를 하나 더 쥐여 주었다.
“4녀는 비명에 갔지만, 그러니까 네가 4녀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줘야지. 내가 늘 ‘일 안 하면 쫓아낸다.’, ‘말 안 들으면 확 죽여버린다.’ 라고 말은 하지만, 나도 너희들 없으면 힘들고 외롭다고. 너무 기죽지 마라. 4녀도 네 기죽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거 아니냐.”
[……감사한데스. 닌겐상.]
“푹 쉬고. 아, 너희들. 빨강이는 앞으로 한동안 일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데스.]
[데스.]
[데스.]
파랑이 연두 점박이가 대답했다. 난 밥을 다 먹고 난 식탁을 정리하고 밭일의 진척도를 확인한 뒤 달력의 날짜를 확인했다. 이번 달 말까지 일을 끝내야 빠르게 겨울을 날 준비를 할 수 있다. 주변은 아직 해도 지지 않았지만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적했고, 독라들이 데챱데챱 콘페이토를 핥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빨강이도 조금은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서 조금 전보다는 열심히 콘페이토를 먹었다. 난 부디 빨강이가 하루 빨리 기운을 되찾고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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